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1

순천기적의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길 ②


순천기적의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길 ①


(이어서) 


사회자 안찬수

2015년부터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포럼을 했는데 3회째인 2017년 9월의 일입니다. 그때 주제가 ‘어린이·도서관·그림책 한일 교류’였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을 건립할 때 우리가 참고했던 도쿄어린이도서관東京子ども図書館의 하리카에 게이코張替恵子 이사장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너무 부럽다. 이렇게 도서관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열의를 일본에서는 못 만들어 낸다. 그래서 상당히 부럽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은 시민의 에너지를 도서관에 담아낼 수 있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도서관 직원 대부분의 고용이 불안정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문제에서 상당히 실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순천은 지금 탄탄하게 새로운 멤버들을 키우고 성장시켜서 후배 세대들이 성장해 올라오는 역사를 가지고 있거든요.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는 손이 엄청 많이 갑니다. 어린이를 위해서 뭔가 활동한다는 것, 그러니까 갓난쟁이일수록 사실은 어른이 두 명, 세 명, 열 명도 필요한 거잖아요. 그만큼 어린이서비스는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오랫동안 노하우가 쌓여야 되는데, 그런 어린이 전문 사서를 우리가 지난 20년간 키워왔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 듭니다.


순천은 20년 동안 선배들의 뜻을 받들어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사서의 성장, 어린이 전문 사서의 성장이라는 부분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해나가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런 부분을 한번 말씀해 주세요.


박소희

공공도서관이 더 늘어나고 특별히 그림책도서관이 생긴 배경이 순천기적의도서관이 갖고 있는 어린이 콘텐츠 그림책의 유효성에서 발전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도서관 안에 귀중한 자료가 지금 축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어린이 전문사서에 대한 부분은 저도 꼭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이 공간을 뿌리 깊게 만든 어린이 전문사서, 어린이도서관을 지킬 어린이 전문사서를 이제 키워야 하지 않는가, 여기서 어떤 체계를 세워야 하지 않는가 이런 욕심이 있거든요.


어린이도서관은 공공도서관 내에서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고 어린이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숙 선생님께서 기적의도서관 덕분에 순천, 광양 이 일대의 어린이책, 어린이 문화 이런 것들이 발전한 사례들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영숙

13년 전 기적의도서관에서 희망하는 학교로 작가님을 파견해 주셔서 최초로 ‘작가와의 만남’을 하게 됐어요. 그때 김인자 작가님과 만난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한 명의 작가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과 세계의 확장을 경험하지요. 그 순간에 작가의 꿈을 갖게 되는 아이들도 있고요. 그래서 기적의도서관이 학교와의 담을 허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고 저변을 확대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해요. 지금은 기적의도서관뿐 아니라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지요. 분명한 건 기적의도서관이 어린이 문화를 상향시켰고, 그중에서도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토만나’프로그램은 지역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스타트 운동, 부모교육 같은 부분에도 감사드려요.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지금의 학교는 학부모 교육과 소통이 절실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하는 부모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아이들을 도서관에 데려오는 이들도 바로 부모니까요. 


기적의도서관에 바라는 점도 있습니다. 일하는 어머니들께 여쭤보니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지만 주중 낮에는 참여하는 게 어렵다고 하셨어요. 주말에도 어른, 아이,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열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노력들을 했을때 실효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지역 주민의 작은 목소리와 바람도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최진봉

순천기적의도서관이 해왔던 일들을 돌아보는데, 기적의도서관들이 각 지역에서 역할을 잘해서 도서관 어린이서비스의 상향평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원지가 있어서 그렇게 퍼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진원지의 오리지널리티가 유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조금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느냐를 보면 기적의도서관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서관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든 점입니다. 일반 공공도서관도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기적의도서관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거거든요. 공간 구성도 그렇지만 그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고 활동하는 부분들이 기적의도서관에 원류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도서관이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게 기적의도서관을 통해서입니다. 순천의 경우 그림책도서관도 만들어져 좀 더 전문적인 그림책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도서관 내에서 그림책 혹은 작가들과 관련된 활동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부분은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잘 유지되어 다른 도서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샘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순천기적의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운영위원회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창조적인 성장 환경을 만드는 지역 공동체의 산실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이게 유지될 것 같은가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거예요. 순천기적의도서관에 가게 되면 이 모든 문화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도서관 서비스들이 많이 변화되고 더 좋아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의도서관에서 해왔던 것들이 쉽게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적의도서관만큼은 20년 후에도 그런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했으면 하는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박소희 늘푸른어린이도서관장.


