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는 2005년 2월 부산시 연제구에 터를 잡은 부산 지역 출판사이다. 2014년 6월 현재까지 단행본 223권과 문예잡지 26권을 출간하였으며 지금도 꾸준히 월 2-3권의 단행본을 출간하여 전국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지역 출판의 현실
2005년 창업 당시 부산지역에도 몇몇 출판사들이 꾸준히 출판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출간종수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고 그나마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출판사들은 대체적으로 문학인들이 운영을 하면서 문학 관련 도서를 주로 출간하고 있는 상태였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지역의 서점 등을 돌며 자문을 구하고 다녔는데 부산의 유서 깊은 향토서점인 ‘문우당서점’의 부장님께서 “그나마 문학하시는 분들이 출판사 문을 열면 2~3년은 버티지요. 왜냐면 지인들이 책도 사주고 도와주거든요. 그런데 아무 경험도 없고 연고도 없는 분이 출판사 문 열었다가는 2년을 버티기 힘들걸요.” 하시면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충고를 해주셨다. 그만큼 부산 지역에서 출판사를 운영해나가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분은 우리 출판사의 책들을 매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주고 판매대금도 바로바로 정산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애정을 보여주셨다.
2월에 창업하고 그해 10월에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과 『반송 사람들』이었는데, 홍보를 위해 책을 들고 지역신문사 문화부 기자를 찾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문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지역 출판사 '산지니' 문 열었다
첫 책 '반송 사람들' 등 출간(2005년 11월 16일, 부산일보)
지역 출판사 '산지니'(부산 연제구 거제1동)가 출범해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과 '반송 사람들', 두 권을 첫 출간물로 내놨다. 산지니 강수걸 대표는 "'산지니'는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매이다"고 설명했다. 첫 출판물은 부산 관련물이다. 컬러 사진을 곁들여 해운대에 사는 김대갑 씨가 지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은 부산을 좀 더 친근하고 쉽게 묘사한 책으로 '부산의 풍경 느끼기', '부산의 역사와 문화', '부산의 전설' 3개 부로 이뤄져 있다. 영도에 아리랑 고개가 있단다. 시내버스 85번 종점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이전의 아낙네들이 배를 타고 부산장에 나가 해거름께 쌀이나 무거운 식량을 이고 힘겹게 넘던 애환의 고개였다. '반송 사람들'은 지역모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창립했던 고창권 해운대구 구의원이 지은 책이다. 한편 강 대표는 "소외된 삶의 르포, 우리 옷 이야기를 비롯해 불교 차 관련 번역물 등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학림 기자
두 책에 대한 내용보다도 부산에 이러이러한 출판사가 생겼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출판사 소개에 더 주안점을 둔 기사이다. 서울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출판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데 부산 지역에서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책을 출간하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고단샤로부터 번역출판을 거절당하다
덩그러니 사무실만 열었을 뿐 원고 하나 없이 출발해서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번역 출판이라도 해보자 싶어 출판사를 차린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에이전시를 통해 번역서를 검토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의 고단샤에서 나온 <텔레비전이 아이의 뇌를 망친다>라는 책이 마음에 들어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을 문의하였다. 그리고 받은 답신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출판사가 어떻게 우리 책을 번역 출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결국 그 번역출판 건은 무산되고 말았는데, 지역출판의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고, 지역이라는 것을 더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고민의 방향은 지역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산지니의 창업 이념과 모토, 그리고 산지니라는 이름
‘산지니’는 산에서 자라 오랜 해를 묵은 매를 말한다. 수지니가 사람 손에서 기른 매라면 산지니는 야생의 매이고, 보라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매라면 산지니는 다 자란 매로서,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이다. 다소 공격적인 이 이름을 지은 까닭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출판 환경과 지역출판의 여건 속에서 오래 버티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지니의 모토는 “오래 버티자”이다.
물론 오래 버티는 것만이 산지니가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산지니는 지역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지고 그것들이 출판으로 이어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 산지니의 주요 저자가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교수, 연구자, 기자 등이라는 사실은 산지니 출판활동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산지니가 지역 소재의 책들만 발간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문화예술의 의미를 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책들을 발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종합출판사를 지향하고자 한다.
