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까지 한반도는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가 벌이는 호전적인 발언에 꽁꽁 얼어붙었다. 그랬는데, 신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음에도 적어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남북관계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 초에 예의 호승적인 분위기는 유지하면서도 전격적으로 평창올림픽 참가를 선언하였고, 그 이후 적어도 현재까지는 다각적인 남북대화 및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단일팀이라는 드라마가 작성되고 있다.
이 드라마가 예기치 못한 일들로 갑작스런 비극으로 끝날지, 아니면 겨울 삭풍을 이겨내고 따스한 춘풍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모두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질문 하나는 더 커진다. 도대체 북한은 어떤 나라일까.
이에 대한 답변 중 하나인 인류학자 권헌익과 장병호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은 때마침 열리게 된 평창올림픽과 연관하여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2013년 출간된 이 책은 수십 년 유지된 북한이라는 폐쇄된 체제의 문화구조적인 맥락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책 출간 이후 공고화된 김정은 체제의 독특한 스펙터클 정치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저자들이 밝힌 대로, 클리포드 기어츠의 ‘극장국가’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는 바, 우선 기어츠라는 문화인류학의 대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한 견고히 유지되는가 하는 인류사의 문제를 기어츠는 인도네시아 일대에 대한 인류학적 현장 연구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였는데, 그 중 유명한 일화가 『문화의 해석』 안에 수록된 ‘심층놀이-발리의 닭싸움에 관한 기록들’이다. 기품 있는 유머로 시작하기 때문에 일단 쉽게 읽을 수 있다.
1958년 4월 초 그는 역시 뛰어난 인류학자인 아내와 함께 발리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은 발리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곳으로 인구 약 500명이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룬 곳이다. 이 마을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에서 온 젊은 인류학자 부부는 “침입자, 그것도 직업적인 침입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기어츠 부부를 “마치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양” 대한다. 기어츠 부부는 “불안한 심정으로 무엇인가 찾아서, 그리고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마음을 살까 궁리하며 마을을 돌아다닐 때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우리가 그곳에 없는 것처럼 우리를 관통해서 우리 뒤편에 있는 돌이나 나무를 응시”하곤 했다. 못마땅한 표정을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중 마을의 한적한 장소에서 반쯤은 비밀리에 열리는 닭싸움을 보게 된다. 서유럽의 지배 이후 이 닭싸움은 종교적·문화적·역사적인 이유에 의하여 엄격히 법으로 금지되었기에 이 마을 사람들은 ‘비밀리에’ 모이는데, 그러나 500명쯤 살아가는 작은 마을공동체 내부 사람에게는 ‘비밀’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문화적 제의, 그러니까 서구 현대로 보면 월드컵 결승전이나 올림픽 개막식 정도는 되는 행사다.
이를 기어츠 부부는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데, 아뿔싸 경찰이 급습한다. “비명소리가 들렸고, 경찰들은 트럭에서 뛰어내려 링 가운데에 포진”했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기어츠 부부는 미국의 인류학자 행세를 하면서 짐짓 무관한 듯 경찰에게 호의적인 표정을 짓는 대신 ‘로마에 있을 때는 로마인들처럼 행동하라’는 인류학의 대원칙에 따라 도망치기 시작한다. 앞서 도망치던 발리 사람들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어떤 도망자가 집으로 급히 숨어버리자 하는 수 없이 그 사람들을 따라 그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은 듯 그의 아내는 “순식간에 테이블과 테이블 보, 의자 세 개 그리고 찻잔 세 개를 꺼냈고” 기어츠 부부는 발리 사람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평정을 찾으려고” 한다.
잠시 후 경찰이 들이닥친다. 기어츠 부부는 당황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집주인은 거들먹거리는 이방인 경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미국인 교수이며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문화 연구를 하러 이 마을에 왔으며, 발리에 관한 책을 쓸 예정이고, 그런 이유로 오후 내내 집 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러나 “닭싸움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노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발리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기어츠 부부는 “교도소에 가지 않게 된 것에 안도”를 하는 것을 넘어 더 이상 “비가시적인 존재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주목, 따뜻함과 관심, 그리고 특히 즐거움과 흥미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도망을 치기 시작한 미국인 부부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물론 오늘날의 인류학에서 이 정도의 에피소드는 고전 속의 예화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러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른바 ‘교양인’이 한국 사회보다는 조금 경제형편이 어렵거나 ‘현대화’가 덜 진행된 곳을 여행할 때, 이 예화를 분명히 새길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하여간 이러한 고정을 거쳐 기어츠는 권력과 문화의 작동원리를 밝혀낸다. 발리의 닭싸움은 “발리인들이 전력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대중적인 행사”라고 하면서, 이를 잘 들여다 보면 발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나아가 이른바 현대사회라고 하는 곳의 문화행위와 권력의 작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적 특징의 많은 부분이 야구장에, 골프장에, 육상경기장에, 혹은 포커판에 나타나듯이 발리에 관한 많은 것들이 닭싸움장에 드러난다. 왜냐하면 거기서 싸우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수탉일 뿐, 실제로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기어츠는 말한다. 이렇게 발리 사회를 샅샅이 훑은 기어츠는 1980년에 『극장국가 느가라』를 발간하게 된다. 이 책에서 기어츠는 발리의 문화적 상징 의례가 단순히 권력의 장식품이 아니며, 또한 이데올로기 선전장치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 대하여 권헌익은 “베버의 권력이론을 비판하면서 권력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러면서 정치권력은 하나의 절대적 모습이 아니고, 이 역시 인간의 상징활동의 한 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상징은 기존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또 다른 힘을 창출할 수도 있음을 제시”한다고 추천의 글을 썼다.
바로 이런 개념과 맥락에서 권헌익과 정병호가 북한 사회를 분석한 책이 『극장국가 북한』이다. 저자들은 1994년 김일성의 사망 이후 전개된 북한의 대규모 문화행사아리랑축전 등나 스펙터클 건축조형물 등은 “인위적이고 과장된 대중 동원의 예술정치로 무장한 극장국가로 변모해가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쳐갔다”고 말한다.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 이후,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창올림픽의 전격적인 참가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만하다. 이 책의 다음과 같은 ‘서론’은 평창올림픽 단일팀 성사를 포함한 최근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냉전과 반공을 넘어 그들 내부의 상황에서 그들 내부의 맥락을 살핀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이 책은 북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에 대한 문화사적인 연구만이 아니며 북한의 국내외 정치에 대한 분석만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의 예술과 정치를 빚어낸 강렬한 정치적 열망을 다룸으로써 이 두 연구영역을 연결하고자 한다. 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북한의 정치와 예술 두 가지 모두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 결과는 인위적 예술정치를 통해 카리스마 권력의 자연적 도태에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강력한 현대적 극장국가의 탄생이다.”
★ 이 글은 2018년 2월 6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