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협동조합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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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도시가 윤택하게 사는 비결
협동조합의 성지 이탈리아 볼로냐
2011년 5월, 어느 날이었다. 같은 팀에 근무하는 이종태 <시사IN> 경제국제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따지자면, 이 일의 시작은 그 전화 통화에서 비롯되었다. 아이쿱 생협의 정원각 사무국장이라는 분에게서 ‘유럽 협동조합 동행 취재’에 관한 전화가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종태 팀장은 한마디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협동조합, 알아두면 좋은 거야.” 협동조합과의 조우. 그게 시작이었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대개 ‘농업 협동조합’을 떠올린다. 조금 관심이 있는 이라면 더 나아가 ‘생활 협동조합’을 떠올릴 것이다. 협동조합이 아직 활성화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다. 유럽 협동조합을 취재하러 간다고 하니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어떤 이는 유럽의 ‘농협’ 같은 ‘금융회사’를 취재하러 가느냐고 묻고, 어떤 이는 ‘생활 협동조합’처럼 유럽의 ‘작은 가게(?)’들을 취재하러 가느냐고 묻는다. 외국의 ‘새마을운동’ 같은 걸 취재하느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이도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협동조합이 있는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유럽 협동조합을 취재하기 전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았다. 협동조합에 대한 책이나 자료는 부족했다. 그나마 있는 것은 간략한 개론서 정도였다. 실제 어떤 협동조합이 있는지조차 설명된 책이 없었다. 취재도 협동하면 되겠지. 동행할 정원각 사무국장에게 물었다. “해외 취재 가기 전에 미리 참고할 만한 책이 무엇이 있어요? 추천 좀 해주세요.” 정원각 사무국장이 대답했다. “우리가 갈 곳에 대해 참고할 만한 책이 마땅치 않아요. 한두 번 방송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협동조합의 불모지, 한국’은 협동조합에 관한 도서의 불모지였다.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유럽 협동조합을 들여다보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의 스키폴공항Airport Schiphol을 거쳐 돌고 돌아 도착한 이탈리아 볼로냐. 이곳은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에 있는 도시다. 로마나 밀라노처럼 유명한 관광도시는 아니지만 중세 시대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이곳에는 이탈리아 4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볼로냐 오페라극장이 있고,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유명하기도 하다. 볼로냐는 문화의 도시다.
볼로냐가 속해 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 유럽연합에서 소득이 높은 다섯 개 지역에 속한다. 볼로냐의 인구는 대략 37만여 명.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경남 진주시 인구 규모와 비슷하다. 볼로냐 중앙역의 첫인상은 소박했다.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에 있는 기차역 같은 느낌. 택시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입성도 소박하긴 마찬가지였다. 통역을 맡은 교민 김현숙 씨가 도착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20년째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저기 저 중앙역 꼭대기에 있는 시계, 보이시죠?” 김현숙 씨가 물었다. 시계는 10시 25분에 멈추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보았던 시계처럼 시간은 어떤 기억에 멈추어 있었다. 1980년 8월 2일 오전 10시 25분. 이 볼로냐 중앙역에서는 폭발 사고가 있었다. 20킬로그램kg가량 되는 티엔티TNT 폭발물이 터졌고, 볼로냐 시민 85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 부상당했다. 테러였다. 좌익 무장 단체의 소행이니 우익 백색 테러니 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볼로냐 시민은 그 끔찍한 기억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때 멈춘 시계를 그대로 보존했다. 10시 25분은 테러의 잔혹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볼로냐 중앙역의 시계는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10시 25분에 멈추어 있다. |
중앙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아시넬리탑Torre Asinelli. 97미터에 달하는, 1109년 귀족 아시넬리가 만든 탑으로 97미터에 달한다. 지방의 전제군주들은 탑을 높게 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탑은 많지 않은데 이 탑이 가장 높고 유명하다. 볼로냐 시 전경을 볼 수 있어 볼로냐를 찾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내부의 계단 숫자는 486개. 꼭대기 전망대에서 본 볼로냐 전경은 왜 볼로냐 시를 ‘붉은 볼로냐’Bologna la rossa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사방을 둘러본 풍경이, 붉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서다.
볼로냐 시청 광장 벽에는 파시즘에 맞서다 숨진 이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
“볼로냐에 붉은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통역자 김현숙 씨의 설명이다. 좌파가 오랫동안 이 지역 정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이 도시의 사회주의자들은 무솔리니 파시즘 정부와 맞서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2차 대전 후반기에 이탈리아는 독일에 점령되었고, 수많은 빨치산이 목숨을 바쳐 맞서 싸웠다. 이들 가운데는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있었다. 볼로냐 시청 벽에는 파시즘에 맞서다 숨진 사람 1,000여 명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항거한 이들. 흑백사진 밑에 이름이 적혀 있다. 사진이 없는 이들은 이탈리아 공화국의 문양을 대신 넣었다고 한다. 볼로냐시는 자유를 위해 싸운 이들 ‘장삼이사’의 사진을 시청 벽에 아로새겼다. 그들의 흑백 사진 앞에서 일행은 숙연해진다. 그 광장에서는 몇몇 젊은이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000여 개의 사진과 그 앞에 놓인 꽃들, 그리고 광장의 활기가 노랫소리와 섞여, 묘하게 어울렸다. 볼로냐는 이런 역사적 전통을 아우르고 있다.
