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걱정되는 독서 생태계
독서교육의 시작은 가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준비가 되지 않은 까닭에 거의 실패한다. 엄마는 남이 좋다는 말만 듣고 경쟁적으로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사기만 해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책에 질린다. 설상가상으로 조기·과잉학습이 모두 문제풀이 중심이기에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연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컴퓨터(스마트폰) 게임류에 일찍 빠져든다. 이젠 중독 상태다.
그래서 바람직한 독서교육, 즉 부모를 위한 교육이 지방자치단체나 교육기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너무나 미미하다. 도서관이나 찾아가야 독서교육 자료를 조금이나 얻을 수 있을까. 임신해서 처음으로 접하는 보건소나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은 전무한 상태다.
다음으로 아이들이 유아교육기관을 통해 공교육과 처음으로 접하지만 여기도 독서교육은 자리를 제대로 못 잡고 있다. 초·중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학교도서관 운영이 기본에서 많이 뒤떨어져 있다. 대전은 초·중·고등학교가 약 300여개 가까이 된다. 그런데 학교독서교육의 핵심인 학교도서관에 정사서교사가 22곳(22명)뿐이다. 이런 모습은 전국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고 위치(접근성)나 시설 측면에서 썩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독서교육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꽃이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 공공도서관도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멀었다. 지방정부는 생색내기 정도 수준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폄하일까. 공공도서관 이용객은 날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이 사실을 증명해 준다. 물론 여러 여건이 도서관과 시민을 멀리하게 한다.
뜻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적극 나서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과열 경쟁 입시제도와 첨단기기들 앞에 이겨내기가 너무나 벅차다. 필자는 서점인으로서 공교육 기관에서도 힘든 독서교육 문화운동을 20여 년 해왔다. 엄청나게 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밑도 끝도 없는 일을 해왔는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 가능성의 확신이 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위기다. 벼랑 끝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우리나라 서점업계를 짚어보면 IMF 이후 인터넷서점이 등장하여 가격파괴를 하면서 오프라인 서점들이 급격히 무너졌다. 70% 정도는 넘게 줄었다. 대전도 마찬가지다. 전국 어딜 가나 대학가는 서점이 멸종되었고 유흥가로 완전히 뒤덮였다. 동네마다 있던 서점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초·중·고등학교 앞에 있던 서점들 가운데 단행본 취급점들은 없어지고 참고서 파는 서점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심각하다.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집행 날짜만 남았다고 할 정도이다. 우리 사회는 서점의 존재 가치를 너무 모른다. 고객이나 서점인이나 마찬가지다. 교육이나 문화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인데 시장논리에만 맡기니 살아남겠는가. 다 죽는다. 서점과 출판이 죽는 것은 그 결과다.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독서교육의 대안은 서점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그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계룡문고가 버티는 이유와 지향점
우리와 같은 중소형서점은 대형서점으로 타격을 많이 받는 것뿐만 아니라 인터넷서점이나 홈쇼핑에 융단 폭격을 맞으며 왔다. 거기에 더해서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독서 실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서점이 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하다. 국가적으로도 큰 걱정거리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경쟁 중심의 입시제도가 주범인데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답답하고 슬픈 현실이다. 이런 속에서 서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심각한 교육문제를 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서점이다. 계룡문고는 15년 이상 1000번이 넘는 서점 견학 행사를 통해 수없이 기적을 일으켰다. 서점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닌 교육을 혁신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우리 서점이 살아남아 아직도 계속 나아가는 이유다. 네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봉사(나눔)를 실천하는 서점이다. 직업을 봉사정신으로 한다. 서점이 지식의 보고이기에 서점을 잘 활용하면 교육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서점의 역할을 잘 하는 것이 곧 봉사다. 필자는 나름대로 책 읽어주기 봉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 서점의 임직원은 매월 정기적으로 책 읽어주기 봉사를 지역아동센터, 노인요양센터 등에서 한다. 모든 직원이 함께 한다. 그리고 읽어준 책을 기증하고 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서점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책 선물도 꼬박꼬박 한다. 최근엔 서점 한 쪽에 헌책방 코너를 만들어 운영하는데, 이곳엔 기증도서 판매대도 있다. 이 책의 판매 대금은 전액 후원한다. 이런 모습에 감동하여 외부에서도 후원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둘째, 교육적인 서점을 지향한다. 서점을 잘 활용하면 교육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 서점은 어린이들이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것을 원칙적이고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책을 싫어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고 가계 지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서점하기 너무 어려운 시대에 이런 이야기는 망할 작정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만 돈 잘 벌고 고객은 망가진다면, 이건 서점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
또 ‘서점을 이용하는 것’은 ‘책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기에 아이들이 금방 책에 빠진다. 서점 견학을 통해 수없이 증명된 일이다. 학생들이 견학만 하면 학교도서관 이용량이 급격히 늘어나 교육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마치 결혼하듯 내가 고른 것이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 빠지니 실력이 쑥쑥 자라고 교육비는 대폭 절감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자라서 진로까지 스스로 찾아가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서점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가게가 아닌, 학교이고 도서관이고 바깥 서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건소나 산후조리원에 가서까지 부모 교육을 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니까. 이때 아이 책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거의 모르니까, 엄청난 교육비를 쏟아 부으면서도 망가지니 너무나 안타깝다. 국민이 서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무엇보다도 우선 서점인이 앞장서서 풀어가야 한다.
