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 케이라는 보수단체가 각 도서관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10개 출판사의 도서 12종을 좌편향 왜곡 도서로 지적했습니다. 어떤 근거로 이들 책을 역사를 왜곡한 도서로 선정했다고 봅니까?
→ 이 단체가 펴낸 자료집을 살펴보면 좌편향이라고 지적한 근거들이 굉장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이 단체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근현대사를 본인들의 생각으로만 굉장히 편향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단체는 근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곧 좌편향으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통일 정책에 대한 긍정적 해석도 좌편향으로 바라봅니다.
예를 들면 『10대와 통하는 한국사』라는 책을 보면 분단 이후 남북 정상이 만나 6·15공동선언을 하는 내용과 삽화가 나옵니다. 삽화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를 하는 장면을 그렸는데요, 이런 삽화가 좌편향이라는 겁니다. 이와 같은 장면은 TV 등을 통해 전 국민이 보았던 장면이고 또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사진으로 실려 있는 장면입니다. 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이 역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겁니다.
『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라는 책의 경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상해임시정부 시절 대통령에 임명된 후 미국에서 살면서 동포들이 낸 애국 성금을 독점하고 전횡을 일삼아서 임시정부에서 1925년 탄핵이 결의된 사실을 기술했는데요, 이런 이승만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기술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겁니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의 경우는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38도 선을 놓고 남북 간에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요, 이 사실은 역사학자라면 지금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이런 기술도 좌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 단체는 나머지 책들도 위와 같은 이유와 맥락에서 좌편향적이라고 지적합니다.
2.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의 공문은 왜 문제가 되나요?
→ 이번에 좌편향이라고 매도당한 책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들입니다.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검증되어서 널리 읽히는 책들입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은 편향적 보도와 보수단체의 주장에 대한 엄격한 검증 없이 어린이와 청소년 책 중 읽기에 부적절한 사실 왜곡과 좌편향적 내용이 담겨 있다는 논란만을 의식해 공문을 내려보낸 거라고 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19일 스토리케이 발표 이후 발 빠르게 이틀 뒤인 21일 “공공도서관 ‘추천도서’ 관련 협조 요청”(2015.5.21) 공문을 보냈습니다. 도서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선정된 추천도서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발생하고 있는바, 추천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추천도서 선정방법 및 선정 기준을 사전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문의 맥락과 시기를 보면 공문에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12권의 도서가 편향적일 수도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문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누군가 책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아무 때나 전국 시도와 교육지원청 등에 공문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시 보낸 공문이 추천도서의 선정 절차와 투명성을 공개함으로써 추천도서의 적절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는 입장만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경기도 교육지원청 공문입니다. 경기도교육지원청이 초, 중, 고, 25개 교육지원청에 보낸 “언론보도 관련 논란 도서 처리 협조”(2015.5.28.) 공문을 보면 학교도서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폐기 여부를 결정 처리하고, 이미 읽은 학생들에게는 편향 시각을 교정하는 사후 독서지도 교육을 하라는 지침을 시달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출판계와 사서 분들, 독자들이 이 공문들과 관련해 강력히 항의를 하자 경기도교육지원청은 6월 22일 ‘언론보도 관련 논란도서 처리 문서 폐기 알림’이란 제목의 공문을 통해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전 공문을 폐기 처리하라는 지침을 시달했습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정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지원청이 특정 보수단체가 특정 도서를 좌편향이다라고 주장하고 보수언론이 편승하고 논란을 키우니까, 그에 따라 움직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특히 문제가 된 경기도교육지원청 공문은 교육부의 권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경기도교육지원청 관계자가 밝혔는데요, 교육부 역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3.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지원청은 공문이 자율적 처리를 시달했지 강제사항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실상 도서관에서는 책이 빠지고 있나요?
→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 교육지원청은 공문은 협조사항이지 강제 사항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서관과 학교에 있는 사서 분들과 선생님은 큰 압력으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가 빠지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언론 보도(한겨레)를 보면 문제의 도서 목록을 공개한 스토리 케이 발표 자료에 나와 있는 장기수 출신 허영철씨의 회고록 만화 『나는 공산주의자다』(보리 펴냄)를 비치했던 77개 학교 도서관을 검색한 결과 6월 23일 현재 4개 학교에서 ‘검색 0’, 한 곳에선 ‘폐기 예정’이란 글자가 떴다고 합니다. 경기도교육지원청 공문을 받아본 학교들에서 그 외 도서들도 일부가 도서관에서 빠졌다고 봅니다.
4. 이번 일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요?
→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이번 사태를 보수단체들과 이에 편승한 정부기관에 의해 입맛에 맞지 않는 책을 도서관이 추천도서에서 제외하게 하고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이 도서를 선정하는 것과 관련해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출판, 사상 탄압이 일어나고 있다고 규정합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아래 정부가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책들의 출판과 유통을 금지한 바 있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다시금 이와 유사한 행위가 정부기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현재는 과거와 다르게 우익단체를 통해 문제 제기가 되고 이를 보수 매체들이 보도하면,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교육지원청 등이 산하기관에 공문 등을 통해 추천도서 지정 취소 압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하고 이에 따라 각급 도서관에서 지정된 추천도서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출판 사상의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번 일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학문 사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책을 쓰고 펴낸 저자와 출판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도서를 선정하는 학교 선생님들과 도서관 사서 분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독자들의 도서 선택의 자유를 훼손한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 문제가 있는 책이라면 독자의 판단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태됩니다. 특정단체나 정부가 도서관에 책을 넣어라 빼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출판 생태계와 독서 생태계를 위해 이번 일은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