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19년이 흘렀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기적의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 봅니다. 세 번째로 순천기적의도서관 20주년 기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가영 사서를 만났습니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순천기적의도서관 사서 이가영입니다. 순천시에서 근무한 지는 이제 3년 반 되었고요. 기적의도서관에서 근무한 지는 8개월이 되었어요.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성년의 해 사업과 20주년 기념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 올해 ‘기적의 얼굴 찾기’ 캠페인과 수기집 편집 업무를 담당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한편으로는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순천기적의도서관이랑 연관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했어요. 순천시는 재작년부터 책 쓰기 사업을 열성적으로 펼치고 있거든요. 많은 담당자들이 책을 만들어본 경험을 갖고 있는데 저는 책을 만들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선배들의 작업을 봐오면서 ‘나라면 이렇게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투영된 게 이번 수기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감사하게도 책의 제목이나 구성이 좋다는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되었어요.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는데요. 제가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일한 시간이 짧아서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담기에는 힘에 부치는 점이 많았어요. 수기집은 방대한 순천기적의도서관 20년의 이야기 가운데 아주 일부분만을 담고 있을 뿐이에요. 내년에 만들 예정인 「20주년 기념백서」는 이런 부분을 충분히 보완해서 제작하고 싶어요.
― 수기집에는 「느낌표」mbc 방송 출연자, 오랜 자원활동가와 이용자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중 어떤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하나하나가 다 기적의도서관과의 소중한 인연을 담고 있어요. 특별히 첫 번째로 구술 채록을 진행했던 윤해경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요. 윤해경 선생님은 기적의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자원활동을 하셨고 지금은 ‘도그책방’이라는 독립서점을 운영하시면서 그림책 전문 강사로도 활동하고 계세요. 선생님을 통해서 책이나 문서로는 잘 알 수 없었던 도서관을 유치하던 때의 상황과 개관 전후의 상황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기적의도서관이 계기가 되어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씀해주셔서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방송출연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도 모두 기억에 남는데요. 특히 최상호 선생님께 연락이 왔을 때를 잊을 수가 없는데, 당시 선생님이 출연하신 「느낌표」 방송분을 여러 번 돌려보았을 때라서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바로 그 분인 걸 알았어요. 마치 오랜 은사님과 연락이 닿은 느낌이었지요. 당시 방송에 같이 출연하셨던 따님 최빛나 선생님과 함께 따뜻한 내용의 수기를 보내주셔서 감사했어요.
이 외에도 타지에서 순천에 왔지만 순천기적의도서관 덕분에 친구도 사귀고 외롭지 않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는 어머니들, 기적의도서관에서 꿈을 키우고 이룬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도서관이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그 해답을 사람들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렸을 때 순천기적의도서관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자발성과 비자발성 그 어느 사이에서 수기를 작성해주신 동기와 후배 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제1호 기적의도서관으로, 시민의 큰 관심과 성원으로 탄생했습니다. 개관 당시에는 매우 특별한 도서관이었을 텐데요. 지금은 어떤가요? 다른 시립도서관과 구별되는 순천기적의도서관만의 차별점이 있나요?
지금의 순천은 순천만국가정원으로 대표되고 있는데요. 그 이전, 순천이라는 도시를 변화시킨 시발점에는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있었어요. 우리 도서관의 유치와 설립은 순천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대의를 위해 함께 뭉치는 방법을 알려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도서관에서 시작한 자원활동이 순천형 자원활동의 초석이 되었고, 여기서 능력을 개발한 주부들이 지금까지도 전문 강사나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시간이 흘러서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이제 수많은 어린이도서관 중 하나가 되었어요. 이제는 다른 시립도서관에도 어린이실이 있고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순천의 어린이들이 갈 수 있는 도서관이 많아졌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순천기적의도서관을 좋아하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이유는, 이곳에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 바닥에서 엎드리거나 누워도 되고, 소리 내 책을 읽거나, 구석구석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친구들과 소곤소곤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어린아이들끼리만 와도 안전하고 아이들이 책에 빠져있는 동안 부모님도 본인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요. 조금은 소란스럽고 자유분방하고 안심이 되는 장소라는 무언의 약속이 순천기적의도서관 공간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위기는 순천기적의도서관이 20여 년 동안 쌓아온 거예요.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용자와 지속적으로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정기용 건축가님의 설계, 그리고 여전히 기적의도서관에 관심과 기대를 가져주시는 지역 주민들과 관계자분들이 기억하는 ‘처음의 마음’ 덕분일 거예요. 공간에 깃든 철학과 역사성이 지금도 순천기적의도서관을 다른 도서관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도서관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해요.
― 순천기적의도서관이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하여 어떤 이벤트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우선 「순천기적의도서관 20주년 기념백서」 발간을 계획 중이에요. 20년사를 망라하는 데이터와 기록들과 함께 과거부터 현재까지 순천기적의도서관과 연을 맺으신 분들의 글을 수록할 예정이에요. 올해 성년의 해 사업을 준비하면서 10주년에 발간했던 「순천기적의도서관 10년의 이야기」 책자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역시 기록만이 살길이다 싶었지요. 앞으로도 사람은 계속 바뀔 텐데 이렇게 과거의 기록이 남아있다면 30주년, 40주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올해 처음 시행한 ‘어린이도서관·도서관 어린이서비스 우수사례 및 아이디어 공모전’과 ‘북적북적 바자회’도 좀더 다듬어서 추진할 예정이에요. 공모전의 경우에는 국내 어린이도서관 분야에서 시행되는 최초의 학술 공모전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이 모아졌어요. 특히 대학생들이 지원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공모전이 꾸준히 이어지다 보면 학계에서 어린이도서관과 관련된 논의가 보다 활발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돼요.
‘북적북적 바자회’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한 기적의도서관이 이제 받기보다 나눔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는데요. 내년에는 순천기적의도서관 20주년 홍보와 더불어 좀더 많은 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순천, 제천, 진해 기적의도서관이 함께 2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함께 기획하고 꾸려가는 사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외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어요.
― 앞으로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어떤 도서관이 되길 바라시나요?
설립의 근본 취지는 잊지 않되, 어린이를 위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도서관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최근에 전금하 그림책 작가님과 함께 1층 서가와 2층 별나라방을 새롭게 단장했는데 상당히 성공적이었어요. 별나라방은 ‘도서관은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곳’이라는 컨셉을 따라서 비행기의 원통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곳인데요. 쉽게 손대기가 어려워서 약간 낡은 듯한 느낌이 나는 장소였어요. 그런데 최근에 새롭게 단장하면서 원형은 유지하되 기존의 컨셉을 확장해서 아름다운 별자리가 수놓아진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순천기적의도서관의 새로운 상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어요.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이제 연식이 상당히 오래된 도서관이 되었지요. 시설 면에서 새로 생긴 도서관들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생각이 낡지 않은’ 도서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분께서 “사서는 사람을 읽는 직업이고, 도서관은 공동체의 삶을 읽는 곳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얼마 전에 2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해서 도장을 하나 만들러 근처 도장집에 갔어요.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순천기적의도서관이) 벌써 20년이나 되었냐, 20년 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며 무척 반가워하셨어요.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지역공동체의 자부심이자 자랑이에요. 20년 후에도 “벌써 40년이 되었냐”라는 말이 바로 나올 정도로 ‘모두가 힘을 합쳐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그 처음의 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도서관이길 바랍니다.
★ 인터뷰 및 글 : 서동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