셋째, 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이다. 서점은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나는 문화공간이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다양한 책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은 책 놀이 프로그램 운영, 둘째 주 토요일에는 신나는 책방 나들이, 끊임없는 작가와의 대화, 또 전문가 초청 강좌,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갤러리(각종 행사장) 공간을 별도로 갖추고 북카페도 운영한다. 어린이도서 코너는 아예 거실처럼 만들어졌고, 매장 기둥마다 의자를 만들어 놓아 마치 도서관처럼 책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책 읽는 문화가 생활이 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젠 유명한 작가들도 오고 싶어 하는 서점이 되었다.
넷째, 기업으로서의 비전과 꿈이다. 서점은 이익을 창출하고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기업이다. 그렇지만 이익에 눈멀지 않고 고객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시한다. 이윤 추구가 목표가 아닌 고객 감동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점이 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선진국의 서점을 뛰어넘는 멋진 서점을 많이 만들고 훌륭한 서점인을 길러내는 데도 앞장서고자 한다. 바로 서점대학을 운영하는 것이다. 국가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서점인 양성을 말이다. 이렇게 양성된 전문 서점인이 초등학교 앞에는 북카페형 어린이 전문서점, 중·고등학교 앞에는 북카페형 청소년 전문서점, 대학가에는 학과별 전문 북카페를 세우는 것이다. 이곳으로 끊임없이 견학을 오고 작가와의 만남, 전문가 초청 진로교육 등 다양한 토론과 행사가 끊임없이 열리는 명소를 만들고자 한다. 더 나아가 유비쿼터스 도서실과 그림책, 그리고 유럽처럼 동화(책)마을을 곳곳에 세우고자 한다.
3. 계룡문고와 지역사회 독서 네트워크 (계룡문고의 대표적인 프로그램들)
① 책방 나들이 : 매월 둘째 주 토요일 [1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110회 진행 중)
지난해 100회 특집으로 행사를 했는데 대성황이었다. 꾸준히 하다 보니 엄마들 사이에도 소문이 많이 나서 지역사회의 주요 행사가 된 듯하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의 각 분야에서 모범이 될 만한 분들이 직접 읽어주는 행사로 발돋움했다.
올해부터는 그림책 지도자 과정(대전시민대학)을 밟은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매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책놀이 행사를 해오고 있다.
② 작가와의 대화 : 15년간 100회 이상
처음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중심으로 하여 대전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로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단체에서 많이 하고 있어 함께 연대해서 하는 등 지역사회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 중 동화작가 초청 행사는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③ 지역서점과 학교가 함께 하는 저자 초청 행사 : 20여 회 이상 시행
올 학기 초에 학생들의 독서력 향상을 위해 고심하던 대전의 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자문을 요청해왔다. 오랫동안 현장 경험과 성공 사례가 있기에 기쁘게 승낙했다. 우선 책과 친근해져야 독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교생을 서점 견학 시키고 1학기 말쯤에 국내 최고의 작가 한 분을 학교로 모시고 전교생을 상대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고 했다.
