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 오늘 토론회를 마련해주신 도종환 의원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회 및 공청회에서 ‘독서’와 ‘도서관’과 관련된 토론회와 공청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토론회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편하고 불쾌하며 불행한 현실’ 때문에 마련된 것입니다만,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토론회를 계기로 우리가 ‘불편하고 불쾌하며 불행한 현실’ 을 뛰어넘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자 근본규범인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이 토론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5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각 시도 및 교육청에 발송한 공문, 5월 28일 경기도교육청이 초, 중, 고 및 25개 교육지원청에 발송한 공문입니다.
이 두 가지 공문은 여러 가지 형태의 ‘압력’ 때문에 발송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공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문제적 행위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그 ‘압력’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일정한 틀 속에 집어넣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 것입니다. “인간 사고의 틀과 행동규범을 근본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노력이 금서조치라는 정치적 행위의 목적”1)이라 할 때, 이것은 ‘변형된 형태의 검열’이며 ‘사실상의 금서조치’라는 것이 제 발제의 요지입니다.
3.
먼저 확인해야 할 점은 한마디로 ‘검열은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이 토론회 자리에서, ‘검열檢閱, censorship’에 대한 법리적 논의를 자세하게 전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검열’에 대한 최소한의 논의는, 오늘 토론회와 이후의 논의 전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헌법 및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은 인정되지 않으며, 언론·출판에 대해서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만은 법률로써도 허용되지 아니 한다는 것, 그 이유는 검열이 허용될 경우 국민의 정신생활 및 의사형성에 미치는 위험이 크며,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1987년 민주화의 결실인, 현행 대한민국 「헌법」(헌법 제10호, 1987.10.29., 전부개정)은 ‘검열’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검열 금지 원칙)
헌법 제21조는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검열 금지 원칙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좀 더 분명하게 규명한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검열’이란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입니다. 또한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금지를 규정한 것은 비록 헌법 제37조 제2항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언론·출판에 대하여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만은 법률로써도 허용되지 아니 한다”고 하였습니다.2)
위의 판례에 따르면 검열은 네 가지 요건을 매개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첫째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둘째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셋째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넷째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입니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다른 판례에 따르면, 검열은, 다섯째 위 네 가지 요건 외에 표현물의 발표를 완전히 금지하지 않고 표현물의 청소년유해성 등급에 따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등급제’는 검열이 아닌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여섯째 사전심사가 내용적인 심사일 경우에만 ‘검열’의 범위에 포함되며 시간, 장소, 방법에 대한 심사를 위한 사전심사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3)
검열 금지 법리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검열이 허용될 경우 국민의 정신생활 및 의사형성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직접 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4)
4.
그런데 이처럼 검열 법리의 목표가 뚜렷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운용하는 ‘검열’의 정의가 협소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정해놓은 ‘검열’의 요건은 너무 협소한 것으로 보인다. 미연방대법원은 한국의 ‘검열’에 대응되는 개념으로서 사전제재prior restraint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사전제출을 의무화한 출판허가제는 당연히 금기시되지만 ‘사전제재’의 개념은 헌법재판소가 요구하는 ‘사전제출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법원금지명령이나 행정기관의 금지명령에도 적용되며 완전금지가 아닌 ‘등급제’에 의한 부분적인 제한인 경우에도 적용된다. 미국의 ‘사전제재’ 개념은 한국의 ‘검열’ 법리보다 폭이 넓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검열’ 법리에서는 관련된 표현물이 이미 일반에 공개되고 유통된 이후에 추가 유통을 제한하기 위해 내려지는 법원이나 행정기관에 의한 출판금지 명령도 미국에서는 ‘사전제재’로 평가받는 것이다.”5)
‘사전제재’는 ‘표현물에 대하여 장래적인 효력을 가지는 모든 규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전제재’는 ‘검열’뿐만 아니라 ‘검열과 같은 작용과 결과를 초래하는 국가행위 일체’를 말합니다. 박경신 교수는 “가장 쉽게 생각해서 심의 이전의 출판을 금지하면 당연히 ‘검열’로 정의하면서 심의 이전의 출판을 일부 허용한 후에 출판물에 대해 금지명령을 내렸다고 해서 ‘검열’이 아니라는 것은 형식주의 규범이 아닐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사전제재 법리’에 따르면, “형식적인 기준이 아닌 ‘작용과 결과’라는 실질적인 기준에 충실할 경우, 사전제출의무를 부가해야만 사전제재라거나, 반드시 등급제를 통한 부분적 금지가 아닌 완전한 출판금지가 있어야만 사전제재라거나 하는 요건들이 없다”는 것입니다.6)
현재 헌법재판소가 운용하는 ‘검열’의 정의를 보다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황성기 교수(한양대법학전문대학원)는 ‘검열’의 정의를 “사상의 자유시장의 형성뿐만 아니라 유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함으로써 사후제한도 검열의 한 형태로 엄격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하며7), 이인호 교수(중앙대법학전문대학원)도 ‘검열’을 “국민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직접 어떤 표현에 대한 평가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정부 또는 제3자가 그 내용을 심사해서 이를 걸러내는 조치, 즉 사상의 공개 시장의 형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조치”로 파악합니다.8)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사례(5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각 시도 및 교육청에 발송한 공문, 5월 29일 경기도교육청이 초, 중, 고 및 25개 교육지원청에 발송한 공문)도 현재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본 검열의 ‘형식적인 기준’으로만 보면 검열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만, 그 ‘작용과 결과라는 실질적인 기준’으로 보면 ‘변형된 형태의 검열’이자 ‘사실상의 금서조치’이라 할 것입니다.