김현숙 씨는 이 낯선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여기는 한국과 부의 개념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어느 집이 잘산다고 하면 집이 몇 채고, 통장에는 얼마가 있고, 그런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적당히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있고, 복지시설이 잘돼 있으면 만족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 유치원이 잘돼 있고, 늙었을 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그에 대비해 돈을 준비해 놓는 정도예요. 한국에서는 명품, 명품 하는데, 이탈리아가 명품으로 유명해도 막상 이곳에서는 그렇게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볼로냐를 취재지로 선택한 것은 이 지역의 협동조합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이다. 볼로냐대학 스테파노 자마니Stefano Zamagni 교수에 따르면, 볼로냐가 주도州都인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1950년대만 해도 가난했다. 그런데 인구 430만 명인 이 주는 이제 1인당 소득이 4만 유로(약 5,8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윤택해졌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자마니 교수는 “그 중심에 협동조합이 있다.”라고 말한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있는 협동조합 숫자는 무려 8,000개에 이른다. 협동조합연합회인 레가콥LEGA COOP의 파올로 카타비아니Paolo Cattabiani 대표에 따르면, 이탈리아 전체 협동조합의 50퍼센트가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있다. 이 지역은 사회주의 등 좌파 운동의 영향을 받아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게 마치 ‘지역 문화’처럼 되었다.
또한, 이 지역 경제활동의 30퍼센트를 협동조합 경제가 차지하고 있다. 볼로냐로 한정해보면, 볼로냐에는 400여 개의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퍼센트에 이른다. 이 지역 사람들의 임금은 이탈리아 평균 임금의 두 배에 달하고 하고, 실업률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도대체 협동조합이 뭐기에?
대형 마트급 소비자 협동조합 이페르콥
20년 가까이 이탈리아에서 산 교민 김현숙 씨에게도 협동조합은 친숙하다. 김씨는 “어디를 가도 협동조합을 접한다. 택시 기사도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한다. 이곳 사람들은 ‘시장에 간다’는 말 대신 ‘콥coop에 간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라고 말했다. ‘콥’은 협동조합(코페라테, cooperativa)을 줄인 이탈리아 말이다. 콥은 이탈리아의 매장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시장에 간다’는 말 대신 ‘콥에 간다’는 말을 쓴다고?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자 협동조합 매장이라고 하면 비교적 규모가 작고 농산물만 살 수 있는 곳을 연상하게 마련이니까. 김현숙 씨에게 물건을 주로 어디에서 구입하느냐고 물었다. “여기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도 있어요.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소비자 협동조합 매장도 있고요. 여기 사람들은 줄여서 콥이라고 해요. 장 보러 가면서 ‘나 콥에 갔다 올게’라고 해요. 워낙 콥이 생활 속에 침투했다고 할까요.” 또한 매장의 크기가 다양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마트와 비슷한 규모인 대형 매장인 이페르콥ipercoop도 있고, 우리나라의 생협 매장과 비슷한 크기의 미니콥minicoop도 있다. 이페르콥에는 농산물, 식료품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등 공산품도 판매한다.
볼로냐의 평범한 가정, 알레시오Alessio 가족에게도 소비자 협동조합은 일상이다. 이 집의 냉장고 안에는 ‘콥coop’라는 상표가 붙은 식재료가 많다. 모차렐라 치즈, 닭 가슴살, 명태살, 볼로냐 햄, 공정무역 초콜릿, 그리고 과일 봉지에까지. 모두 소비자 협동조합에서 산 식료품이다. 그뿐만 아니다. 주방에 있는 냄비와 프라이팬에도 콥 마크가 붙어있다. 일곱 살짜리 아들 레오가 입은 티셔츠도 소비자 협동조합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소비자 협동조합에서 많이 샀을까? 간단하다. “식품은 할인도 많이 되고, 세일 상품도 많이 나와요. 집에서 가까워 편하고, 가격도 적당하니까. 또, 제품에 대한 신뢰도 있고요. 이제 무슨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 편리해요. 매일 가다보니까 거기에서 사람들을 알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어떤 우정 같은 것도 생기고 그래요.” 레오의 엄마 실비아와 할머니 루이자가 말한 이유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단골’ 같은 느낌이겠다. 단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우정을 나눈다고 할 수 있을까. 알레시오 가족은 동네에 있는 작은 콥 매장으로 거의 매일 장을 보러 가고, 큰 매장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이용한다고 했다.
