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분석: 후기산업화의 ‘좋은 시민’과 산업화식 ‘정당정치’의 부조화
1. 좋은 시민의 출현
좋은 시민은 누구인가? 이 질문의 출처는 고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상적인 좋은 시민은 소속된 정치공동체에 단순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공동체의 교육과 삶을 통해 좋은 사람으로의 전이를 꾸준히 시도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장의관 2008).
좋은 시민은 후기산업화 시대에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좋은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시민성citizenship이라고 한다면 세계화와 EU의 출현, 다문화사회의 도래 등으로 그 시민성의 본질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시민성은 후기산업화 단계에 이르러 선진국가의 시민들 사이에서 강화되고 있는 자기표현 가치, 시민행동주의, 관용이다. 더구나 놀라운 점은 이러한 시민성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Dalton 2008).
산업화 단계의 좋은 시민은 질서와 준법의식으로 충만한 의무를 잘 이행하는 시민citizen duty이었다면 후기산업화 단계의 좋은 시민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행동주의가 강한 참여적 시민Engaged citizen이다. 시민적 의무 모델이 객체로서 시민citizen-subject의 책무와 시민성의 전통적 인식을 반영한다면, 관여적 시민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자각하고, 기꺼이 자신의 원칙을 위해 행동하며, 정치 엘리트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Dalton 2008, 28).
2. 한국의 사례 분석: 투표참여와 시민행동의 분리
<표 17>은 이번 조사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먼저, 가치를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투표 참여는 물질주의자들이 가장 열성적이며, 시민행동은 탈물질주의자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연구결과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선진산업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행동의 스타일이 변화하고 있으며, 탈물질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 항의 그리고 다른 형태의 직접행동을 자극하고 비당파적 참여기회를 통해 정치에 대해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선거정치 참여는 줄고 있지만 부당함에 대한 항의, 정치적 소비자 중심주의, 자발주의, 인터넷 행동주의와 같은 직접행동에는 훨씬 더 적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Dalton 2008, 137; 2010, 168).
물질주의자들이 투표참여를, 탈물질주의자들이 시민행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정철희(1997)는 세계가치조사(1996년) 한국 자료 분석을 통해 탈물질주의 가치가 시위·파업 등의 저항적 정치행위나 각종 자원적 결사체에의 참여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줬고 궁극적으로 그러한 가치지향이 사회민주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수택ㆍ박재흥(2011)은 1990-2005년 기간 중 이루어진 4 차례의 시계열 자료를 분석하여,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응답자들의 탈물질주의 가치지향이 전반적으로 강화되었으며 저항적 정치행위 참여는 탈물질주의자 집단에서 보다 높게 나타났음을 밝혀냈다. 이러한 결과는 탈물질주의 가치가 한국 사회운동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시사한다.
김욱(2013)의 연구는 우리의 문제의식과 연구방법, 그리고 결론까지 닮았다. 그에 따르면 탈물질주의 가치관은 비선거참여에 영향력을 주로 행사하고, 투표참여에 대한 영향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그의 연구에서는 연령이 낮을수록,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가질수록 비선거참여에 적극적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그는 그 배경으로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경제적 환경에서 자란 젊은 유권자들이 기성세대에 비해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념과 정치참여의 관계 역시 흥미롭다. 진보와 보수는 완전히 다른 패턴의 정치참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투표참여의 편차는 5.25였지만 시민행동의 편차는 무려 73.09에 달할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광장의 정치’와 ‘촛불시위’를 진보가 독점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중도는 투표참여와 시민행동에 있어 진보와 보수의 중간 수준에 끼여 있다.
<표 18>은 KSDC(2010)의 6차 세계가치조사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결과이지만 우리 조사와 마찬가지로 탈물질주의자들이 시민행동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조사와의 차이는 탈물질주의자의 투표참여가 물질주의자들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물질주의자와 탈물질주의자의 정치참여의 방식은 투표참여가 아니라 시민행동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두 조사 모두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념에 있어 진보가 시민행동을, 보수가 투표참여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조사결과와 동일하다.