5.
박경신 교수가 위의 논문에서 거론한 미국의 사례 가운데, 최근에 일어난, 우리나라 사례와 흡사한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그것은 '밴텀북스 대 멜코Bantam Books v. Melko' 사건입니다.
1950년 뉴저지주 미들섹스카운티의 검찰이 ‘불쾌문학위원회’Committee on Objectionable Literature라는 민간단체의 심의결과를 받아들여 그 단체로부터 ‘불쾌’objectionable하다는 판정을 받은 서적들의 목록을 작성하여 서적 유통업체들에게 전달하면서 “검찰은 다음 서적들에 대하여 불쾌하다고 생각하는데 귀하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배려해주시겠습니까?”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에 거의 모든 서적유통업체들은 관련 서적들의 판매를 중단하였습니다. 이 목록에 자신이 발행한 책 『중국인의 방Chinese Room』이 포함된 출판사 발행인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뉴저지 챈서리 법원은, 서점에 보낸 서한이 강제력 있는 명령이 아니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위 서한이 발송된 후 미들섹스카운티에서 『중국인의 방』이 단 한 권도 판매되지 않았다’며 일축하고, 검찰의 행위가 사전제재라고 하였습니다.
‘사전제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자기검열self-censorship 때문입니다. ‘사전제재’는 그 ‘작용과 결과라는 실질적인 기준’으로 볼 때, 검열과 흡사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판례가 밝혀놓은 ‘검열’의 요건(4가지 혹은 6가지)에는 부합하지는 않기에 ‘검열’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실상 표현의 결과물(책, 방송, 인터넷, 음반/음악영상물, 공연, 영화/비디오, 게임 등)을 국가와의 역학 관계 속에서 스스로 자기 제출을 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는 상황이라면, 이는 검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종 표현의 결과물에 대하여 ‘작용과 결과라는 실질적인 기준’으로 볼 때, ‘변형된 형태의 검열’을 작동하면서 사회적으로 자기검열의 기제를 확대하려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4년 8월 광주비엔날레에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이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작품이 전시가 취소되었으며,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를 하는 과정에서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정부의 예산삭감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제작 아시아프레스 씨네포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현임 정부의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을 절반 가까이 삭감한 일이 생겨나자, ‘다이빙벨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라는 사회적 논란이 일었습니다. 올 초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제 상영작 ‘사전 심의’와 사실상 독립영화 검열을 동시에 추진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다이빙벨」처럼 정권에 비판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걸 막기 위한 탄압책이라는 우려와 반발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2014년 가을에는 정부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일자 ‘사이버 망명’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36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서울연극제는 극장이 아닌 거리에서 폐막식을 열었습니다. 매년 연극제가 열렸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의 폐쇄와 관련한 논란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과 연대활동을 나서고 정부정책을 비판한 연극인들에 대한 ‘보복’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원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한국방송KBS 「개그콘서트」의 정치 풍자 코너 '민상토론'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을 풍자했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대해서도 '무한뉴스-건강합시다' 코너를 통해 메르스 예방법을 소개하면서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고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일일이 기록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이 같은 사례는 많을 것입니다.
