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쓸 때는 문학진흥법이 이미 확정되어 당장 고칠 수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문학진흥법 안에 아동문학을 명시하려면 새롭게 개정안을 내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데 언제 개정안을 낼지, 낸다 해도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지 또한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된다 해도 적어도 몇 년은 시간이 걸리겠지요.그런데 문학진흥법이 시행되기 불과 한 달을 앞두고 아동문학인들은 ‘문학진흥법’안에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단체 게시판에도 그렇게 홍보를 했습니다. 아동문학인들은 격분 할만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불과 한 달 후인 2016년 8월 4일부터 문학진흥법이 발효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말로 빠져 있는 것이 맞는다면 문학진흥법에 기초한 모든 사업에서 아동문학을 빼놓고 일을 진행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빠진 게 아니다.” 라고 문체부나 도종환 의원 측에서 말을 해도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동문학인들이니까 말입니다.따라서 저의 문제의식은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고 주장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학진흥법 안에 이미 아동문학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구체적인 명시가 없어도 이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기초한 모든 사업에서 아동문학을 빼놓거나 홀대하면 안 된다고 말할 법적 근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위법(시행령, 시행규칙)은 상위법(문학진흥법)을 위배할 수 없으니까요.만약 이것이 문학적 논의라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문학 논쟁이 아니라 법적 논쟁이었습니다. 차라리,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주장이라면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동문학인들의 주장은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이 글에서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안에 동시, 동화, 동극, 아동문학평론 등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발언은 이러한 현실인식을 고려한 전략적인 태도입니다. 문학적 관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연히 아동문학은 일반 성인문학과 대등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 등 문화 예술 산업의 각 분야에 별도의 진흥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만이 진흥법이 없었던 때에 도종환 의원의 발의로 늦게나마 「문학진흥법」이 제정된 것은 모든 문학인에게 반갑고 기쁘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법률 제13961호, 2016. 2. 3. 제정, 2016. 8. 4. 시행 예정)
문학진흥법의 제정을 환영하면서 아동문학인 단체에서 아쉬운 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빠져 있으므로 아동문학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입니다. 이번 포럼의 주요한 문제 제기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그렇게 홍보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미 문학진흥법 안에 아동문학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1장 제2조 제1항 문학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말한다.
즉, 동시는 시에, 동화나 청소년소설은 소설에, 아동문학평론은 평론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면 추리, 판타지, SF, 역사 등의 각 장르소설도 빠져 있는 것이며, 동극, 동수필, 그림책도 빠져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며 시행령에 아동문학을 넣자는 것도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상위법을 위배하는 하위법은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서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주장도 아동문학인 스스로의 열등감이나 패권주의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주장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모처럼 만들어진 문학진흥법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시행령을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문학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시행령의 제정이 시급합니다.
문학진흥법 시행령 제4조에 보면 ‘문학진흥정책위원회’의 구성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음 각 호의 직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하여 위촉하여야 한다.1.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관2. 한국문화예술위원장3. 한국문학번역원장4. 국립한국문학관장
문학진흥정책위원회 구성에 가장 핵심적인 주체인 ‘문인’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 수년간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 ‘융복합’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문화콘텐츠 기획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문학 고유의 영역을 일정 부분 훼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고려할 때 ‘문학진흥정책위원회’의 구성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반복될 우려가 있습니다. 반드시 문인을 포함시켜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시인, 소설가, 평론가, 아동문학가, 수필가, 희곡작가 등을 망라한 10인 위원회를 참여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수년 사이에 우수문예지발간지원사업이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문예지 55종에서 14종으로 축소되었고 아동문예지 6종은 완전히 제외되었습니다. 예산도 10억에서 3억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올해부터는 우수문예지발간지원사업을 폐지한다고 합니다. 개인창작지원금 사업은 102편에서 70편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정 작품에 대한 정부의 외압 문제도 있었고 발표 방식의 투명성 문제도 있었습니다.
