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선생님 이거 말도 안되죠. 어디 무서워서 책 추천하고 책 사고 하겠어요. 정말 이거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네요. 그런데요. 이번에 책 수서목록 작성하면서 제목이 튄다든지 누구든 시비를 걸 수 있겠다 싶은 책은 고민하고 빼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올라가고 학교명단이 인터넷에 뜨고 논란이 된다는 건 매우 부담스럽고 싫은 일이잖아요. 내가 먼저 이런저런 책들은 빼게 되더라고. 내가 이 정도니 다른 도서관 담당교사나 사서교사 사서선생님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을 해.”
이와 유사한 전화를, 문자를 여러분들과 나누었다.
지적하는 지점은 개인의 성향과 입장에 따라 차이가 많았다. 한 개인이 소신을 갖고 열심히 살아간 이야기의 책, 충분히 추천가치가 있다고 보는 분부터, 어린 학생들에게 추천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책이 다라는 생각까지 또 어떤 책을 추천했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추천이 되었느냐도 중요하다. 도대체 기관의 이름으로 추천이 되었으면 그 기관장이 당연히 책임을 지고 싸우든가 책임을 지든가 해야지 경기도 교육청이 대단히 비겁하다고 하는 사람부터 한 사람의 교사가 추천한다면 그것을 크로스체크하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사람까지 이번 경기도교육청 공문을 보고 – 이런 공문이 나오기까지의 사건 맥락을 보고 이해하고 주장하고 말하는 부분은 제각기 달랐다.
그러나 한결같은 부분이 있었다. 어떤 단체와 이런 교육관청의 행위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수서할 때 스스로 전보다 더 엄격하게 논란의 소지가 될 책을 빼버리고 마는 자기검열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정보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에 의한 통계는 아직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충분히 예단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경기도 교육청이 공문을 폐기 수정하였지만 이런 논란을 촉발시킨 자들의 의도는 성취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 이번 일은 그렇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이미 예고되었고 여러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일이다.
1. 현現 정부 들어 도서구입 절차 내용에 대한 지적으로 강화되는 지침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학교도서관 자료 선정 구입 개선방안〉(2013.3.4.서울시교육청 학교정책과)을 시행했다.
학교도서관에 법적 근거가 없는 〈학교도서관 자료선정위원회 구성〉
- 자료 구입의 절차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때만 해도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공무원들의 완충적 역할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
위 공문 자료선정위원회 자료구성 예시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라. 사회적․도덕적으로 용납되는 자료, 다양한 관점을 대표하고 있는 자료를 구성한다.
마. 인종, 국적, 민족, 사상, 신앙, 정치 등에 치우치지 않는 자료를 구성한다.
* 정기간행물구독 기준
- 기사가 공정하고 편향되지 않은 것을 선정
-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배경을 가진 것은 반대되는 성향의 자료도 함께 구독하여 중립성을 유지
2014년 2월 도서구입방법 개선 공문에는 이런 표현이 들어간다.
학교도서관 도서 구입 시 학생들에게 유익하지 않은 도서가 구입되는 경우가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바, 단위학교의 적절한 조치 강구
- 도서 선정 전 구입예정 도서목록을 학교 홈페이지 등에 1주일 이상 공고(게시)하여 학부모․교직원 등의 사전검토 체제 강화
※ 절차: 구입예정 도서목록 학교홈페이지 안내(1주일 이상) →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개최 → 도서구입
-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조직 시 학부모위원 및 독서교육 전문가 포함
- 도서 구입 전 회의 필수 개최 및 개최 어려울 시 사유에 대한 서면보고 후 운영위원회 회의 시 사후보고 등 절차 준수
이런 일련의 도서구입 절차의 공개 및 복잡화 과정을 통해서 이미 미묘하게 편향적인 도서의 구매가 견제되어 왔고 학교도서관 담당자들은 일종의 자기검열이 계속 강화되어 오는 흐름이었다.
2. 공무원 사서,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담당교사, 학교 사서들의 도서관의 지적자유, 도서관 윤리의식 빈곤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경기도 교육청과 공문의 결이 다르지만 이 공문을 만들고 시행하고 받아들이고 한 주체들이 대부분 사서직 공무원이다.
학교 현장에서도 이런 공문이 다분히 문제가 있다고 인식되면서도 공문에 따라야 한다는 충실한 공무원의식의 발로로 상당수 많은 학교에서 도서가 폐기되고 대출자 학생의 명단이 조회되었다.
