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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고 사랑하는 법
독서동아리 ‘채식한권’
모이는 곳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마을책방
모이는 사람들
채식을 실천하는 10~20대 청년들
추천도서
·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지음, 책세상 펴냄)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
· 씨앗, 할머니의 비밀 (김신효정 지음, 소나무 펴냄)
· 사랑할까, 먹을까 (어느 잡식가족의 돼지 관찰기 (황윤 지음, 휴 펴냄)
·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시공사 펴냄)
너무 바빠서 자기가 먹는 게 무엇인지 신경도 못 쓰고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우리네 일상. 그럼에도 올바른 먹거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채식한권’은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모이는 채식 독서동아리다. 하자센터에서는 실명 대신 서로의 별명을 불러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곳에서는 나이, 학력, 사는 곳에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이 정한 이름대로 불리는 청년들이 모인다. 하자센터 내 마을책방에서 실제로 채식을 실천 중인 이들이 모여 매주 비거니즘과 환경에 관련된 책을 읽고 건강한 삶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작고 푸른 행성을 위해 모인 사람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 싫다고 거부할 거고, 어떤 사람은 이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뭔가 실천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할 거고, 불편해지는 거예요. 일상이.’ (『사랑할까, 먹을까』에서)
다들 어떻게 모이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산하
단순히 책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공부할 수 있는 독서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마음 맞는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책도 읽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책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주변에 채식하는 사람들을 알음알음 모아 소규모로 시작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같이 책을 읽나요.
칩코
책 선정은 자유롭게 이뤄져요. 이전 책이 읽기 어려웠다면 이번에는 비교적 읽기 쉬운 책으로 하는 거죠.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기도 해요. 그리고 책을 읽다가 생기는 궁금증이 다음에 읽을 책을 선정할 때 영향을 주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이 책을 읽고 있는데 화학물질에 관심이 생기면 다음 책은 화학물질에 관한 책을 읽어보는 그런 식이죠. 다들 비거니즘이나 환경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동물권 보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책도 종종 읽고 있어요.
유나
격주에 한 번 이뤄지는 ‘채식 한 접시’ 요리모임도 독서모임과 함께 진행돼요. 채식 한 접시에서는 언니네 텃밭여성농민공동체 재료를 사용해 요리를 해 먹어요. 하자센터 내 있는 부엌을 이용해서 요리를 진행해요. 채식하기 전에는 내가 먹는 게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농민들이 만든 제철 농산물을 받아 요리한다는 경험이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채식 한 접시는 비건이 아니어도 책 읽기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해요. 모여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채식한권’이 지향하는 독서동아리는 어떤 모습인가요.
칩코
꾸준히 만나는 곳. 다른 책모임은 모임 횟수가 적다 보니 덜 친해졌던 것 같아요. 여기는 자주 보니까 같이 밥 먹고 놀러 가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꼬리
피상적인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기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을 때도 안전한 곳. 내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장애물과 이런 것들을 말하길 두려워하지 않고 터놓고 보듬어주고 같이 가는거죠.
산하
매주 만나 이야기하는 곳. 어쩌면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생각과 고민이 달라요. 언제든지 고민을 꺼내놓을 수 있고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유나
더 복합적이고 넓은 시각을 가지게 해주는 곳. 앞으로는 비건이 아닌 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비건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독서동아리를 통해 다들 책 읽는 시간이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았으면.
보석
앞으로 더 자주 나와야 하는 곳.
우리 자신이 곧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가 되도록
‘딜레마라는 건 익숙했던 관성에 물음표를 던지고 잠깐 멈추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다시 관성으로 돌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로 갈 것이고, 누군가는 중간 어디쯤에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사랑할까, 먹을까』에서)
‘채식한권’만의 특별한 점은 뭔가요.
칩코
채식한권은 말이 가장 잘 통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비거니즘 페미니즘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죠. 사실 다른 곳에서 이 정도 공감을 얻긴 힘들어요. 어떤 말을 해도 모두 이해하고 알아주기 때문에 좋아요. 그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지속적·비폭력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산하
다른 책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처음부터 나이, 직업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더라고요. 그런데 하자센터에서는 그런 걸 벗어나 인간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험이 좋았어요. 그리고 비건을 실천하고 있어도 가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고 지칠 때가 있어요. 그때 책모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다시 한번 비건에 대해 상기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더 으쌰으쌰 다 같이 공부하게 되는 거예요.
꼬리
책모임 참여자 전원이 비건이라는 점. 특히 사회문제를 다루다 보니 토론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연령대가 낮아서 그런지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를 얘기할 시간이 많아요. 기성세대와는 다른 변화를 이야기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부터 오는 답답함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있어요.
요즘 ‘채식한권’에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산하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뭐가 내 식탁에 차려질까?’죠. 결국 나 자신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사회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밥상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어디서 어떻게 길러지는 식자재를 사야 할지 그걸 또 어떤 방식으로 건강하게 차려 먹을지에 대해서요.
꼬리
자급자족하는 삶. 우리가 폭력적이지 않은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사는 게 현대문명 안에서 불가능해지고 악순환이 지속돠는 거죠. 기후변화는 빠르게 다가오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급할 수 있을까요.
유나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에 대해 계속 고민해요. 동물을 안 먹는 건 개인이 할 수 있어도 쓰레기까지 만들지 않는 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요새는 최대한 플라스틱 프리로 장을 봐요. 포장이 많은 유기농 재료와 포장이 적지만 생산 과정을 모르는 재료 중에서는 무엇을 택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고요. 누구에게는 사소한 문제일 텐데 이런 거 하나하나에 마음 아파하는 제가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해요.
모임이 시작되자 5명의 회원들은 파트별로 책을 읽고 인상 깊은 점은 밑줄을 그어 온 후 왜 밑줄을 긋게 됐는지 자유롭게 말했다. 한 사람이 말하면 그 위에 차례로 이야기가 얹어져서 자연스레 토론으로 발전했다. 갑론을박의 치열한 토론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 모습이었다. 독서모임이 끝난 후에는 격주로 진행하는 ‘채식 한 접시’를 위해 하자센터 내 주방으로 모였다. 그들은 갖가지 유기농 재료로 능숙하게 요리를 시작했다. 꼼꼼하게 재료의 상태를 확인하고 향을 맡아보는 그들에게 채소를 아끼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싱싱한 재료로 즐겁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일,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 그 세 박자가 고루 어우러져 ‘채식 한 접시’의 풍성한 식탁을 만들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채식요리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채식을 실천하는 그들을 보며 먹지 않고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채식한권’은 연대라는 씨앗이 모여 변화가 싹트는 텃밭이었다. 청년들은 책뿐만 아니라 일상과 고민을 공유하며 ‘바르고 건강하게 사는 삶’을 주제로 하나로 연결됐다. 그들이 일궈낸 일상의 변화를 통해 세상의 변화도 조금씩 싹트길 바라며, 칩코, 유나, 보석, 꼬리, 산하의 식탁을 응원한다.
★강주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