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0

소설, 자서전 4

저자소개

황주리
화려한 원색과 흑백,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로,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를 통해 도시적 인간의 내면세계와 인간 상황을 시적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원고지를 캔버스삼아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던 그녀는 뛰어난 산문가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다. 캔버스 외에도 안경과 돌과 오래된 목기 등에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사라지는 순간들을 지금 여기에 붙잡아두려는 ‘시간에 관한 명상’들이다. 26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이백 여회의 기획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석남미술상과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등을 펴냈다.


하긴 연습까지 해야 하는 삶이란 좋을 것도 없을지 모른다. 자넷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이생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아주 끝내고 싶어.” 불교에서는 윤회를 끝내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존재를 ‘아라한’이라고 부른다. 아라한이 된 기분으로 미술관을 나와 우리는 가끔 자연사 박물관에 가곤 했다. 박물관의 뼈, 화석, 벌레들, 공룡박제들이 늘어서 있는 사람 없는 전시관에서 우리는 다음 생에 도착한, 아니 낯선 별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의 큰 동물들은 늘 멸종위기에 놓인다. 그리고 작은 생물들은 살아남는다. 그저 작은 생물인 나와 자넷이 이 불안한 세상에서 매 순간 무사하기를 나는 늘 기도했다. 


자넷이 좋아하는 장소가 또 하나 있다. 스케이트장이다. 스케이트장은 또 하나의 낯선 세계다. 아무 걱정 근심 없는 환상의 나라 같다. 맨해튼의 도시 한가운데 있는 ‘록펠러센터’ 스케이트장은 산이나 강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풍경을 선사한다. 우리는 맥주 한잔을 마시며 커다란 노천카페의 유리창을 통해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겨울도 아닌 봄날에, 사시사철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넷은 “꿈꾸는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직접 스케이트를 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 시절에 이미 끝이 난 꿈처럼 그냥 구경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부러운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시원하게 죽죽 미끄러지는 발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스케이트를 탔던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런 시간들도 있었다. 그 기억 탓으로 나는 스케이트를  타지 않는지도 몰랐다. 아니 스케이트 신발을 신을 엄두초차 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신겨주던 그 스케이트 슈즈의 기억을 부정하려는 듯 어른이 된 나는 남들이 타는 풍경을 구경하기만 했다. 아니, 남의 삶만 구경하는 삶의 구경꾼이 된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을까? 


뉴멕시코가 고향인 자넷은 여행자가 되어 맨해튼을 걷는 일을 좋아했다. 뉴욕 현대 미술관 한 블록 옆 오롯이 숨겨진 공간에 근사한 인공폭포와 빈 의자들이 놓여있는 장소는 내가 늘 혼자 앉아 책을 읽곤 하던 곳이었다. 자넷은 사시사철 시원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그곳을 좋아했다. 도시 한복판의 근사한 폭포 앞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잔을 사들고 그곳에서 한없이 몇 시간씩 책을 읽어도 방해하는 사람 하나 없는, 걷다가 발이 아프면 찾아가는 오아시스처럼 숨겨진 장소에서 우리는 몇 시간씩 아무 말 없이 앉아있어도 좋았다. 



어느 날 우리는 그 조용한 행복을 깨뜨리는 방해꾼을 만났다. 휠체어를 탄 미국인 여자와 그녀의 한국인 남편이었다. 남자는 다섯 살에 입양되어 자라 25년을 군에서 복무한 뒤 중령으로 제대했다고 자랑스럽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갑자기 군복을 입고 찍은 흑백사진을 가방 속에서 꺼내 보여 주었다. 18K로 만든 금 지갑도 보여줬다. 베르사체 정장 양복을 들추니 수십 개의 훈장들이 양복 안 셔츠에 달려 있었다. 무겁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 훈장들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누가 훔쳐갈까 봐 훈장들을 줄줄이 단 옷을 입은 채 잔다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탄 아내가 남편에 관해 말해주었다. “이 사람은 목욕을 안 해요.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삼촌 집에서 살면서 목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대요.” 그런 사람과 어떻게 결혼했냐 물으니 샤워를 매일 하기로 맹세하고 결혼했다 말했다.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그늘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언젠가 책 한 권을 들고 혼자 그곳에 갔을 때 멀리서 그 부부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남자가 울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자넷이 그렇게 말하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슬퍼졌다. 우리는 사랑할 때 자신만이 상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감히 착각을 한다. 하지만 남의 상처는커녕 자기 상처도 치유할 수 없는 법이다. 그날 이후 가끔 그곳에 갈 때마다 나는 그 퇴역 중령이 혼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가서 그 옆에 앉으니 숙인 고개를 들고 흠칫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가 떠났어요?” 내가 물었다. “휠체어는 어떻게 하구요?” “옛사랑이 찾아와 밀고 갔어요.” 그가 말했다. 그녀가 그를 떠난 것은 그가 목욕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는 어릴 적 아무도 목욕을 하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가끔 옷을 다 벗고 햇볕에 몸을 말린다고도 했다. 그가 아내를 처음 본 건 링컨센터에서 열린 어느 음악회에서였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제일 좋아하는 중령은 혼자 음악회에 갔다가 휠체어를 능숙하게 자가운전하고 온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 휠체어를 탄 아내는 무슨 사연으로 옛사랑에게 돌아갔을까? 나는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왜 아버지를 버렸을까? 나는 여자에게 버림받은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생각했다. 중령은 울고 있었다. 깊은 슬픔이 우리를 감쌌다.


