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소설, 자서전 7

저자소개

황주리
화려한 원색과 흑백,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로,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를 통해 도시적 인간의 내면세계와 인간 상황을 시적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원고지를 캔버스삼아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던 그녀는 뛰어난 산문가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다. 캔버스 외에도 안경과 돌과 오래된 목기 등에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사라지는 순간들을 지금 여기에 붙잡아두려는 ‘시간에 관한 명상’들이다. 26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이백 여회의 기획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석남미술상과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등을 펴냈다.


내가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해 온 아버지로부터 긴 편지가 왔다. 그때만 해도 나이 든 분들은 손편지를 쓰던 시절이었다. “아들아, 너는 나를 늘 갯츠비라고 불렀지. 사실 나를 처음으로 갯츠비라 불러 준 사람은 네 어머니였다. 이름이란 참 이상한 거란다. 그 이름으로 불리면 왠지 그렇게 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어느 날인가 비가 많이 오는 날, 기업에서 달마다 주최하는 실내악 음악회에 갔지. 가끔 그곳에 가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게 참 좋았어. 그곳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연주자들을 소개하기도 했지. 나는 워낙 음악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음악을 하는 여자들한테는 일종의 우정을 느낄 뿐, 이성으로 느껴본 일은 없단다. 순간 음악회에 참석한 어떤 사람의 시선이 왠지 내게 집중된 것처럼 느껴졌지. 그녀는 친구와 함께 음악회라는 걸 처음 와본 거라고 나중에 말하더구나. 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야. 내가 죽은 남편과 똑같은 느낌을 풍겨서 계속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내가 옛날 영화에서 본 갯츠비를 닮았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가 남 같지 않았어. 우리는 주말마다 데이트를 하는 중이야. 그녀와 함께 라틴 댄스를 추러 가기도 해. 그녀는 내게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있어.” 


아버지의 편지엔 정말 오랜만에 생명의 박동이 깃들어있었다. ‘위대한 갯츠비’, 그는 왜 위대했던 걸까? 우리가 한 사람의 생애에 뛰어 들어가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춤을 섭렵한, 하지만 그 어떤 춤으로도 밥벌이를 하지 않는 무책임한 열정의 소유자와 사랑에 빠졌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런 성향의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무책임한 열정은 때로 우리를 달나라로 데려다준다. 지구로 돌아갈 일은 잠시 뒤 생각하면 될 일이다.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익숙한, 규칙적인 감성의 음악연주자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 그녀와 함께 아버지는 며칠이나 행복했을까? 


