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작년 말 중앙일보가 실시한 대학 평가에서 연세대가 서울대를 앞질러 화제가 됐다. 언론들은 서울대가 연세대에 밀렸다며 앞다퉈 보도했다. 사실 서울대는 수년 전부터 해당 대학 평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 통보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은 채 미비한 자료로 채점 당한 결과가 이번 패배(?)의 실상이다. 이번 결과로 곳곳에서 동문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로부터 “서울대가 추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반응이 일어 서울대 측에서는 해명 보도 자료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대학 평가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본인조차 모교가 관습적 1위에 안주하며 교육의 질을 저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걱정에 잠시 머물렀으니 이는 대학 평가가 대학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국내 대학 평가는 지난 1995년 중앙일보에서 처음으로 시작돼 지난 2009년에 조선일보로 확대됐고, 지난해부터는 경향신문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세 언론사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각 대학의 점수를 측정하고 이를 종합해 대학 순위를 매기고 있다. 대학 평가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대학도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대학 간의 건전한 경쟁을 조성하고 현 수준의 진단을 통해 대학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사 주도의 대학 평가는 오히려 대학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이 크다. 대학 평가의 기준을 살펴보면 대학의 교육 여건이나 교육 현실과 괴리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언론사가 ‘국제화’ 항목의 주요 지표로 삼는 영어강의개설 비율은 지표에 맞추기 급급해 교육 콘텐츠가 상실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일례로 현 평가제가 영어강의 비중이 높을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부분은 대학들의 무리수를 초래하는 대표적인 사항이다.
필자가 소속된 음악대학은 전공필수인 ‘시창 청음’ 수업이 영어강의로 전환되었다. ‘시창 청음’은 악기의 도움 없이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정확하게 듣는 법을 배우는 과목으로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 가운데 진행되는 수업이었으나 영어강의가 되자마자 학생들은 벙어리가 되었다. 결국, 담당 선생님께서 영어강의란 세련된 이름 아래 한국어 강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김명수 대통령 교육자문위원도 “국사를 영어로 가르치는 등의 역효과를 부르는 극단적 선택이 불가피하게끔 대학들이 내몰리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또 대학 평가의 평가 지표가 개별 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큰 문제다. 대학별 특성과 상황을 고려한 평가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학 간 경쟁 구도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기준은 한 대학 내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는데, 예를 들어 대학 평가는 ‘취업률’에 기준을 두고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만 본인이 속한 음악대학은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해 ‘취업’ 기록이 남기 어렵다. 학교로서는 음대로 인해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며 이것이 나아가 학교로 하여금 음대에 대한 투자를 소홀하게끔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타 단과대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음악대학의 장학시스템이나 학습지원체계가 벌써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획일적 평가 지표가 학문 다양성을 저해하고 대학의 획일화로 귀결될 것은 자명하며 이는 대학 육성이 아닌 단순한 줄 세우기를 위한 대학 평가다.
진정한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대학 평가가 필요하다. 먼저,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지금의 대학 평가를 평가주체와 평가객체가 모두 합의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게끔 함으로써 현실 교육과의 괴리를 줄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대학마다 수행하는 기능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대학 평가를 각 대학 특성에 따라 진행하여 해당 대학의 특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표면적 수치를 앞세운 평면적인 현 대학 평가는 효율과 목적 중심의 기업경제논리를 대학에 적용한 것으로서, 이에 따라 대학교육이 일괄 통제되는 작금의 상황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 자명하다. 대학 평가 기관은 대학이 경제적 효용이나 사회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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