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을 관람하고 싶을 때 우리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갑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수많은 회화 작품과 서예 작품들, 도자기들, 조각 작품들, 공예품들을 시대별로 일람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의 근현대 미술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고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인데 국립현대미술관은 ‘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입니다. 똑같이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데 어떤 곳은 ‘박물관’으로 불리고, 어떤 곳은 ‘미술관’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영어 이름을 보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어 명칭은 ‘The National Museum of Korea’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영어 명칭은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입니다. 두 곳 모두 ‘뮤지엄’입니다. 그런데 한 곳은 ‘박물관’이고 다른 한 곳은 ‘미술관’으로 통용됩니다. 왜 그럴까요?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분하는 무슨 기준이 있는 걸까요?
국립중앙박물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oul-National.Museum.of.Korea-01.jpg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MCA-Gwacheon.jpg#/media/파일:MMCA-Gwacheon.jpg 제공. |
먼저 세계의 유명 ‘뮤지엄’들 중에서 어떤 ‘뮤지엄’이 ‘박물관’으로, 어떤 ‘뮤지엄’이 ‘미술관’으로 번역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로니에북스의 『세계 미술관 기행』 시리즈는 세계 유명 미술관 열네 곳을 소개하는데 그중 아홉 곳이 ‘뮤지엄’입니다. 이 ‘뮤지엄’들 중에서 어느 ‘뮤지엄’이 ‘박물관’으로, 어느 ‘뮤지엄’이 ‘미술관’으로 번역됐는지 맞혀 보시기 바랍니다. ‘미술관’으로만 번역되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 있는 다섯 곳은 잠깐 제외해 놓겠습니다. 미술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1. Van Gogh Museu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 Museo Nacional del Prado (스페인 마드리드)
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미국 뉴욕)
4. Musée d’Orsay (프랑스 파리)
5. Musée du Louvre (프랑스 파리)
6. The British Museum (영국 런던)
7. Rijksmuseu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8.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The State Hermitage Museu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9. Kunsthistorisches Museum (오스트리아 빈)
여러분이 어떤 기준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분류했을지 궁금합니다. 『세계 미술관 기행』 시리즈에서 ‘뮤지엄’이 ‘박물관’으로 번역된 곳은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 세 곳입니다. ‘뮤지엄’이 ‘미술관’으로 번역된 곳은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예르미타시 미술관State Hermitage Museum 여섯 곳입니다. 이 둘을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농담 삼아 즉석에서 내놓은 답은 ‘박물관’에는 미라가 있지만 ‘미술관’에는 미라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Neues Museum 같은 ‘박물관’에는 미라가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관에도 미라는 아니지만 미라 관이 몇 개 있습니다. 그러나 우피치 미술관이나 런던의 국립미술관, 워싱턴의 국립미술관, 베니스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같은 ‘미술관’에는 미라가 없습니다. 물론 여기도 예외는 있습니다. 흔히 ‘미술관’으로 표기되는 보스턴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에도 미라 관이 여러 개 있습니다. 물론 이 미술관에서 미라 관을 소장하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 유물로서의 가치보다는 관 뚜껑에 그려진 초상화의 미적 가치 때문일 것입니다. 미라의 소장 유무가 절대적인 분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 자료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좋은 예는 될 것 같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미술관’에서는 소장 자료가 ‘미술’에 한정된다면, ‘박물관’에서는 소장 자료의 범위와 대상이 ‘미술’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됩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박물관은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역사, 고고考古, 인류, 민속, 예술, 동물, 식물, 광물, 과학, 기술, 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하는 시설”이고, 미술관은 “문화, 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하는 시설”필자 강조입니다. 박물관이 수집하고 전시하는 대상이 “역사, 고고考古, 인류, 민속, 예술, 동물, 식물, 광물, 과학, 기술, 산업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한다면, 미술관의 수집, 전시 대상은 “미술”에 관한 자료로 한정됩니다. 수학으로 표현하면, 미술관은 박물관이라는 전체 집합의 일부를 차지하는 부분집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박물관이 미술관은 아니지만, 모든 미술관은 박물관으로 불릴 수 있는 겁니다. 위에 인용된 미술관의 정의 중 “박물관 중에서”라는 구절이 나타내듯이 미술관은 박물관의 한 분야로, 미술관의 다른 이름은 ‘미술 박물관art museum’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루브르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대영 박물관에서는 “역사, 고고考古, 인류, 민속, 예술 등” 광범위한 분야의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는 반면, 반 고흐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예르미타시 미술관에서는 미술과 연관된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기준에 의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영 박물관에 가면 이곳은 ‘박물관’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적 관심사’를 벗어난 역사적인 유물들이 많으니까요. 