Ⅳ. 한국정치의 과제: 좋은 시민과 좋은 정치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1. 한국정치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에 대해
잉글하트가 던져준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단선적이거나 목표를 갖고 어느 한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불황,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제적 불안을 느끼게 하고 생존 가치에 집착하게 만든다. 잉글하트는 두 개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1970년대 중반 불황기에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의 불황기에 여러 나라에서 물질주의자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는 동유럽의 탈공산주의 국가이다. 지난 10년간 이 국가들은 혼란과 경제적ㆍ사회적 체제 붕괴를 경험했고, 그들은 삶은 너무 불안전하여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들 국가들의 시민들은 인도나 남미의 저소득 국가보다 생존 가치에 더 매달리고 있다. 동구 탈공산주의 사회에서 자기표현 가치의 상대적인 취약점은 민주주의의 결핍을 예견하고 있다. 약한 자기표현 가치는 비민주주의(대부분 소득이 낮은 사회)로 이어지거나 혹은 비효과적인 민주주의로 이어진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203).
이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90-2005년 기간 중 탈물질주의자 비율은 감소 추세(9.7% → 3.9%)를 보였는데, 이러한 결과는 아마도 1990년대 중반 이래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하에서의 경제적 위기의식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박재흥ㆍ강수택 2012, 82-83). IMF세대(1970년-1978년)에서조차 탈물질주의자가 감소한 까닭은 이들 세대가 외환위기 때 청소년기를 보내며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심광현 2010, 57-58). IMF의 충격은 비단 그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이 경험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IMF를 꼽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이 두 문항 모두에서 1% 미만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좋은 정치를 위해 끊임없이 경제성장에 매달려야 한다는 말인가? 기본적으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탈물질주의자들도 번영과 지속적 경제발전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평생 비정규직 인생을 겉도는 이른바 ʻ88만원 세대ʼ(우석훈·박권일 2007)나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삼포세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부만 맴돈다는 뜻의 잉여세대로는 좋은 시민도, 좋은 정치도 창출할 수 없다. 좀 더 도덕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표출하고 다양한 선택을 중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주의와 복지사회 없이는 ‘효과적인 민주주의’가 들어설 수 없다.7)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는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성장과 분배가 어우러진 조화로운 사회경제를 창출하는데 실패해 왔다. 성장과 분배, 복지와 생태를 동시에 실현할 능력 있는 정부의 창출이야말로 한국정치의 첫 번째 과제이다.
두 번째 과제, 특히 진보진영과 민주화세력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난제는 투표참여와 시민행동의 분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 마디로 진보진영은 탈물질주의적 시민들이 광장에서 뿜어내는 자기표현의 욕구와 시민행동주의를 정치적 자산이자 에너지로 모아내는데 실패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개혁의 화두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유럽식 대중정당 모델(박찬표 2003)과 미국식 선거전문가정당 모델(정진민 2007) 중 우리에게 적실한 것은 무엇인가였다. 둘째는 정치제도, 특히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다(최태욱 2011, 315; 선학태 2010). 마지막으로는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유능한 리더십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 안에는 왜 21세기에 들어서 진보진영과 야당이 선거 때마다 고전하는 지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지 않다. 탈물질주의-진보-여성-신세대의 조합은 광장의 정치에서는 비교우위를 갖지만 선거정치와 정당정치의 영역에서는 수동적 관망 집단이다. 이들의 시민행동주의를 어떻게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로 연결할 것인가가 정치개혁의 본질이자 정당혁신의 방향이어야 한다.
2. 좋은 시민과 좋은 정치의 결합 방정식
재삼 강조하건데 오늘날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는 위로부터의 동원과 관료적 규율에 근거를 둔 산업화의 정당정치와 이를 생리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후기산업화의 좋은 시민들과의 부조응에 있다. 보수정당은 기존의 방식대로 투표중심의 의무적 시민들과 대체로 정렬alignment을 이루고 있지만 진보정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새롭게 등장한 시민 유권자와 제대로 된 결합 방정식을 만들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야당과 좋은 시민들의 재편realignment은 어떻게 가능할까?
