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5회
렛미인
알려지지 않은 출생과 기형적인 체격이라는 이중의 숙명에 의해 영원히 세상과 격리되고, 어려서부터 그 이중의 건너뛸 수 없는 원 속에 갇히게 된 이 가련하고 불쌍한 사나이는, 자기를 그 그늘 속에 맞아들여 준 성당의 벽 너머로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보지 않도록 길들여져 버렸다. 노트르담은 그가 자라나고 커감에 따라, 그에게 차례차례로, 달걀이었고, 보금자리였고, 집이었고, 조국이었고, 세계였다. (…) 늘 대성당의 방향으로 자라나고, 거기서 살고, 거기서 자고, 거의 한 번도 거기서 나가지 않고, 줄곧 그 신비로운 압력을 받으면서, 시나브로 그는 그것과 닮아가고, 말하자면 그 속에 틀어박혀, 마침내 그것의 일부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 카지모도는 태어날 때부터 애꾸눈이에 곱사등이요 절름발이였다. (…) 열네 살에 노트르담의 종지기가 된 그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불구가 찾아와서 그를 완전무결한 것으로 만들어주었으니, 종들이 그의 고막을 찢어, 그는 귀머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자연이 여태껏 세상을 향해 그에게 활짝 열어놓았던 단 하나의 문이 느닷없이 영원히 닫혀버린 것이다.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11, 282~284쪽.
애꾸눈, 곱사등이, 절름발이, 그리고 귀머거리. 이것은 카지모도가 지닌 육체적 불편함이다. 종소리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열려 있던 ‘세상을 향한 창문’을 닫아버린다. 노틀담의 종소리는 그의 유일한 기쁨이지만, 그에게 허락된 마지막 비상구마저 앗아가 버린다. 이제 똑바로 걸을 수도, 두 눈으로 볼 수도, 반듯하게 서 있을 수도 없는 카지모도는 소리마저 들을 수 없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불편함은 카지모도의 우울증이다. ‘소리의 문’이 닫히면서, 카지모도의 영혼 속을 스며들던 단 한 줄기의 기쁨조차 사라져버린다. 그의 영혼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그 어떤 소리도, 빛도, 슬픔도, 기쁨도, 그를 깨우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에스메랄다는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는 햇살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에스메랄다는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은 단 하나의 창문을 그렇게 열어젖힌다. 물론 그녀의 의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이 가진 빛을 자연스럽게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빛의 따스한 온기에 감염된 사람들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빛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카지모도에게는 영원히 닫혀버린 것만 같았던, 세상을 향한 거대한 창문을, 에스메랄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쩍 열어젖힌다. ‘외부’라곤 없었던 그의 삶에 새롭고 느닷없고 압도적인 창문을 만들어준 것이다. 사실 카지모도 뿐만이 아니다. 그녀에게 매료된 남성들은 굳이 절름발이나 곱사등이가 아니라도, 충분히 ‘절뚝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카지모도보다 더욱 심각한 영혼의 불구는 프롤로다. 카지모도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긴 했지만, 카지모도를 영원히 세상의 빛과 차단시켜버렸던 프롤로. 그는 ‘파리의 모든 더러운 것들, 무질서한 것들, 규격에 맞지 않는 것들’을 청소하려는 독재자다. 그가 가장 열심히 제거하려는 계층인 ‘집시’ 소녀에게, 그는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수많은 남자들 모두 어딘가 건강하지 못하다. 기이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지나친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나마 부랑자 시인 그랭구아르가 에스메랄다를 향해 가장 인간적인 세레나데를 펼친다. 그는 가장 평범하고 다정하고 낭만적인 목소리로,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카지모도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로서 자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를 찾았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운 성당이 그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시라노 또한 대리편지를 통해 자신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숨 쉴 새로운 비상구를 찾았지만, 그 편지는 그에게 또 다른 굴레가 된다. 그가 더 아름답고 더 절절한 편지를 쓸수록, 자신의 사랑이 아닌 크리스티앙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다. 카지모도의 노트르담 성당처럼, 시라노의 대리 편지처럼,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때로 스스로를 억압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카지모도의 종소리처럼, 시라노가 쓰는 편지는 이제 그의 감옥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그가 간절한 마음을 표현해도, 그 편지는 크리스티앙의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는 그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티앙: 이 둥근 자국은?
시라노: (재빨리 편지를 빼앗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둥근 자국?
크리스티앙: 눈물자국이에요.
시라노: 그래…… 시인은 자기 글에 취하고 말지, 마법처럼! 이해하게나…… 이 편지…… 아주 감동적이었네. 그걸 쓰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네.
크리스티앙: 눈물을 흘렸다고?
시라노: 그래…… 왜냐하면……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그녀를 두 번 다시 못 보는 건…… 끔찍한 일이지! 왜냐하면 내가 그녀를…… (크리스티앙이 그를 쳐다본다) 우리가 그녀를…… (황급하게) 자네가 그녀를……
크리스티앙: (편지를 빼앗으며) 그 편지, 이리 내놔요!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