박소희

첫 번째는 이용자가 많이 감소했고 기존에 오던 아이들은 모두 성장해서 20대, 30대가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밖으로 나가 있을 시기지 이 지역 안으로 들어 있을 시기는 아닌 거죠. 두 번째는 종이책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해 교육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간 안에서 안전한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세 가지 모두 공공도서관에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지역이 변하면 기적의도서관의 역할도 변해야 하는데, 여기서 어린이 문화 활동이 시작되었고 확산되었던 역사성을 조금 더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린이 공간도 많이 변했어요. 어린이들이 머무는 공간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지역마다 더 세련되고 좋은 곳도 많아요.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들도 들어오는데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어린이들이 책을 만나는 공간이 어때야 하는지, 어떻게 관심을 모아야 하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20년 동안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빛바랜 도서들이 과감하게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지금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책들이 좀 더 돋보이는 공간 구성을 실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쿄 어린이 도서관을 말씀하셨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분들은 계속 유지된다는 거거든요. 그분들은 어린이 권장도서 목록을 만들고 지역에 유포하는 일을 사명처럼 생각합니다.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어린이 전문사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전문화된 학교를 전국 대상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어린이들이 도서관에 와야 한다는 걸 고집하기보다 어린이들을 더 잘 만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도서관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한편으로는 기적의도서관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인구학적 변화, 매체 등의 변화에 대응할 것인가? 즉 기적의도서관이 무엇을 지키면서 무엇을 새롭게 해나갈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으로 도서관 영역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또, 공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사서나 자원활동 등 여러 가지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러면 좌담회의 후반부로서 앞으로 20년, 30년을 전망하면서 기적의도서관에 대한 기대와 역할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영대

20주년을 기점으로 기적의도서관이 좀 새롭게 변화해야 되지 않나, 하는 내부적 고민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기적의 얼굴을 찾습니다’ 캠페인을 하면서 순천시민들이 아직 기적의도서관에 많은 애정과 애착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추억 속의 기적의도서관이 아닌,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많다는 게 중요한 점입니다.


두 번째로 기적의도서관이 20년 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잘 해왔느냐입니다. 저희가 초창기에 모멘텀을 잘 잡고 건립 정신을 채택했잖아요. 그리고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몇백 명이 넘는 활동가들을 양성했고요. 지금까지 20년 동안 하신 분들도 있고 중간에 그만두신 분들도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꽤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기적의도서관에서 어린이사서를 모집해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게 성장하는 좋은 인적 요소들이 있는데, 한동안 운영하지 못했던 도서관 학교라든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금 더 체계적인 교육을 해서 이분들을 성장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너무 보편화되기보다 순천기적의도서관만의 것들을 다시 찾아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걸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프로그램들 중 좋은 것들을 되살리는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 세 가지 측면을 말씀하셨는데, 여전히 약한 부분이 자원활동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본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10년, 20년 했으면 어느 정도 준전문가인데, 이분들에 대한 지원이 더 이루어져야 활성화를 할 여력이 생길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으로,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할 거냐 그러지 말고 어르신들, 조부모들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노인 도서관을 만들 게 아니고 노인들이 와서 아이들과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 프로그램이나 정책들을 새롭게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지난 2년, 우리는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해왔고 작년과 올해 도서관을 운영하며 가시적인 성과들이 좀 보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20주년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소희

디지털 매체든 종이 매체든 잘 읽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공간이 잘 유지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고 아이들의 읽을거리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병규 동화나라 책방 대표. 김영숙 광양마로초등학교 교사.


정병규

앞서가는 사람은 고독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지금도 하고 있고 또 앞으로 계획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세계적일 필요도 없고 최고라는 호칭도 좀 떼고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느낌을 유지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곳에서의 훈련과정을 거쳐 어린이 전문 사서를 양성하게 된다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출중한 전문가 배출 기관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메타버스 개발자들과 작년부터 접촉을 하고 있는데, 그 회사는 게임 개발 업체이지만 특별한 그림책 메타버스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자료를 제공하고 쭉 얘기를 해왔었죠. 얼마 전에는 100%는 아니지만 60% 정도 구현된 가상공간을 보게 됐는데, 평소 그림책 또는 어린이책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메타버스에서도 즐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충분한 공간 자원, 책 자원이 있고 그다음에 인적 자원이 있어서 가상공간을 실현한다면 미래의 열람자들에게 매력적인 곳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아카이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순천기적의도서관의 정체성을 굳이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고 이미 갖고 있는 것에서 찾길 바랍니다. 여기 있는 자료가 앞으로 20년 뒤에는 희귀 자료가 될 겁니다. 현재 구하지 못하는 자료들, 90년대 초반에 출간이 되어 이미 절판된 책들, 특히 순천만과 정원, 자연환경에 관한 자료들이 없어지기 전에 확보하면 나중에 자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어린이책을 전 세계에서 사 모으거나 국내에서 나왔던 것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그것이 상당한 보고가 될 것이고 그걸 가상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숙

