「마이 페어 레이디」 vs 『전원교향악』 6회
라이벌의 등장, 사랑을 일깨우다
그녀는 이 힘든 경험에 너무나 몰입해 있기 때문에 사교계에 데뷔한 사람이 아니라 사막에 있는 몽유병자처럼 걸어간다.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고 그녀를 보고, 의상과 보석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매력적인 모습에 찬사를 던진다. (…)
리자: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사람들이 모두 나만 뚫어지게 쳐다봐요. 어떤 할머니는 내가 빅토리아 여왕이랑 똑같이 말을 한다고 그랬어요.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도 이 사람들이랑 똑같아질 수는 없어요.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135~137쪽.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교계의 파티 당일이 되자 일라이자는 긴장감에 몸을 떤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긴장해도, 사람들은 그녀의 우아한 자태와 ‘빅토리아 여왕 같은 발음’에 매료되어 그녀의 떨리는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라이자에게 홀딱 반한 가운데, 특히 귀족 청년 프레디가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사실 프레디와 리자는 안면이 있었다. 리자가 거리에서 꽃 파는 처녀였을 때 프레디는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 못 말리는 사투리와 넝마주이 같은 행색의 처녀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여왕 같은 숙녀일 거라고는, 프레디는 꿈도 꾸지 못한다. 프레디는 일라이자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라이자는 사교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모두가 그녀를 ‘당연히 숙녀’, ‘당연히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모두를 깜빡 속여 넘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히긴스는 그녀의 승리가 자신의 승리라고 장담한다. 오랫동안 힘들게 훈련을 감내했던 그녀의 노고는 치하해주지 않고, 히긴스와 피커링 대령은 자신들의 음성학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자축하며 기뻐 어쩔 줄 모른다. 그들이 마치 원숭이를 인간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승리감에 도취되어 축배를 들고 있는 동안, 일라이자는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도대체 난 뭐가 된 것이지? 난 그저 꽃집에 취직할 수 있는 어엿한 숙녀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그런 평범한 숙녀 이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알 수 없는 나라의 공주나 먼 나라의 여왕쯤이나 되는 것처럼 나를 추앙한다. 그러나 전혀 기쁘지 않다. 이 낯선 이물감은 무엇일까. 내가 나인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거리에서 꽃 파는 처녀였을 때가 훨씬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사투리를 몰아낸답시고 가장 나다운 것, 나의 영혼마저 몰아낸 것은 아닐까.
아직 앞을 보지 못하는 제르트뤼드는 일라이자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다. 하지만 오직 ‘목사님만이 나의 구원’이라 믿던 제르트뤼드의 태도에도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목사님은 ‘보여주고 싶은 세계’만을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세계’는 살짝 숨기는 치밀함으로, 제르트뤼드의 진짜 영혼의 눈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영특한 그녀는 속지 않는다. 목사님이 보여주지 않으려는 세계 속에, 진정한 나, 진정한 우리, 또 다른 세상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녀는 자크를 만나면서, 목사님이 한사코 보여주지 않으려는 세상의 이면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자크는 목사님처럼 무언가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다만 보여주려 한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세상이 얼마나 끝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는지를. 제르트뤼드는 목사님이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 창조주의 기쁨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창조주의 기쁨이 창조주의 소유욕이라는 점을, 목사님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엿본다는 것은 전혀 내 성격과 맞지 않았지만 제르트뤼드를 감동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내게는 중요했기 때문에 발소리를 죽여 연단으로 이어지는 계단 몇 개를 살그머니 올라갔다.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 나는 제르트뤼드 곁에 앉아 있는 자크가 여러 번 그 애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건반 위로 가져다 놓아주는 것을 보았다. 전에 내게는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으면서 혼자 해보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자크의 지도는 허락하는 것이 이미 수상한 징조가 아닌가? 나는 그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여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5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