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0

그래요, 우리는 꽃만 봅니다

저자소개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현 인천시 서구)에서 나고 자랐다. 경희대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제국호텔』 『마음의 오지』 『산책시편』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가 있고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그래요, 우리는 꽃만 봅니다. 지난봄을 돌아보세요. 개나리·진달래부터 시작해 산수유·철쭉·목련·벚꽃…. 다 새삼스럽습니다. 우두커니 낮달을 올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상하지요, 지난여름에, 그리고 이 늦가을에 우리는 저 꽃나무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초록이 무성하던 여름날, 우리는 저 꽃 주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나무이고 숲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꽃, 꽃, 꽃들…. 지고 나면 그만입니다. 돌아보지 않습니다. 올가을은 단풍이 영 곱지 않다느니, 첫서리가 늦다느니, 까치밥이 보이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꽃 피었던 자리, 꽃이 진 자리,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다 알겠지요. 꽃이 저절로 피어나지 않는다는 거 말입니다. 꽃이 피려면 겨울을 견뎌내야 하고, 꽃이 져야, 그것도 제대로 져야 열매를 맺고, 자기 힘으로 열매를 떨어뜨려야 겨울을 맞이할 자격을 얻는 거라는 거.


그래요, 꽃이 피고 지려면 나무가 있어야 하고, 땅이 있어야 하고, 해와 달, 낮과 밤, 벌 나비, 송충이, 매미, 까치까지 다 있어야 합니다. 천지자연이 일일이 다 간섭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만 빠져도 탈이 납니다.


이 늦가을에, 땅거미가 스멀스멀 밀려올 적에, 목련꽃 올려다보며 떠올린 생각, 벚꽃잎 흩날리던 뚝방길에서 이별하지 못한 이별, 라일락 향기에 한껏 부풀었던 꿈을 떠올리다보면 그림자가 더 길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꽃 피워냈던 나무가 저기,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곧 날이 밝고, 다시 눈이 내리고, 누군가, 그 무언가가 문을 두드리겠지요.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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