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20년이 흘렀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기적의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 봅니다.
여섯 번째로 만난 사람은 이용훈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입니다. 서울도서관 관장과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도서관문화비평가라는 이름으로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과 도연문고 대표,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도서관과 사서가 제 역할을 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창립과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참여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기억하세요?
1999년에 정부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기반시설에 대한 시범평가를 실시했어요. 그때 저는 한국도서관협회에 있었는데 도서관 분야 평가위원으로 참여했죠. 평가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문화 분야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하여 1999년에 9월에 ‘문화연대’를 창립했어요. 저는 도서관출판분과에서 도서관 부문을 맡았어요. 당시 문화연대 공동대표였던 도정일 선생께서 책 읽기는 중요한 문제라 별도의 활동 단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서관계, 출판계, 교육계 등이 연대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 2001년 6월에 탄생한 거죠. 그리고 제가 첫 사무처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MBC와 연결이 되어 2001년 11월부터 ‘느낌표’ 프로그램이 시작됐어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수익금을 기부 받아서 재원이 많아졌죠. 이걸 도서관을 짓는 데 쓰자 해서 2003년 1월에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 기적의도서관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서관을 만드는 일이어서 많은 논의가 오갔을 것 같은데요.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중요한 논의 중 하나는 기부채납 방식이었어요. 기적의도서관을 지자체에 넘기면 운영이 잘 될지 보장할 수 없었죠. 그래서 중장기한 10년에 걸쳐서 기부채납하자는 주장도 있었어요. 그러나 민간에서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에 계속해서 도서관을 관리할 수 있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과, 분리해서 기부채납 하는 것에 따른 법률문제 등 여러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바로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기적의도서관 가치와 활동을 책임질 관장 선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었어요. 「도서관법」에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가 한다고 되어있었지만, 당시에는 지자체에 어린이 도서관 관장을 맡을 사서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현실이었죠. 그래서 민간 전문가를 관장으로 선임하거나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관장을 추천하는 방식 등을 논의했죠. 그래서 몇몇 곳은 어린이도서관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 관장이나 개관준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 기적의도서관이 우리나라 도서관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적의도서관 전과 후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일단 지자체와 시민들의 도서관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방송에서 도서관 이야기가 나오고 시민들이 열광했고, 기적의도서관 공간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죠. 2000년대 들어 마침 지자체의 도서관 확충 현상과 맞물려 제대로 된 도서관 건립에 대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관심과 의지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내적, 외적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반에 기적의도서관의 역할이 컸다고 믿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도서관문화를 바꾸고자 했어요. 기존 도서관의 제일 큰 문제는 공부방 같다는 거였어요. 도서관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하고 대부분 공간을 공부방으로 쓰고 있었죠. 이런 문화를 바꿀 방법은 어린이였어요. 어린이도서관에는 공부방이 없어도 되고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전통적인 도서관과 다른, 제대로 된 도서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제대로 이해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도 기대했어요.
실제로 기적의도서관이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어요.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죠.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 이후 정부 예산 담당자가 “요즘은 어린이도서관 짓겠다는 계획이 많은데, 성인을 위한 도서관은 이제 필요 없나요?”라고 묻기도 하더라고요. 관련해서 어린이 대상 활동을 많이 하던 사립의 작은도서관이 주목받으면서 「도서관법」에도 어린이도서관이 하나의 구분으로 명시되고, 정부나 지자체의 작은도서관 활성화 정책이 생기는 변화로도 이어졌어요. 작은도서관을 포함해서 공공도서관 전반에 인식 전환과 구체적 변화를 촉발하는 도전이 상당 수준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여전히 어린이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라는 계층을 대상으로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어린이 전문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문도서관은 전문서비스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해야 해요. 전문적인 도서관서비스를 다른 공공도서관 등과 연계하여 누구나 어디서나 전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죠. 도서관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모든 도서관이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던 단계를 넘어서서 다양한 시민의 요구에 대응해서 다양한 주제나 대상의 공립 전문도서관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 전문 도서관으로서 어린이 서비스를 개발하여 다른 공공도서관에서도 좋은 어린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올해로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가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 기적의도서관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년 전에 비해 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와 공간이 많이 좋아졌죠. 앞으로 기적의도서관을 어린이도서관이 아닌 일반 공공도서관으로 짓겠다고 하는 것도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기적의도서관이 어떤 새로운 공공도서관으로서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처음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단순히 어린이도서관 몇 개를 지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전체 도서관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책 읽는 시민이 많아져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니 지금도 그런 목표와 의미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 도서관에 필요한 기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먼저,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통합해서 모두 공공도서관으로 하고, 대신 공립과 사립으로 구분해서 서로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죠. 이번에 개정된 「도서관법」에도 설립주체국립, 공립, 사립로 도서관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어요. 공립은 공립답게, 사립은 사립답게 운영하자는 거예요. 여전히 우리나라에 도서관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공립 공공도서관 1,200여 곳에 작은도서관이 공립 1,500여 곳, 사립 5,000곳이 있어요. 도서관 분포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중복은 줄이고 부족한 곳은 채워야죠. 적어도 공립 도서관은 서비스 범위와 수준을 체계적이고 형평성 있게 재구성해야 합니다. 공립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누구라도 고르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도서관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립은 더 자유롭고 도전적으로, 더 특별하거나 보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 체계를 보면 대형병원과 중간병원, 동네 의원이 있잖아요. 각급 병원마다 역할이 체계적으로 정해져 있어요. 도서관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거죠. 이게 실현된다면 정말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도서관운영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운영위원회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에요. 그래서 「도서관법」에서 운영위원회를 두라고 명시하고 있고요. 운영위원회에 누가 참여하는지, 운영위원회가 무엇을 하는지는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제대로 안 되는 곳이 많죠. 도서관 운영자든 주민이든 아무도 운영위원회에 신경을 안 쓰고 있어요.
운영위원회가 제대로 되려면 운영위원회를 민주적으로 구성하고 운영위원회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해요. 도서관에 관심 있고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 운영위원회에 참여해서 도서관 운영을 논의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역할을 해야죠. 연간 운영 계획을 운영위원회에서 먼저 논의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보면 도서관 이사회에서 도서관 운영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해요. 그 자체가 시민의 자발적인 교육이고, 공동체 경험이고,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지자체는 도서관 조례에 ‘운영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시장에게 보고한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시장에게 보고한다는 건 운영위원회의 결정 사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물론 회의록도 적극 공개하고요. 그래서 도서관이 관장과 직원뿐만 아니라 시민이 함께 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그런 모델을 기적의도서관이 보여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공립 공공도서관의 문제 중 하나는 순환보직이에요. 사람이 계속 바뀌어서는 원래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요. 관장이라도 계속 있으면 새 직원이 와도 정신이나 경험을 이어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계속 순환보직을 하니까 그럴 수 없어요. 관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걸 하려 하다가 뒤죽박죽되기도 하고요. 사서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고 현장 중심 체계로 가야죠.
마지막으로, 도서관이 매년 연보를 만들어서 공유하면 좋겠어요. 자료가 축적되면 역사를 쓸 수 있어요. 매년 「도서관 연감」이나 「출판 연감」이 나오잖아요. 그것들만 모아놓고 보면 역사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이제 개별 도서관도 자기 역사를 써 내려갈 때예요. 표준화된 방식에 따라 데이터를 정리하고 연보를 발행하고 시민에게 공개해야죠. 공개해야 성장할 수 있어요. 기적의도서관이 이런 일을 선도해 나가면 좋겠어요.
★ 인터뷰 및 글 : 서동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