문학진흥법이 시행되면 이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합니다.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을 부활해야 하며 개인창작지원금은 예산을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위원회 한 해 예산이 1800억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문학에 대한 지원은 극히 미비합니다. 따라서 기존 예술위 예사에 문학진흥을 위한 예산을 추가로 책정해서 문학진흥을 위한 사업에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우수문학도서의 선정과 보급은 중요한 문학진흥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칭이 바뀌고 선정 도서의 종수를 늘리는 대신 개별 책들의 매입 및 보급 권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조삼모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학 외의 다른 분야, 예를 들면 세계 발레 축제 등에 쓰는 예산을 비교하면 우수문학도서의 보급에 책정된 예산은 초라할 정도입니다. 권수를 늘리고 보급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예산 자체를 늘려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음원 등은 저작권법의 강화로 창작자에게 반드시 저작료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 곡 불러도 작곡가, 작사가, 가창자에게 저작권료가 돌아갑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방송 혹은 재방송을 할 때마다 작가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됩니다. 그러나 책은 어떻습니까? 도서관에서 한 권을 구입하면 무료로 무한 반복 대출이 됩니다. 아동도서의 경우 인기 있는 책은 몇 개월만 지나면 무수한 반복 대출로 너덜너덜해져서 새로 구매를 해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작권자에게는 아무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책과 도서관은 공공성, 공익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책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양서를 읽을 수 있도록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문화정책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공공성의 의무를 왜 창작가가 혼자 져야 할까요? 지금 문인들은 순수한 인세 수입만으로는 최저 생계도 유지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이 반복 대출됨으로써 판매의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무단 복제에 해당하는 저작권 침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례로 2015년 4~6월 중랑구립면목도서관에서 어린이가 가장 많이 읽은 책(대여순위) 1위는 ‘오랑우탄 손과 행복도서관 살인사건(김용진)인데 석 달 사이에 총 22회 대출이 되었습니다. 10위권에 있는 책이 모두 각각 20회 정도 대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이 수치를 전국의 모든 도서관 수로 곱하면 어마어마한 판매를 대여가 가로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서는 도서관대여저작권법의 시행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아 2016년 4월호부터 잡지 지면에 지속적으로 수록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명자는 지면 관계상 1차에서만 300여명이며 이 중에는 아동문학인 뿐만 아니라 배우, PD, 일반인도 망라되어 있습니다. 향후 필요하면 2차 서명도 받을 예정입니다. 이때는 『어린이와 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아동문학인 단체와도 연계할 생각도 있습니다.
도서관대여저작권법의 핵심 내용은 도서관에서 책이 대출된 횟수만큼 일정한 대여료를 책정하여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책과 도서관의 공익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창작자들, 문학인들을 살리자는 취지입니다.
최근 도서관마다 전산화가 이루어져서 대여 건 수 집계에 대한 기술적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개별도서관의 전산내용을 전국 도서관 전산망으로 일원화하는 작업만 하면 됩니다.
이 전산망에 저작자가 아이디를 발급받아 접속할 있게 하면 저작자가 자기 책이 얼마나 대출되었는지 총 횟수를 알 수 있고, 어느 지역 어느 도서관에서 자기 책을 많이 읽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자가 그 도서관 지역의 독자들을 직접 만나러 가는 사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진흥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문학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고, 문학 창작 및 향유와 관련한 국민의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문학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학진흥법의 제정과 시행에 무한한 기쁨과 기대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우려 또한 큰 게 사실입니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사업이 ‘한국문학관 건립’이라는 사실이 매우 아쉽습니다. 벌써부터 문학관 유치전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으나 문학관의 건축처럼 가시적인 사업보다는 문학인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실질적으로 문학인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구체적 사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주 지엽적인 사안이지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 중에 예술인패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술인들에게 각종 문화공연을 할인해 주는 카드입니다. 그러나 할인율이 10%~20% 정도에 그쳐서 일반인들이 다른 할인을 이용할 때와 다를 바가 없고 활용 가능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적어 쓸 데가 없습니다. 문학진흥법은 이런 형식적인 사업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공공도서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 강좌를 여는 것입니다. 문인들이 창작교실, 독서모임 등에 참여할 수도 있도록 하고 강좌를 맡은 문인에게 활동비 혹은 강사비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문학의 향유와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포럼에 오신 많은 아동문학인들의 바람처럼 아동문학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없는 문학진흥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문학진흥정책위원회에 아동문학인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시인이나 소설가, 평론가들은 아동문학을 폄하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고, 현실적으로도 여러 사업에서 아동문학을 빼놓거나 지분을 적게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신춘문예에 동화와 동시가 사라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아동문학을 배제하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무쪼록 문학진흥법이 만들어진 만큼 시행령 또한 잘 만들어져서 이 법이 유명무실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