문화와 예술 창작의 기본은 무엇이든 필름에 담고 무엇이든 대사로 표현하고 무엇이든 화폭에 담을 수 있고, 무엇이든 몸짓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입니다.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들에게 채 다가가기도 전에 현장의 문화예술인들 스스로 표현할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융성'이라는 거창한 국정과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게 가능할까요? 이미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대로라면 '문화융성' 정책은 박근혜 정권이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명을 다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진단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현장의 문화예술계에서 계속되고 있는 불협화음이 작품과 예술성을 둘러싼 건전한 논쟁이라면 얼마든지 부추겨야 하겠지만, 문외한이 봐도 문화와 예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치사하고 조악한 논쟁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정부 산하기관들의 행태는 스스로 '문화융성'의 근본을 갉아먹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9)
6.
이번 사건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전제재’가 ‘변형된 형태의 검열’이자 ‘사실상의 금서조치’로 이어진 것임을, 주요 일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19일,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대표 이종철, 류현수 연구위원, 김정수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 이철문 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 고문,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 등), 「정부 및 교육청 산하 전국 도서관 어린이·청소년 근현대사 추천도서 모니터링 결과」 발표, 서울 프레스센터
5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 각 시도 및 교육청에 공문 발송 「공공도서관 ‘추천도서’ 관련 협조 요청」(도서관정책기획단-2075)
5월 22일, 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보도, 「비전향 장기수 수기 만화, 어린이 추천도서 선정 논란」
5월 22일, 경기도교육청 산하 경기평생교육학습관(경기디지털자료실지원센터), 추천도서 목록에서 해당 도서 삭제 발표, “경기평생교육학습관 한 관계자는 "초등학생용 권장도서로 부적합하다는 논란이 있어 해당 도서를 추천했던 교사의 동의를 얻어 추천도서목록에서 일단 삭제했다. 시간을 두고 검증한 뒤 학생 대출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1명이 추천하면 선정되는) 추천도서 선정방식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2015년 5월 22일, SBS뉴스부, 「비전향 장기수 수기 만화, 어린이 추천도서 선정 논란」)
5월 22일,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에서는 해당 도서에 대한 심의를 벌인 결과,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면서 "경기도교육청은 이달 중 해당 도서를 보유한 도내 초·중·고교에 공문을 보내 도서에 대한 심의위원회를 열고 결과에 따라 폐기 조치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2015년 5월 23일자, 조선일보 인터넷판 이옥진 기자 보도, 「청소년 도서 부적절 논란 '나는 공산주의자다'」
5월 28일, 경기도교육청, 초, 중, 고 및 25개 교육지원청에 공문 발송 「언론보도관련 논란 도서 처리 협조」(문예교육과-3651)
6월 8일, 전국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공문 철회 및 시정 요청(전학사연 2015-005호)
6월 11일, 한겨레(한승동 기자) 도서관에 황당한 ‘분서갱유’ 강요하는 정부
6월 18일, 전학사연 경기지부, 경기도교육청 문예교육과 항의방문
김미리 경기도의원(전 전학사연 회장), 학교별 관련 도서 처리현황 조사결과 제출요청
6월 22일,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작가회의 성명 발표, 「어린이, 청소년 도서를 좌편향으로 규정하는 시도와 관련한 성명서」
6월 22일, 경기도교육청, 시정공문 발송, 「언론보도 관련 논란도서 처리 문서 폐기 알림」(문예교육과-4399)
6월 25일, 경기도교육청, 알림공문 발송, 「언론보도 관련 논란도서 처리 문서 폐기 알림(정정)」(문예교육과-4477)
7.
이 일정을 요약하자면, 박성신 교수가 소개한, 1950년 미국의 ‘불쾌문학위원회’로부터 촉발되었던 ‘사전제재’의 사례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8.
앞서 언급한,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의 배제 목록 작성과 배포 이후 전개된 사건과 같은 맥락의 일로 보이는 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한 단체가 특정 책을 거론하며 “1. 책 구입 배경 및 과정 2. 추천한 교원 및 추천 배경 3. 책 활용 현황 및 추후 활용계획”을 회신하라며 서울, 경기 지역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내용 증명’을 보낸 일입니다. "회신 기한은 본 내용 증명을 받으신 후 2주"라면서 "회신이 없을 경우 정치적 의무 위반을 이유로 귀교를 사법부에 고발하여 법치 정의가 구현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 증명을 받은 중학교 관리자는 “내용 증명을 받으니 학교는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것은 당연히 학교에 대한 협박”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편향된 단체의 요구에 따르지 말라'고 학교에 당부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11)
이 또한 ‘변형된 형태의 검열’ 및 ‘사실상의 금서조치’을 통해 ‘자기검열의 사회적 확대’를 꾀하고 있는 사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9.