그래서 여느 학교처럼 전교생 서점 견학을 토요일마다 시행하고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상태를 보고자 학교에 찾아갔더니, 교장 선생님께선 학생들의 학교도서관 이용률이 자연스럽게 늘어나 인근 중학교 교장 선생님께 자랑했다며 독서 담당 선생님은 시험 때가 되어도 공부보다는 책만 본다며 매우 흡족해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서점 견학을 한 많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새삼스럽게 듣는 것처럼 기뻤다.
서점 견학을 마친 뒤 약속대로 교과서에도 시가 수록된 정호승 시인과 들어갔는데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흐트러짐이 없이 진지하게 듣고 사인을 받았다. 끝날 때는 정호승 시인과 함께 기념 촬영까지 했다. 학생들이 유명한 시인에게 가까이에서 강의 듣고 대화하며 사인 받는 것이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인가. 학생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오랫동안 유명 작가를 초청해 학교 현장에서 행사를 많이 해오고 있는데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까지 반응이 아주 좋다. 작가 초청 행사는 아이들에게 깊이 있고 폭넓은 사고를 키워주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도 매우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행사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학교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들은 지역 서점과 함께 하면 의외로 큰 성과로 승화된다. 바로 해피스쿨Happy school이 되는 것이다.
[이동선, 대전일보 2013.7.22 칼럼]
④ 서점 견학 : 15년간 1,000회 이상 시행
서점 견학의 효과는 의외로 크다. 30년 교직 생활에 서점 견학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는 선생님, 성적 꼴찌의 한 중학교를 서점 견학 이후 학교도서관을 활성화시켜 1등 학교로 끌어올려 대전 교육의 화제가 됐던 교장 선생님,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서점 가는 날'의 현수막을 학교 현관에 걸어 놓아 학교도서관을 대폭 활성화시킨 교장 선생님도 있다. 서점 견학에 대한 교사나 학생들의 반응도 매우 좋다.
"오는 길 내내 아이들의 서점 이야기와 책 이야기, 더불어 책 읽어준 이야기가 학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점심시간엔 본인들이 사온 책을 보며 식사를 하려 해서 행복한 실랑이를 했답니다." (초등학교 교사의 소감)
"선생님~ 오늘 하루 너무 즐거웠구요. 친구들과 처음으로 서점에 온 저에게는 무척 즐거운 날이었어요^^ 친구들과 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보기도 하고 혼자 책도 골라 보고 특히 동화책을 읽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도 서점에 또 오고 싶구요. 다음에 계룡문고에 가면 선생님과 친구들 생각이 새록새록 날 것 같아요. 좋은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초등 6학년 어린이의 소감)
학교에서 서점 견학했던 것이 좋아 엄마에게 졸라서 주말마다 서점 나들이하는 어린이부터, 서점 견학으로 학급문고와 학교도서관이 많이 활성화됐다는 소식,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돼 학생들의 대화가 책 중심으로 바뀌어 부모님과 선생님도 너무 좋다고 한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서점 견학 행사는 친구들과 함께 오니 재미가 더하다. 거기에 우리가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해주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고른 책을 구매하니 ‘책과 결혼하듯’ 책에 풍덩 빠질 수밖에. 서점 견학 행사를 1천 번 넘게 하면서 이어지는 서점 견학에 대한 찬사는 끊임이 없다. 더 좋은 것은 서점 견학이 공교육에 큰 힘이 된다니 기쁘기까지 하다. 그래서 여러 유·초·중등학교에선 전교생 서점 견학을 정기적으로 한다. 서점은 도서관이고 또 다른 배움터이자 문화공간이다. 서점은 단순히 상품을 만나는 곳이 아닌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점 견학은 교육의 기적을 일으킨다.
