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금서 읽기 주간」 추천 금서 31~40
어제의 금서가 오늘의 고전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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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는 “사자들의 시대”였다. 길거리에 사자들이 돌아다녔다. 사자들은 서울 거리에도 많았지만 부산이나 광주나 대구에도 많았다. 대도시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리산에 올라가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내 앞에 사자가 앉아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도 있었다. 이런 사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님 웨일즈가 쓴 장지락이라는 사자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사자들이 당시의 독재정권과 싸우는데 앞장 선 것은 물론이다. 지금도 이 책을 읽고 사자가 되는 사람이 있다.- 이영준(경희대학교 교수)
헤겔은 “역사의 발전은 자유의 확대 과정”이라고 하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를 바르게 이끌어가려는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금서의 주인공이었던 혁명가 김산, 정부가 그에게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을 추서한지도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무엇이 변화되었고, 발전하였는가? 개인의 삶이든 사회의 역사든 그것을 제대로 이끌어가고자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자신에게 패배하고 싶지 않은” 젊은이에게 〈아리랑〉을 권한다.
- 이정수(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관장)
아리랑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민족해방 투쟁에 온 생을 투신하였던 너무도 순결한 한 영혼의 기록이다. 10대의 몸으로 독립 투쟁에 헌신하기 위해 망명의 길에 나섰던 그는 만주 벌판의 혹한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돌보아 준 집안의 처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투신해야 할 투쟁의 길을 떠난다. 젊은 그에게 다가온 독립 투쟁의 길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연속이었다. 온갖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로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 자체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 차별에 대한 승리라는 것을 엉엉 울면서 공감했었다. 80년 광주를 21살의 젊은 나이에 마주했던 당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이고 치욕이었던 내게 삶이 어떻게 모욕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었다. 김산은 일제가 기세등등하여 독립 투쟁이 승리하리라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열정과 지성의 힘을 온전히 갖추었던 그 시대 청춘의 전형이었다. 김산의 삶은 억압의 공포로 인간을 굴종시킬 수 있다는 거대한 어둠에게 정의와 진실의 빛은 결코 꺼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가 안타깝게도 일제의 간교한 '밀정을 만들어 내부 숙청을 이끌어내기'라는 덫에 걸려 끝내 처형되고 마는 비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당시 청춘들은 그것을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을 지닐 수 있게 되었고, 김산이 생을 불살라 피운 꽃을 삶의 온전함과 아름다움으로 지금껏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리랑은 암울했던 시기에 정의를 향한 열정과 용기, 희망을 일깨워 주었던 내게는 등대와 같았던 책이다.
- 이성대(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
어떤 책은 사람을 바꾸고 어떤 책은 역사를 바꾼다. 한국에서 역사를 바꾸는 데 기여한 책은 많겠지만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평전〉이야말로 그런 책들 중에 가장 앞자리에 놓일 책이다. 이 책은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전태일에 비해 대학생들이 자신들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전태일의 말과 행동이 젊은 영혼들의 양심에 천둥 번개처럼 불을 질렀던 이 책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어떤 측면에 대한 강력한 질문, 우리들의 양심을 후벼 파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 이영준(경희대학교 교수)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끈 쥐어지는 주먹과 끓어오르는 심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또한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억압당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세기 러시아라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한국이든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디에서 다시 읽어도 『어머니』가 공감될 수 있는 것은 우리들 가장 깊은 바닥에 내재해 있는 어머니의 모성과 인권의 본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모성과 인권의 문제가 모두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고전으로 오래토록 읽혀져야 할 이유이다.
- 문선영(영화인)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방문 사신단에 끼어 의주에서 북경까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호방하고 유려하고 풍부하며 화려하고 곡진함을 어우르는, 보물창고 같은 작품이다. 다만 한문 작품이라 번역에 따라 글맛에 많은 차이가 있고, 연암이 도달했던 고전의 깊이를 언저리나마 이해하지 못하고 읽는다면 글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보석같은 비유나 은유, 풍자를 놓칠 수 있다. 친절한 해설을 보태어 꼼꼼히 공부해가며 읽는다면 조선 선비가 도달했던 최고 문장의 맛에 빠져들어 갈 것이다. 조선시대에 금서였던 책이다.
