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서관에 간다
“엄마, 그거 기억나요. 제가 ‘기적의도서관’을 ‘기저귀 도서관’이라고 불렀던 거… 발음도 비슷하지만 실제로 기저귀 찬 아이들이 참 많이 왔어요. 그리고 별나라 여행 터널은 아직도 기억나요. 그곳에서 책 읽으면 좋았는데…. 이제는 커서 가기가 좀 그래요.” (석현동 중2, 여)“엄마, 나 7살 때 거기서 이구아나 키워서 참 신기했어요.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살아있는 동물도 보니까 상상의 도서관 같았어요.” (석현동 초6, 남)“옥상에 있는 비밀의 정원이 가장 재미있었고 별나라 여행 터널이 기억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데 권장도서 빌리러 엄마랑 함께 가고 있어요.” (왕조 2동 초4, 여)“유치원 다닐 때 중앙홀(?) 강당 같은 곳에서 빔으로 빛그림을 봤는데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지금은 대부분 독서록을 쓰기 위해 가거나 시험공부를 하러 갑니다.” (해룡면 상삼리 중1, 남)“순천에 어린이도서관이 있는지 몰랐어요. 아~ 기적의 도서관! 대출증 만들러 가봤어요.” (왕조 2동 초4, 여)“기적의도서관에서는 책을 읽는 것보다 왠지 자꾸 움직이고 싶어요. 친구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싶고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요.” (조례동 초5, 여)“음… 도서관 중앙에 있는 소파가 너무 좋아요. 그곳에서 책을 읽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해룡면 상삼리 초6, 여)
‘순천에 어린이도서관이 있다는 것 알아?’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하던 중 문득 아이들이 어린이도서관이라는 것을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린이가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아~! 우리를 위한 어린이도서관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어린이’라는 수식어가 있어 어린이도서관이 아니라 이용자가 어린이도서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서너 살 연년생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 ‘순천기적의도서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근처에 살고 있었지만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이용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뉴스에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녀서 자제해주기 바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뛰면 안 된다는 뉴스는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도서관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에게는 어린이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 순천기적의도서관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어린이도서관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가 꿈꾸던 도서관이 현실이 된 것이다.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는 ‘북스타트’(순천시 관내 거주 6개월~36개월 아가 대상, 도서 2권, 가이드북, 손수건, 스케치북, 크레파스 등) 프로그램으로 6개월 때부터 엄마와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다. 영·유아는 북스타트, 도리도리짝짜꿍, 그림책 놀이터 그리고 초등 1~6학년은 독서클럽, 어린이 사서, 독서교실, 고전 인문을, 온 가족은 작은 미술관, 기적의 놀이터, 부모교실 등을 이용하여 좀 더 효율적이고 짜임새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은 도서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함도 있지만 도서열람 및 대출이라는 도서관의 기본 기능 외에 도서관이 일상적인 문화예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서로 관심을 나누어 가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적의도서관은 참 따뜻한 곳이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먼 거리지만 기적의도서관을 이용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근거리에 있는 중앙도서관(지금의 그림책도서관)은 어린이실이 따로 있긴 하지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어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책 읽기를 하기에는 부적절했다. 그런데 기적의도서관은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어, 우리 가족만의 작은 도서관을 가졌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 지루해지면 곳곳에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지루함을 식혀 주었다. 때때로 그 소품 사이사이가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소가 되기도 해 또 다른 즐거움을 전달해 주었다. 그래서 나와 우리 아이가 기억하는 기적의도서관은 작은 놀이터이자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추억의 앨범이다.” (민주, 민혁 엄마)
어린이 책 문화 활동가가 바라본 도서관
(사)어린이도서연구회는 1980년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는 취지에서 창단, 어린이 교육문화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시민단체이다. 어린이 책을 연구하여 좋은 책을 골라 권장하며,「어린이도서연구회가 뽑은 어린이·청소년 책」 목록과 「동화읽는어른」이라는 월간지를 펴내고 있다.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순천지회는 2001년 순천 동화읽는어른모임을 결성하여 어린이 책을 읽고 토론하며 바람직한 어린이 책문화 환경을 가꾸기 위해 좋은 책 전시, ‘기적의도서관’ 순천유치 서명운동, ‘동화 읽는 교사모임’ 지원,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 및 작은도서관에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뽑은 어린이·청소년 책」 목록 보내기, 좋은 책 보내기 및 책읽어주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이책 활동가로서 바라본 도서관은 책임자가 누구냐에 따라 문턱이 높기도 했고 낮기도 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순천지회는 우리지역의 독서문화 환경개선을 위해 도서관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독서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다.