이페르콥에 있는 소비자 협동조합 광고 사진. 가격이 낮다는 것을 표현한 광고다.
소비자 협동조합이 크다고 하면 얼마나 큰 것일까. 콥이탈리아는 이탈리아 북동부 4개 주 123개 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체다. 대형매장 15개와 소형매장 135개를 갖고 있다. 연 매출은 대략 19억 2,0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2조 8,000억 원가량 된다. 이 정도면 한국의 대형 마트의 1년 매출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외형상 대기업에 버금가는 규모다. 이탈리아 국민의 60퍼센트가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 뿌리를 탄탄히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 협동조합 매장이라고 하면 규모가 작고 주로 농산물을 파는 곳을 떠올리지만, 이탈리아의 소비자 협동조합은 공산품도 취급하고, 규모 또한 작은 가게에서부터 대형 마트급까지 다양하다. 매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소비자 협동조합(생협) 매장을 이페르콥이라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볼로냐 외곽의 소비자 협동조합 매장 이페르콥을 방문했다. 외견상 우리나라의 대형 마트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본 외관은 딱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형 마트와 같다. 내부도 비슷하다. 대형 마트 크기의 매장이 있고, 입구의 통로 양쪽으로 각종 의류 브랜드 매장이 입주해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마트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장에서는 콥 상표가 붙은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콥 콜라, 콥 세제 등 콥 마크가 붙어 있는 제품은 협동조합에서 자체 생산한 것이다.
이탈리아 이페르콥에는 콥 마크가 찍힌 제품이 많았다. 사진은 협동조합 콜라.
이페르콥의 한 매장. 신선한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소비자 협동조합에서 새마을금고처럼 간단한 예금 수신 업무를 하기도 한다. 그 표현이 재미있다. 예금주라고 표현하지 않고, (소비자 협동조합에) ‘돈을 빌려주는 조합원’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이탈리아 일반은행보다 금리가 조금 높다.
소비자는 이 협동조합에 가입할 때 25유로를 낸다. 우리 돈 3만 6,000원이다. 김현숙 씨는 “비조합원도 물건을 살 수 있지만, 조합원에게는 마일리지 혜택이 있어 협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건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라고 말했다. 조합원이 아니라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데도(우리나라의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 매장에서는 조합원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굳이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합원이 되면 이점이 더 많으므로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합비를 내면 25유로 상당의 장을 볼 수 있는 쿠폰을 보내준다. 조합원에게는 할인 혜택이 있다. 또 물건을 사면 포인트를 주는데, 이 포인트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이 포인트에 따라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연말에 이윤 배당도 받는다.
이 매장에서 만난 할머니 파스컬리 파트리치아Pascali Patrizia는 참치, 채소, 빵가루, 샐러드 등 콥 제품을 구입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고 할인이 많이 되고 포인트도 쌓을 수 있어 이 매장에서 물건을 많이 산다고 했다. 시장을 얼마나 이용했는가에 따라 포인트를 쌓고, 500포인트면 물건값을 5퍼센트 할인해주고, 1,000포인트가 되면 물건값을 10퍼센트 할인해준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해 10유로 정도 배당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별히 콥을 이용하는 이유는? “물건이 없는 게 없고, 나에게 훨씬 더 이익이 되니까.”
다른 소비자의 말도 비슷했다. 중년 여성 에반젤리스티 그라치엘라Evangelisti Graziella는 일주일에 한 번 이 매장에 와서 장을 본다. 그녀는 “콥 제품을 신뢰한다. 손자가 어린데 손자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 예를 들어 방부제가 없는 제품들. 그런 면에서 콥 제품은 신뢰가 간다.”라고 말했다. 그녀 또한 25유로를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녀는 “여행을 많이 가는 편이다. 콥에서 하는 ‘로빈투어Robintour’라는 여행사가 있는데 조합원이라 그곳에서도 혜택을 많이 본다. 또, 연말에는 배당을 받는다. 조합원을 해서 좋은 점이 무척 많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왜 콥을 이용하는지’ 질문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소비자 협동조합은 이들에게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니까. 왜 일상이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그게 일상이니까’라고 답할 수밖에.
이탈리아의 소비자 협동조합 매장 이페르콥은 외견상 우리나라의 대형 마트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비가 이들의 삶에 미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 인근 골목 상권이 죽게 된다. 대기업이 재래시장과 자영업자의 삶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소비자 협동조합은 어떠한가? 작은 생산 업체와 상점이 협동해서 대형 매장을 세웠고, 소비자는 신뢰를 기반으로 조합원으로 가입해 물건을 구입하고 이윤 배당을 받는다. 그러면서 연 3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다. 생산자 사이의 협동,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협동. 그 협동의 힘은 강했다.