콘텐츠의 확장은 인연을 통해
출판사를 창업한 2005년에는 부산에서 APEC이 열리던 해였다. 부산시는 APEC 행사에 최대한 집중하여 홍보를 하고 있었고, 많은 시민단체들은 APEC에 대한 반대 모임을 만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탄생 배경과 기본 원칙, 주요국의 대외경제정책, 신국제질서의 성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진정한 연대와 협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한 단행본을 기획하였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산외국어대학교 이광수 교수이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광수 교수는 인도 관련 책도 쓴 바 있고,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로 활동을 하며 APEC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원고 청탁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기를 놓쳐 이 기획은 추진되지 못했지만 이후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함께 번역서 『의술은 국경을 넘어』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 나카무라 테츠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 년 동안 의료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지구촌 한 구석에서 묵묵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평화를 전파해온 일본의 시민단체 <페샤와르회>와 의사 나카무라의 활동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회원이 감동을 받아 이 의사의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기로 하고 번역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족과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인도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한국의 엔지오 단체들이 정부 프로젝트 혹은 기업 후원금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또한 그런 행태에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일본 후쿠오카의 시민단체 <페샤와르회>는 철저하게 회원 4,000명의 회비와 민간 모금에만 의존하여 파키스탄 의료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라고 생각하고, 출판에 의미를 두었다.
이후 <아시아평화인권연대>나 이광수 교수와의 인연은 계속되었으며 인도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출간하게 되었다. 『인도사에서 종교와 역사 만들기』, 『인도의 두 어머니 암소와 갠지스』, 『내가 만난 인도인』, 『인도인과 인도문화』, 『힌두교, 사상에서 실천까지』, 『인도 진출, 20인의 도전』,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등이 그런 인연으로 나오게 된 책들이다.
인문, 사회과학을 위주로 한 초기 출판에서 문학 등 종합출판으로 방향 전환
특정 분야의 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산지니를 비롯한 지역 출판사는 종합출판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무릇 출판의 역사는 늘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과거, 서양의 대학이 도시를 중심에 놓고 발전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학을 지키는 것은 지역민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산지니가 인문 위주 출판에서 문학 등 종합출판으로 방향 전환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지역의 요구 때문이었다.
초기에 인문 사회과학 위주로 국내서와 번역서 30권 정도를 출간한 후 2007년 11월 정태규 소설가의 소설집 『길 위에서』를 시작으로 문학 출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소설 21권, 산문 26권, 비평집 22권 등 문학 관련 도서를 82권 발간하면서 문학은 산지니의 출간 목록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또한 그 가운데 십여 권이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됨으로써 재정에 큰 보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지니의 역량 또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지역문화 콘텐츠’에 주력한 저자 섭외
부산은 영화가 먼저 들어왔던 최초의 영화도시이자, 전쟁과 식민지를 거친 역사성이 짙은 도시이다. 산지니는 부산에서 자라온 부산시민으로서 항구도시로서 부산이 가지고 있는 개방성에 주목했다. 과거 부산이 문화와 외국 문물이 들어오는 항구도시로서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국제도시로서의 특징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그동안 『무중풍경』, 『영화로 만나는 현대중국』, 『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20세기 상하이영화: 역사와 해제』와 같은 영화 관련 책과 함께, 중국의 해양문화를 다룬 『바다가 어떻게 문화가 될 것인가』, 한국해양대 구모룡 교수의 문학비평서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등의 책을 발간하였고, 앞으로도 부산이 가진 해양성을 살려 해양문학 작품과 함께 일제강점기 부산의 왜관 관련 저서를 출간할 예정에 있다. 산지니의 경영 목표는 부산을 넘어 아시아 10대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고, 부산의 ‘지역문화 콘텐츠’ 육성은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10대 출판사로 도약하기 위한 전초가 될 것이다.
