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자기혐오에서 자기 존중으로, 분투와 치유의 여정

저자소개

저자 · 록산 게이
퍼듀 대학 교수, 소설가, 에세이스트, 문화 비평가, 뉴욕 타임스의 필자,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타이니 하드코어’ 출판사의 설립자 등 글쓰기와 관련된 영향력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록산 게이는 아이티계 미국인으로 1974년 네브라스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이민자 가정의 흑인 여성이라는 점은 그가 싸워나가야 할 ‘차별’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그는 페미니즘이 자신에게 많은 답을 주었다고 인정하면서 오늘날 ‘두렵고 불편한’ 페미니즘을 거부하지 않고도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니는 탓에 친구가 아닌 책과 가까워졌고 십대 시절부터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글쓰기는 사적인 경험과 학술적이고 까다로운 비평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흥미로운 소설처럼 읽히지만 이론서 못잖은 지식과 성찰을 안겨다준다. 또한 그의 특별한 재능인 ‘유머’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행운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출간 후 페미니즘 분야 1위, 아마존 올해의 책,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거의 유례없는 찬사와 리뷰를 받았으며, 저명한 페미니스트 학자들과 행동가들이 여성 저널에 ‘대중적인 페미니즘의 도발’이라는 제목으로 <나쁜 페미니스트>의 서평을 올리기도 했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매체가 앞 다투어 리뷰를 올리는 열광적인 반응을 두고 타임지는 “2014년은 록산 게이의 해”라고 선언하면서, 흑인, 여성,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특권 같은 복잡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쓰고 생각해보지 못한 면을 건드린다고 극찬했다. 영국 가디언지의 비평가 키라 코크레인도 조언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전화하고 싶은 친구의 목소리라며, 그의 글이 차분하고 분별력 있고 유머감각이 넘치며, 성숙하고 경험이 풍부하지만 쉬운 타협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평했다. 장편 소설 <언테임드 스테이트> 단편집 <아이티Ayiti>를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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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 지금 이곳에서 내 이야기와 내 역사를 들려주려 한다. 내 몸과 내 허기에 관해 고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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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체중 감량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 날씬해진 내가 과거 뚱뚱했던 시절 입었던 거대한 청바지의 다리 한쪽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동기부여를 해주는 책도 아니다. 내가 잘 다루지 못한 내 몸과 내 식욕을 드디어 극복하면서 얻게 된 통찰과 해법 같은 것도 없다. 말하자면 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다. 그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만 해두자.


나도 간절히 쓰고 싶다. 다이어트 성공 후기와 함께 내 안의 악마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물리쳤는지 마음껏 자랑하는 책을. 아니면 내 몸의 크기가 어떠하건 간에 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책을. 하지만 나는 그런 책들 대신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 내 평생 가장 어려운 글쓰기였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막막한 작업이었다. 처음 『헝거』라는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평소 다른 글을 쓸 때처럼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언어들이 스스로 깨어나 지면 위에 펼쳐질 줄 알았다. 사십 년 넘게 동고동락해온 이 몸에 대해 쓰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단지 내 몸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몸이 견뎌온 그 무수한 사연들, 늘어난 몸무게와 정신적 짐들, 이 무게를 지고 사는 일과 그 무게를 덜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돌아봐야 했다.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비밀들도 억지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심장 한가운데를 갈라서 펼쳐놓아야만 했다. 나는 발가벗겨졌다. 결코 편안하지 않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결단력과 의지력이 있어서 승리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은 지금도 계속 결단력과 의지력을 기르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 몸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 몸이 견뎌온 그 모든 것, 내 몸이 되어온 것 이상의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그 다짐이라는 녀석은 나를 그리 멀리 데려가지 못한다.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꾸며지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이것이 (내) 몸에 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 몸과 같은 몸의 이야기들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쉽게 단정 짓는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몸이 되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은 모른다. 나의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말해야 하고 더 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내 몸, 내 허기에 관한 책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원하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비록 그 과정이 한없이 느려터지긴 했으나, 마침내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이 가능함을 배우게 된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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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내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일단 내가 가장 무거웠을 때의 몸무게부터 밝히고 시작해야 하나? 언제나 나를 옥죄어오는 그 수치스러운 진실을 정확한 숫자로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 몸의 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나도 안다고 말해야 할까? 그냥 눈 딱 감고 진실을 말해버린 다음에 당신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까?


가장 살이 쪘을 때, 나는 키 190센티미터에 261킬로그램이었다. 나 또한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숫자이나 그때는 그게 내 몸의 진실이었다. 이 숫자를 들은 건 플로리다주 웨스턴에 있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였다. 어떻게 그 지경까지 되도록 날 내버려두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안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에는 아빠와 같이 갔다. 이십대 후반이었고 7월이었다. 날씨는 덥고 후덥지근하고 세상은 온통 짙은 초록빛이었다. 클리닉 안 공기는 서늘할 만큼 차가웠고 소독약냄새가 났다. 병원의 모든 시설이 번드르르했고 고급 원목과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소중한 여름방학을 이런 식으로 보내고 있군.’