내 어머니인 전처와 그의 친구들로부터 ‘그레이트 갯츠비’라 불린, 춤이라고는 춰본 적도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악기상 아버지는 외계인과 다름없는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했고,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꿈꾸는 일이 취미인 나는 아버지의 결혼식 날도 꿈을 꾼 것 같다. 결혼식은 조촐했고, 초대된 손님들은 모두 라틴 댄스를 추고 있다. 결혼 예복을 입은 아버지와 그녀는 뒷모습밖에는 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나이 든 나 같기도 하고 신부의 뒷모습은 크리스틴 혜경 같기도 했다. 어느 쪽 크리스틴 혜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결혼식에서 나는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불행한 것 같기도 했다. 꿈속인데도 언젠가 읽은 이런 구절이 생각났다. “행복한 사람은 절대 결혼하지 않는다.”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경우에 따라 다를 거라고 꿈속의 나는 생각한다. 문득 어디선가 들은 이런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인생이 축제의 놀이기구 같댔어. 신나지만 무섭고도 빠르지. 한 번밖에 탈 수 없는 놀이기구, 그리고 그 속도 속에 다음에 탈 사람이 보여.” 꿈속에서 이게 진짜 아버지의 말인지 드라마 속의 대사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결혼 예복을 입은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나는 그 놀이기구를 떠올렸다. 수없는 다음 사람들이 결혼 예복을 입고 누군지도 알아볼 수 없는 똑같은 뒷모습으로 서 있었다. 문득 “아무도 나쁘지 않다면, 왜 우리가 이렇게 상처받아야 합니까?” 이렇게 아무 상관도 없는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버지의 상처는 구두로부터 시작되었다. ‘위대한 갯츠비’와 결혼한 무책임하고 자유로운 영혼, 그녀는 매일 한 켤레 혹은 두어 켤레씩 구두를 사들였다. 춤을 추기 위한 구두와 일상의 구두와 축제의 구두들로 아버지의 집은 가득 찼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악기들은 창고로 이사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진짜 심하게 음악에 취미가 없었다. 차라리 그림을 좋아하는 그녀는 그림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안목도 없었으므로 귀동냥으로 작품값이 오를 거라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였다. 처음에 아버지는 그런 징후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편지에다 아버지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자신과 너무 다른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사람들은 끝까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다 죽는 게 일반적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개인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정부가, 그렇지 않은 세상이 있다면 인류의 전쟁은 옛날 옛적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아버지의 새 아내를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영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이름을 빌려 ‘이멜다’라 불렀다. 이멜다 마르코스여사의 수집벽은 구두뿐 아니라 고가의 미술품 수집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필리핀의 사랑의 여신으로 불린다. 그녀는 어디에서나 가난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지폐를 나누어 준다. 어느 다큐 필름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뇌물의 여왕으로 보였다. 아마 그녀가 걸친 값비싼 의상과 보석과 구두와 기름기 도는 풍만한 육체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지폐를 나누어주는 일은 내가 곤궁에 처했을 때 이 돈을 받은 누구라도 나를 도와달라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아프리카 케냐에 갔을 때, 그녀는 구두 사듯 동물들을 사들여 필리핀의 외딴섬에 사는 사람들을 내쫓고 동물들을 풀어놓은 뒤 몰라라 잊어버린다. 수의사도 없고 예산도 하나 없는 섬에서 동물들은 아주 작은 상처에도 병들고 죽어간다. 버려진 섬에서 근친교배로 인해 기린의 목이 짧아진다. 목이 짧은 기린을 여전히 기린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목이 짧은 기린에게도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희망이란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이다.’ 아버지는 늘 희망을 간직하고 사는 분이었다. 나와 다른 남을 탓하거나 상처를 받아도 원망을 하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이 아마 그래서 아버지를 갯츠비라고 불렀을지 모른다. 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인 내 어머니는 학문에 전념하느라 남편과 어린 아들을 버리고 자기보다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인도의 석학과 결혼해 가버렸다. 제비는 하늘을 날며 하루에 삼백 번씩 새끼들 먹이를 물어다 준다. 그 작은 입으로 한꺼번에 많이 물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성을 잃어가는 건 인간이 첫 사례일지 모른다.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는 점점 더 비싼 그림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집안은 그림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닮은 점은 문화 속물이, 아니 그 어떤 속물도 아니라는 점이다. 남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따라 좋아하거나 유행을 따르는 데 별 취미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악기는 사랑하는 사물이었고, 내게 그것은 문학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오래도록 좋아하는 습관―순정이라고 해두자, 우리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순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언가에 미쳤다가 금방 싫증을 내고 돌아서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자넷을 잊었던가? 절대 아니다. 헤어진 남편과 재회한 그녀가 행복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이유로 화가이며 설치미술가인 휠체어를 탄 크리스틴 혜경과, 휠체어를 타지 않은 글을 쓰는 또 다른 크리스틴 혜경이 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넷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혼자 음악회에 갔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들,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다. 다음 생에 지휘자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은 음악회에 갈 때마다 문학으로 번역되어 나의 노트에 글자로 남았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가면 나는 거기다 뭔가 두고 온다. 분노와 걱정거리 그 사이의 뭔가 개운치 않은 심정 같은 것들, 아무리 집중을 해서 음악을 들으려 하지만 곧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음악 속에서 뛰쳐나가 바람 속의 꽃가루 되어 퍼져나간다. 그때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남에 관해서보다는 나에 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 일상의 풍경처럼 각인 된, 나중에는 그마저 그리울지 모를 권태와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잊혀진 애정 행각 같은 것들,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화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음악을 듣고 다시 음악과 생각의 망상 행진곡 그 되풀이, 그 순간들이 정말 치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