중견 소설가 조갑상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는 부산의 중견 소설가 조갑상 경성대 교수의 산문이다. 이호철의 <소시민>의 배경이 된 완월동, 조명희의 <낙동강>, 김정한의 <모래톱이야기>에 나오는 구포다리와 을숙도……. 작가는 부산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소설의 현장을 살펴보고,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대와 지금의 변화의 모습들을 추억한다.
창업 초기에 일면식도 없는 조갑상 교수를 찾아가서 부산 문단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요산 김정한 선생 평전을 내보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조갑상 교수는 김정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설가로 요산 평전을 쓰기에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조 교수님은 지금 당장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상황이 무르익으면 추진해볼 만한 사안이라고 완곡하게 거절하셨다.
그리고 몇 달 후 부산에 대한 산문을 써놓은 게 있는데, 책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지역 출판사로서 꼭 내야 할 책이라 판단하고 출판을 결정했는데, 책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사진이 필수적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옛 사진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그 모습이 현재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변화의 모습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현재 사진이 꼭 필요했다.
책 한 권 출간 못한 창업 초기에, 따로 사진가를 섭외하기에는 출판사 재정이 허락치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출판사 디자이너가 직접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창립 때부터 지금껏 출판사의 모든 편집 디자인을 도맡고 있는 권문경 디자이너는 내면은 세심하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한 작가의 성큼성큼 큰 발걸음을 종종거리고 따라다니면서 몇 날 며칠을 달동네를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었다. 1년여의 시간을 공들인 끝에 책이 나왔는데 이후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어 더욱 애착이 가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산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책이라서 우리가 만들어놓고도 많은 감동과 생각거리를 얻은 책이었다. 또한 이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부산에 있었구나 하는 말들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부산은 다양한 콘텐츠가 살아 숨 쉬는 곳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후 부산 콘텐츠를 어떻게 책으로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인연이 된 조갑상 교수와는 이후 2권의 책을 더 진행했는데,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은 문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이 되었고, 올해 출간한 『밤의 눈』은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됨과 동시에 2013년 만해문학상에 선정되었다.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으로, 6·25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장편소설이다. 맹렬한 작가정신으로 둔중한 역사를 끄집어 올린 소설작품이라는 점을 심사위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 부부
부산의 중견 시인 최영철 선생을 처음 본 것은 광주에서였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2006년 5월, 광주에 있는 거래서점 충장서림과 삼복서점을 둘러보기 위해 광주로 향했다. 서점들은 광주 시내 한복판 충장로에 위치해 있었는데 주차할 곳을 찾다가 옛 도청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경찰청이 들어서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밖으로 나오는데 건물 한쪽에서 5·18 문학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등 외국 문인들도 참석하여 시낭송도 하고 강연도 들으며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는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들어가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광주, 부산에서 각각 한 분씩 시인들이 시낭송을 했는데, 바로 최영철이라는 시인이 시낭송을 하는 것이었다. <선운사 가는 길>이라는 시였다. 그때 사회자가 대구의 시인이라고 잘못 소개를 하는 바람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마지막에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손 잡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노래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걸로 행사를 마쳤다.
