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1

“인마, 김포가 다 네 집이냐?”

저자소개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현 인천시 서구)에서 나고 자랐다. 경희대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제국호텔』 『마음의 오지』 『산책시편』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가 있고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졸병 시절, 신고식을 치를 때 고참이 “집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바짝 긴장한 나는 내무반이 떠나가라고 외쳤다. “네, 경기도 김포입니다!”


그랬더니 고참이 내 뺨을 툭 치면서 되묻는 것이었다. “인마, 김포가 다 네 집이냐?” 지내고 보니 선임병이 출신지를 묻는 것은 관례였고, 제대로 답하는 신병은 거의 없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는 어떠한가. 직장이나 학교 또는 사적 모임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이름, 나이학번, 부서학과를 말하면 끝이다. 신상 정보 공개가 길어지면 민폐다.


나는 신병이 자신의 거주지를 도시나 군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집’에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을과 이웃 마을들, 즉 생활권에서 산다.


문제는 자기에 대한 인식의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라는 자의식이 갈수록 강해진다.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고 집 밖 사회는 오직 ‘경제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리라.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집’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담장은 높아지고 문은 늘 닫혀 있다. 이웃이 사라졌다. 고향은 주소지로만 존재한다. 예전의 풍광과 인심이 오간 데 없다.


집에 있던 것들이 다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던 것들이 들어왔다. 출산과 잔치가 밖으로 나가고 우물과 화장실이 들어왔다. 가족보다 가전제품이, 어린아이보다 반려동물이 더 많아졌다.


공광규 시인의 시가 부럽다. 그렇다. 담장을 허물면 다 ‘들어온다.’ 시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하는 것 같다. ‘그대들 마음의 집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을 허물어보시라, 그리고 무엇이 들어오는지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보시라’라고.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