- 김종옥(작가)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이렇게 시작하는 김지하의 담시 「오적」(1970)은 서울 장안의 다섯 도적(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 도둑질 경연을 펼친다는 설정을 통해 부정하고 부패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2015년 대한민국 현실은 새로운 「오적」을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
- 최재봉(한겨레신문사 기자)
과거의 역사가 왜 되풀이 되는지, 여성에게 사회적 평등이 왜 필요한지, 한미 FTA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 왜 노동운동이 중요하고 불평등에 저항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연을 한 내용을 그대로 말로 풀어서 책으로 나왔다. 고등학생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하종강은 말한다. “노동자의 권리,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에 제대로 된 의식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 이원경(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
권정생 선생님 책이 금서였던 나라.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듯 흐르는 강이었다가, 강아지똥이었다가, 흙이었다가, 권정생은 또 하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다. ‘서로 보살피고 상부상조하는 인간적인 유대 가운데서 삶의 근원적인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글로 보여주신다. 이 책을 만난 뒤로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에게 선물하는 책이다.
- 손은경(대감초등학교 교사)
어렸을 때 친구 따라 교회 문턱을 넘으면서 교회라는 좀 특별하게 지어진 건물과 검은 색의 두꺼운 성경책이 기독교라는 종교의 상징이라는 것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뭔가 원하는 것들이 하나 둘 더해져 내 욕망을 구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기에 ‘구하면 얻으리라’ 라는 말이 정겹고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우리들의 하느님〉을 만났다. 권정생 선생님은 책머리에서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과 그리고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모두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보셨나요?’ 한다. 이게 뭔가. 뭐든 구하면 얻을 거라면서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기도제목으로 놓고 열심히 기도하라고 했는데…. 〈우리들의 하느님〉은 내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서가 아닌 내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는 하나님으로 다시 만나게 하는 책이었다. 그때까지 교회에서 배운 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반전이었다. 그때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저항이고 의심에 이어 질문을 품게 되었다. 우리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를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풀어놓은 이 책이 2008년 ‘반정부 반미’를 조장한다며 국방부 금서가 되었다. 그렇다면 정부와 미국은 반기독교임이 분명함과 동시에 제 잇속만 챙기면 살라고 조장하는 것임을 방증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육용희(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
80년대 초반, 계엄령은 해제되었지만 학교는 술렁거렸다. 언제든 학교 안까지 경찰들이 몰려들어오고 선배들은 그 엄혹함 속에서도 책을 읽고 토론하고 시대의 앞날을 걱정하며 이를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몰래 가리방(?)을 긁어 인쇄물을 만들고 어두워진 골목을 누비며 가슴에 품은 유인물을 집집마다 꽂고 사라지는 일들을 반복했다. 광주민중항쟁의 핏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시절이었으므로... 진실을 알리는 그리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알 길이 막혀 있던 그 시절, 이 책 한 권을 읽고 세상이 어떤 논리로 돌아가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참으로 군사정권에게는 총보다 더 무서운 그 무엇이었다.
- 박소희(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이사장)
사랑 때문에 자살을 택하게 되는 젊은이의 연애 이야기가 왜 금서가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자살을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이 작품만큼 위험한 작품도 없으리라. 1774년 출간된 뒤, 라이프치히의 신학 교수들이 자살을 부추긴다고 고발했고 시의회는 이틀 만에 금서로 지정했다.
- 안찬수(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로로르L'Aurore」지 실어서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성을 고발한 에밀 졸라의 대표작. 노동자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소설로 탄광촌 노동자들의 비참한 모습과 저항, 투쟁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 로마가톨릭교회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 작가의 사명감을 몸소 실천한 대가의 모든 작품을 금서로 지정했다.
- 김정숙(마곡중학교 교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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