사실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 독서문화의 역사, 도서관문화의 역사는 두려움이 억압을 낳았던 역사이기도 합니다. 불과 이십여 년 전의 기록만 들추어보아도, 직접적으로 출판을 금지한다든가, 출판사와 서점에 대한 압수수색하여 도서를 압수한다든가 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우리나라 독서문화와 도서관문화의 역사에는 오랫동안 자기검열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는 규제와 압력이 있었습니다. 공공도서관의 장서 형성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 지식의 흐름을 탐구한 김영기 교수(경성대 문헌정보학과)는 『공공도서관 장서를 통해본 한국사회 지식의 흐름』에서 도서관 사서의 발언을 통해 ‘자기검열의 내재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리영희의 책이나 출판사가 이상한 것, 풀빛이나 일월서각 등의 책은 골치 아프다. 사지 말라고 한다. 괜히 그런 책을 서가에 꽂아두었다가 문책당하기 싫다. 그렇지만 실제 문책당한 적은 없다. 그 전에 문제될 만한 책은 모두 들어내어서 시민도서관에 다 주어버렸다. 공무원이며 누구나 문책당하기 싫어할 것이다. 삼일공사라든가 정보과 형사들이랑 많이 싸웠다. (K3관장과의 인터뷰, 1997.11.5. 11:00~13:30, Y도서관 관장실)12)
이런 이야기는 암울했던 권위주의 체제 하의, 그 시절의, 이야기여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에서도 ‘골치 아프다’, ‘문책당하기 싫어서’ 혹은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논란이 불거질 만한 책을 도서목록에서 삭제하거나, 서가에서 빼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러한 ‘흑역사くろれきし’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10.
이번 사건과 오늘 토론회를, 우리가 ‘불편하고 불쾌하며 불행한 현실’을 뛰어넘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자 근본규범인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계기로 만들어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독서문화의 현장, 도서관문화의 현장에서 뻔히 눈에 보이지만 애써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자기검열의 기제를 깨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독서와 도서관의 보편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독서의 자유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변형된 형태의 검열’과 ‘사실상의 금서조치’를 통해 ‘자기검열’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발제자의 판단입니다. 이런 확산을 막는 일뿐만 아니라, 각 도서관의 사서와 담당 선생님들께서 용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①대한민국 국회는 ‘독서의 자유, 도서관 자유 선언’을 하나의 결의문을 채택해주시기를 제안합니다.
마침 19대 국회는 ‘도서관문화발전 국회포럼’(공동대표 신기남, 이주영 의원/공동간사 김장실, 도종환 의원/ 여야 및 무소속 국회의원 74명이 참여)을 창립하고 “더 많은 국민이 질 높은 지식정보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국회가 나서서 도서관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고 보다 많은 예산이 도서관 발전에 투자되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며, “필요하다면 관련법을 개정하고 도서관 발전을 저해하는 구습이 있다면 과감히 바로잡도록 지혜를 모을 것”이라 하였습니다.13)
②「독서문화진흥법」(법률 제11690호) 및 「도서관법」(법률 제11310호)을 개정하여 독서의 자유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도종환 의원께서는 「도서관법 전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4519, 발의연월일: 2015년 4월 1일)을 발의한 바 있는데, 이 개정법률안에 도서관의 자유 관련 내용을 추가해주시기를 제안합니다.
③대한민국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법원도서관 등 국가도서관, 그리고 전국의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 등이 9월 독서의 달, 첫 번째 주간(2015년의 경우 2915년 9월 1일부터 9월 6일까지)을 ‘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언하고14), 전국의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에서 ‘금서’와 관련한 전시 및 토론회 개최, 이를 통해 지적자유의 가치,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헌법의 검열금지 원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해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④책과 관련된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출판계는, 시민과 학생 들이 ‘금서 읽기 주간’에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는 각종 읽을거리 자료를 제작하여 보급할 것을 제안합니다.
⑤전국의 독자들은 ‘금서 읽기 주간’에 역사상 ‘금서’가 되었던 책들15)을 활발하게 읽고 토론을 펼쳐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12.
