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0

소설, 자서전 9

저자소개

황주리
화려한 원색과 흑백,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로,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를 통해 도시적 인간의 내면세계와 인간 상황을 시적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원고지를 캔버스삼아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던 그녀는 뛰어난 산문가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다. 캔버스 외에도 안경과 돌과 오래된 목기 등에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사라지는 순간들을 지금 여기에 붙잡아두려는 ‘시간에 관한 명상’들이다. 26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이백 여회의 기획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석남미술상과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등을 펴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머니 없이 자란 고아 아닌 고아이다. 게다가 어머니를 그리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아들이다. 시험관이 아닌 인간의 자궁에서 열 달을 머물렀다는 사실은 내게 조금도 힘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다큐필름에서 인간이 아닌 포유동물의 어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왜일까? 텔레비전은 황량한 우간다의 숲을 보여준다. 인간이 그 숲의 80프로를 밀어버렸다. 엄마가 트럭에 치여 죽은 기억을 지닌 침팬지 가장은 가족을 거느리고 조심스럽게 위험한 길을 건넌다. 인간에 의해 나날이 숲에서 인간 몰래 먹이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길 건너는 일을 터득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일찌감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일 위험한 여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침팬지 가족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인간과 공존해야 한다. 사람을 보고도 도망도 안 가고 그냥 서 있다. 사람이 그냥 놔두고 건드리지만 않으면 무해한 동물, 그 가장 가까운 친척과의 관계 단절의 주범은 언제나 인간이다. 나와 어머니의 관계의 기억도 그와 같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냥 버려졌다. 몇 번의 연애도 그랬다. 잘 나가다가 그냥 버려졌다. 마지막 연인인 자넷은 어떠했는가? 


그 순수함으로 인해 나로 하여금 영원을 꿈꾸게 한 그녀도 한때는 나를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평화로운 저녁에 그녀는 남편과 재결합한다며 내게 이별을 선언했다. 이번에도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나는 서로 사랑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피로해졌다. 앞으로는 그게 누구든 혼자 사랑하기로 한다. 내가 요즘 혼자 사랑하는 그녀는 책방 사인회에서 책에다 서명을 해준 입양아 출신, 글을 쓰는 크리스틴 혜경인가? 아니면 퇴역 중령 존의 여친, 설치미술 작가이며 장애인 올림픽 우승자 크리스틴 혜경인가? 같은 사람인 듯 다른 사람인 그 둘에게 나는 막연한 그리움을 품는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나는 그저 소소한 돈을 벌면서 매일 공부하는 사람이다. 영문학은 끝이 없었으며, 그러나 끝이 있는 게 어디 있던가? 내가 한국식당에서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걸 안다면 어머니는 내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마 낳은 걸 부정할지도 모른다. 내가 박사과정을 끝내는 걸 계속 미루며 끝없이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다는데 아마도 나는 앞선 인류의 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애정을 느끼거나 집착이 없는 신인류가 요즘 유행하는 건 아는 사실이다. 내 어머니는 그러니까 신인류의 모델케이스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의 존재를 궁금해한 적이 없으니까. 나는 가끔 다큐 프로그램 속의 낯선 동물의 어머니를 꿈꾼다.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해 먼 먼 길을 떠나는 펭귄에게서 모성을 느끼기도 한다. 고난의 긴 행군 끝에 먹을 것을 갖고 돌아오는 어미 펭귄에게 아빠 펭귄이 품고 있던 새끼 펭귄을 안겨준다. 눈물겨운 가족 상봉의 장면이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펭귄들은 제 새끼를, 제짝을 알아본다. 꿈속 같은 남극의 풍경을 나는 아무리 다시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다. 제 새끼를 찾으려는 어미 펭귄의 초조함이 내게로 전염된다. 나는 가끔 어머니가 죽었으면 하는 소망을 기억한다. 어릴 적 어머니 없이 자라면서 친구들이 엄마에 관해 물으면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슬퍼졌다. 죽은 이와 소통하는 사후통신이라는 게 있다 한다. 그 중에서도 후각적 사후통신이라는 단어에 나는 마음이 끌렸다. 죽은 이가 좋아하던 향수, 꽃, 커피 등등의 냄새가 그가 더 이상 살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풍겨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어머니의 냄새를 희미하게 기억한다. 아마 무슨 종류의 향수 냄새일 것이다. 그 향수 냄새가 가끔 지금도 풍겨 나온다. 고풍스러운 호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하철에서 스쳐 가는 낯선 여인의 향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맡는다. 어쩌면 자넷을, 크리스틴 혜경을 마음에 품는 것도 다 같은 종류의 향수 향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존재하는 여기와는 다른 사후공간에서 내게 교신을 보내는 환상 속의 어머니, 어쩌면 어머니가 이런 식으로 나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화가 난다. 죽은 아이는 잊혀도 잃어버린 아이는 평생 잊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나는 어느 쪽이 죽었는지는 모르나, 가끔은 후각적 사후통신을 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가끔은 돈이 많은 어머니가 내게 재산을 물려주는 꿈을 꾸기도 한다. 돈이 좀 많으면 좋을 것 같다. 일단 매일 몇 시간씩 존재의 본질과 아무 상관 없는 무의미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많이 생겨 일이라는 걸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일단 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연미복을 입은 펭귄들의 나라, 남극의 풍경 속으로 어머니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먼 길을 찾아온 나, 새끼 펭귄을 알아보고야 말 것이다. 모든 사랑에서 휴직하고 나는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종류의 펭귄이다. 나의 연미복은 때가 묻어 꼬질꼬질하지만 내가 부는 피리 소리는 온 세상으로 맑게 퍼져나간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을 때, 내가 가진 건 갈대 한 줄기뿐이었다. 내게는 그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하는 재주밖에 없었다. 나는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고 일도 잘하지 못했지만 세상의 조용한 한구석에서 피리를 불었다. 우리 모두는 신이 연주하는 작은 갈대 피리인지 모른다.” ― 타고르 



잠 속에서 유튜브를 듣는다. 누군가의 따분하기 짝이 없는 강의다. 자살을 하면 벗어날 수도 없는 고독한 공간에서 먼저 죽은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영원히 배회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날씨 좋은 날 오후에 듣는다면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자살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되거나 치매가 걸리거나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야 한다고 겁을 주는 대목은 끔찍한 사후공간으로 간다는 말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자살을 꿈꾼 적이 단 일 분도 없다. 이어서 공감능력이 무지 떨어지는 따분한 다른 아저씨가 내 침대에 걸터앉아 따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꿈으로 이어진다. 불면은 꿈속에서도 계속된다. 잠 속에서도 잠을 못 자는 나는 누구인가?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나는 누구인가?


꿈속에서 낯선 여인이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너의 어머니란다.”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 그녀는 낯익은 음성인데 모르는 여인이다. 그녀와 미친 듯 섹스를 한다. 잠깐 사이 그 얼굴은  자넷이 되었다가 똑같은 모습의 똑같은 이름을 지닌 크리스틴 혜경으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남극으로 떠난다. 펭귄들이 금세 나를 둘러싼다.


앞을 다퉈 펭귄들이 내가 네 어머니라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