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9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축제의 길

저자소개

정여울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글쓰기·듣기·읽기·말하기 네 가지는 그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세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한없이 넓고도 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일정한 틀에 매이기보다 스스로가 주제가 되어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월간 정여울’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와 소란하지 않게, 좀 더 천천히, 아날로그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인문학과 여행의 만남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인문 교양서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등을 출간했다.


이날 밤 무도회에서 내가 겪은 것은 (…) 나에게 오십 평생에 처음 겪은 체험이었다. 그건 축제의 체험이었고, 축제에 모인 사람들의 도취였으며, 무리 속에 끼인 개체의 몰락의 비밀, 환희의 신비스런 통일의 비밀이었다. (…) 황홀경에 빠진 사람,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의 취한 듯한 눈에서 나오는 저 광채, 모임의 도취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의 저 미소와 반쯤 미친 듯한 몰락을, 나는 인생에서 숭고한 혹은 비루한 실례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다.  

-헤르만 헤세,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민음사, 238~239쪽. 





마음껏 술을 마시고, 마음껏 춤을 추며, 반쯤 정신 나간 내 모습을 누가 보든 상관하지 않는 그런 축제를 즐겨본 적이 있던가. 독일인들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축제 옥토버페스트를 다룬 글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보았다. 좋은 사회란 사람들이 가끔 공개적으로 미칠 수 있도록 거대한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곳이 아닐까. 인간은 주기적으로 규칙을 지킬 수는 있지만, 규칙 자체에 영혼을 끼워 맞출 수는 없다. 일터나 조직생활에서는 규율을 지키다가도,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는 자기 영혼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광장의 놀이터가 필요하다. 영혼의 해방구가 어두운 밀실에만 집중될 때, 사람들은 위험한 놀이나 과격한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누구에게나 숨어서 공상하기 좋은 ‘자기만의 방’은 필요하지만 모든 놀이를 ‘방’ 안에 숨어서만 즐기는 현대인들은 마음의 은신처를 찾기가 쉽지 않아져 버렸다. 




노래방, 피시방, 디브이디방, 멀티방 등 수많은 방들은 해방구를 찾지 못한 욕망들의 가여운 밀실이 아닐까. 그런 놀이의 욕구를 커다란 광장에서, 누구도 경제적 이유로 제약을 받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붙들리지 않은 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축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리는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런 축제를 즐겨본다. 그 속에서 멋진 남성으로 변신하여 자신을 유혹하는 헤르미네,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타나 자신을 유혹하는 헤르미네의 두 얼굴을 본다. 헤르미네에는 온갖 변장을 하고 나타나 하리를 유혹하지만, 그 유혹은 음탕하지 않다. 그녀의 유혹은 오히려 고도의 세련된 지성으로 무장한 우아한 관능처럼 보인다. 헤르미네에게는 수많은 가면들이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헤르미네가 유흥가의 여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리 할러의 눈에 비친 헤르미네는 천사이자 여신이며, 자신의 무의식을 투영하는 이상적인 아니마다. 




평소에는 아주 은밀하게 두 사람의 영혼이 접신하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속에서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던 헤르미네는 ‘미친 사람들만 들어오세요.’라고 안내했던 바로 그 가면무도회에서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마음껏 보여준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빗물을 천천히 흡수하던 웅덩이가 어느 날 갑자기, 그러나 순수한 자연의 힘으로 거대한 폭포로 변신하는 것과 같은, 그런 폭발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녀는 하리 할러가 동화 속의 소년처럼 행복하게 축제 속을 헤엄쳐 다닐 수 있도록, 그가 공동체와 음악과 리듬과 술과 쾌락의 달콤한 꿈과 도취를 호흡할 수 있도록, 축제의 놀이터로 그를 안내한다. 그가 늘 보이지 않는 넥타이처럼 두르고 다녔던 스스로를 향한 검열과 억압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개체성을 잊어버리는 것. 자신의 에고를 완전히 벗어던지는 망아忘我의 쾌락은 단지 약물이나 놀이를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나친 자의식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 하리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리의 아니마로서 그에게 눈부신 영감을 선물하는 헤르미네는 하리가 본래 지니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인식할 수 없었던 능력을 일깨워준다. 에고의 지나친 명료함, 수퍼에고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순간, 하리는 지금까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은 단지 ‘자신의 야생적 광기’를 감시하는 사회만이 아니라 그런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이 동경하는 저 다른 현실은 오직 자신의 내면에만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열어 드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의 영혼의 화랑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건 기회와 자극의 열쇠일 뿐, 그밖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도와드릴 뿐입니다. 

-헤르만 헤세,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민음사, 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