미국도서관협회가 1939년 「도서관 권리선언」The Library's Bill of Rights을 채택하게 된 계기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 때문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지역의 도서관에서 이 책이 부도덕하다고(앞에서 언급한 용어로는 ‘불쾌하다’고) 열람을 금지시켰던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검열’ 행위에 대해 미국도서관협회는 적극적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었던 것입니다.
이 선언의 3항을 보면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Institution to educate for democratic living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도서관을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상의 상호 교환을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 개정된 「도서관 권리선언」Library Bill of Rights에서는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forums for information and ideas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정에 대해 당시 미국도서관협회 지적자유위원회 위원장인 프란시스 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16)
도서관은 어떠한 의견과 견해에 대해서도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광장’forum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도서관이 반민주주의적인 자료를 검열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심어주는 결과가 된다. 지적자유의 관점에서 본 우리들의 사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다수결의 원리가 아니고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즉 다수가 싫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소수의 견해는 경청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17)
뒤에 부록으로 붙여 놓은, 미국이나 일본의 도서관과 지적자유 선언을 보면 기본적으로 ①자료수집의 자유 ②자료제공의 자유 ③검열 거부 ④도서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관련 단체와의 협력 ⑤개인의 도서관 이용 권리 ⑥이용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도서관의 이용기록에 대한 비밀 유지 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18)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독서문화, 도서관문화의 현장에서 ‘독서의 자유 및 도서관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구체적인 실천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발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1) 백승종, 『금서, 시대를 읽다』, 산처럼, 2012년 10월, 16쪽.
2)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영화법 제12조 등 위헌제청 결정문, 1996년 10월 4일, http://www.law.go.kr/헌재결정례/(93헌가13)에서.
3) 헌법재판소, 2001. 8. 30, 2000헌가9 및 1998. 2. 27. 96헌바2 등.
4) 헌법재판소, 2001. 8. 30. 2000헌바36, 이상 헌법재판소 누리집 http://www.ccourt.go.kr/ 참조.
5) 박경신, 「사전검열 법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활동, 법과학적 방법으로」 『인권과 정의』 대한변협, 2002년 8월호. 강조 인용자.
6) 박경신, 「사전검열 법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활동, 법과학적 방법으로」 『인권과 정의』 대한변협, 2002년 8월호.
7) 황성기,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기본권」, 한국헌법학회 제12회 헌법학술발표회 발표집, 2000. 5. 27.
8) 이인호, 「표현의 자유와 검열금지의 원칙-헌법 제21조 제2항의 새로운 해석론」 『법과사회』 제15호, 1997, 261면.
9) 2015년 5월 25일, SBS 뉴스 윤장현 기자, [취재파일] 사방이 '삐거덕'…표류하는 문화융성, 출처: http://goo.gl/3bfqjS
10) 박경신, 『진실유포죄』, 2012년 5월, 210쪽 표를 참조하여 수정 보완.
11) 2015년 6월 2일자,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 보도, 「"특정도서 추천교원 누구냐?"... 학교에 '협박' 편지」.
12) 김영기 교수(경성대 문헌정보학과), 『공공도서관 장서를 통해본 한국사회 지식의 흐름』, 한울아카데미, 1999년, 126쪽.
13) 정옥자, 「국가 발전 동력으로서의 도서관-규장각 사례를 중심으로」의 편집자 주, 2013년 10월 1일자, 웹진 나비 http://goo.gl/N0Vg0Y 참조.
14) 미국의 경우, 9월의 마지막 주를 '금서주간’(Banned Book Week)으로 정하고 사서, 서점, 출판사, 언론인, 교사, 독자들이 책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끌어 들여 매년 독서 및 정보 접근의 자유를 테마로 각종 이벤트를 펼치고 있음. http://www.ala.org/bbooks/bannedbooksweek 참조.
15) 마르틴 루터, 마키아벨리, 칸트,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의 저서나 안숙선의 『금수회의록』, 백석의 시집 등 우리나라의 금서들, 그리고 최근에 논란이 벌어진 책들, 예를 들어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나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2008년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 등을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16) 이 부분은 황성기, 「디지털 환경에서 도서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연구 - 도서 대출 기록을 중심으로」(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년 8월), 제4장 도서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권 보호방안 부문 참조.
17) 박준식 손문철 공역, 『도서관자료론』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 58면.(吉賀節子 外, 『圖書館資料論』, 樹村房, 1983), 황성기의 위 논문, 81쪽 재인용, 일부 수정.
18) 황성기의 위 논문, 88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