공식적인 사서들의 문제 제기가 없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고 그 지적에 대한 지지의 열기도 높지 않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서직 공무원, 학교도서관 담당자들은 그저 공문에 충실히, 관리자의 지시에 따랐다.
3. 일부 독서교육운동, 사서교사 단체의 무대응 전략과 학교도서관 계약직 사서단체의 조직적 대응
최근 이런 추천도서 논란 문제와 관련해서 회원들이 직접적인 압박을 받은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여는 교사들〉과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는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독서나 교육에 대한 전문성 없는 특정단체의 노이즈마케팅에 말려들지 말자는 무대응 무시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본다. 이런 대응방법 선택에도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찍부터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공유한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모임도 내부논의를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언론보도가 나가고 시정공문이 나오는 등 이어져 온 일련의 과정에서 공식적인 행동은 못했다고 본다.
또한 한국도서관협회, 한국사서협회 등 그간 도서관 명칭이나 사서 명칭 사용이라든지 때론 신속하게 행동하던 사단법인화 되어 있는 어떤 도서관 사서 단체들도 이 문제에 공식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 내부 구성원이 공무원이거나 이 공문을 받고 시행해야 하는 공공도서관 사서이거나 공공도서관 기관단체들이라는 한계점들을 드러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학교도서관사서연합회(이하 전학사련)〉의 신속하고 지속적인 대응은 눈에 띄고 도서관의 지적자유를 위한 투쟁의 기록으로 남을 만하다.
도서관 메일링리스트에 보고된 글을 보면
〈전국학교도서관사서연합회(이하 전학사연)는 지난 5월 28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시행한 ‘언론보도관련 논란 도서 처리 협조(문예교육과-3651)’ 공문에 대해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 방법을 논의하였습니다.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해서 객관적 역사의식을 교육해야 할 학교의 교육적 권리를 침해하려는 단체의 편향적 의식에 여과 없이, 바로 학교에 공문을 시행한 것은 경기도교육청의 면피행정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사서의 고유영역인 수서권한도 침해받을 우려가 있어 공문 철회 및 시정을 강력히 요청하였습니다.(전국학교도서관사서연합회 2015-005호(2015. 6. 8))〉
4. 학부모 단체의 〈독서이력 파악과 후속조치〉에 대한 지적과 행동
누군가의 지적처럼 〈그 책을 읽는다고 그 책의 한 부분 독백처럼 그 체제가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 – 그러니 그 책을 읽은 학생들을 찾아내서 편향된 의식을 갖지 않도록 후속 지도〉를 하라는 내용은 출판계나 도서관 업무 담당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도서폐기 압박만큼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공문을 생산하는 의식의 배경이야말로 여러 단체에서 현재 학교도서관에서 사용하고있는 일명 DLS 또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우려되던 문제점이 발현된 상황으로 학생인권과 개인정보보호 측면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 되었다.
이 부분을 상대적으로 간과했던 도서관업무담당자들에게도 각성이 되리라 본다. 향후 시스템에서의 보완조치가 있어야 한다. 즉 학생들 교사들 학부모들의 도서대출 이력 사항을 굳이 시스템에 저장할 필요가 있는지? 기술적인 시스템문제와 개인정보보호라는 측면에서 도서반납 즉시 모두 삭제되거나 최대한 짧은 기간의 저장으로 머무는 것이 좋다고 보고 이에 대한 향후 토론과 시스템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치는 글
최근 국내 정세가 보여주듯 도서관 이용자 또한 다양한 입장을 갖고 있다. 어느 한쪽이 정권을 잡고 있다고 해도 전 국민들의 일상과 사생활이 보호되어야 하듯이 정부기관은 신중한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지켜주는 것은 전체적인 국민 의식의 성숙과 성장이며 도서관을 사랑하고 이용하는 시민들이 어떤 입장의 정부가 정권을 잡더라고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토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투입되는 책에 따라 의식화되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입장과 문화를 접하면 그 안에서 융합과 창조가 일어나는 신비한 영혼이요 창조적 인재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아이가 어떤 책을 보았다고 해서 정의로운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책을 보았다고 해서 특정한 입장으로 세뇌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어른들이 아직도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우리 스스로가 그런 어른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들의 선입견으로부터 아이들의 미래를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도서관 담당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독자, 도서관이용자, 학부모들이 보다 조직화 되고 연대하며 건전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국민들로부터 급여를 받는 집단(공무원, 교사, 공무직)이나 단체는 이런 성숙한 시민들을 의식하면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집단적인 옐로우카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엔 레드카드를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서관담당자들의 심각한 자기검열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해방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