농민들끼리 협동하다, 농민 협동조합 코메타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이 있다면 생산자 협동조합도 있다. 우리의 경험을 살펴보자. 2010년 배추 소매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다. 포기당 가격이 1만 5,000원을 넘기면서 김치가 아니라 ‘금치’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전 해에 비해 네 배나 오른 가격이었고,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기후적 요인으로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했다. 배추 소매가격은 폭등했지만 막상 생산자인 농민의 판매 가격은 늘어나지도 않았다. 배추 수집상의 유통 비용이 많이 늘어났고, 결국 농민의 판매 가격과는 무관하게 소비자만 사상 최고가의 배추를 먹게 되었다.
그런데 배춧값이 폭등해 ‘배추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났던 그 다음 해는 어떠했나? 이번에는 배춧값이 폭락해 수확 비용도 거두지 못할 것 같아 농민들이 배추밭을 갈아엎기도 했다. 농산물은 이렇듯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게 반복되었다.
볼로냐의 농민은 이런 가격 폭락-폭등 현상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감자·양파 재배 농민 협동조합 ‘코메타Cometa’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코메타를 찾았을 때는 양파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다. 양파 더미가 레일을 따라오면 이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고 포장해 마흔여섯 개 냉장창고에서 보관한다. 냉장창고 온도는 6도에서 8도로 유지되는데 10개월까지 보관할 수 있다.
코메타는 1968년에 감자·양파 농사를 짓는 농민 마흔 명이 출자해 만들었다. 이들이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단순하다. 생산물을 적정 가격에 팔기 위해서였다. 클라우디오 브린타촐리Claudio Brintazoli 코메타 이사는 “수확할 기간이 되면 가격이 갑자기 하락하거나 상인이 일부만 사가는 일이 많았다. 중간상인들이 문제였다. 중간상인이 유통마진을 떼서 가져갔기 때문에 농민이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했다. 적절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것에 대응하려면 냉장창고가 필요했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혼자서 이런 시설을 만들 수는없었다. 조합은 출자금을 모으고, 가공 기계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1972년에 처음으로 저장창고를 만들었다. 당시에 여섯 개를 만들었는데, 그러면서 넉 달에서 다섯 달가량 감자와 양파를 저장할수 있었다.
코메타 직원이 감자를 분류하다가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창고가 지금은 마흔여섯 개까지 늘어났다. 감자 1만 톤, 양파 1만 5,000톤까지 저장할 수 있다. 이제는 8월에 수확하면 이듬해 5월까지 저장할 수 있다. 직접 포장까지 해서 매장으로 공급한다. 공급 시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가격 폭락을 막고 수익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에는 수확량이 적어 가격이 높고, 2011년은 반대로 수확량이 너무 많아 가격이 낮기는 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변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저장 시설이 없어 싼 가격에 ‘어쩔 수 없이’ 농산물을 중간상인에게 넘겨야 하는 일은 없어졌다. 출하 시기와 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972년에 저장창고를 만들게 되면서 수출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우간다 등에 수출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일이 협동조합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코메타의 클라우디오 브린타촐리 이사는 “코메타가 생긴 이후에 농민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제일 중요한 것은 농민의 걱정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전에는 판로가 없어서 아예 수확을 포기한 농민도 많았어요. 그런데 코메타가 생긴 후로 여기에서 보관해주고 알아서 팔아주니까 걱정거리가 없어졌지요. 그리고 관리 경영에 필요한 비용만 제하고 유통마진 없이 농민에게 다 돌려주니까 농민의 삶이 아주 윤택해졌어요. 수입이 거의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2011년 현재 코메타의 농민 조합원은 82명. 조합원 가입 신청을 하면 이사회에서 심사한다. 경작지 규모를 따지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게 적절한지를 판단한다. 심사를 통과하면 출자금 250유로(약 37만 원)를 낸다.이는 저장가공시설을 이용하는 최소비용이다.
코메타는 조합원 참여를 중요시한다. 3년에 한 번씩 조합원 총회를 열어 ‘7인 관리위원회’를 뽑고, 이 중에서 조합 대표를 선출한다. 별도로 세 명으로 구성한 재무위원회를 두고, 7인 관리위원회가 재무위원회를 감독한다. 중요한 투자 사항이 생기면 7인 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조합원 총회를 따로 열기도 한다. 매년 이익의 일정 부분을 조합 기금으로 적립하고 재투자에 사용한다.
코메타는 2010년에 감자와 양파 2만 5,000톤을 수확하고 판매해 1,100만 유로를 벌어들였다. 우리 돈으로 160억이라는 매출 성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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