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놀이터’Adventure Playground 혹은 ‘플레이파크’プレーパーク라 불리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자신의 책임으로 자유롭게 논다’는 취지를 제안하고 불필요한 금지나 제약을 적은 간판을 없앤, 어린이가 다양한 놀이에 도전하고, 모험할 수 있는 놀이터다.
불을 피우고, 구덩이를 파고, 나무에 오르고, 기지를 만들고, 댐을 만들고, 요리를 하고, 공작을 하는, 그것이 어린이 자신의 손으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칼이나 톱, 망치, 삽 등의 도구나 공구류가 놀이도구로 상비 되어 있다. 팽이, 못빼기, 술래잡기…… 옛날부터 내려오는 놀이도 여기서는 지금도 왕성하게 펼쳐진다. 그 아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극 그 아이의 손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놀이터다. 일본에서는 1979년, 도쿄 세타가야구世田谷区의 하네기공원羽根木公園 내에 첫 상설 플레이파크가 생겼고, 이제는 37년째를 맞이한다. 당시 매일 놀러 오던 아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16세였으니까 그 아이는 이제 53세가 되었다.
세타가야 플레이파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①세타가야구의 사업으로서 장소 확보와 최저한의 운영자금을 예산화하고 있다. ②일상적인 운영에는 지역주민에 의한 ‘도우미’가 책임을 지고 맡고 있다. ③‘플레이리더’Play Leader라 불리는 어른이 공원 개방시간 동안 상주하고 있다. 주민과 행정의 협조로 이루어지는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역할분담은 어린이의 자유로운 놀이를 일상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짜낸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일본에서의 첫 번째로 이 ‘플레이리더’라는 낯선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다.
현재 세타가야구 내에는 네 군데의 모험놀이터가 상설되어 있다. ‘하네기’羽根木 ‘세타가야’世田谷 ‘고마자와 들판’駒沢はらっぱ ‘가라스야마’烏山의 각 플레이파크가 그것이다. 세타가야의 활동을 알게 되고 ‘우리 지역에도 필요하다’고 원하는 사람들이 움직여 현재는 전국 각지에 모험놀이터 만들기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호소로 3년에 한 번 ‘모험놀이터만들기 전국연구집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7회째를 맞이하는 2016년 현재 약 400개의 단체가 활동 중임을 파악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단체에는 각각의 특징이 있어서 운영형태는 똑같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활동단체가 주민을 주체로 하여 운영에 임하고 있다. 그 큰 이유는 ①놀이에 관련된 사고 등의 책임추궁에 행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자유로운 놀이터의 보장이 되지 않는다. ②어린이가 자라는 것은 지역 안이고 어떤 지역 환경을 만들지는 지역의 과제다. 이상 두 가지로 집약된다. 어린이에게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기를 원하는 지역 사람이지만, 불만을 터뜨리는 것도 지역 사람이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1975년 아직 어린 두 자녀를 키우던 한 부부가 자녀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내가 어릴 때와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그럴 때 영국에서의 모험놀이터 활동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어린이에게도 필요한 건 이런 환경이다’라고 느낀 부부는 직접 유럽으로 떠나 몇 나라를 돌면서 놀이터 사진을 찍어서 귀국했다.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의 보호자들과 아파트의 주민, 반상회 등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거기에 촉발된 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놀자 모임’을 결성, 직접 만드는 놀이터에 도전했다.
이 활동은 어린이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빌리고 있던 토지의 반환을 계기로 놀이터를 종료하려고 했던 부모들을, ‘그만두지 마세요’라며 아이들이 설득했다.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된 부모들의 분발이, 훗날 ‘하네기 플레이파크’ 탄생으로 이어졌다. 지역 주민이 움직였기 때문에 이 놀이터가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NHK의 기록에 수록되어 있는 다큐멘터리에 「도회의 아이」라는 타이틀의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의 단카이團塊:단괴세대1947~1945년 출생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니까 1950~1960년대를 찍은 다큐멘터리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이미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적어도 현재 60대 사람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는 그런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말일까.