서점 견학을 시키니 모두가 책에 풍덩 빠졌다. 죽은 독서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서점 견학만 하면 학교도서관 이용량이 폭증하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어서 빨리 교과과정에 서점 견학을 넣어야 한다. 한 학기 한 두 번이면 충분하다. 서점 견학으로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여기에 집중하지 않을 어른과 단체가 어디 있겠는가. 도서관 활성화와 독서교육 문제 등을 푸는 열쇠가 바로 서점이다. 출발점이다. 이것이 서점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서점은 책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⑤ 책 읽어주기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그림(동화)책을 읽어준다. 지난해에는 유독 많이 읽어주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1만 여명 쯤 되는 것 같다. 출근(?)을 초등학교로 하여 아침 자습시간과 학교에 따라서는 1교시(재량활동시간)까지 하니 2~4개 반 정도 읽어준다. 서점에 바로 출근하면 계속 견학 오는 유·초·중등 아이들에게도 읽어준다. 또 유아교육기관이나 보건소(임신부), 산후조리원(산모),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 또는 도서관, 학교 등에서 부모교육을 할 때도, 인근 시·군 단위 학교까지 가서 읽어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하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을 때도, 단체나 직원들과 등산 가서도, 거래처 직원에게도 읽어준다. 주말 오전에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도, 서점으로 ‘왜요 아저씨’인 나를 보려고 부모를 졸라서 찾아오는 아이에게도, 평상시엔 서점 나들이 온 고객에게 의심까지 받으면서 읽어준다. 쉴 날이 없다. 임신부(태아)에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이고 중년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에게 읽어준다. 이러다가 몸살이 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요즘은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많이 알리기도 한다.
처음에 책을 읽어준다고 하면 초등학생들은 자기를 무시한다며 서운해 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청소년은 더 그렇고 어른들은 아예 황당해한다. 그렇지만 이 짧은 시간(3~5분)만 지나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아이들은 열광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중년 남성이나 노인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히려 나를 놀라게 한다. 신기할 따름이다. 견학 왔을 때 책 읽어주기에 흠뻑 빠졌던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가면 마치 인기 연예인이 나타난 것처럼 환호(?)하면서 사인해달고 몰려들기까지 한다. 유아교육기관에선 읽어주기를 마치고 나가려면 가로막고 끌어안고 붙들고 늘어져 도저히 빠져나가기가 힘들 지경까지 된다.
이런 감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인 내 성격도 완전히 변했다. 그림책 읽어주기는 모든 세대를 이렇게 감동으로 승화시킨다. 오래 전부터 독서교육 관련 자료와 책, 그리고 전문가들을 만나다보니 핵심이 책 읽어주기에 있었다. 책 읽어주기는 인간관계의 감동 촉진제다. 어린 아이만 보는 것이란 편견의 짧은 그림(동화)책이 이렇게 훌륭한 책이다.
요즘 컴퓨터 게임류에 빠져 독서량이 급감하여 걱정들을 많이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책을 읽어주면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 학교도서관 이용률이 확실히 늘어난다고 하며, 주말이나 방학 땐 일부 아이들은 부모를 졸라서 서점으로 찾아온다. 책 읽어주기가 아이들이 바라는 최고의 선물이란 것을 증명해준 것이다. 이젠 모든 세대까지 증명되었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느 곳에든지 책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읽어주면 감동하니 갈등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신바람이 난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니 생각이 자라서 성숙해진다.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동선, 대전일보 2013.1.7 칼럼]
4.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 캠페인 전개
① 교사 교육 : 유·초등학교 교사
교사 교육이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교육은 교사의 영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필자에게도 독서교육에 대한 강의 요청이 가끔 오는데 직접 하기도 하고 다른 전문가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유아교육기관의 교사 교육은 기관과 업무협약까지 맺으면서 전문가와 함께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② 부모 교육 : 보건소, 산후조리원, 유아교육기관, 초등학교, 공공도서관
독서교육은 교육의 기본이고 중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잘 모르고 부모가 되어 책값과 사교육비를 지나치게 지출한다. 결과는 성공보다 거의 실패로 돌아간다. 가계 지출의 주범이고 아이들은 대부분 책과 멀어진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에 빠져든다. 이런 안타까운 일을 예방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 교육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부모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가 매우 중요해 보건소나 산후조리원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교육을 해주는데 반응은 좋지만 인식이 부족하여 연속성이 떨어져 안타깝다. 공무원들의 인식이 빨리 있어야 하겠다.