이후 부산 영광도서에서 최영철 선생의 시집 『호루라기』의 독서토론회가 열렸다. 영광독서토론회는 지역 서점에서 책과 함께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참석하곤 하는데, 그 자리에서 최영철 시인을 만나게 되었고, 몇 달 전 광주에서 열린 행사 때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반가워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동안 써놓은 산문을 모아 산문집을 내보시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팔리겠느냐고 걱정하면서도 원고를 선뜻 건네주셨다. 이 책이 바로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이다. 부산의 풍경과 부산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토대로 시인의 깊고 넓은 사색의 풍부함을 내보이고 있는 이 글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역의 화가 박경효 선생께 그림을 부탁드렸다. 사진보다는 그림과 함께하면 좀 더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화가가 부산 곳곳을 다니며 스케치하고, 채색을 하여 30여 점의 유화를 완성하기까지는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소모되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을 많이 들여 2008년 5월에 책이 출간되었고, 이후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이 되었다. 이때 유난히 예산이 줄어 우수 문학도서 선정 종수가 줄어들었는데, 60여 종 가운데 딱 한 권 뽑힌 수필이 바로 이 책이었다. 공들인 책은 누군가는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를 인연으로 최영철 시인의 부인인 조명숙 소설가의 소설집 『댄싱 맘』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 또한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이처럼, 저자를 섭외하는 데 딱히 어떤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는 다만 지역신문이나 지역인사들의 동향을 꾸준히 파악하면서 그들을 ‘책’을 매개로 이어주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 저자들을 연결해 주기 쉽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산지니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제작과 유통
지역에서 출판을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유통이다. 익히 알려진 출판사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는 전국 어느 서점에서나 환영받는다. 그렇지 않은 책은 잘해야 한두 권, 그마저도 거절당하기 일쑤다. 이런 현상은 작은 서점일수록 두드러진다. 서점에 책이 공급되었다고 해도 독자들의 눈에 잘 띄는 매대에 책을 진열해 놓는 경쟁에서 지역 출판사는 밀릴 수밖에 없다. 정기적으로 서점을 방문하여 자사 출판물을 관리할 수 있는 영업사원을 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점에 출판사의 인지도를 높이려면 최소 한 달에 2∼3종의 신간을 출간해야 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팔려야 그나마 영업사원 한 명이라도 둘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지역 출판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09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의 서점은 474개에서 380개로 줄었다. 광주는 197개에서 116개, 대전은 192개에서 121개로 각각 줄었다. 이 가운데 작은 서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3년 914개이던 전국의 10평 미만 서점이 2007년에는 138개로 급감했다.
이처럼 전국의 작은 서점이 연평균 200개 가까이 사라지는 데 반해 2004년 전체 도서시장(2조 3485억 원) 매출의 15.9%를 차지하던 인터넷 서점의 매출은 2008년에 전체 시장(2조 5840억 원)의 31.9%로 크게 늘었다. 오프라인 서점 가운데서도 교보문고와 같은 큰 서점 하나의 시장 점유율이 17.3%를 차지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처럼 한국의 출판유통은 온라인 서점의 급성장과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으로 표현되는 소수 과점화에 직면하고 있다. 지역서점들의 몰락은 지역문화를 죽이는 일이다. 지역서점들이 건재해야 지역경제가 살고 지역문화에 투자도 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독자들이 구매하는 이유는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고 할인 및 마일리지를 용인하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는 것이 지역출판사와 지역서점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다.
단기적으로 지역 출판사가 전국적으로 유통을 하려면 하나의 총판에 일원화를 통해 유통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직거래 서점 수의 최소화는 발행부수를 줄이고 제작비용을 최적화하는 시발점이다. 전국의 모든 서점과 위탁거래를 하기보다 필요할 경우 현금거래를 하는 것도 힘이 약한 지역출판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유통의 구조를 먼저 인정하고 지역의 거점 서점과 지속적으로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산지니는 2005년 10월 2권의 책이 최초 출간된 이후 서울에 있는 한 도서총판과 일원화 계약을 맺고 10년째 책을 공급하여 전국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문고 등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서점과 직거래를 바로 시작하였으며 부산지역에서는 향토서점 영광도서, 문우당 등 서너 개 서점과 꾸준히 거래를 하고 있다. 초기에는 광주, 대구, 대전, 서울, 부산 등 20여 개 서점과 직거래를 하기도 하였으나 영업 담당자가 없는 상태에서 몇 군데 서점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큰 손실을 보고 지금은 십여 개로 정리한 상태이다.
