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국민의 민주적 기본 권리인 알 권리를 보장하는 ‘사상과 정보의 광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우리 도서관 사서들은 정치적, 정서적, 사회적 이유로 인해 이용자들로 하여금 도서관 장서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에 제한을 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최근에 어느 한 보수단체가 학교도서관의 추천도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공문을 보내 해당 도서의 폐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이후 해당 공문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공도서관 추천도서관련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면서 ‘추천도서 선정과정의 투명성과 선정된 추천도서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발생’하니 사전에 관련 기준과 방법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자료 검열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1930년대 미국의 도서관계에 지적 자유에 대한 공론화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작품으로 농민의 생활을 사회주의적으로 묘사했다는 정치적 이유로 공공도서관 자료선정에서 배제되었고,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성서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기독교 계총의 학교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된 적이 있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도 기독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었다.
존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로 인해 미국도서관협회는 도서관 자료 선정에 있어 정치 이념적 의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입장을 천명하고, 이것이 미국 도서관계의 지적자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 〈도서관 권리선언〉을 제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제35회 전국도서관대회 개회식에서 〈도서관인 윤리선언〉을 선포하였는데, '6. [자료]' 부문에 도서관의 지적 자유를 표명하고 있다.
6. [자료]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선택, 조직, 보존하여 자유롭게 이용케 하는 최종책임자로서 이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배제한다.
가. 도서관인은 민족의 문화유산과 사회적 기억을 지키는 책임을 진다.
나.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선택함에 있어서 일체의 편견이나 간섭 또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다.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조직함에 있어 표준화를 지향해야 한다.
라. 도서관인은 이용자와 관련된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그 공개를 강요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윤리선언에도 불구하고, 교육지원청은 일부 단체 및 개인의 도서관 장서에 대한 검열 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서관 메일링 리스트에 ‘[문체부의 공공도서관 추천도서관련 협조요청]에 반대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어느 사서는 글 말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그 책을 추천하셨든, 저 분은 자신의 “시각”이 옳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 시각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서평을 보면 2010년 “주간경향”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책에 정말로 문제가 있다면, 저런 단체에서 종북 운운하며 책에 낙인을 찍기도 전에 사서가 고를 이유가 없다고, 저는 사서로서의 전문성을 믿기에 감히 주장합니다.
저는 사서 여러분이 이 사건을 단지 지나가는 일, 행정 처리가 필요한 또 다른 업무 정도로 넘기신다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제 자신은 그렇게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도서관에 근무하든, 제 자신의 시각과 양심으로 도서를 추천할 것이며, 추천 선정 기준에 “OO 도서관 근무 사서 OOO 추천”으로 작성할 것입니다. 사서로서의 시각과 경험을 녹아내어 도서를 추천하지, 위에서 내려온, 지금 당장 힘을 가진 웬 보수단체의 지적질에 묵묵히 당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관종을 불문하고, 사서라면 위의 글을 쓴 사서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문 철회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부 도서관들이 해당 도서를 이미 서가에서 빼낸 것으로 밝혀졌다.1)
IFLA/UNESCO의 〈공공도서관 선언〉(1994)은 “공공도서관은 이용자가 모든 종류의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 정보센터이며, 공공도서관 서비스는 연령, 인종, 성별, 종교, 국적, 언어 또는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평등한 접근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IFLA 공공도서관 서비스 가이드라인(2010)에서도 “공공도서관은 인간의 모든 경험과 견해를 수렴할 수 있어야 하며 검열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중략) 사서와 관련 행정부서는 이러한 기본적 인권을 수호하고, 공공도서관에서 이용 가능한 자료를 제한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의 압력에 저항해야만 한다.”고 밝히고 있다.
도서관 자료의 검열 등에 매우 취약한 우리의 현실에서 도서관의 지적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지적자유에 대한 가치, 우리의 입장을 공고히 하고,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등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본 토론자는 도서관의 검열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각 도서관에서 도서관 자료선정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자료선정에 대한 원칙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자료의 선정과정에 이용자와 지역사회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여 도서관 장서개발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성문화된 장서개발지침에서 지적자유의 철학적 근거와 검열에 반대하는 도서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모든 검열로부터의 자유를 천명하여야 한다.
둘째, 한국도서관협회를 중심으로 사서들의 지적자유에 대한 활동그룹을 만들어 우리 스스로 지적자유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다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도서관인의 윤리선언〉의 지적자유 내용을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밝히는 〈도서관의 권리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사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모든 정책과 지침이 지적 자유의 철학적 근거하에 이루어짐을 선언함으로써 현대판 분서갱유 등 모든 검열로부터 자유를 수호할 기반을 마련하여야 한다.
참고로 미국도서관협회는 1930년대 이후 지적자유를 담당하는 ‘지적자유사무국OIF, Office for Intellectual Freedom’을 설치하여, 사서들에게 지적자유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지적자유매뉴얼Intellectual Freedom Manual’을 출간하였다. 이 외에도 ‘지적자유위원회Intellectual Freedom Committee’, ‘독서자유재단Freedom to Read Foundation, ‘지적자유소위원회Intellectual Freedom Round Table’ 등의 조직을 운영하고 지적자유 신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셋째, 사서들 대부분 지적자유에 대해 지지하고 있으나 실제 자료선정 업무를 추진할 때에는 잠재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며, 검열 압력이 있을 때에도 지적 자유의 가치를 주장할 만큼의 전문가로서의 윤리의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서들은 자관의 자료 선정에 있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명확하고 소신 있는 선정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 보수단체의 주장에 애써 수서한 도서를 폐기하는 일은 스스로 사서로서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사서독서회를 만들고 민간독서단체 등과의 연계 활동을 통하여 자료 선정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이러한 해프닝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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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레신문 2015. 6. 24일 자 “경기도 교육청, ‘분서갱유 강요’ 공문 철회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