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년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릴 때마다 독서진흥과 관련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들이 국제도서전을 개최하는 이유는 국제도서전이 문명국가의 그 문명화된 정도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출판물(책)은 한 나라의 국민이 문화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콘텐츠 중의 콘텐츠입니다. 출판문화와 독서문화는 사회적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예술적인 시민생활의 기반입니다. 우리가 문화생활이라고 말할 때, 그 ‘문화’의 핵심이 바로 출판이고 책이며, 책을 매개로 한 사회 문화인 도서관문화, 독서문화입니다.
도서전 기간 동안 독서문화와 관련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책 읽는 문화가 바로 출판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그리고 매해 의미있는 의제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전개해왔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를 되짚어 보면, ‘독서환경과 독서진흥’(2006), ‘시민의 독서권과 독서진흥정책’(2007), ‘독서문화진흥기본계획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민관협력 방안’(2008), ‘독서 및 도서관 진흥정책과 지역사회 발전’(2009) ‘책읽는도시’(2010), ‘도서관에서의 장서구입정책과 선정도서목록’(2011), 독서의 해 대토론회, ‘국민 독서환경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2012), ‘독서동아리로 만드는 풀뿌리 독서생태계’(2013) 등.
올해는 지역사회의 독서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지역사회 독서생태계에 대한 하나의 꿈을 꾼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하나의 지방자치단체가 있습니다. 그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독서문화 인프라인 도서관과 관련된 정책이 확고할 뿐만 아니라 정책부서와 조례 등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봄이나 가을에 책을 읽는 시민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는 한마당을 펼칩니다. 시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취향과 문제의식에 따라 한 가지 이상의 동아리 활동을 벌입니다. 그런데 그 동아리 가운데서도 독서동아리가 중심입니다. 독서동아리나 책을 읽는 시민들의 여러 단체들이 횡적으로 느슨하지만 단단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어서 사회봉사 및 참여 활동이 활발합니다. 또한 시내 중심지와 학교 앞에는 작지만 알찬 서점이 있어서, 그 서점도 중요한 문화 거점으로서의 일들이 벌어집니다. 조금 오래 된 시가지 한 편에는 책방거리라 할 만한 서점 밀집 지역도 있습니다.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대학도서관이 잘 연계되어 있고 긴밀하게 협력해서 시민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독서활동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등등.
이런 식으로 우리 생각 속에 있는 어떤 꿈은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 모이신 분들께서 너무나도 잘 알듯이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의 세미나는 바로 그런 논의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2-1. <독서문화진흥법>(2007년 4월 5일 시행) 제9조 ‘지역의 독서 진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역 주민이 독서를 생활화하는 데 필요한 독서 시설의 마련 등 독서 진흥에 관한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지원하여야 한다."