첫째, 탈물질주의의 가치의 표방, 자기표현 욕구의 중시, 시민행동주의의 선호 등을 효과적인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로 적극 평가하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광장이나 촛불은 더 이상 ‘집합적 열정의 찰라적 분출’(최장집 2006, 235)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헌정질서에 위배되는 새로운 온라인 집단주의 즉 ‘디지털 마오이즘’은 더더욱 아니다.8) 후기산업화의 좋은 시민의 등장 배경을 이해못한다면 노사모 현상도, 안철수 현상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안철수 현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거기에는 ‘시민정치’라는 해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9)
하지만 안철수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시민정치의 실험은 아직까지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를 비롯한 그의 싱크탱크 그룹은 좋은 시민의 에너지를 ‘새정치’로 집결시키기보다는 국회의원 정수와 정당공천제 폐지 등의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 소진시켜 버리고 말았다. 패배의 또 다른 근거는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정치 실험, 특히 시민정치의 이론화에 실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래 시민정치는 정당과 이익집단을 매개로 한 전통적 대의민주주의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주권자인 시민의 직접 참여와 광범위한 결정권 행사를 지향하는 새 정치의 비전과 연관되어 있다. 즉 정치적 의제에 대한 시민들의 일상적, 직접적 참여를 통한 시민정치 세력의 공간 확장이자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정치가 일련의 사회운동이 아니라 선거 국면에서 제기된 정치적 담론이자 전략적 프로그램이 됨으로써, 그것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정상호 2013). 요약하자면, 시민정치의 이론화와 실천적 복원이 좋은 시민과 좋은 정치의 결합 방정식의 1차적 해법이며, 그것의 일환으로 중앙정부 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전격 도입을 고려할만하다. 주민투표ㆍ주민발의ㆍ주민소환ㆍ주민소송이라는 직접 민주주의 4법을 지방정부 수준은 물론이고 중앙정부 수준으로 확장(국민투표ㆍ국민발의ㆍ국민소환ㆍ국민소송)한다. 아울러, 현행 지자체 수준에서 시행되고 있는 관련법의 요건 및 절차를 대폭 간소화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로의 장애 문턱을 낮춘다.
둘째, 좋은 시민의 보고는 여성이다. 앞의 <표 12>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여성정치인 현황은 세계 하위권이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정치가 가장 남녀 차별적 영역이라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가장 최근의 선거인 지난 지방선거(2014)에서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선거에서 여성 당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초단체장은 조금 늘었지만 강남 3구를 비롯해 대부분 새누리당 당선자였다(7명/9명). 하지만, 필자의 이번 조사 결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성별에 따른 이념 성향의 차이이다. 이념 성향에서 여학생 응답자들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로 진보 성향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여학생 비율은 남학생보다 월등히 높았으며(+7.3%)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남학생의 절반에 그쳤다.
끝으로, 투표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시민행동과 선거참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미국정치가 ‘1930년대 뉴딜 철로를 달리는 21세기 정당정치’(테드 할스테드ㆍ마이클 린드 2009, 41)라고 한다면 한국정치는 ‘87년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20세기 카르텔 정치’에 가깝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당의 카르텔 체제를 강화시켜 온 현재의 다수 득표제도FPTP를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결선투표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등 이해집단을 배제한 채 중립적인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선거제도위원회에서 안을 작성한 후 의회에서 가부에 대한 비준을 얻는 대담한 처방이 필요하다. 아니면,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국민투표와 결부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추락하고 있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제 도입, 호별방문 허용, 선거운동 기간의 연장, 공무원의 정당 가입 허용 등 현행 규제일변도의 선거법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정당 난립을 우려해 전국단위 정당만을 허용하는 정당법을 개정해 지역에 기반을 둔 로컬 파티들의 정당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Ⅴ. 맺음말
잉글하트의 주장을 한국에 적용할 때에는 몇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그의 일차적 관심은 탈물질주의 가치와 시민행동주의를 낳고 있는 사회경제적 효과와 그것이 민주주의에 주는 함의에 있지 정치 특히 정당정치와의 연계에 있지 않다. 따라서 그의 연구 성과 안에서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결합 방안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사회경제 발전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지나친 강조, 거꾸로 불평등과 신빈곤 등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낳은 후유증에 대한 의도적 간과 등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울러, 세계화와 탈산업화의 영향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 특히 서비스 산업의 팽창으로 좋은 안정적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고 그 대신 비정규직 일자리가 급속히 증대하여 왔다(강명세 2008, 200). 그 결과 저숙련 노동에 의존하는 가구의 가계소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중산층은 서민이 되었고,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양산되었으며, 누가보아도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가 6월 항쟁 28주년을 맞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문제의식은 심오하고 적절하다. 우리는 그를 통해 왜 한국사회에서 ‘광장의 정치’와 ‘촛불시위’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왜 최근의 선거에서 낡은 야당과 진보운동이 무능하고 부패한 보수여당에게 거듭 패배당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연계는 아직 실험단계에 있다. 미국의 무브온Move-on이나 네오콘과 티파티Tea-party가 그렇고, 우리나라의 뉴라이트가 그러하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시민운동이 주도하였던 ‘내꿈나라’나 ‘희망과 대안’은 소기의 성과 없이 일부 유명인사의 야당진출로 막을 내렸다.