전국적인 유통을 위해 제작은 주로 파주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조판 후 필름 출력까지는 부산에서 하고 필름 확인 후 파주의 인쇄소에 보내 인쇄 제본을 하여 파주에 있는 물류회사에 바라 입고 후 전국 유통을 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간혹 필름 출력을 생략하는 경우는 데이터를 바로 인쇄소로 보내기도 하고, 기한이 촉박한 경우에는 부산에서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적극적인 홍보와 기자간담회
일단 책이 출간되면 보도자료를 만들어 도서홍보업체를 통해 전국 일간지 기자들에게 책을 발송하는 작업을 초기부터 꾸준히 해왔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던 기자들이 지역에서 꾸준히 책을 만들어 보내자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서너 개 중앙일간지에 동시에 기사가 실리는 책들(아메리칸 히로시마, 부채의 운치)도 있었고 A사이즈로 실리는 책(습지와 인간, 한겨레신문)들도 있었다. 이렇게 산지니의 책들이 전국 일간지에 소개되자 산지니 출판사에 관심을 보이는 기자들이 있었고, 2006년 6월 15일 한겨레 임종업 기자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동아일보, 한겨레21, 시사인, 연합뉴스, 국제신문, 부산일보 등에 출판사가 소개가 되었는데, 이는 산지니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기자간담회는 주로 문학 분야 책들이 출간되면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 대상으로 주최하였는데 2008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9회 진행한 상태이다.
출간 목록의 업데이트
출간 목록 만들기는 출판사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출판사의 신뢰와 명성을 쌓는 과정이며 효과적인 생존과 단계적인 성장의 길을 여는 과정이다. 산지니의 경우도 출간 목록을 만들어 메일로 발송을 하기도 하고 오프라인 독자에게 제공을 하기도 한다. 물론 책 만들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여 출간 목록은 분기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2009년부터 출간 목록의 전략적 중요성에 출판사 식구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목록을 산지니에서 발행하는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우편 발송 시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함께 발송하고 있다.
수상 및 우수도서
그동안 소설 11종, 수필 8종, 평론 6종이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학도서 혹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된 바 있으며, 시 2종, 동화 1종은 대한출판문화협회 청소년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 외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4종,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학술도서 4종, 환경부 우수 환경도서 5종 등이 선정되었다.
저작권 수출
산지니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지역문화 콘텐츠라고 앞에서도 서술한 바 있지만 산지니의 저작권 수출 1호 도서인 『부산을 맛보다』도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하였다.
『부산을 맛보다』는 부산 지역에서 제1의 신문일 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역신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맛 담당 기자인 박종호 기자가 부산일보에 매주 연재한 기사를 재가공한 책이다. 박종호 기자는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 블로그를 개설하여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였으며 신문에 싣지 못할 기사는 블로그에 올려 다양한 콘텐츠를 모아 나갔다. 출판사는 연재 초기부터 이에 관심을 가지고 저자와 함께 논의하면서 책의 방향을 잡아 나갔다. 책이 출간된 후에는 부산 지역의 향토서점인 <영광도서>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기획하여 책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역신문 기자가 지역의 맛집을 소개한 책을 지역출판사에서 출간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부산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일본과 가까워 부산-대마도는 2시간 만에, 부산-후쿠오카는 4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역사적으로도 근대 이후 왜관이 설치되면서 일본인들이 많이 건너와 살았고, 일제강점기 때에도 그 어느 도시보다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적산가옥 등 아직도 일본인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따라서 향수를 가지고 찾아오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다. 특히 부산항 여객터미널과 가까운 중앙동이나 남포동 거리를 걷다 보면 가이드북을 들고 길을 찾는 일본인들도 많이 보인다.
