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 미안해요. 나는 천하고 무식한 여자예요. 그리고 내 처지에서는 조심해야 해요. 당신 같은 분하고 나 같은 것 사이에 감정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되죠. 제발 어느 것이 내 것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 알려주시겠어요?
히긴스: (아주 퉁명스럽게) 원한다면 집 전부라도 가져도 된다. 보석만 빼고. 그건 대여한 거야. 이제 됐니? (휙 돌아서며 극도로 화가 나 나가려 한다) 이 못된 것아, 네가 감히 그따위 걸로 나를 비난해? 나를 때린 건 너야. 너는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어.
리자: (감추어 둔 기쁨에 짜릿해하면서) 다행이에요. 이제 어쨌든 내가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네요.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153~4쪽.
그리스신화 속의 갈라테이아는 피그말리온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피그말리온이 만들어낸 ‘조각상’이었기에. 그러나 현대사회의 살아있는 갈라테이아들은 피그말리온에게 억세게 저항한다. 나를 만들어낸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요? 나를 만들어낸 것은 당신이지만, 이제부터 살아야 할 인생은 내 것이 아닌가요? 일라이자는 히긴스가 보도록 인도하는 세상만을 보지 않는다. 일라이자는 짐작보다 더 많은 곳, 엉뚱한 곳, 미처 계산하지 못한 곳까지 본다. 그녀는 항거한다. 당신의 눈으로 편집된 세상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고.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히긴스가 만들어낸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그 모습에 ‘거리’를 둔다. 거울 속 아름답게 성장한 숙녀로 빛나는 자신의 모습에 혀를 쑥 내밀어 보이며 조롱을 하기까지 한다. 숙녀로 조작된 자신의 모습에 ‘메롱’을, 피그말리온이 만든 갈라테이아의 허상에 ‘메롱’을 외치는 것 같다.
그토록 대단한 지성과 품격을 자랑하는 히긴스도, 알고 보면 은근히 마마보이다. 히긴스는 어머니에게 도대체 일라이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상의를 하러 가서, 그녀의 모든 ‘악행’을 일러바친다. 내가 그 애 머릿속에 넣어주지 않은 생각, 내가 그 애 입에 심어주지 않은 단어가 하나라도 있는 줄 아시냐고. “코벤트 가든의 으깨진 배추 잎을 가지고 제가 이 물건을 만들어냈다니까요. 그런데 이제 나한테 숙녀 행세를 하려고 하다니!” 리자는 히긴스를 분노하게 만들어놓고, 은근히 그 상황을 즐기면서, 조목조목 상황을 정리하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자신에게 음성학을 가르쳐준 것은 히긴스지만, 진정한 예절, 누구에게든 차별 없이 존중하는 기술은 피커링 대령이 가르쳐주었다고. 피커링 대령은 그녀가 ‘꽃 파는 처녀’였을 때나, ‘만들어진 숙녀’가 되었을 때나 어떤 차별도 없이 자신에게 예를 다해 배려해주었다고. 그녀는 언어보다 더 소중한, 진정한 숙녀 되기의 비법을, 피커링 대령조차 굳이 의식하지 못했던 바로 그 ‘인간을 향한 예의’를 스스로 전수받은 것이다.
한편 목사님은 사랑에 빠진 자크를 억지로라도 제르트뤼드에게서 떼어내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자크는 집을 떠났지만, 이미 금이 가버린 그들의 가정은 어쩔 수 없었다. 제르트뤼드가 처음부터 이곳에 와서는 안 되었다고 말했던 아내 아멜리는 어느 날 목사님에게 폭탄선언을 하고 만다. “어쩌지요, 여보. 내겐 내 눈을 멀게 할 능력이 없는데.” 아내의 노골적인 빈정거림에, 목사님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제 목사님이 제르트뤼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목사님뿐인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는 그녀는 품위를 지키고 있는 목사님께 불쑥 묻는다. 목사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자크도 알고 있나요? 그녀는 이미 눈을 뜬 것처럼, 그녀에게 숨겨진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그녀가 해결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아파하고 있다.
“목사님은 자크가 아직도 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세요?”
“그 애는 너를 단념하기로 결심했단다.” 내가 곧 대답했다.
“그러면 목사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자크가 안다고 생각하세요?”
(…) 제르트뤼드의 질문이 내 마음을 너무도 설레게 해서 나는 걷는 속도를 좀 늦춰야 했다.
(…) “아멜리 아주머니는 알고 계세요. 저는 그것이 아주머니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 저는 이런 행복은 원치 않아요. 목사님도 아셔야 돼요. 저는…… 저는 그렇게 행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에요. 차라리 저는 아는 쪽을 택하겠어요.”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89~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