또한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14~2018)>도 ‘지역 독서 공동체 조성’을 전략과제 가운데 하나(전략과제 1-2)로 꼽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지역별 독서진흥 활동은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와 역할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므로 우수 사례 발굴․전파 및 경쟁 체계 도입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몇 가지 세부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지방자치단체 독서진흥지수 도입: 독서정책(조례, 재정, 행정부서 등), 독서기반시설(도서관수, 도서관 장서수, 서점수 등), 주민의 도서관 이용률 등을 기준으로 지표 개발 및 평가, 우수 지방자치단체는 <독서자치대상>(가칭) 시상 등으로 사례 전파
② 지역 독서문화 정착을 위한 조례 제정 확산 추진, <책 읽는 도시> 등 독서문화진흥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구체화, 민관 협력의 지역 독서문화 추진기구 설치 조항 도입 권장, 지역 주민의 독서운동 활동 참여 및 학생, 직장인, 소외계층 등 대상별 독서문화 진흥방안 강구, 독서문화진흥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 및 시행 등에 관한 사항 규정 등(* ’13년 9월 현재 총 41개 지방자치단체(광역 5개, 기초 36개)에 독서문화진흥 관련 조례가 있으며, 5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입법 예고 중(안전행정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ELIS 및 별도 조사). 현재의 조례 제정 비율은 광역 29%(5/17), 기초 16%(36/227)로 저조)
③ <대한민국 책 읽는 수도>(가칭) 지정을 통한 지역독서 활성화: 기초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매년 한 곳을 공모․선정·운영, 9월 독서의 달 독서행사 개최 지원 및 집중적인 독서진흥 활동 전개로 전국 단위의 벤치마킹 사례 마련(* 유네스코가 2001년부터 매년 세계의 한 도시를 지정하는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에 인천(2015년)이 선정되어 각종 독서진흥사업 추진 예정)
④ 지역 단위의 독서 관련 시설 확충: 공공도서관 및 작은도서관의 지속적 확충, 지역 특성에 맞는 독서공간 및 도서대출 시설 등의 확대(북카페, 지하철문고, 쇼핑몰문고 등), 이동도서관, 지역내 주요 거점별 ‘도서관 도서대출․반납센터’(가칭) 등을 적극 활용
⑤ 지역 중소서점 등을 활용한 독서문화 공간 조성: 지역서점의 문화 프로그램(강연, 낭독, 동아리 등) 지원으로 문화공간 조성, 인문학서점, 어린이․6청소년서점 등 특성화서점 지원
2-2.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법령과 계획은 있으나 실천과 실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226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몇몇 우수 사례로 꼽을 만한 지방자치단체(위의 계획에서는 군포시/김해시/서귀포시/송파구/파주시를 거론하고 있음) 외에는 독서진흥 정책을 추진할 주무부서의 부재 혹은 불투명, 도서관 인프라의 부족, 지역사회 문화거점이 될 만한 서점의 소멸(*우리나라 서점은 1994년 5,683개에서 2003년 2,247개, 2011년 1,752개로 줄어듬), 출판사의 극심한 지역편차 등 한마디로 지역사회 독서생태계가 ‘붕괴’된 곳이 적지 않다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3. 이런 상황에서 오늘 네 분의 소중한 발표는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처럼 생각됩니다.
① 강수걸(산지니 대표): 산지니의 강수걸 대표님께서는 지역 출판의 어려움을 극복해가면서 어느덧 경영목표를 “부산을 넘어 아시아 10대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거의 모든 문화 특히 출판이 서울을 핵으로 한 수도권 중심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산지니 출판사의 사례는 아주 각별한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강 대표님께서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지식산업의 핵심 주체인 출판사들의 내부에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출판사는 책만 잘 만들어내면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출판사는 콘텐츠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중심 거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출판사는 책을 펴내는 곳이기도 하고 서점이기도 하며 도서관이기도 하고, 미디어이기도 하고, 지역문화 창달의 커뮤니티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에 존재하는 작은 도서관과 결합하고 공공도서관 사서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신문과 방송 등 지역 언론과 인적, 물적으로 결합하여야 한다.”
강 대표님의 몇 가지 제언은 아주 값진 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출판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특히 2012~2013년에 부산문화재단의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도서관 지원사업은 다른 지역에서도 참조할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제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지역의 지역문화재단도 참고할 만한다고 생각합니다.
② 이동선(계룡문고 대표): ‘왜요 아저씨’ 이동선 대표님은 우리 사회가 ‘서점의 존재가치’를 너무 모른다고 질타하십니다. 그러면서 계룡문고가 버티고 있는 이유로 봉사의 실천, 교육적인 서점, 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 기업으로서의 비전과 꿈을 말씀하십니다. 지역사회 독서네트워크를 위한 실천으로 책방나들이, 작가와의 대화, 서점과 학교가 함께하는 저자 초청 행사, 서점견학, 책읽어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대표님은 꾸준하게 책읽어주기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지역의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교사와 부모 교육, 도서관운동, 그림책운동, 지역사회단체와의 연대 등은 앞으로 여러 지역에서 펼쳐나가야 할 독서문화운동의 한 전범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③ 이용훈(서울도서관 관장): 이용훈 관장님께서는 “독서생태계는 지역사회 단위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한 도서관 확충은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며, 도서관의 사회적 성격과 가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제언은 도서관문화를 키워나가기 위해 우리가 꼭 실천해나가야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도서관에서는 개인의 책 읽기를 돕는 것과 함께 함께 읽기를 통해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야 함.
