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솔리스천. ‘나 홀로’ 신앙생활을 표방하는 개신교인을 뜻하는 이 신조어는 요 근래 개신교회가 마주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솔리스천들은 조금 외로운 한이 있어도 예배 외에 다른 교회활동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함께 하자는 권유도 ‘쿨’하게 거절한다. 공동체적 결속을 귀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개신교회에서 이는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솔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에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 특유의 ‘부대낌’에 부담을 느끼고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더욱 편안히 여긴다. 가장 열정이 많을 이 청년 시기, 이들이 솔리스천의 길을 걷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실마리 중 하나는 솔리스천 반대편 즈음에 있는, 교회 활동에 성심껏 참여하는 청년 신자들에게 있다. 이들 대부분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여러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그런데 교회 봉사의 체감무게는 생각보다 과중하다. 혹자들은 이것을 ‘또 하나의 직업’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교회 역시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많은 청년들에게 교회 봉사는 단순한 섬김이 아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도한 업무(?)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청년 중 적지 않은 수가 공동체적 신앙생활에의 열의를 잃은 채 ‘나 홀로’ 신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교회 내부 현상으로 치부해버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된 청년 신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 이 시대의 청년 세대를 바라보라. 요즘을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얼굴이 청년 솔리스천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과도한 학점 경쟁, 취업 노선에서 겪는 좌절,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럼에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분주한 일상…….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몸은 물론 마음에도 큰 상처를 얻어만 간다.
더 큰 문제는 청년들이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청년들은 아직 한참 자라나는 중이다. 그 말은 곧 완숙한 존재가 되기까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째 우리의 청년들은 나이 앞에 1자를 떼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속으로 방생되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의 삶은 더욱 곪아갈 뿐이다. 그들의 피곤함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을 추스르는 것에만 골몰하게 하고, 결국 자기 연민이란 늪에 빠진 청년들은 ‘나 홀로’ 주의를 표방하며 점점 혼자가 되어 간다.
청년. 그들은 아직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나는 부디 이 시대가 청년 솔리스천들로부터 교훈을 얻어 지친 청년들을 보듬기 위한 새로운 걸음을 내딛길 소망한다. 청년들이 자신을 고독함 속에 가두기 전에 그들을 보듬어주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처를 싸매주길, 분주한 걸음에 쉼을 주길 소망한다. 오늘도 나는 외쳐본다. 청년에게 돌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