또한 부산일보는 후쿠오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서일본신문사와 교환기자 제도를 시행하면서 서로 상주하는 기자를 두고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어왔다. 서일본신문사는 큐슈 지역의 7개 현을 대상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으며 자회사로 방송국과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1년 6월에 출간된 이후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호평을 받던 『부산을 맛보다』에 대해 2011년 11월 서일본신문사西日本新聞社 출판부에서 일본어판 출간 문의를 해왔다. 일본인 관광객이 많은 부산의 맛집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의 관심을 받을 거라고 판단한 듯했다. 서일본신문사 출판부와 6개월 간 몇 차례 미팅을 계속하면서 번역 계약을 진행하는 사이 일본의 또 다른 메이저 출판사가 번역출간 문의를 해오기도 했지만 최초로 출간 문의를 해온 서일본출판사와 2012년 5월 21일 최종적으로 번역출판 계약을 완료하였다. 책이 출간되면 서일본신문사의 자회사인 (주)니시니혼여행사에서 부산 맛집 탐방을 테마로 한 여행상품을 개발하여 책과 함께 홍보,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계약 체결 후 책이 나오기까지는 8개월 정도 걸린 듯하다. 그 과정 중에 저자를 통해 부산에 있는 일본총영사관의 추천사를 받아서 일본 측 출판사에 전달하였으며 이후 일본어판 책은 『釜山を食べよう』라는 제목으로 2013년 2월 10일 출간이 완료된 상태이다. 출간 후 서일본출판사에서 증정본 10부를 보내왔다. 상자 안에는 『釜山を食べよう』 책과 함께 한글로 쓴 편지도 들어 있었는데, 감사하다는 말과 책이 잘 팔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작은 걸 지향하는 일본인답게 책은 한손에 쏙 들어가도록 작게 만들어졌다. 270쪽 신국판형 책이 190쪽 4․6판형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게 편집을 잘했다. 원래 책에는 없던 부산 지하철 노선표라든지, 간단한 한국어 회화도 부록으로 넣고 음식점별로 찾아가는 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어 실제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산지니는 설립 초기부터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단체에 가입하여 저작권 수출에 대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도쿄국제도서전, 베이징국제도서전, 서울국제도서전에 독자적으로 부스를 만들어 참가할 여력이 되지 않으므로 대한출판문화협회를 통해 해마다 서너 종의 도서를 꾸준히 출품해왔다. 올해 1월에 열린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도 <부산을 맛보다>, <길 위에서 부산을 보다>, <밤의 눈> 등을 출품하였으며, 직원 1명이 직접 타이베이로 건너가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도부터 한국문학번역원의 영문 초록이나 샘플 번역 지원 제도를 이용해 초록과 샘플을 제작하고, 번역 지원 신청도 계속했으며 저작권 수출 에이전시에도 꾸준히 책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지원은 베스트셀러나 유명 소설가의 작품 위주로 선정되다 보니 항상 선정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의 바탕 위에 1호 저작권 수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믿는다.
지역 출판미디어로 독자와 소통하기
먼저 미디어는 표현수단임과 동시에 전송수단을 가리킨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출판미디어는 책이라는 전송수단을 넘어 더 확장된 전송수단을 획득하게 되었다. 과거라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사업 영역이던 오디오 콘텐츠와 동영상 콘텐츠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출판미디어의 사업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편 콘텐츠란 다양한 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텍스트를 일반적으로 가리킨다. 여러 콘텐츠 가운데 출판콘텐츠는 독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책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지금까지의 출판 방식을 ‘공간의 출판’이라고 한다면 다른 미디어와 자유자재로 결합하고 분리하는 앞으로의 출판 방식을 ‘흐름의 출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간의 출판이란 공간적 구획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확고하게 가르며 작동하는 폐쇄적인 출판 시스템을 말한다. 특히 흐름의 출판에서 출판은 일방향의 표상적인 미디어여서는 안 된다. 출판미디어는 다양한 종류의 활동이 결합되어 콘텐츠를 함께 생산해내는 쌍방향적 생성의 미디어여야 한다.
출판콘텐츠의 생산, 유통, 소비 패러다임이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쌍방향성 변화이며, 둘째는 다양성 변화이며, 셋째는 장기성 변화이다. 이런 변화는 지역 출판인들에게 온라인에서 적극적인 블로그 활동과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만나는 활동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소수의 대규모 자본으로 과점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출판 현상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지역 출판사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산지니의 경우를 예로 들면 지역에 있는 인문학 카페에서 매달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전 직원이 온라인에서 적극적인 블로그 활동과 함께,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만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7월 구모룡의 『감성과 윤리』를 시작으로 2014년 6월까지 60회 진행 중이다.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한 SNS 활동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출판사 홍보 차원을 넘어, 출판미디어 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다.