루브르 박물관과 빈 미술사 박물관의 경우에는 약간 아리송합니다. 고대부터 시대별, 지역별로 방대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해도 전체 소장품이 ‘미적 관심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두 곳은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에 가깝다는 인상을 줍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루브르 박물관을 ‘미술 박물관’, 즉 미술관으로 소개하는 기사나 글을 상당히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뮤지엄’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museum’이나 ‘museo’ 혹은 ‘musée’ 같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면 이런 혼란이 안 생기겠죠? 그렇다고 ‘뮤지엄’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말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이런 혼란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런 혼란은 어쩌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통용되는 ‘박물관’과 ‘미술관’ 분류 체제를 우리나라가 빌려와 사용하면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지만 확인해 보진 못했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분하는 첫 번째 기준이 소장 자료의 분야와 대상이라면 또 다른 기준은 소장 자료의 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규정해 놓은 박물관, 미술관 설립 요건을 살펴보면 종합 박물관은 각 분야별로 100점 이상의 소장 자료가 필요하고, 전문 박물관 및 미술관은 100점 이상의 소장 자료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술관이 박물관보다 규모가 더 작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오르세 미술관이나 반 고흐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예르미타시 미술관의 규모는 세계 어느 박물관과 겨뤄도 뒤지지 않으니까요.
박물관은 또한 설립과 운영 주체에 따라 공공 박물관국립 박물관, 공립 박물관, 대학 박물관과 사립 박물관으로 구분되고, 운영 목적과 대상에 따라 종합 박물관과 전문 박물관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종합 박물관이 “역사, 고고考古, 인류, 민속, 예술, 동물, 식물, 광물, 과학, 기술, 산업” 등 광범위한 분야의 자료를 소장하고 전시한다면, 전문 박물관은 이 중 한 분야에 집중합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나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곳이 종합 박물관에 속한다면, 워싱턴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나 빈의 자연사 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은 전문 박물관에 해당합니다. ‘미술 박물관museum of art’이라는 한정어가 붙어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현대 미술 박물관museum of modern art’이라는 한정어가 붙어 있는 뉴욕의 현대 미술관, ‘순수 미술 박물관museum of fine arts’이 붙어 있는 보스턴 미술관처럼 미술에 집중하는 박물관들 역시 전문 박물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미술 전문 박물관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미술관’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이나 북경의 중국미술관National Art Museum of China 모두 미술 전문 박물관으로 ‘뮤지엄’임에도 ‘미술관’으로 명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뮤지엄’박물관 및 미술관은 무엇이고, 전 세계에는 ‘뮤지엄’이 몇 개나 있을까요?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는 기원전 6세기경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에닌갈디Ennigaldi 공주가 세운 에닌갈디 난나Ennigaldi-Nanna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이 박물관은 유적으로만 남아 있답니다. 기원전 284년경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367~283 BC가 세운 알렉산드리아 박물관Mouseion at Alexandria 역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이곳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도서관이 함께 있어서 학자들이 문예와 철학을 연구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최초의 근대적인 공공 박물관은 1677년에 옥스퍼드대학교에 엘리아스 애쉬몰Elias Ashmole이 세운 애쉬몰리언 박물관Ashmolean Museum이랍니다. 이곳 박물관에서는 미술 작품과 고고학 유물이 보관,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대학교에는 가 본 적이 있는데 이 박물관에는 가보질 못했습니다. 다음에 영국에 가게 되면 꼭 들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2018년 현재 202개국에 약 55,000개의 ‘뮤지엄’이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최근 통계국제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의 통계를 찾아보니 사 년 정도에 걸쳐 2022년 현재 거의 두 배인 104,000개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현재 박물관 및 미술관이 1,124개박물관 873개, 미술관 251개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영월에 가다가 깊은 산골에 자리 잡고 있는 판화 박물관과 인도 미술 박물관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컬렉션을 갖추고 있는 이 미술관둘 다 미술 박물관이니 미술관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얼마나 많이 존재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앞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면 왜 그곳에 미술관 대신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아니면 박물관 대신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한 번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박물관이면 어떻고, 미술관이면 어떻습니까? 그곳에서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