잉글하트가 멈춰 서 있는 지점에서 또 다시 6월 항쟁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하나는 복지와 성장, 생태에 기반한 ‘신경제’의 중요성이다. 사실 지난 15년 동안 민주 진영의 잇따른 정부 실패와 집권 실패는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자연스런 결과다. 최근 나름대로 성공한 야권 정치인인 김상곤(무상급식과 혁신학교), 안철수(창의적인 사회형 CEO), 안희정(3농 혁신과 사회적 경제)의 공통점은 정치적 의제나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업적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단계에서 신경제는 사회적 경제의 재구축(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자활 공동체, 공제회, 상조회, 재단, 자원봉사 조직), 중소기업 육성과 지역 균형 발전법의 전면 개정(제2 단계 지원 체계 모색), 북한 인권법의 개별 수용을 넘어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평화 협력 방안 등을 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앞서 설명한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연계를 확대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야당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을 꼽으라면 필자는 정치의 현장성 강화와 입법 능력 제고라는 점에서 단연코 ‘을지로위원회’를 꼽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가치와 문화로 무장한 신세대와 신좌파의 출현이 더디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에 따라 퇴보와 진전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전적인 이들의 가치와 문화를 정치개혁의 창의적 동력으로 흡수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정치와 시민정치의 분리 속에서 방기하거나 아예 ‘명박산성’이나 ‘경찰차벽’으로 차단할 것인가?
6월 항쟁 28주년을 맞아 우리는 또 다시 그 광장에서 기로에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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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 연구에서는 정치참여를 투표참여와 시민행동으로 구분하였다. 투표참여는 쉬운 참여에 해당하며, 법정 선거 기한에 국한된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를 뜻한다. 반면 시민행동은 선거와 일상 시기를 모두 포괄하는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뜻하며 어려운 참여에 해당한다. 시민행동에는 1. 탄원서ㆍ진정서ㆍ청원서에 서명, 2. 보이콧(불매ㆍ구독거부 운동)에 참여, 3. 평화적 시위나 (촛불) 집회에 참여, 4. 정치후원금 기부나 선거운동 참여, 5. 파업ㆍ점거농성에 참여 등이 포함되며, 이는 세계가치조사의 설문항목과 동일한 것이다. 투표참여는 최근 3차례의 주요 선거(2012년 대선, 2014년 총선과 지방선거)의 참여 경험을 갖고 측정하였다.
7) 효과적인effective 민주주의는 프리덤 하우스의 시민적, 정치적 자유의 지표와 세계은행의 반부패 수치로 측정된다. 효과적인 민주주의와 자기표현 가치의 상관성은 .90에 달한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340).
8) ‘디지털 마오이즘’은 ‘가상현실’이라는 말을 만들었던 미국의 미래학자 재런 러니어가 지난 2006년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인터넷을 통한 감성적 집단주의의 위험을 극단적 좌파나 우파, 마오이즘, 나치즘 같은 집단주의 운동에 빗댄 것이다(『문화일보』. 2008.5.6).
9) 유시민은 "안철수 현상을 노풍에 이은 두 번째 시민정치의 흐름"으로 규정하였는데, 그것은 매우 정확한 인식이었다. 그에 따르면 안철수 현상은 자각한 시민들의 정당ㆍ정치ㆍ선거 참여를 본격적으로 유인하는 서막인 셈이다. 김호기 교수 역시 안철수 현상을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 즉.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여의도 정치에 대한 시민 다수의 불만이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소통과 참여의 열망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김호기, 『경향신문』2012.8.12). 정해구 교수 역시 안철수 정치를 기존 보수와 진보의 어느 한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중도적 성격을 지닌 중도적 시민정치'로 규정한 바 있다(정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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