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1970년의 일이다. 김 아무개 씨는 철거반원들에게 소리쳤다. “이 김일성이보다 더한 놈들아!” 김일성? 김 씨는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86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또 다른 김 아무개 씨는 버스를 탔는데, 요금 문제로 기사와 시비가 붙어 홧김에 외쳤다. “나는 공산당이니 잡아들여라!” 그리고 정말로 찬양·고무죄로 구속됐다.
옛날 일이라고 쓴웃음만 지을 수는 없다. 201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를 즐겨 하던 박정근 씨는 북한만의 표현에 재미를 느껴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 단체의 게시물을 받아보기 시작했다. 수령님 운운이 우스워 함께 보려고 재전송(리트윗)도 했다. 직접 글도 올렸다.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장군님 생각하며 주체주체하고 웁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국가보안법(국보법) 제7조 찬양·고무죄로 기소됐고, 지난 11월 21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른바 ‘박정근 사건’이다.
이건 한 편의 코미디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풍자와 찬양을 구별하지 못하는 검찰이다. 박 씨의 트윗이 단순한 농담임은 게시물만 봐도 밝혀진다. 김정은은 유산균에 비유되고, 꿈에서 김정일이 죽었다는 얘기도 서슴없이 나온다. 정말 박 씨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반체제세력이었다면 북한 지도자에게 막말을 할 수는 없다. 북한에서 ‘김일성 장군님’, ‘김정일 위원장님’은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박 씨는 북한에 비판적인 사회당 당원이었다. 사회당은 ‘반조선노동당’을 내세우고, 삼대 세습 반대를 확고하게 주장한 정당이었다.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만드는 건 처벌의 근거인 국보법이다. 국보법은 농담·조롱·풍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엄한 사람도 가끔은 웃지만, 이 법률은 웃음 불능이다. 북한과의 대치상황에서 반국가적 활동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게다가 남이 웃지도 못하게 한다. 사람들을 웃겨보려다가 정해진 선을 넘으면 박 씨 꼴이 된다. 이 선이라는 것도 기준이 없다. 맘에 안 들면 무조건 패고 보는 거다.
지난 6월 20일, 박 씨의 네 번째 공판이 열렸다. 박 씨 변호사 이광철 씨는 트윗 내용을 진지하게 낭독했다. “요덕 숙박권 특급행 표 선물해도 언팔할기야?” 방청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성한 법정에 웃음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다. 박정근 사건 자체가 농담의 소재가 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사자는 괴롭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쓴웃음이 난다. 웃음 포인트는 쓸데없이 진지한 태도다. 원래 웃기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이 훨씬 우스운 법이다. 국보법이 안겨주는 웃음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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