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vs 『전원교향악』 5회
사랑과 존경 사이, 그 거대한 간극
히긴스: 난 그 애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애의 입술과 치아와 혀를 관찰하느라 기진맥진해 있다고요. 가장 특이한 그 애의 영혼은 말할 것도 없고요. (…) 어머니는 한 사람을 데려다 그에게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줌으로써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모르실 거예요. 그건 계급과 계급, 영혼과 영혼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기도 해요.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123쪽.
한 여자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음성학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두 남자, 피커링과 히긴스를 바라보며 히긴스의 어머니는 한숨을 쉰다. “당신들은 살아 있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한 쌍의 어린아이 같군요.” 히긴스는 자신이 한가한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음성학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강조한다. 그는 계급과 계급의 간극, 영혼과 영혼의 간극을 메우는 거창한 일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늘 옆에 있는 일라이자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 사이에 놓인 거리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말대로 과연 일라이자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일라이자로 인해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구축되고 있음을, 그는 깨닫지 못한다.
일라이자의 아버지 두리틀 씨가 찾아와 자신의 딸을 담보로(?) 용돈을 요구하자, 히긴스는 마치 일라이자가 자신에겐 전혀 필요 없다는 듯이, 돈을 줄 테니 데려가 버리라고 말한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자존심 게임을 하는 동안, 아름답게 치장한 일라이자가 혜성처럼 나타난다. 히긴스는 물론 두리틀 씨도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 순간 ‘숙녀의 물질성’을 깨닫는다. 단지 옷차림과 머리스타일만 바꾸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꽃 파는 처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도대체 이 숙녀는 누구시기에, 이토록 아름다울까. 그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목욕을 하고 아름다운 의상으로 갈아입자, 히긴스는 물론이고 아버지조차 자기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고아 소녀 제르트뤼드에게 ‘목사님’은 단지 스승이나 아버지를 넘어서 거의 신과 같은 존재다. 목사님은 제르튀르드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타인의 사랑을 깨닫게 해준 존재다. 가족은 물론 친구도 스승도 없는 그녀에게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찾아다 준 존재. 제르트뤼드는 목사님과 함께 있으면 무한한 충족감을 느낀다. 몇 달 만에 어엿한 교양인이자 숙녀가 된 그녀의 놀라운 변화에 가족들 모두가 놀란다. 특히 큰아들 자크는 제르트뤼드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점점 ‘무서운 늑대 소녀’에서 ‘아름답고 교양 있는 숙녀’로 변모해 간다. 그녀의 변화는 눈부시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는 더욱 눈부시다. 목사님은 자신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대상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에 대해 애써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인격의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강인한 구도자의 길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아들 자크가 그녀를 특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 타오르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다.
물론 그 애의 발전이 엄청나게 빨랐던 건 사실이다. (…)제르트뤼드는 끊임없이 내 기대를 앞지르고 뛰어넘어 나를 놀라게 했으며 대화를 나눌 때마다 과연 이 아이가 내 학생인가 의심할 정도로 발전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 그 애는 대부분의 소녀들이 바깥세상에 대한 너무 많은 쓸데없는 관심사들로 인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지혜를 보여주었다. (…) 그 애는 자신의 실명을 유익하게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그 장애가 많은 점에서 그 애에게 오히려 이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