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2

‘도서관의 날’을 아십니까?

저자소개

이용훈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 도서관문화비평가.


세상에는 수많은 기념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책이나 독서와 관련해서도 몇 가지 기념하는 날들, 책의 날이나 서점의 날, 잡지의 날, 독서의 달 등이 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아실 4월 23일은 바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전세계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렇다면 혹시 4월 12일이 어떤 날인지 아실까?


2022년 12월 새 도서관법 시행으로 생긴 ‘도서관의 날’


‘도서관의 날’이다. 그런 날도 있다고? 물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8일 공포되어 현재 시행 중인 「도서관법」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할 때 ‘도서관 발전을 통한 문화선진국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공공도서관 등록제 도입으로 도서관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강하는 것과 함께 ‘매년 4월 12일을 도서관의 날로 정하고 도서관의 날로 정하고 도서관의 날부터 1주간을 도서관 주간’으로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도서관의 날’은 처음 제정된 것이지만, ‘도서관주간’은 (사)한국도서관협회가 1964년부터 매년 주도해서 추진했던 도서관과 독서문화 캠페인이기도 하니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한국도서관협회 홈페이지 도서관주간 참조]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 관련한 「도서관법」 과 동법 시행령 조항은 다음과 같다.


도서관법


제42조(도서관의 날) 

① 도서관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이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매년 4월 12일을 도서관의 날로 정하며, 도서관의 날부터 1주간을 도서관 주간으로 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서관의 날 취지에 적합한 기념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

③ 제2항에 따른 도서관의 날 기념행사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도서관법 시행령


제31조(도서관의 날 및 도서관 주간 기념행사)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 제42조제2항에 따라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 주간이 속하는 달에 다음 각 호의 기념행사를 할 수 있다.

  1. 도서관 관련 문화예술행사 및 학술행사

  2. 도서관 및 관련 분야 유공자 포상

  3. 그 밖에 도서관 이용 촉진 및 홍보를 위한 행사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서관의 날 및 도서관 주간에 제1항 각 호에 따른 기념행사를 하는 도서관 또는 도서관 관련 단체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2023년 4월 12일, 첫 번째 ‘도서관의 날’ 행사가 열려


2022년 12월에 공포되었기에, 실제 첫 번째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은 2023년 4월 12일에 처음 추진되었다.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이기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통령 소속 국가도서관위원회가 주최하면서 (사)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했다. 슬로건은 “경계 없이 비추는 문화의 빛, 도서관”이었다. 당일 기념식은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도서관캠프 행사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며칠 동안 미래도서관 정책 포럼, 아이디어 해커톤 대회, 작가와 함께하는 북 토크 같은 행사도 있었다. 첫 번째 ‘도서관의 날’ 행사 관련해서는 결과보고서가 공개되어 있으니 한 번 살펴보셔도 좋겠다. 


2023년 제1회 도서관의 날/도서관주간 포스터 등


무엇보다 2023년 첫 번째 ‘도서관의 날’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제1회 도서관의 날 선언문’이 아닐까 싶다. 왜 이런 날을 정해서 기념하고 뭔가를 해 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내용이니 꼭 한 번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란다.


​제1회 도서관의 날 선언문


오늘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도서관의 가치와 공헌을 되새겨 보고 기념하는 도서관의 날입니다.


도서관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온 오래된 문화유산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적인 기관입니다. 또한 자유로운 정보 접근과 지식을 제공하고, 문화와 여가, 경험과 연대의 가치를 나누며 시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도서관은 선조들의 지적인 유산을 토대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도서관은 급변하는 기술과 사회 환경에 발맞춰 때로는 공교육을 보완하는 사회기관으로, 때로는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공간으로, 그리고 디지털 사회의 첨단교육기관으로, 공동체를 연결하는 중심축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서관은 우리 앞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곳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우리 삶을 바꾸고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해 주는 도서관을 배움과 발견의 장소로 만들어 온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올해부터 도서관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도서관 이용을 촉진하고자 매년 4월 12일을 도서관의 날로 정하고, 이날부터 1주간을 도서관 주간으로 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도서관을 방문하시어 세상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서관의 날은 도서관을 위한 날이 아닌 도서관을 이용하는 국민의 날이자, 도서관 이용을 시민 사회의 필수적인 권리로 선언하는 날입니다. 더불어, 도서관의 사명과 가치는 도서관이 오롯이 국민을 위해 충실히 준비되었을 때, 그리고 국민이 도서관을 늘 곁에 두고 이용할 때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도서관이 개인의 발전과 행복을 도모하면서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문화와 기술, 혁신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이 선언문의 원칙에 따라 주어진 사명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아래와 같이 약속합니다.