미팅 룸에는 나 외에 일곱 명이 더 있었다. 위절제술을 받을 예정인 사람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중이었다. 뚱뚱한 남자 두 명, 마른 남편과 함께 온 약간 통통한 여자, 환자복을 입은 두 사람, 또 매우 몸집이 큰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얼른 주변 사람들을 눈으로 훑으면서 뚱뚱한 사람들이 다른 뚱뚱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언제나 하는 그 짓을 했다. 그들의 사이즈와 내 몸집을 비교하는 것이다. 나는 다섯 사람보다는 더 컸고 두 사람보다는 작았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270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하루를 버려가면서 체중 감량을 위해 내 신체 구조를 변화시켜줄 수술의 장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비만 환자들에게 가장 치료 효과가 뛰어난 수술입니다.” 이들은 의사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나도 이 사람들 말을 믿고 싶었다.


정신과의사가 나와서 그 자리에 모인 우리에게 어떻게 수술 준비를 하고 엄지손가락 크기로 작아진 위로 어떻게 음식을 소화하는지 설명한 다음에, 우리 주변의 ‘일반인들’내가 쓴 표현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단어다이 우리의 극적인 체중 변화에 아마도 간섭을 할 거라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한때 뚱뚱한 사람이었다는 관념에 익숙하고 우월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몸은 남은 평생 동안 영양 결핍이 될 수도 있으며 삼십 분 안에 무언가 먹거나 마시는 일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머리카락은 가늘어지고 빠질지도 모른다. 덤핑증후군덤핑dumping은 ‘쏟아붓는다’라는 뜻이다. 덤핑증후군은 정상적인 소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음식물이 급하게 소장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오심,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을 겪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도 어떤 증상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이름의 증후군이다. 물론 수술에도 위험이 따른다. 수술대에서 사망할 수도 있고 수술 후 며칠 동안은 감염에 취약하다.


전형적인 좋은 소식/나쁜 소식 시나리오였다. 나쁜 소식: (우리가 수술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우리의 몸과 삶은 이전과 같지 않다. 좋은 소식: 우리는 날씬해질 수 있다. 첫해에만 초과된 체중의 75퍼센트를 감량할 수 있다. 우리는 거의 일반인 기준에 부합하게 된다.


의사들의 제안은 너무나 솔깃하고 혹할 만했다. 몇 시간만 잠들었다 일어나면 일 년 안에 우리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 적어도 이 의료 기관에 따르면 그렇다. 물론 내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나의 몸이라고 자신을 계속해서 기만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의사의 발표가 끝난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질문을 하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으나 내 오른쪽에 있던 여성, 누가 봐도 그 장소에 있지 않아도 될, 적정 체중보다 고작 20킬로그램이나 더 나갈까 싶은 여성이 그 시간을 독차지하면서, 밝히기 꺼릴 만한 사적인 질문들을 퍼부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여자가 의사들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동안 여자의 남편은 옆에 앉아서 히죽거렸다. 그녀가 왜 그 자리에 왔는지는 누가 봐도 뻔했다. 전적으로 남편 때문이었고 그 남편이 아내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이었다. ‘참 보기 안쓰럽네.’ 나는 생각했다. 나도 그 여자와 같은 곳에 앉아 있는 신세라는 걸 무시하면서, 내 인생에도 나라는 사람 자체로 보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내 몸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무시하면서.


오후에는 의사들이 수술 영상을 보여주었다. 좁은 공간을 매끄럽게 통과해 들어간 카메라와 수술 도구들이 인간 장기의 중요한 부분을 자르고, 밀어넣고, 닫고, 제거했다. 인체의 내부는 선정적일 정도로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이었다. 그로테스크하고 섬뜩했다. 왼편에 앉아 있던 아빠의 얼굴은 무자비한 수술 장면에 충격을 받은 듯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어떨 것 같으니?” 아빠는 조용히 물었다. “그냥 미친 짓거리죠.” 내가 대답했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부녀의 의견이 일치했다. 영상이 끝나자 의사들이 웃더니 아주 간단한 복강경 수술이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자신은 이 수술을 3,000회 이상 집도해보았고 그중 딱 한 명의 남자 환자만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무려 385킬로그램이었다고, 갑자기 어색해하며 작게 속삭였다. 평소처럼 크고 멀쩡한 목소리로 말하기에는 그 환자의 상태가 너무 치욕스럽다는 듯이. 의사는 마지막으로 행복의 대가가 얼마인지 말했다. 2만 5,000달러인데 수술을 받으면 오리엔테이션 비용 270달러는 제해준다고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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