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순간의 감정부터 일생의 변화까지, 내 삶을 지배하는 호르몬의 모든 것

저자소개

저자 · 막스 니우도르프
저명한 당뇨병 연구자이자 내분비내과 전문의. 위트레흐트 의과대학에서 공부했고 암스테르담 의과대학에서 당뇨병 관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당생물학 분야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현재 암스테르담 대학의학센터(Amsterdam UMC)에서 당뇨병 센터 소장, 혈관의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내미생물의 변화를 통해 당뇨병 및 심혈관 질환과 그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호르몬의 중요성과 호르몬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을 대중과 나누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첫 번째 대중서로 호르몬에 관한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들려준다. 2022년 출간 후 곧바로 네덜란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오스트리아 2024 올해의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역자 · 배명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8년간 근무했다. 이후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 뉘른베르크 발도로프 사범학교에서 유학했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잘못된 단어』 『숲은 고요하지 않다』 『아비투스』 『불확실성의 시대』 등 70여 권이 있다.

프롤로그


호르몬의 짧은 역사


2001년에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의 한 병원에서 일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생겨난 타운십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결과로 만들어진 흑인 밀집 주택지구―옮긴이의 임산부들이 진통을 견디며 병원으로 왔다. 이곳은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임산부들은 커튼이 쳐진 침대에서 분만 준비를 할 수 있기까지, 병원 앞 잔디밭에 펼쳐진 종이 판자 위에 누워 진통을 견뎌야 했다. 나는 평균 20명 정도를 보살펴야 했다. 매일 밤 아기가 여러 명 태어났고, 나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이 아기들 가운데 한 명인 무나라는 여자아이를 한참 뒤에 내 진료실에서 다시 만났다. 무나는 성장 지연으로 입원했다. 무나는 관심을 끌려는 나의 쾌활한 인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얼굴이 다소 부어 있었으며, 반사 신경이 매우 느렸다. 갑상샘호르몬이 혈액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결핍을 바로잡기 위해 즉시 갑상샘호르몬제를 처방했다.


몇 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무나가 이제 심각한 장애로 집에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한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다. 치료를 받지 못한 첫 몇 달이 무나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것 같았다. 무나는 다시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고, 폐렴이나 욕창으로 조기 사망할 위험이 컸다.


무나의 이야기는 호르몬이 성장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몸이 자체 생산해 혈류를 통해 기관과 조직에 공급하여 다양한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이 물질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다. 우선 태아는 엄마의 호르몬에 의존한다. 3개월이 지나야 태아 스스로 호르몬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세포와 기관이 발달한다. 갑상샘은 초기에 발달하는데, 이는 우리가 사는 데 이 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갑상샘호르몬은 가장 많은 대사 과정에 관여한다.


임신 초기의 어떤 문제로 무나는 갑상샘이 발달하지 못했고, 그래서 선천성 갑상샘기능저하증이라고도 하는 선천성 갑상샘호르몬 결핍증을 앓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약 80명이 이 질환을 갖고 태어난다. 신생아의 경우 이 병을 진단하기가 쉽지 않고, 상대적으로 늦게 발현되면 무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의 인간유전학 종신교수인 한스 할야르트Hans Galjaard는 선천성 질환 검사를 네덜란드의 정치 의제로 올리고자 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1974년부터 네덜란드 상담센터와 조산사는 모든 아기의 발뒤꿈치에서 혈액을 채취한다. 선천성 질환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형제가 있었던 할야르트는 끈질긴 정치 로비 끝에 이 ‘발꿈치 찌르기’를 관철했고, 이렇게 채취한 혈액은 현재 32가지 선천성 질환을 탐지하는 데 사용된다. 할야르트가 말했듯이,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그런 상태가 되지 않게 막는 것이 최선이다.”


호르몬의 약력


영국의 생리학자 어니스트 스탈링Ernest Starling과 그의 처남 윌리엄 베일리스William Bayliss가 1902년에 이 물질을 처음 발견했고, 얼마 후 이 물질에 ‘호르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소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음식이 어떻게 특정 물질에 분해되어 장에서 흡수되는지를 함께 조사했다.


2년 후 이반 파블로프Iwan Pawlow가 소화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특히 조건화 연구로 잘 알려졌고 여전히 유명한 파블로프 반사1897의 창시자인 이 러시아 의사는 신경계가 소화에 관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스탈링과 베일리스는 신경계가 손상된 실험실 동물에게도 소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근 분비샘에서 특수물질이 혈액에 방출되어 소화가 진행되었다. 이런 물질 중 하나가 세크레틴영어 ‘to secrete’에서 유래함이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여러 호르몬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다.