하나, 도서관은 자유 민주주의의 초석입니다.


도서관은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정보 접근과 알 권리를 보장할 사회적 책무가 있습니다. 국민의 지적 자유를 위해 도서관이 연대하여 공공성과 공익성을 지켜나가겠습니다.


하나, 도서관은 모두를 포용합니다.


연령, 민족, 성별, 종교, 국적, 언어,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접근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지식정보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서관이 돕겠습니다.


하나, 도서관은 삶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키워 나갑니다.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국민의 다양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국민이 경험의 가치를 발견하고 학습과 자기 계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도서관은 국민의 행복한 일상과 함께합니다.


문화·예술 체험 기회와 휴식 제공으로 국민의 일상을 재미와 즐거움으로 채워 줘야 합니다. 책과 다양한 콘텐츠, 프로그램, 강연, 전시 등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연결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하나, 도서관은 지속가능 발전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합니다.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보편적 문제, 지구 환경 문제, 경제 사회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역협력 연계망을 구축하여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2023년 4월 12일


제1회 도서관의 날·도서관주간 조직위원회


올해 열리는 두 번째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 행사도 기대


올해 2024년에도 역시 4월 12일 ‘도서관의 날’을 기념한다. 정부와 함께 전국 각지 공공도서관 등 많은 도서관이 함께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홈페이지도 따로 만들어 행사 관련 소개와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의 날’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맞는 기념일이고, ‘도서관주간’은 정부 주도로 변경되었지만, 한국도서관협회 주도 행사라고 보면 60회째를 맞는다. 그런데 공식적인 문건이나 포스터 등에는 제2회라든가 제60회라는 표기는 없고, 대신 2024년이라는 연도만 표기되어 있다. 뭔가 이유가 있어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제2회나 제60회와 같이 연속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계속 쓰는 것도 좋겠다.


올해의 슬로건은 ‘도서관, 당신의 내일을 소장 중입니다’이다. 행사 주관단체가 된 (사)한국도서관협회가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공모 결과 발표 참조] 지금 우리의 도서관은 바로 당신의 미래를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서관이 당신의 내일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2024년 도서관의 날/도서관주간 행사 포스터 등


올해 ‘도서관의 날’ 기념식은 4월 12일 4시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2일간은 도서관 소풍 “요즘 도서관 뭐함?” 행사가 국립중앙도서관 야외마당에서 열린다. 작년에는 도서관캠프라는 이름으로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홍보 마당이 펼쳐졌었다. 그런데 기념식은 서초구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려, 이 두 곳을 오간 분들이 꽤 있었다. 올해는 한 곳에 기념식도 하고 대국민 홍보 마당도 펼친다고 하니 나름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다. 다만 이왕이면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래서 도서관 사람들 뿐 아니라 시민들도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을 즐기면서 도서관과 사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더 깊이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 작년처럼 광화문광장에서 행사를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4월 11일과 12일에는 올해 행사가 열리는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을 꼭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그 외에 4월 11일에는 “도서관과 리터러시, 미래를 이끄는 힘”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 12일에는 최은영 작가와 함께 하는 공연과 대담이 준비되어 있다.두 행사는 참석할 수 있는 인원이 150명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중 그리고 ‘우리동네 도서관 프로젝트; 찾아가는 작가 강연’이 사전 공모를 통해 정해진 전국 30곳의 공공도서관/학교도서관에서 4월 12일부터 18일 중 열린다.자세한 사항은 ‘도서관의 날’ 홈페이지 참조


한국도서관협회도 회원들과 함께 도서관주간 행사를 다채롭게 추진


2023년부터 ‘도서관주간’이 정부 주도 행사가 되었지만, 한국도서관협회는 지난 60년 동안과 같이 계속해서 도서관주간 행사를 주도해 진행하고 있다. 


