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1회
치명적인 콤플렉스, 지독한 외사랑
그녀의 주위에서 사람들은 모두 입을 헤벌리고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포동포동하고 깨끗한 두 팔로 머리 위로 들어올린 탬버린을 탕탕 치면서, 날씬하고 가냘프고 말벌처럼 발랄한 자태로 그렇게 춤을 추고 있는 동안, 그 주름없는 짧은 금빛 블라우스며, 부풀어 오른 울긋불긋한 드레스, 벗은 어깨, 때때로 치맛자락 밖으로 드러나는 섬섬한 다리, 검은 머리털, 그리고 불길이 타오르는 두 눈과 더불어 그녀는 초자연적인 피조물이었다.
‘정말,’ 그랭구아르는 생각했다. ‘저건 불도마뱀이다. 님프다, 여신이다, 메날로산에 사는 바코스 신의 무녀다!’
그때 그 ‘불도마뱀’의 땋아 늘인 머리가 풀려, 거기에 꽂혀 있던 노란 구리쇠 조각 하나가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아, 아니잖아! 집시 계집애로군.” 그는 말했다.
모든 환상이 걷혀버렸다.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05, 122~123쪽.
엄청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외모 때문인 경우, 콤플렉스로 인한 고통은 더욱 심각해진다. 누구나 콤플렉스는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활동 자체를 방해할 경우 삶은 더없이 황폐해지곤 한다. 그럴 때 사랑에라도 빠질라치면, 고뇌는 한층 심각해진다. 사랑은 상대를 한없이 우월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나 자신은 한없이 작아보이게 만드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고통과 콤플렉스의 고통이 어우러지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그 고통은 인간의 삶 자체를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 위력을 지닌다. 여기 감당하기 힘든 콤플렉스를 지닌 두 남자, 곱추 청년과 거대한 코를 가진 청년이 있다. 노틀담의 종지기 카지모도, 그리고 ‘칼’과 ‘펜’을 동시에 휘두를 줄 아는 남자 시라노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콤플렉스를 기어코 숨기고 싶은 이들의 순애보는 어느 때보다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나르시시즘이 너무 강해서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경우는 나르시시즘이 지나치게 결핍된 사랑의 불구성을 보여준다. 나르시시즘은 마치 비타민처럼 너무 결핍되어도 문제(자기애가 없으면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이고 너무 과잉되어도 문제(자기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없다는 점에서)인 셈이다.
열여섯 살의 아름다운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카지모도. 짝사랑하는 남자가 한 둘이 아닌 최고의 미녀 록산을 사랑하는 시라노.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만나기 전에는 자기 인생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묵묵히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역할을 해내며 자신의 천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시라노 또한 록산을 사랑하기 전에는 자신의 거대한 코에 대한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거대한 코를 향해 심상치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복수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문무를 겸비한 시라노는 다양한 재능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르 브레는 시라노를 가리켜 ‘달 아래 사는 사람 중에 가장 매력적인 친구’라고 예찬한다. 시인이기도 하고, 검객이기도 했으며, 물리학자이기도 하고 음악가이기도 했던 시라노는 ‘거대한 코’말고는 어떠한 콤플렉스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사랑을 시작하자 그들의 컴플렉스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시라노: 왜 쳐다보지 않으려 조심을 하죠?
화난 사람: 난 그냥……
시라노: 그러니까 내 코가 역겹다는 뜻이오?
화난 사람: 선생……
시라노: 색깔이 비위생적으로 보이오?
화난 사람: 선생!
시라노: 생긴 게 음란해 보이오?
화난 사람: 전혀!
시라노: 그런데 왜 언짢은 표정을 지으시오? 혹시 내 코가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오? (……) 어마어마하게 크다오, 내 코는! 천한 납작코, 멍청한 들창코, 납작머리 양반아, 내가 이 돌기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걸 알아두시오. 커다란 코는 그야말로 친절하고, 선하고, 정중하고, 재치있고, 관대하고, 용맹스러운 사내의 표시니까.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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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여울
문학평론가, ‘나비’ 편집위원.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드라마티크> 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저서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미디어 아라크네』, 『모바일 오디세이』, 『시네필 다이어리』, 옮긴책으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