유·초등학교나 도서관 교육은 자주 하러 가지만 수요에 비에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독서교육 전문가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가는 유·초등 아이들의 미래는 부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③ 대전시민대학 출강
지난해부터 대전에 시민대학이 세워져 필자는 그림책 전문가와 함께 그림책 지도자 과정에 출강한다. 대부분 어머니들이 수강하며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올 여름 학기부터는 야간반도 신설이 되어 교사 교육에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그림책 지도자 과정은 모든 대학의 유·초등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에 적극 도입되어야 한다. 그림책은 독서교육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④ 유비쿼터스 도서관 운동
서점과 도서관을 독서의 중요한 축으로 늘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머릿속에서 떠날 때가 없다. 우리나라의 도서관 실태는 최근 들어 나아지기는 했지만 국제기준으로 볼 때 아직 어림도 없다. 대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둔산만 해도 개발된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몇 년 전 한쪽 구석에 겨우 어린이도서관 수준의 작은 도서관 하나만 있고, 관저지구 등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필자는 책만 파는 서점인이 아닌 독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뜻이 있는 교회, 유아교육기관,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작은도서관을 10개 정도 만들었다. 교회, 유아교육기관, 아파트 관리사무소, 병원 등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뛰어놀다 들를 수 있는 곳 등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굳이 새로운 건물을 짓지 않아도 도서관을 만들 수 있는 장소는 수없이 많다. 어디에나 도서관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⑤ 유비쿼터스 그림책 운동
그림책을 읽어주는 순간마다 많은 감동을 일으키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책과 연계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사람이 머무는 곳엔 어디든 그림책이 있게 하는 것이다.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언론과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자주 지적하지만 대안이 부족한 것에 대한 답답함에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해 본 것이다. 그래서 '유비쿼터스 그림책'이라 이름하고 여러 곳에 그림책을 비치시켜 보았다. 잠깐 머물러 있어도 책을 볼 수 있게 하는 곳을 찾은 것이다. 은행, 병원, 서비스센터, 미용실 등 결과는 매우 좋았다. 한 은행 지점장님은 시작 전에 이 취지에 크게 공감하고 결과가 좋으면 전국 지점에 보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고, 어떤 한의원 원장님은 매우 좋았다며 원장님들 모임에서 소개시켜 주겠다고도 하고, 또 어떤 서비스센터 직원은 고객님이 매우 좋아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몇 해 전엔 여직원이 입원했을 때 그림책을 한 보따리 전해 주었더니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호자들까지 너무 재밌게 봤다며 얘기해 주었다. 기존엔 이런 곳에 여성지나 텔레비전만 있어 아쉬움이 많았는데 그림책이 있으니 이렇게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책 운동은 관공서 휴게실을 시작으로 호텔(숙박시설) 객실, 식당, 커피숍 등 시행할 수 있는 공간이 지천에 깔려 있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한 달에 10권 안팎으로 구매해서 일정 기간 비치해 놓았다가 사회복지시설 등에 기증하면, 해당 점포 이미지도 좋고 가정환경이 어려운 이들에게 독서의 기회가 주어져 생각이 자라서 자립의 힘까지 길러준다.
⑥ 책 읽어주는 아빠 모임
어린이 책 전문가와 평범한 아빠들이 고민하며 십수 년 전에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서 서로 나눈 것들을 가정에서 실천하니 어느새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듣기 훈련이 잘되어 집중력이 좋아졌고 책을 좋아하니 엄마들도 안심했다.
그렇다고 결코 아이를 천재나 우등생으로 키우자는 것이 아니다. 아빠들이 퇴근하고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다 소파에서 잠들고, 아이는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 대화가 단절된 이 황막한 세상에서 아빠들의 구실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자녀한테 책을 읽어주는 소박한 활동으로 아빠는 잃어버린 아빠의 자리를 찾고, 자녀와 추억을 함께 쌓을 수 있다. 그러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된다.
