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2

내 마음을 알아줄 이

저자소개

정여울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글쓰기·듣기·읽기·말하기 네 가지는 그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세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한없이 넓고도 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일정한 틀에 매이기보다 스스로가 주제가 되어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월간 정여울’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와 소란하지 않게, 좀 더 천천히, 아날로그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인문학과 여행의 만남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인문 교양서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등을 출간했다.

나는 나의 문제와 생각을 여자들에게 가져가 의논했다. 책을 읽지 않고, 독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을 구별할 줄 모르는 여자와 한 시간 이상 사랑한다는 건 전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교양이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교양과 같은 에움길이나 대용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모든 문제는 직접적인 감각에서 나왔으니까. 그녀는 타고난 감각으로, 그녀 특유의 자태, 빛깔, 머릿결, 목소리, 피부, 기질로 가능한 가장 큰 관능의 환희와 사랑의 기쁨을 얻었고, 그녀의 재능, 몸매의 휘어진 선, 육체의 부드러운 자태 하나하나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답과 이해와 활기차고 행복한 반응을 구하고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그녀의 기술이고 임무였다. (...) 헤르미네가 내게 마리아를 보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르는 게 없으니까. 마리아의 향기와 모든 특징은 여름에 핀 장미 바로 그것이었다. 

-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202쪽. 



여성을 통한 구원을 꿈꾸는 주인공들은 여성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모든 이상향을 충족시켜줄 완벽한 여인에 대한 꿈, 자신의 모든 결핍을 채워 줄 희생과 배려의 화신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감. 단테의 베아트리체(<신곡>)도, 괴테의 그레트헨(<파우스트>)도 그런 운명적 여인에 대한 일방적 환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남자 주인공들은 여성을 통한 구원을 이루어냈다고 믿지만, 여성들이 과연 그런 구원의 주체가 되기를 원했는지, 그녀들의 마음속은 정작 어땠는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없다. 남성 시점의 화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의 여성관 자체가 그다지 입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리 할러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하리 할러가 구원을 꿈꾸는 여성은 완벽성과 초월성 때문에 남성의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다. 하리 할러를 매혹시키는 여인, 헤르미네와 마리아의 매력은 바로 정직함이다. 



그녀들은 능청도 새침도 떨지 않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척 하지도 않는다. 베아트리체처럼 완벽하거나 그레트헨처럼 희생적이지도 않다. 헤르미네와 마리아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지만, 적어도 하리 할러처럼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지는 않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가까스로 얻어낸 삶의 아주 하찮은 빛이라도 즐길 줄 안다. 하리 할러는 ‘교양 없는 여성’과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를 구분할 줄 모르고, 독서 따위엔 관심도 없는 여성과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모든 편견을 뛰어넘는다. 그녀는 타고난 감각으로 남성을 휘어잡는다. 마리아는 하리 할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아낌없이 불어넣어준다. 그것은 바로 삶의 활력, 잃어버린 열정이다. 삶 자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산다는 건 참 소중한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리 할러는 이런 마리아의 재능을 “황홀하리만큼 세련된 천재적인 관능의 향기”라고 표현한다. 



마리아와 헤르미네를 통해 춤을 배우면서, 하리 할러는 잃어버린 관능과 육체의 활기를 되찾는다. 헤르미네는 다정하게 하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춤 덕분에 건강해지셨어요. 지난 사 주 동안 당신을 보지 못한 사람은 당신을 못 알아볼 거예요.” 하리도 자신이 무엇을 되찾았는지를 인정한다. “몇 년 동안 지금처럼 건강한 적은 없었어. 모두가 네 덕분이야, 헤르미네.” 하리 할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교양과 예술과 열정이 일치하는 삶을 꿈꿨지만, 어디서도 그런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리는 아직도 자신의 지고한 열정을 풀어낼 곳이 없는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고 싶어한다. 헤르미네는 하리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자살의 충동을 읽어낸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결코 만족하며 살아갈 수 없는 하리의 운명을, 헤르미네는 진심으로 이해한다. 



당신이 폭스트롯을 두려워하고 술집과 댄스홀과 재즈 음악 따위에 반감과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런 것을 충분히 이해해요. 당신이 정치를 혐오하는 것도, 정당과 언론의 헛소리와 무책임한 행동에 당신이 비통해 하는 것도, 과거의 전쟁과 앞으로 닥칠 전쟁에 대해, 또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고, 읽고, 집을 짓고, 음악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고, 교양을 쌓는 방식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옳아요, 황야의 이리씨. 천 번 옳아요. 그러나 당신은 몰락할 수밖에 없어요. 당신은 이 단순하고 쾌적하고 사소한 것들에 만족하는 요즘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그래서 이 세상이 당신을 밖으로 내쫓아버린 거예요. 당신은 이 세상에 살기에는 한 차원이 높은 거예요. 

-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민음사, 214~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