모험놀이터를 일본에 소개한 부부의 발상에서 특필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놀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노는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아이가 놀 줄 모른다고 생각하다 보면 아이에게 놀 수 있는 힘을 주겠다며 아이들을 강제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환경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오히려 환경이지 아이들이 아니다. 그렇다. 아이가 스스로 ‘더 놀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 환경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모험놀이터는 그 실현을 위해 탄생했다.
나는 아이의 놀이를 표현하는 세 가지 중요한 형용사로 ‘위험하다아부나이’ ‘더럽다기타나이’ ‘시끄럽다우루사이’를 꼽아 왔다. 이 머리글자를 따서 ‘AKU’ 즉 ‘악惡, 일본어 발음으로 아쿠’이 된다. 어른들은 아마도 아이의 ‘위험하다’ ‘더럽다’ ‘시끄럽다’를 악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위험하니까 그만해” “더러우니까 그만해”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등으로. 아이들은 옛날부터 AKU의 존재였다. 본인들도 그랬을 텐데 ‘옛날, 아이’였던 지금의 어른들은 그러나 현대의 아이가 아이임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 줄을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른들의 편협한 마음이 아이로부터 놀이를 빼앗아 온 것임을 우리 어른은 우선 명심할 필요가 있다.
‘모험놀이터’의 발상지는 북유럽 덴마크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와중에 그것은 태어났다. 건축가인 쇠렌센Carl Theodor Sørensen 교수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하나의 발견을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번듯하게 설계해서 만들어놓은 놀이터보다 어른들이 위험하니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공사 현장이나 폐자재 적치장 같은 곳에서 훨씬 더 신나게 논다’는 것.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런 놀이터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수도 코펜하겐 교외의, 폐자재를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은 놀이터 ‘엠드룹Emdrup 폐자재놀이터’를 개설했다. 아이들은 그 폐자재를 이용하여 기지를 만들고 성채를 세우고 동물을 기르는 오두막도 만들었다. 물론 그것을 위한 공구 등은 놀이터에 상비 되어 있었다. 칼날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놀이터라는 위험요소도 있고 또 부상을 포함한 불의의 사태에 대한 안전대책을 위해 그곳에 어른 한 사람을 배치했다.
그의 이름은 존 베르텔센John Berthelsen. 그는 단순히 관리인처럼 성가시게 아이들을 몰아세워 주의를 주거나 그곳의 지도자처럼 아이들의 앞에 서서 설교나 지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일을 어른의 지혜와 경험을 조금 가미해서 그것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지혜와 기술을 터득한 아이들은 나아가 놀이를 더 폭넓고 다양하게 개발하여 보통은 아이들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놀이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쇠렌센 교수에게 있어서는 생각도 못 했던 발견이었다. 놀이터에 이러한 어른이 있음으로써 어린이의 놀이는 이렇게까지 엄청난 발전을 해낸다. 나중에 ‘플레이리더의 발견’이라고 했지만 그 이후로 모험놀이터에 플레이리더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서 위치를 부여받아 유럽에서는 아직도 엄연한 직업이 되고 있다.
앞 장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그 ‘플레이리더’를 일본에서 처음으로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다. 1981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 ‘플레이리더’라는 입장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고민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영국의 모험놀이터를 기록한 『도시의 놀이터』都市の遊び場에서는 플레이리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어린이에 관한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이 플레이리더를 지원한다면 어린이에 관한 전문지식을 일단 모조리 버릴 필요가 있다. 뛰어난 플레이리더는 전직 목수나 선원이었던 사람이 많다.” 이것은 플레이리더의 이미지로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왜 플레이리더라는 직업을 고민했는지, 그것은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유래한다. 나는 1958년 도쿄 가츠시카구葛飾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빈민촌이었던 그 지역은 작은 집들이 밀집해 있어서 집들 사이에 어린이와 고양이밖에 지나다니지 않는 틈새들이 있었다. 그곳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나는 골목길 집단(골목대장 집단)에서 놀며 자랐다.
