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2월 19일,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박근혜 후보가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선거기간 동안 각 후보자는 많은 공약을 쏟아냈고 박 당선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약은 미래의 대통령이 미리 국민과 하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공약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반복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고 나아가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당선 후 공약의 이행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선자로 하여금 공약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그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국민과 한 약속이므로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제도적으로 책임을 묻도록 해야 공약이행의 실효성을 담보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견 이러한 방법이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제재를 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하므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살펴봐야 한다.
우선, 공약의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와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다. 공약의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과연 누가 공약의 이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며 어느 정도까지 이행해야 공약을 지켰다고 볼 수 있는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공약 자체가 잘못된 경우에는 오히려 이를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된다. 한 예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을 그대로 이행했더라면 많은 부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 박 당선자가 내건 공약의 재정적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적으로 보면, 대통령을 포함한 여러 선거직공무원의 경우, 당선자와 국민의 관계는 자유위임에 의한다. 자유위임이란 국민에 의해 당선된 자는 국민 전체의 대표자이므로 당선 후에는 국민 개개인의 요구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은 자신의 고유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을 운영할 대표자를 뽑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자유위임에 의하면, 설령 후보자가 여러 공약사항을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당선 후 반드시 이를 지킬 헌법적 의무는 없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가 정치적 탄압의 수단으로 변질할 위험이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민과 한 약속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당위에서 만들어진 제도가 다른 정파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책임추궁을 빌미로 정치적 숙청작업이 진행될 것이고 국정 초기부터 서로의 잘잘못만 따지게 되어, 정작 민생현안에 대해서는 소홀할 염려가 있다.
허술한 정책실행은 허술한 공약에 기인하고 그 실패의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후보자의 공약선정과 당선 후 그 이행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공약의 미이행을 이유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원래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악용될 위험이 있으며, 판단주체와 기준조차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된 공약이 나오고 당선 후에도 이를 지키는 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항시적 감시가 필요하다. 객관성과 실효성을 모두 갖는 제도가 나오기 전까지는 유권자들의 깨어있는 눈과 귀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 모두 고된 일상에 지쳐 복잡한 공약내용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기 쉽지 않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후보자가 내세우는 공약사항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곧 선진정치·정책중심의 선거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고, 국민과 한 약속은 원칙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정치의식을 확고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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