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휠체어 탄 여자가 인터뷰한 휠체어 탄 여자들

저자소개

저자 · 김지우
휠체어가 굴러서 ‘구르님’. 김지우보다 익숙해진 이름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한다. ‘구르는’ 삶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쓴다. 쓴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오늘도 구르는 중》,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공저)가 있다. 내버려두면 몇 시간이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잘 말하기 위해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여, 홀로 구르는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구르는 언니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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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중에서도 잘사는 사람만 잘 살면 안 되잖아.”


세상 속 나를 성찰하는 사람, 지민


유지민

2006년생.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열여덟 살. 휠체어를 타고 칼럼을 쓴다. 음악을 좋아하고 취미는 콘서트 관람이다. 세상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일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장애여성청소년,

일곱 글자에 담긴 가능성


타인을 보며 발견하는 나


타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마주할까. 싫은 나의 모습을 맞닥뜨리고 상대를 배로 미워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도, 닮은 나를 보며 반가워하는 경험은 드물지 않나. 그런데 지민을 볼 때면 자꾸만 반가운 나, 안쓰러웠던 나, 안아 주고 싶은 나, 자랑스러운 나를 본다. 그가 나와 닮은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 몸으로부터 촉발된 말들로 우글우글한 삶을 살아 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지민을 소개하려고 여러 수식어를 붙이다가 죄다 관뒀다. 그러니까 흔히 그를 부르는 말들 혹은 그가 인터뷰에서 본인에 대해 소개해야‘만’ 하는 내용들 말이다. 열여덟 살이고, 학교 밖 청소년이며, 소아암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있다는 이야기 등. 나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작은 휠체어를 타고 여기저기 휙휙 쏘다니는 움직임, 대화 도중에도 섬세하게 잘못된 표현을 고쳐 주는 목소리, 늘 화려하게 꾸미는 손톱이다. 그는 한국에서 휠체어를 타며 살아가는 청소년의 삶에 대해 중앙 일간지에 칼럼을 쓴다. 때때로 환경에 목소리를 높이고, 학교 밖 청소년 이야기를 전하며, 비건 지향의 삶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의 어머니 역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뜻인 협동조합 ‘무의’를 만들어 장애 접근성 증진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업의 시작에는 늘 지민이 있었다. 그래서 지민은 무의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종종 어머니와 인터뷰에 함께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활동가’라고 말한다.


내가 지민에게 묻고 싶은 것은 어쩌다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혹은 어떻게 장애를 가지게 됐는지 따위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지, 왜 항상 최고 속도로 달리는지, 다이어트는 왜 그렇게 하는지, 앞으로 인생에서 궁금한 일들은 무엇인지다.


또 외롭진 않은지, 지치진 않았는지, 소진되지 않는 법은 무엇인지, ‘나’를 돌보는 방법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화내고, 투쟁하고, 외치는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지겹지는 않은지도 물어보고 싶다. 사실 많은 질문은 나를 향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를 닮은 지민을 바라보며 차마 나에게 던지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민을 마주하기로 했다.


지민을 만나러 혜화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나의 본가와도 가까운 곳이다. 지민은 항상 고등학교 진학으로 고민하다가 우리 집 근처로 이사했다. 이후 그는 자퇴를 결심하고 대학로에 있는 대안 학교인 거꾸로 캠퍼스에 입학했다. 지금은 그 학교를 그만두고 일반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어서 다시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가까이 있을 때 더 많이 놀걸, 그런데 다섯 살이나 많은 언니랑 노는 게 재밌으려나, 내 동생도 나랑 안 놀아 주는데.’ 뭐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민의 집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지민이 “우리 집 바로 앞에 휠체어 프렌들리한 카페 있는데 어때!”라는 카톡으로 소개한 곳이다. 처음 가는 곳이지만 불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지민에게 검증된 장소라니, 그만큼 편한 곳은 없을 것이다.


카페에 도착하고 5분쯤 지났을 때 지민이 카페 문을 왈칵 열고 들어왔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낑낑대며 문을 여는 나와 다르게 움직임이 힘차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 주문해 둔 커피를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들었는데, 뼈대가 드러난 그의 어깨가 보였다. 나는 지민의 당당한 어깨가 옛날부터 굉장히 부러웠다. 하지만 지민은 외려 살집이 없는 내 몸이 부럽다고 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랜만에 마주한 둘이지만, 다년간의 인터뷰와 프로젝트 미팅 경험으로 다진 대외적인 능청 조금 그리고 언제 만나도 반가운 마음이 잔뜩 솟아나 대화를 이끌었다. 녹음기를 켜서 우리 사이에 놓으니 웃음이 났다. 오래된 사이와의 인터뷰는 어색하다. 이미 아는 정보를 모른 체 다시 묻고, 메모를 하며 평소보다 정중한 태도로 상대를 바라보는 일은 묻는 이와 답하는 이를 조금씩 머쓱하게 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인터뷰를 하는 지민은 마치 새로운 기자를 만난 것처럼 자연스레 말을 잇기 시작했다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하지만 낯선 조합의 단어가 지민의 입에서 들려 왔다. “내가 장애여성청소년이니까…….” 장애여성청소년. 세 정체성이 끈끈히 얽혀 있는 것 같은 이름이었다. ‘장애/여성/청소년’이 아니라 ‘장애-여성-청소년’으로 봐야 할 것 같은. 왜 지민은 어떻게 주렁주렁한 이름으로 자신을 부를까 궁금해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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