그 당시 아이들은 어른이 있는 곳에서는 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른 앞에서는 야단을 맞지 않는 놀이밖에 하지 않았다. 아이들끼리는 그야말로 위험한 놀이나 불량한 놀이, 잔혹한 놀이나 때로는 범죄적인 놀이까지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설레는 체험은 아이들끼리의 놀이 안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이 바로 자신이 플레이리더로서 놀이현장에 서는 것에 모순을 느끼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놀이터에는 정말 어른은 불필요하다고 지금도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필요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현대 아이들은 예전에 없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도시화와 소자화小子化다. 도시화가 가진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관리화라는 것이 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사에 따라 모든 사안들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자화는 그 자체가 어른들이 본 표현이고, 어린이 입장에서 보면 ‘다대화多大化, 어른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를 가도 어른들뿐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찍이 도시화가 그다지 진행되지 않고 어린이와 어른의 비율이 좀 더 어린이에 기울어져 있었던 시대는 아무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관리하려고 애를 써도 어린이는 어른의 눈앞에서 도망칠 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어린이들만의 사회가 존재하고 어른사회의 눈을 피한 놀이가 전개되었다. 어린이의 창의력도 지혜도 살아갈 힘도 이러한 놀이 안에서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화와 다대화가 그것을 크게 바꿔 왔다. 학교는 물론이고 방과 후까지 어른의 의사로 만들어진 학원이나 강습소에 다니게 되고(도시화에 의한 어린이의 관리화), 어린이 한 사람당 과도하게 많은 어른들이 어디를 가도 아이들을 관리하려고 눈을 빛내고 있다. 이때 모든 어른이, 자신이 생각하는 착한 아이만을 원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이 상황은 예를 들면 ‘구덩이 파기는 재미있으니까 (어른이 뭐라고 해도) 하고야 만다’는 아이들은 멸종되고 ‘구덩이 파기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하지 않는다’라고 반듯하게 교육받은, 어른들의 억제가 잘 먹히는 아이들이 ‘착한 아이’로서 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교육의 승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아이들은 ‘해보고 싶다!’는 용솟음치는 흥미, 호기심, 의욕,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창조나 시행착오, 친구와 힘을 합쳐 달성하는 기쁨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출하는 힘을 동시에 잃어버린다. 나아가 어른의 요구에 순응만 하는 아이는 그 아이의 ‘자신이 살아가는 실감’의 상실마저 초래한다.
예전에 없던 사회 상황 안에서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해보고 싶다’고 스스로 시작하는 놀이의 세계를, 도시화 안에서 어른이 의식해서 보장해 나갈 뿐이다. 전에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놀면서 자신의 세계를 키워나가는 것과 어른에게 야단을 맞아가면서 사회의 규칙을 지키는 것과의 균형. 그것이 급격하게 붕괴되는 것이다. 그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모험놀이터는 탄생했다. 모험놀이터는 ‘아이가 놀이를 통해 자라는 것은 불가결한 경험’이라고 보고 그것을 보장하려는 새로운 또 하나의 교육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플레이리더는 아이의 ‘해보고 싶다!’에서 그 아이의 세계를 열어가는 것을 지원해주는 존재다. 구덩이를 파서는 안 된다는 어른이 있으면, 아이가 구덩이를 파고 싶어 하는데 왜 팔 수가 없는 거냐고 어른 사회에 대해 질문하는 측에 플레이리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팔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그러한 사회를 실현해 나가는 어른인 것이다.
모험놀이터를 만드는 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아이의 관점에서 지원하는 일. 도시화와 다대화의 이 사회 안에서는 이 일이 아이에게는 결코 불가능하고, 어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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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모험놀이터를 만들었고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 | 아마노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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