스탈링과 베일리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움직이게 하다, 추진하다, 자극하다’라는 뜻인 호르몬이라는 단어를 이런 물질의 총칭으로 제안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호르몬은 내분비샘에서 생성되는 신호물질이다. 이 물질은 혈액과 기타 체액을 타고 목적지특정 세포 또는 기관에 도달한 다음 그곳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대다수 호르몬에는 조절기능이 있다. 이를테면 그들은 특정 과정을 시작하거나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


호르몬의 중앙본부는 뇌의 중앙, 안구 바로 뒤에 있다. 여기에는 딸기 크기의 시상하부와 완두콩 크기의 뇌하수체도 있다.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는 전문화된 신경세포로, 우리의 ‘감정 뇌’인 변연계의 일부다자세한 내용은 5장에서. 이들은 사령관처럼 신경계와 호르몬계를 모두 통솔하며 자신의 부대를 주의 깊게 감시한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신호물질의 효과는 스탈링과 베일리스보다 50년 전에 발견되었다. 독일 과학자 아르놀트 베르톨트Arnold Berthold는 1849년에, 거세된 수탉(카폰)과 거세되지 않은 수탉을 비교하여 거세된 수탉에게서 신체적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재이식 또는 이식을 통해 카폰의 고환이 회복되고, 나중에 발견된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이 재개되자, 수탉은 다시 힘차게 울 수 있었다. 이런 실험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작가와 과학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보다 ‘영원한 젊음’의 묘약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작곡가 알렉산더 라스카토프Alexander Raskatow의 오페라 〈개의 심장A Dog’s Heart〉이 좋은 예다. 미하일 불가코프Michael Bulgakow의 1925년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오페라는 악명 높은 범죄자의 뇌하수체와 고환을 이식받은 길거리 개 샤릭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이식 수술로 이 동물은 부도덕한 범죄자 샤리코프로 변하고, (호르몬이 조종하는)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한다. 테스토스테론에 고통받는 개를 구원할 방법은 오직 재수술뿐이다. 


구약성경 같은 오래된 문헌에서도 호르몬의 존재가 언급된다. 당시에는 혈액 안에 호르몬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음에도, 레위기 17장 11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생물의 생명력은 피에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들은 분명 선천성 호르몬 질환을 앓았을 터이다. 예를 들어, 거인 골리앗은 성장호르몬이 아주 풍부했을 것이다. 이집트 신 베스의 왜소증과 클레오파트라의 과민성 및 과도한 에너지는 갑상샘 기능장애에서 비롯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영원한 젊음을 약속하는 남성호르몬의 매력으로 돌아가보자. 모리셔스계 프랑스인 신경학자 샤를 에두아르 브라운세카르Charles-Édouard Brown-Séquard는 1889년 72세에 동물의 고환추출물을 자신에게 투여하는 실험을 했다. “나는 개나 돼지의 고환에서 방금 채취한 액체, 정자, 혈액 이 세 가지 추출물을 물에 섞어 직접 내 피부 아래에 주입했다.” 교수의 건강은 비교적 양호했지만, 자가실험 전에는 힘들게 일한 날에 늘 피곤했고 관절 및 근육통은 물론이고 속 쓰림도 잦았다. 관절통과 근육통은 분명 노인들에게 흔한 퇴행성관절염에 의한 마모 때문일 것이다.


그해 5월과 6월에 브라운세카르는 매일 10회!씩 이런 주사를 맞았다. 마치 생명력과 에너지가 그의 몸으로 즉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더 강해진 느낌이었고 글자 그대로 다시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팔뚝도 더 굵어진 것 같았고, 피로도 사라졌으며, 전해진 바로는 생식능력도 돌아왔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은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지용성 호르몬이고, 브라운세카르의 주사액은 수용성이었으므로 플라시보 효과였을 확률이 높다.


이런저런 실험과 발견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우리의 호르몬 지식을 매우 풍부하게 해주었다. 기술발전 덕분에 동물의 신체에서 호르몬을 분리해 인간과 동물에 주입한 후 그 효과를 관찰할 수 있게도 되었다. 이는 의학 분야에서 수많은 중요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가장 잘 알려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착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로게스테론이 발견되어 1920년과 1930년 사이에 여러 차례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이들 세 호르몬은 단순히 의학계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도 큰 파급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950년대 ‘피임약’의 개발은 수백만 젊은 여성의 해방과 자기결정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다양한 질병에서 호르몬 치료가 적절히 이뤄진 덕분에 질병 부담이 전체적으로 크게 줄었고, 그것은 제약산업에도 큰 기회를 의미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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