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사법제도는 어떻게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가

저자소개

저자 · 저스틴 브룩스
캘리포니아 ‘무죄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의 공동 설립자. 샌디에이고대학교(USD) 법과대학의 실무 교수이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많은 범죄 사건에 대한 변호사로 30년간 활동했으며, 전 NFL 선수 브라이언 뱅크스(Brian Banks)를 포함해 35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의 무죄를 입증했다. 〈로스엔젤리스 데일리 저널〉이 뽑은 캘리포니아 ‘100대 변호사’로 여러 차례 선정되었고, 2010년과 2012년에는 〈캘리포니아 로이어 매거진〉으로부터 ‘올해의 변호사’ 상을 받았다. 미국뿐 아니라 중남미 전역에 무죄 프로젝트 단체를 설립하고, 전 세계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연설했다. 넷플릭스 영화 〈브라이언 뱅크스〉에서 주인공 브라이언 뱅크스를 돕는 무죄 변호사(아카데미 후보 배우 그렉 키니어가 연기)의 실제 모델이다. 『잘못된 유죄 판결(Wrongful Convictions)』을 집필했다.
역자 · 김희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1년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2005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0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법과 증거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왜 법이 문제일까?』가 있으며, 이 책은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다. 옮긴 책으로 『르네상스의 갈림길: 배심재판과 조서재판』, 『그리스인 이야기 1』,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등이 있다.

프롤로그


1872년 5월, 윌리엄 매리언William Marion과 그의 친구 존 캐머런John Cameron은 4~5주간 철로 관련 일을 할 생각으로 네브래스카를 떠나 캔자스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후 매리언은 혼자 캐머런의 말과 마구들만 가지고 돌아왔다. 그걸 전부 카메룬에게 샀다고 했다.


그런데 사막에서 발견된 부패한 시신의 해골에서 총알이 나왔고, 그것과 매리언의 것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매리언은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죽은 줄 알았던 캐머런이 아무 이상도 없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다. 매리언에게 말과 마구들을 판 것도 사실이고, 전광석화처럼 추진된 결혼식을 피하려고 멕시코에 갔었다는 것이다. 결국 100년이 지나 네브래스카 주지사는 매리언에 대한 사면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오판 사례는 우리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우리 사법제도에서 죄 없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DNA 증거가 나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죄 증거가 쏟아져 나와 무고한 많은 사람이 감옥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매리언이 사형되고 나서 캐머런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것만큼이나 확실한 증거였다. 그 후로 수천 명의 사람이 살아 돌아왔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운 좋은 사람들 몇몇에 불과한 것이다.


죄도 없는데 감옥에서 몇십 년씩 살아야 했던 사람을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재판에 나왔던 증거를 그 후 폐기처분하지 않은 게 다행이고,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게 다행이고, 그들의 무죄 주장을 들어준 능력 있는 변호사를 만난 게 다행이다. 그 변호사들이 시간과 돈을 그 사건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며,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심리 기회를 준 판사가 있어서 다행이고, 무엇보다 그들이 자유를 되찾기까지 무수하게 거쳐야 하는 법적인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어던 게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무고가 판명된 수천 명의 사건기록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없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란 극히 드물고, 또 “뭔가 잘못한 구석이 있으니까 그랬으려니” 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래서 그런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일어날 수 있겠지만 나한테 일어날 일은 없다고 믿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이 세상의 형사사법제도라는 것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나라, 어느 주, 어느 시, 어느 동네에 살든, 당신도 오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 불완전한 형사사법제도는 한편으로는 당신의 가정과 가족 그리고 당신의 생명을 보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식간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일단 이 책을 가득 메운 불합리한 사례들을 읽고 나면,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오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어느 부분을 펼쳐 읽든,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죄도 없이 교도소 한복판에 내던져진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오판의 이유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변호사를 잘못 만나서일 수도 있고, 경찰이 너무 많은 동네 혹은 너무 적은 동네에 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연히 시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국가기관이 일을 잘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얼치기 과학 때문일 수도 있다. 인종이나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교육 정도, 그리고 누구랑 엮이느냐에 따라서 확률이 달라질 수 있지만, 오판은 당신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에 소개한 것 중 많은 사건에서 변호를 담당했지만, 내가 지난 20여 년 동안 얻어낸 성과는 나 혼자서 일군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해준 변호사들, 로스쿨 학생들,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내가 대표직을 맡게 된 캘리포니아 무죄 프로젝트의 직원들 덕분이다.


(…)


이 책에서 무엇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감옥에 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만 집중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 넓은 시각으로 우리 형사사법제도를 돌아보면서 중요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위하는 것일까. 정의구현을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달라져야 하고, 어느 정도의 재원을 투입해야 할까. 어떤 형벌과 제재가 범죄행위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응책일까. 어떤 교정제도가 사람들이 다시 사회에 돌아와 범죄를 덜 저지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 모든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을 때, 우리의 형사사법제도가 진정으로 정의로운 제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제1장


변호사를 잘못 선임하셨군요

협상 없는 유죄협상


매릴린 멀레로


시카고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매릴린 멀레로Marilyn Mulero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1994년, 나는 미시간주 이스트 랜싱에 사는 29살 먹은 변호사였다. 기사는 그녀가 유죄협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에잉! 유죄협상으로 사형을?


신문들이 절차를 잘못 얘기해주는 경우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니다. 그녀는 유죄협상 끝에 사형선고를 받은 게 맞다.


법적으로 볼 때, 엄청난 문제가 있다. 어떤 미친 사람이 재판을 받고, 또 그 재판에 대해서 항소 또는 상고할 권리까지 다 포기하고 사형선고를 자청하겠는가? 설령 유죄가 맞다고 해도, 재판을 받다 보면 무죄가 될 수도 있고 형량이 낮아질 수도 있다. 아니, 최악의 경우 전부 다 진다고 해도 몇 년간 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재판과 항소가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도 없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도 협상을 한다는 얘기는 이 모든 권리와 기회를 날린다는 뜻이다. 또, 유죄협상으로 사형에 동의한다는 것은 그렇게 다 날리고도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협상을 했지만 협상이 아니다. 그저 빨리 선고를 받아서 빨리 죽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조사를 해보았더니 기사가 틀린 게 아니었다. 나는 체포 당시 21살밖에 안 된 이 여성이 왜 미국에서 재판도 없이 사형선고 대기줄에 서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알아야 했다. 그냥 알고 싶었던 게 아니다. 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Parse error: syntax error, unexpected $end, expecting ')' in /WEB/webuser/html/bbclone/var/last.php on line 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