도서관과 함께 이런 저런 사업을 하면서 울고 싶을 때도 있었고, 마음 상해 우울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열정 있는 사서와 직원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한 기억이 더 많다. 그 기억 속에 기적의도서관과 함께 한 일들이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우리 지회에서 초기 기적의도서관 유치에 전 회원이 서명운동에 나섰고 개관까지 건립추진위원으로 활동, 운영위원회 활동, 그림책 버스, 초등 입학생들의 책 꾸러미, 독서프로그램 외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였다. 근래에는 ‘기적의도서관 10주년 행사’(옛이야기 한마당: 옛이야기 들려주기와 체험을 통해 구비문학을 계승하고, 이야기 한마당을 통해 세대 간 화합을 유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현재 4회째 개최되었다), 2015년 ‘권정생 문학기행’, 어린이책축제에 함께 했다. 2016년에는 기적의도서관 책 전시 공간에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추천하는 책 꾸러미’ 운영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 삶’과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 더욱더 협력하고 소통해야 하는 관계다. 향후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어린이와 책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협력할 필요가 있고, 또한 시민사회단체와 공공 어린이도서관이라는 특성을 살려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더 많이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역량 있는 어린이 책 활동가와 기적의도서관이 함께 상황별 주제 목록 만들기(양성평등, 환경, 통일, 효, 과학), 동화동무씨동무, 전래놀이 등을 순차적으로 논의하여 진행하고, 문화탐방을 기획하거나 주변의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시도해 보면 좋겠다.
민간봉사자가 함께하는 도서관
"민간 봉사자로 구성된 ‘자원활동조직’은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살아있는 도서관’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작은도서관 운영사례 순천기적의도서관
지금 순천의 도서관은 많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책읽어주기, 빛그림, 북스타트, 책 정리, 인형극, 견학 팀 운영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적의도서관과 함께 해온 자원봉사자 분들의 역량은 단순한 도서정리 봉사가 아니라 지역의 독서 문화 환경을 바꾸어 가는 중요한 인력으로 성장하여 활동 중이다. 봉사로 시작하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공공도서관의 프로그램, 학교, 작은도서관, 가정에서 기량을 발휘하고 있으며, 성취감과 함께 높은 프라이드를 가지고 어린이들과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는 기적의도서관의 기둥과 같은 존재이므로 이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응답하라 어린이도서관
‘도서관’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서, 책, 친구, 의자, 책읽어주는 선생님 등 다양하다. 중학생 아들이 ‘사서’ 라고 힘차게 대답한다. 어린이도서관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플로어 서비스’가 없다는 것이다. 사서가 직접 도서관 서가에 앉아 아이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책도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도서관은 단순하게 책을 보러 가는 곳은 아니다. 놀러 갔다가 책을 읽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엉덩이와 어깨가 절로 들썩여진다. 숨바꼭질하면서 두근거리는 숨을 참고 있을 때, 책들이 아이를 향해 속삭인다. 그 속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순덕(『뻥이요 뻥』, 김리리, 문학동네)이도 만나고, 길치 유정이(『멀쩡한 이유정』, 유은실, 푸른숲 주니어), 지각대장 존, 미술관에 간 윌리와 만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최근 기적의 놀이터 조성과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아이들이 온 가족과 함께 뛰놀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역사회 도서관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당도서관(정원)에서 〈도깨비와 씨름 한 판〉 〈닭을 지켜라〉 〈신발 던지기 놀이〉 〈꼬리잡기 놀이〉 〈손가마 태워 주기〉등 많은 전래놀이를 함께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기적의도서관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간배치(별나라 다락방, 아그들방, 책 놀이터, 이야기방, 마당도서관, 비밀의 정원)와 공간의 컬러 디자인, 조명, 책장의 배치 등 책 읽는 공간에 대한 욕구 충족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가장 편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고 도서관 소파가 너무 좋아 도서관에 다시 가고 싶다 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순천시는 기적의도서관이 어린이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과 함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을 뒷받침했으면 한다. 늘 바뀌는 직원들을 교육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전문화된 직원, 숙련된 자원봉사자와 함께 힘을 모아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을 위한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를 바란다. 또한 지역의 독서단체와도 협력하여 어린이들의 삶을 바르게 가꾸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13살이 된 기적의도서관은 많은 아이들과 만났을 것이다.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어느덧 청소년, 대학생이 되었다. 형, 누나, 언니, 오빠가 된 이들이 다시 기적의도서관에 와서 지금의 아이들을 만나 책을 읽어준다면 좋겠다.
도서관의 가치는 도서관에 진열된 책이 주인을 만나는 순간 그 빛을 발한다. 책과의 만남을 통해 빛을 발하는 도서관의 책, 아이들의 내일과 우리의 미래를 바꿀 공간으로서 도서관,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잘 기억하고, 이야깃거리가 더 풍부한 도서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