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책 읽는 사회를 위한 북매거진’ 나비의 특집은 ‘협동조합’입니다.
유엔은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정하였으며, “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7월 첫째 주는 ‘세계협동조합 주간’, 7월 7일은 ‘협동조합의 날’이었습니다.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의 한 마을인 로치데일(Rochdale)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동맹파업에 실패한 노동자 스물여덟 명이 상부상조와 자치·자조의 원리로 한 사람당 1파운드씩 모아 자본을 조성하여 일용품을 사서 조합원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로치데일의 선구자’로 칭해지는 로버트 오언(Robert Owen)과 윌리엄 킹(William King)의 사상이 협동조합의 초기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합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 설립 당시의 규약과 그 뒤의 개정된 규약의 내용을 후에 코울(G.D.H. Cole) 등이 정리한 ‘원칙’은 모두 여덟 가지로, 이후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문호개방의 원칙(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2. 민주적 운영 원칙(출자가 많고 적음, 성별을 불문하고 1인 1표) 3. 이용고에 따른 배당의 원칙(잉여금이 발생하면 조합원의 이용률에 따라 배분) 4. 출자금에 대한 배당제한(출자금에 대하여 필요한 만큼의 대가는 지급하지만 고정되고 한정된 것만 허용) 5. 정치적·종교적 중립(조합은 정치 및 종교에 대해 중립을 지킴) 6. 현금거래(조합에서 판매되는 물품은 모두 현금으로 사고 현금으로 판매) 7. 교육 촉진(조합은 잉여금 일부를 조합원의 교육 사업에 사용)
국제협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ICA)은 1995년 100주년 기념총회에서 협동조합에 대하여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결사체”(A co-operative is an autonomous association of persons united voluntarily to meet their comm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needs and aspirations through a jointly-owned and democratically-controlled enterprise.)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의 협동조합 운동가들의 교류 속에서 싹이 터서 1895년 세계 14개국 대표들이 런던에 모여 제1회 총회를 열면서 출범한 조직입니다. 우리나라는 1972년에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ICA 정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6개의 협동조합이 ICA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ICA는 오랜 기간 논의 끝에 ‘ICA 7대 원칙’을 정하였는데, 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원칙의 자세한 내용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가입 자유 원칙(1st Principle: Voluntary and Open Membership)
2. 민주적 운영 원칙(2nd Principle: Democratic Member Control)
3. 경제적 참여 원칙(3rd Principle: Member Economic Participation)
4. 자율과 독립 원칙(4th Principle: Autonomy and Independence)
5. 교육·훈련·정보제공 원칙(5th Principle: Education, Training and Information)
6. 협동조합 협동 원칙(6th Principle: Co-operation among Co-operatives)
7. 지역사회 기여 원칙(7th Principle: Concern for Community)
이를 로치데일 원칙과 비교해보면, 자율과 독립의 원칙이나 협동조합 간의 협동, 그리고 지역사회 기여 등을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세계 경제위기 극복과 자본주의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데서, 협동조합에 관한 관심이 안팎으로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라보뱅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국내 예금과 대출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스위의 미그로는 720만 스위스 국민 가운데 200만 명이 조합원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8천 개의 협동조합과 40만 개의 중소기업의 협력을 통해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는데, 이는 이른바 ‘에밀리안 모델’로 세계 경제학자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운동의 뿌리는 두레, 품앗이, 계, 향약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26년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운동이 전개되었고 1927년에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면에 함창협동조합이 설립되었으며, 1930년대에는 전국에 1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기도 하였지만, 일제는 조선 민중의 자주적 협동조합을 강제로 해산하거나 식민통치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협동조합 은행과 농민 생산자협동조합을 동시에 갖춘, 우리나라 농협중앙회는 전 세계 협동조합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규모이지만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협동조합이 자발적 결사체라는 협동조합 제1원칙과 달리, 1961년 정부 주도로 농업은행과 합쳐지면서 탄생한 것입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영향력은 크지만, 협동조합 정신은 약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최근 비록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자발적으로 생겨나서 알차게 성장하는 협동조합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살림, 아이쿱생협, 두레생협, 여성민우회생협 등 소비자협동조합의 성장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1970년대 한때 1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발흥했던 원주에서는 최근 17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이탈리아의 레가(LEGA)와 같은 협동조합연합회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대안,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 2011. 7. 15. Heri 연구보고서 3호 참조)
2011년 3월 26일 KBS스페셜에서는 ‘몬드라곤의 기적’을 방영하여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스페인 바스크의 몬드라곤을 중심으로 성장한 협동조합 기업집단의 이야기에는 청년 일자리 부족과 비정규직 차별로 신음하는 우리 현실과 대비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2010년도 매출은 148억 유로(23조 원)로 스페인 내 9위이지만 고용 규모는 8만 5천 명으로 3위에 해당하여 매출 규모에 비하여 고용 규모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 15%를 넘지 않고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받으며, 1년이 넘으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이기원, 2012년은 세계협동조합의 해, 강원도민일보 칼럼 2012년 2월 20일)
2011년 12월 29일 대한민국 국회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했습니다. 2011년 10월 12일, 30개 협동조합 단체로 구성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출범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이 우리나라보다 오래된 일본도 아직 기본법을 갖추지 않은 데 비하면, 기본법을 숙려 기간도 없이 압축적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관심도 갖지 않았던 협동조합이, 지금도 민주당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는 협동조합이 신자유주의를 신앙처럼 부여잡고 있는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정책과제로 추진되는 것은 역설이다”(박승옥, 「왜 협동조합 ‘운동’인가」, 『녹색평론』 125호, 2012년 7~8월호, 41쪽)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본법 제정에 대해서는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은 자유로워졌지만, 협동조합을 영리도 비영리도 아닌 ‘법인’이라 규정하고 있다거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비영리법인으로 인정하고 여타의 협동조합과는 다른 차별적 지위를 부여한 것 등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양부, 걱정만 키운 협동조합기본법, 중앙일보 2012년 7월 13일 자 칼럼)
사업체이자 결사체인 협동조합. 협동조합이 그것을 영리사업체로 보는 견해를 뛰어넘고, 위기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의 협동적인 사회경제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미예 씨(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회장)와 정원각 씨(iCOOP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가 협동조합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하는 분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 열 권을 꼽아주었습니다.(▶협동조합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 그리고 김현대 기자 등이 최근에 펴내어 화제가 되고 있는 『협동조합, 참 좋다』의 1장(▶협동조합에서 미래를 보다)을, 지난 1월에 소개했던, 김성오 씨의 『몬드라곤의 기적-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김성오의 '몬드라곤의 기적')과 함께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