⑦ 노인을 행복하게 하는 책 읽어주기
지난해엔 두 노인대학에서 70여 명과 30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그림책을 읽어드리고 옛이야기 몇 편을 들려줬다. 70~80대를 전후한 어르신들이 박장대소하며 좋아했다. 끝내고 나오는데 악수 좀 하자며 여러 어르신이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공공도서관으로 찾아가서 어르신들께 책을 읽어드린 적도 있었고 한글 공부하는 분들이 서점 견학을 왔을 때도 읽어드렸더니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깨비가 나오는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어드릴 땐 어릴 때 나눴다는 도깨비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마치 독서토론을 하는 것 같았다. 또 80대 전후의 어머니와 장모님께도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어드리려 하자 "내가 그까짓 거 들어서 뭐해"라고 하더니 막상 손주에게 읽어줄 땐 옆에서 가만히 듣다가 웃으시고는 크게 읽어보라며 귀를 기울이셨다. 한 지인은 노모께서 자녀가 보던 그림책에 빠져 100세 가까이 장수하며 돌아가실 때까지 좋아하셨다며 노인에게 그림책이 매우 중요하다는 필자의 말에 공감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아랫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꿔 이젠 어르신들께도 책 읽어드리는 일이 일상화돼야 한다.
최근엔 독서가 치매예방에 좋다는 연구도 있어 '노인독서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읽어주면 즐겁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니 뇌 발달에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평생 책을 읽을 여유 없이 보낸 노인이 독서습관을 갖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노인독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TV를 보는 것처럼 그림책을 보여주고 소리 내 읽어주다 보면 어르신들께 독서는 재미있는 놀이가 되는 것이다.
이젠 경로당에도 그림책 책꽂이가 있어야 하고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문화를 교육복지로 연계하면 좋겠다. 그러면서 책을 가까이하게 된 어르신들 중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 노인을 행복하게 하고 동방예의지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그림책과 책 읽어주기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동선, 대전일보 2013.6.24 칼럼]
⑧ 독서교육 자료대 운영
서점에서 고객이 많이 지나치는 통로 쪽에 독서교육 자료대를 운영한다. 독서의 장점이나 독서의 방법 등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료를 인쇄물로 만들어 배포한다. 이것은 독서교육에 꼭 필요한 자료다. 무료로 가져가도록 진열해 놓고 있다. 시작한 지가 20여 년이 되어 많은 고객들이 선호한다. 연간 비용이 100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⑨ 지역 사회단체와의 연대 등
독서교육이 필요한 곳과 적극 연대를 하여 지역사회 독서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고 있다.
* 업무협약MOU 체결 : 40여 곳의 유·초등학교,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 전국지역아동센터 대전본부(150여 곳) 등
기존의 산발적인 독서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하여 업무협약 체결을 맺는다. 우리 서점의 주요 역점 사업이다. 협약 내용은 교사·부모 교육, 책 읽어주기 봉사(연 2회), 서점 견학(연 2회), 도서실 및 학급문고 활성화, 가족의 서점 나들이 권장 및 서점 행사 참여 홍보, 작가와의 만남 등 독서 관련 학교 행사 적극 협력 등
* 스마트폰을 이용한 소셜네트워크의 적극 활용 : 인터넷 카페(1400명), 페이스북(5000명), 카카오스토리(500명), 밴드(30개), 카카오톡(3100명)
5. 서점은 ‘영혼을 파는 가게’
서점은 여느 업종과 다르다. 필자는 “서점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만 명의 스승을 가까이 모시는 것과 같다.”(황보태조)는 말을 신조처럼 여긴다. 여기서 곽재구 시인의 글을 인용해 보겠다.
“서점은 인간의 영혼을 파는 가게이다. 인간의 삶과 사랑과 예술에 대한 체취들이 깊게 고인 그 공간들이 지금은 하나둘 사라져간다.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가게가 서점이었으면 싶고 낯선 여행지의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한 가게가 서점이었으면 싶다.” (『길귀신의 노래』, 열림원, 42쪽)
그렇다. 서점은 인간의 영혼을 파는 가게다. 다양한 형태의 서점이 만들어지고 존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되려면 사명감 넘치는 전문가가 끊임없이 길러지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지원과 제도 보완(완전한 도서정가제, 지역 도서관과 주민의 지역서점 구매, 도서 구매 전용 지역 상품권 제도 등)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유럽에는 동화마을과 책마을이 즐비해 있다. 대전의 장태산휴양림, 계족산, 식장산, 엑스포과학공원 등에 일본의 목성그림책마을이나 유럽의 동화(책)마을 같은 곳이 세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서점은 인간의 영혼이 담긴 바깥 서재이고 도서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