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5

미친 사람만 들어오세요

저자소개

정여울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글쓰기·듣기·읽기·말하기 네 가지는 그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세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한없이 넓고도 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일정한 틀에 매이기보다 스스로가 주제가 되어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월간 정여울’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와 소란하지 않게, 좀 더 천천히, 아날로그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인문학과 여행의 만남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인문 교양서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등을 출간했다.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다시 인도로 돌아왔을 때, 내 앞에 천연색 불빛 글자 몇 개가 방울처럼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반사되었다. 나는 읽었다. 

미친.……사람만……입장할…… 수 있음

(…) 온몸이 얼어붙어와 다시 발을 옮겼다. 꿈꾸듯 저 불꼬리를 쫓으면서, 미친 사람에게만 입장이 허용된다는 저 마술극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마음 가득히 동경하면서. 

- 헤르만 헤세,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민음사, 2013, 48쪽.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건드리는 순간들이 있다. 아직 잠과 깨어남의 경계가 불분명할 때,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순간. 술에 취했을 때 기억할 수 있는 시간과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 모호해지는 순간.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봤을 때 강력한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 감당하기 힘든 충격 앞에서 그동안 믿었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들. 이런 순간 무의식은 의식의 단단한 장벽을 두드리며 자신을 그만 깨워달라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속삭인다. 무의식은 오랫동안 간신히 눌러 참았던 슬픔이나 그리움의 형태로 잠복해 있기도 하고, 항상 꿈꾸고 있었지만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던 꿈과 희망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융은 <원형과 무의식>(한구융연구원 옮김, 솔 2010, 2006)에서 말한다. 무의식이란 “내가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든 것, 언젠가 의식했지만 이제는 망각된 모든 것, 나의 감각에 의해 인지되었지만 의식이 유념하지 않은 모든 것”이라고.  



또한 무의식은 “내가 의도 없이, 주의하지 않고, 다시 말해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하고자 하고, 행하는 모든 것, 내 안에 준비되어 있어 나중에야 비로소 의식에 나타나게 될 모든 미래의 것”(44쪽)이기도 하다. 무의식은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총합이다. 무의식은 인간이 이루지 못한 모든 꿈의 총합이기도 하다. 의식 안에서도 매우 다양한 종류의 스펙트럼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한다’와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고 있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행위는 ‘의식’에 가까운 것이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또는 알 수 없는 예감이나 충동에 이끌려 하는 행동은 ‘무의식’에 가깝다. 즉 무의식성이 우세한 의식과 의식성이 우세한 의식은 엄연히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자연스럽게 가는 사람일수록,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일수록, 무의식에 더욱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셈이다. 



도시의 삶은 인간의 원초적인 무의식으로부터 인간을 점점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규칙과 질서를 정해 욕망을 억압하고, 계산과 분석을 통해 인간의 정서조차 통제한다. 무의식은 ‘황야의 이리’처럼 야생적이고 거칠고 광기 어린 본능을 포함한다. 역할이 의식적이라면 ‘본능’은 무의식에 가깝다. 시스템과 역할에 길들어진 현대인은 자신의 본능, 정서, 성격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하리 할러는 스스로를 ‘황야의 이리’라고 부름으로써 자신의 무의식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인간의 무의식을 얼마나 심각하게 억압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깨닫는다. 더구나 전쟁에 대한 강한 비판정신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철통같은 명령과 규율로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 또한 담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이 1차 세계 대전 후의 혼란상 속에서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의 기록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전쟁이야말로 폭력과 권력의 이름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억압하는 최고의 감시장치였다. ‘미친 사람만 들어오세요’라고 속삭이는 마법극장의 광고는 할러의 억압된 무의식을 깨우는 종소리였던 것이다. 



사상이 넘치고, 장난스러우면서도 동경에 찬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누구이며, 이들의 정신과 마술을 가슴에 품고 이들과는 이질적인 다른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자는 누구인가? 암석이 무너져 줄기가 부러지고 갈라졌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보잘 것 없지만 새로운 우듬지를 내뻗은, 구비오 산 위의 저 강인한 작은 실측백나무를 기억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층에 사는 저 부지런한 안주인과 그녀의 반짝반짝 윤이 나는 남양삼나무의 진가를 알아줄 자는 누구인가? 밤마다 라인 강 너머에서 움직이는 안개구름의 글귀를 읽어내는 자는 누구인가? 그 자는 황야의 이리다. 

- 헤르만 헤세,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민음사, 2013, 5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