그 뒤로 자넷과 나는 마치 삼촌을 대하듯 그와 가까워졌다. 어느 주말에 알라바마에서 온 화가 데이빗과 훈장을 잔뜩 달고 다니는 퇴역 중령 존을 자넷의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존은 요리를 잘했다. 무거운 훈장을 목과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도 몸을 잽싸게 움직였다. 한국음식을 좋아한 아내를 위해 그는 요리사 자격증을 땄다. 문득 알라바마에서 온 무명 화가 데이빗이 그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독신 화가라 했다. 그리고 조금쯤 망설이며 그녀도 휠체어를 탄다고 했다. 5년 전쯤 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존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았다. 눈물이 그가 만드는 음식 속에 몇 방울 떨어지는 게 보였다. 눈물은 음식 속에 들어가 적당히 간을 맞추고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변했다. 고향이 산골 마을이라는 존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를 하고, 삼촌 집에서 살다가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목욕을 안 하는 버릇 때문에 양부모를 세 번이나 바꾸어야 했다. 다행히 마지막 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존은 한국말을 잘했다. 어릴 적 살던 삼촌의 시골집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노래를 부르는 그의 얼굴은 다섯 살 소년으로 돌아갔다. 


존과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여성 화가는 내가 일하는 32가에 있는 한국음식점에서 만났다. 그녀의 휠체어는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뭘 드시겠냐고 물으니 그녀가 설렁탕을 먹겠다고 한국말로 답했다. 전 남편이 한국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샤워를 하지 않고 일광욕을 선호하는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퇴역 중령과 장애인 장거리 달리기에서 우승을 한 씩씩한 여성 화가는 첫눈에 반해 연인이 되었다. 때로 좀 유별난 사람들은 같은 국적이 아닌 타국의 사람과 더 소통을 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듯이. 아니 앞으로의 세상은 같은 지구인이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세상이 올지 모른다. 언어 따위는 인공지능의 힘으로 다 해결될 것이다. 다음 세대에는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결합하여 귀밑에 폰을 심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한다. 우리의 신체가 완벽한 충전기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대화를 할수록 어긋나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히 안 통하는 언어로 적당히 못 알아들으면서 적당히 싸우지 않는 인간관계, 그것도 정말 나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리 예민하지 않은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존과 휠체어 화가는 말이 잘 통했다. 한국 남자와 십여 년을 결혼생활을 한 탓에 그녀는 한국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왜 헤어졌냐고 물으니 죽었다고 했다. 사랑했냐고 물으니 한동안 사랑했다고, 하지만 교수였던 남편이 나이 어린 한국인 조교와 사랑에 빠져 서부로 떠난 뒤 오래지않아 남편이 유골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사인은 심장마비라는데,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한다. 어디 화풀이할 수도 없는 고독한 나날들이 지나고,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뒤로 얼마나 살기 위해 몸부림쳤는지 모른다고, 장애인 장거리 경주는 자신을 살게 한 힘이었다고.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자신만의 길이라고 먼 곳에 시선을 두며 그녀가 말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길에 관해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문득 카프카의 소설 『성』 중 한 구절이 생각났다.


“성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예요. 그 중 어느 길로 가는 게 유행이면 대부분 그리로 가고, 다른 길이 유행이면 다들 그곳으로 몰리지요. 어떤 규칙에 따라 그렇게 유행이 바뀌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성에 가까이 다가가긴 했지만 길은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옆으로 휘었으며 성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K는 걷는 내내 이 길이 결국엔 성으로 접어들고야 말거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으며, 그 기대 때문에 계속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