- 지역에 집중한 서비스 개발과 집중적 수행이 필요
- 도서관이 독서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을 제공하는 보다 적극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음.
- 지식사회에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물리적 공간 제공 등을 통해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되어야 함
- 도서관 접근성 강화와 작은도서관 역량 강화
- 도서관은 사서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로 좋은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와 역량을 갖춘 사서 인력 확보 필요
-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지역 단위 독서진흥협의체 구성 운영 필요
④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 안재홍 부위원장께서는 ‘책읽는서귀포’를 만들기 위해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행정 중심의 위원회가 시민 중심의 위원회로 변화해온 과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지역의 독서문화운동 전개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소상하게 말씀해주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독서문화운동은 관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민과 관이 힘을 합쳐나가는 ‘거버넌스governance' 확립이 없다면 지속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다양한 사업의 전개보다 거버넌스를 탄탄하게 구축하면서 민과 관의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이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 분의 소중한 발표,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 여러 지역에서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4. 끝으로 2가지만 더 말씀드리면서 제 토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① 첫 번째는 민선5기에 여러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된 ‘책읽는도시’의 비전과 정책과 관련된 것입니다. ‘책읽는도시’의 비전과 정책은 단순히 도서관문화, 독서문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정책을 정점으로 하는 문화, 교육, 복지 정책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서 말씀 드립니다. 이 자리에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분들께서 함께 자리하고 계시다면, 오늘 이 시점까지 우리 사회에 축적된 ‘책읽는도시’의 비전과 정책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맞춤형으로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민선6기. 우리 사회에는 그런 역량이 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② 두 번째는 역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도서관도 이용하고, 서점도 살리고, 지역사회를 좀 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로 일본의 사례를 말씀 드립니다. 일본에서 꽤 오래 전에 벌어졌던 논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이 공공도서관의 확충기를 거칠 때, 도서 판매량이 저하되는 원인은 바로 공공도서관의 대출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에서 촉발되었던 것입니다. 우라야스도서관장이자 일본도서관협회상무이사였던 토코요 다료常世田良 씨는 『우라야스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浦安圖書館にできること, 케이쇼쇼보, 2003)에서 이 논쟁에 대해 자세하게 논박합니다. 토코요 씨에 따르면, 우라야스 시내의 서점 점포수는 우라야스중앙도서관이 개관하여 시민 1인당 대출책수가 일본의 전국 1위가 되었던 1983년 이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특히 현재 6, 7개의 대형서점은 모든 이 18년간에 개점하였으며 지금도 순조롭게 경형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옛 통산성의 ‘산업통계표(품목편)’에 의하면 1997년에 우라야스 시내의 서점의 총매출액은 32억8600억 엔으로 같은 규모의 자치단체의 서점 평균 29억 6800억 엔을 3억 엔 이상 많다.”(178쪽) 결론적으로 책을 읽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도서관 이용률도 높아지고, 서점의 판매량도 많아진다는 것이 토코요 씨의 주장이었습니다.
매체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독서 인구는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의 위상 도 지난 10년 동안 크게 변화해서 지역의 오프라인 서점은 거의 ‘멸종’ 위기입니다. 독서생태계 전체가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 독서생태계를 살려내기 위한 우리의 실천은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생과 연대와 협력이 우리의 살길일 것입니다. 책 읽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더 키워내기 위해, 출판사, 서점, 서점,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가 힘을 보태야 하겠습니다.
이상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