지역 출판미디어로 지역사회와 연대 및 소통
무엇보다 지식산업의 핵심 주체인 출판사들의 내부에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출판사는 책만 잘 만들어내면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출판사는 콘텐츠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중심 거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출판사는 책을 펴내는 곳이기도 하고 서점이기도 하며 도서관이기도 하고, 미디어이기도 하고, 지역문화 창달의 커뮤니티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에 존재하는 작은 도서관과 결합하고 공공도서관 사서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신문과 방송 등 지역 언론과 인적, 물적으로 결합하여야 한다. 서울과 달리 부산에서는 이런 활동이 수월한 편이다. 산지니의 경우 지역의 미디어 종사자를 저자로 결합하여 출판한 경험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전략적으로 바라보며 의식적으로 결합하고자 더 노력하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또한 지방정부에 대한 정책적인 제언을 통해 지방정부가 출판정책을 만들도록 계속 촉구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산지니는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지역사회가 수도권으로 이탈하지 않고 20대가 취업하는 데에 공감하기 위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지니가 지역 출판사인만큼, 우수한 지역 인재들의 양성을, 지역 이탈을 막기 위한 기업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늘 책임감을 갖고 있던 차였다. 비록 출판사가 재정적 문제로 신규 인력 채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나, 우수한 교수진들로 구성된 부산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장의 실무를 미리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는 적극 동참하려 한다. 예를 들면 산지니는 현재 한국해양대와 산학협력 가족회사로 활동하고 있고, 동아대 인문대학 학생들의 인턴 활동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역 대학과의 다양한 연계활동을 통해 20대 청년이 이력서에 인턴 경력을 한 줄 추가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출판사가 어떤 곳이며 출판문화 교육, 나아가 부산의 문화 관련 행사들에 함께 함으로써 부산의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산지니의 향후 과제와 제언
산지니가 부산에 있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성격의 기획출판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라고 본다. 기획에서 필름 출력까지를 부산에서 완결하고 인쇄와 제작은 파주출판단지를 이용하면서, 전국의 큰 서점들과는 직거래를 하고 서울의 유통총판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책을 배급하기 때문에 전국에 책을 유통시키는 데는 큰 문제점이 없다. 관건은 기획 능력과 다품종 소량 출판을 통해 좋은 책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 데 있다.
산지니의 경영 전략은 3등 전략이다. 서울의 대형 출판사들이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지역 출판사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역 출판사로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책을 낼 수도 있고 서울의 출판사들이 미처 다루지 못한 보석들을 발굴하여 책으로 만들어 틈새시장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local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고르기 때문에 지역 색이 짙은 책은 잘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산 출신 유명 작가의 책이 부산에서는 몇 권 안 팔리고 오히려 서울 지역에서 더 많이 팔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역의 콘텐츠는 수준이 낮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지역에서 더 많이 소비하고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이는 지역 출판사인 산지니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지방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출판을 지원하는 제도가 전무하다. 지역 출판사들이 늘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거창하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자리, 즉 지역local을 기반으로 할 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문화건 예술이건 출판이건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즐기고 누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 2012~2013년에 부산문화재단의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 도서관 지원사업은 다른 지역에서도 참조할 사례이다. 예산은 적어도 지역의 출판 활동을 고취하고 지역 출판산업을 육성․지원한 첫 사례라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출판시장 위축 상황은 늘 안타까운데 공공도서관 증설과 함께, 유통물류단지가 있는 수도권으로의 물류비 부담을 정부나 부산시가 지원해 준다면 지역 출판업계 종사자로서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또한 지역 출판사로서 출판계의 오랜 염원인 개정 도서정가제가 11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비롯하여 유통구조의 불합리성이 시정되어야 지역 서점이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화 입장료 중 일정 비율을 영화산업진흥기금으로 조성한 영화계의 사례를 본떠 출판계의 ‘출판문화산업진흥기금’ 조성 안이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서점이 살아나고 더불어 공공도서관이 활성화된다면 출판사로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시는 부산의 공공도서관들로 하여금 부산 지역 출판사의 책을 5% 정도는 구매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이를 의무적으로 구매하게끔 하는 것이 제도화된다면 산지니를 비롯한 지역 출판계에 큰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 출판의 풍토는 베스트셀러나 시장성만을 좇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규모는 작더라도 의미 있는 책을 만드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