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는 ‘독서 생태계’ 또는 ‘책 생태계’라는 용어에는 책과 관련된 산업적, 문화적 가치사슬이 모두 농축되어 있다. 저술(저자) - 출판(출판사) - 유통(서점) - 독서자료의 공공 서비스(도서관) - 독서(독자)의 순환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국제․국내 출판시장이나 독서문화뿐 아니라 지역의 독서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의 경우 주민들이 누려야 할 지역문화의 기초이자 그 척도인 지역의 책 생태계는 지역마다 매우 빈약하고 불균형적이며, 지역 간에도 양극화가 확연하다. 근래 작은도서관을 필두로 각종 도서관들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주민들의 공공적 독서 향유 기반이 넓혀지고 있는 듯하지만, 도서관 활성화의 기반인 전문 사서의 배치나 장서 구입비 부족 문제 등은 여전히 고질적이면서도 중차대한 과제로 남겨져 있다. 공공의 재원과 관심이 투입되는 도서관 영역이 이런 수준이니, 지역에서의 저술 및 출판 활동, 지역 서점 경영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새삼스런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심각하다.
이를테면, 지역에 거주하는 저자가 쓴 책이 지역 출판사에서 발행되어 지역 서점과 도서관을 거쳐 지역의 독자들에게 전달되며 쌓이는 지역 책 생태계의 고른 지층地層과 지역문화의 DNA가 우리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곳곳에는 여러 난관을 뚫고 지역사회에 착근하며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자생력을 키우는 책 생태계의 주역들(출판사, 서점, 도서관, 시민독서단체, 독서동아리, 학교 등)이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성과와 고민, 향후 방향을 제시해준 부산의 산지니 출판사, 대전의 계룡문고, 서울도서관, 제주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가 그 가능성의 일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각기 처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벌이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신뢰와 발전의 기틀 을 쌓는 모습은 지역의 책 생태계에 대한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발표자들이 소개한 곳들을 필두로 여러 지역에서 이와 같이 지역의 책 생태계를 키워가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은 빈약한 사회적 인프라와 ‘계몽과 운동’ 수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들이 많아 주민들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독서공동체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특히 동일한 책 생태계라고는 하지만 상업적 영역(출판, 서점)과 공공․시민 영역(학교, 도서관, 독서단체)이 한 지역 내에서 횡적 연대와 협력 사업을 전개하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영위하는 공동체적 관점의 ‘지역의 책 생태계’를 지향하기 위한 가장 큰 과제는 지역사회 안에서 책의 담지자들이 먼저 든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며, 시민이 참여하는 책 생태계 거버넌스(협치)의 구축이 요구된다. 독서문화진흥법 제정 이래 정부가 두 번째로 수립해 발표한 독서진흥 5개년 계획인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14~2018)>의 핵심 전략과제 중 하나가 바로 ‘지역 독서 공동체 조성’이다. 이는 지역 단위의 독서정책과 지역 독서환경 조성을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추진함으로써 시민의 삶에 보다 친화적인 풀뿌리 독서환경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의 표명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지방자치단체 독서진흥지수 도입, 독서문화진흥 조례 제정 확산, ‘대한민국 책 읽는 수도’(가칭) 지정, 도서관 확충, 서점의 독서문화 공간 조성 지원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에서는 ‘지역 출판산업 육성’ 과제를 제시하고 인프라 및 콘텐츠 활성화 지원, 지역출판사 협의체 구성 지원, 지역출판 제작․유통(우수도서 출판과 유통 협동화사업)의 중앙정부-지자체 매칭펀드 방식 지원 등이 명시되어 있다.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과제에는 지역서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과 지역서점의 문화사업 지원 확대 등이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독서, 출판, 도서관 관련 정책 과제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제대로만 추진된다면 지역의 책 생태계는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실행력이 얼마나 뒷받침될 것인가에 달려있다.
시민(주민)이 주도하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방식의 지역 책 생태계로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 중 한 가지는 ‘독서복지’의 개념이라고 본다. 지역사회에서 다양하고 질 높은 책이 보다 원활하게 출판, 유통(판매), 향유됨으로써 지역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이 지속될 수 있는 바탕도 결국 지역사회 전체와 후속 세대를 위한 ‘독서복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때 ‘독서복지’는 시민 누구나, 원하는 책을,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독서환경의 조성만을 뜻하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독서가 곧 주민 복지라는 개념에 동의할 때 비로소 지역에서 독서자료를 생산-판매하는 상업적 영역(출판, 서점)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제휴도 가능할 것이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공공 영역의 독서 관련 활동 진작과 생산(지역 저자 및 출판)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역 출판사를 비롯해 전국의 출판사들이 펴낸 책을 학교, 도서관, 서점에서 주민들이 쉽게 접하고, 읽고, 토론하며,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에 의해 책으로 소통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일에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고 지역의 책과 관련된 조직과 개인들이 연대해 발전 기반을 조성해 나갔으면 한다. 지역의 문화 수준이 높고, 주민의 자존감과 삶의 만족도가 높은 지역사회 만들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