전문사서 양성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오늘 그 생각을 처음 했어요. 그런데 정말 필요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20년을 생각할 때 이런 부분을 중점에 두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게 지금 현실이잖아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데 아이들이 감소하고 찾아오지 않으니 반대로 찾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오지 않으면 우리가 가는 거라고. 반대로 생각해서 서비스를 늘려 가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해봤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어린이도서관이 어린이의 자율성을 확대시켜줬으면 좋겠어요. 어린이사서라든지 아이들이 직접 결정하고 기획하고 추진하는 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고 너희는 얼마든지 실패해도 된다는 걸 알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자리를 만들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도서관은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요. 어린이들이 즐겁게 책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또 어른을 만나는데, 그중에서도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는 이유가 책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친절하게 나를 반겨주는 어른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적의도서관은 정말 좋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행복한 즐거운 도서관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안찬수

오늘 사람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순천기적의도서관만의 어떤 고유한 문화에 대한 기대를 잘 말씀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끝으로 오늘 순천기적의도서관 20주년 기념 좌담회인데, 한 세대가 지난 2053년이라 생각해 봅시다. 지금 어린이들이 열 살이면 30년 후에는 마흔 살이 됐을 거 아닙니까. 그때 도서관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요.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2053년에 도서관을 이용할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씩 하시는 것으로 좌담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소희

‘좋은 시대를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작지만 도서관 책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봤어요. 그게 동네에서 도서관을 계속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 근거가 되는지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어요. 20년간 이런 일을 왜 했어? 라고 했을 때, 제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장면들 - 애들이 몰입하는 거, 김영숙 선생님께서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줄 때 막 입이 벌어지면서 몰입하는 걸 보셨잖아요. 이걸 어떻게 보겠어요. 다 도서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을 만들어 준 작가들이 있고 또 이 공간에서 그 책들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2053년에도 여전히 저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도서관을 이렇게 만들었고 그 일을 2053년에도 기념하면서 추억할 것이라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최진봉

앞으로 20년을 놓고 봤을 때, 사실 우리 사회의 어떤 환경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변해 있을 거예요. 앞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간직해 왔던 따뜻함이 좀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챗GPT 같은 것이 나오면서 학생들을 벌써부터 도서관 서비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이미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하는데 사서가 뭘 어떻게 하겠냐고요.


그렇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거고 그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서관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성이 중요합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라고 생각해요. 지역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 내는 것,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자랐으면 합니다. 그런 게 앞으로 도서관에서 창의적으로 많이 만들어야 할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줄고 어린이가 준다 하지만 결국 지역 사람들은 분명히 남아있고, 그 사람들과 도서관이 함께하는 기반을 만든다면 분명 그런 문화들이 잘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자양분으로 내주는 서비스가 우리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병규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사람들이 핸드폰을 갖고 노는 정도의 변화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그대로이고 기기만 조금 변한 이런 세계를 경험해 왔는데요, 20년, 30년 뒤라 해도 저는 감히 사람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이것 말고 또 다른 것들을 제시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는 만약 그때까지 존재한다면 30년쯤 후 돌봄 로봇으로부터 탈출을 해 도서관에 올 겁니다. “오래된 책을 갖고 90대 늙은이지만 너희들아이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책을 갖고 별의별 쇼를 다 할 수 있으니 같이 놀고 싶다.” 이런 제안을 하는 가상의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 저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활자 종이책이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렸습니다.


김영숙

저는 기적의도서관의 수혜자라고 처음부터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나도 도서관으로 돌아와야겠다는 꿈을 꾸고 있거든요. 그래서 퇴직 후에 할머니가 되었을 때 책을 읽어주러 오려고 합니다.


30년 후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과연 그때도 이걸 할 수 있을까? AI가 지금부터 시작인데 내가 그 자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조금 섬뜩해졌어요. 그렇지만 사람이 책을 읽어주길 아이들이 원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30년 후에 내가 육성으로 책을 읽어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이 도서관과 종이책을 너희들에게 물려주려고 애쓴 어른들이 많아. 너희들도 이 종이책을 계속 지켜봐 주면 좋겠어. 라고 얘기할 것 같습니다.


사회자 안찬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왜 기적의도서관을 지으려고 했는가”입니다. 앞서 이 운동을 일으키신 선각자분들, 도정일 선생님을 비롯해 순천기적의도서관을 설계하신 정기용 선생님 등 여러 일을 하신 어른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제가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아마 지금 이 지구에 태어나는 아이들 전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잘 키우자”는 얘기를 거듭하셨어요.


사람이 있는 도서관으로 계속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순천기적의도서관 20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여해 주신 박소희 선생님, 최진봉 선생님, 김영대 선생님, 정병준 선생님, 김영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섯 분의 말씀이 두고두고 도서관을 계속 이용하고 사랑하고 지지하는 순천시민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기를 기대하며 오늘 좌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순천기적의도서관 20주년 기념 백서 『기적답게, 스무 살』(2023)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