협회가 밝히고 있는 도서관주간 취지는 다음과 같다. 


○ 도서관의 가치와 필요성을 널리 알려 국민들의 활발한 도서관 이용을 도모하는 홍보의 장 마련


○ 도서관인들과 국민들의 만남을 통한 상호 이해 증진의 장 마련


○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도서관 봉사체제 모색 및 새로운 도서관 문화 창출의 기회 마련을 위한 토론의 장 형성


○ 범국민 독서 활성화 캠페인의 토대 마련


○ 도서관의 날4월 12일 행사 연계 추진.


이러한 도서관주간의 취지에 맞춰 많은 도서관이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추진하고 있기는 해 왔고, 60회째를 맞는 올해는 더욱 다채롭고 열정적인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주간 홈페이지에서 전국 각 도서관들의 프로그램을 수집하고 있는데, 현재2024.4.2. 20:00 1,611개 프로그램이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준비한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곳도 있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각 지역별로 보기 좋게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시민들께서는 도서관주간 기간 동안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가 즐겁게 도서관주간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에 대한 기대와 바람


이제는 정부 주도 행사로 성장한 것은 고무적이다. 정부가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을 주도하게 되었다면 이전보다 다른, 훨씬 더 나은 방식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몇 가지 바람을 적어본다.


우선 도서관 발전에 공이 있는 도서관인이나 시민에 대한 포상이 강화되길 바란다. 지난 60여 년 민간단체와 도서관들이 자체적으로 충실하게 추진해 온 도서관주간을 정부 주도의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 행사로 그 격을 높이고자 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도서관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포상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작년 제1회 도서관의 날 기념식에서 있었던 도서관계 유공자 시상은 많이 아쉬웠다.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에는 수상자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문화체육광부의 ‘2024년 정부포상 및 시상운영계획’(안)에는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을 맞아 도서관과 독서진흥에 기여한 유공자 포상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문화부가 그동안 출판이나 독서 분야의 ‘책의 날’10월 11일이나 ‘인쇄 문화의 날’9월 14일, ‘잡지의 날’11월 1일, ‘전문신문의 날’11월 20일, 독서의 달에도 해당 분야 유공자에게 정부차원에서의 포상을 해 오고 있는데, 그중 책의 날과 인쇄 문화의 날, 신문의 날에는 훈장도 수여한다. 그 외의 날에도 대체로 대통령표창까지는 수여해 왔다. 그러니 법 규정에 따라 정부가 주도하는 올해 ‘도서관의 날’에는 다른 날들 정도의 정부포상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부는 물론 한국도서관협회 등 도서관계는 ‘날’과 ‘도서관주간’을 계기로 더 다양하고 강력한 도서관의 가치와 필요성, 중요성 등에 대한 홍보 활동을 강화하면 좋겠다. 1964년 첫 번째 도서관주간 때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관련 좌담회 등을 방송하기도 했다. ‘마음의 병원 도서관을 찾자’라는 홍보 영상은 6개월간 전국 각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도서관주간에는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 등 언론을 통한 좌담회를 가지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도서관 단위로 행사들을 진행하는 경우는 많으나 정부나 도서관계 공동의 활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도서관계가 협력해서 보다 다양한 홍보 채널을 활성화하면 좋겠다. 요즘 SNS 채널을 잘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더해서 레거시 미디어도 잘 활용하면 좋겠다. 공중파 방송에서 도서관의 가치와 미래 등에 대해서 토론이나 좌담회 같은 것을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 


1991년 ‘전국 도서관인 큰모임’, 오래된 미래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주간에 대해 쓰다 보니, 문득 1991년 제27회 도서관주간을 맞아, 그리고 도서관 정책이 문화부로 이관된 것을 계기로 국립중앙극장에서 ‘전국 도서관인 큰모임’이라는 큰 행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시 한국도서관협회 이춘희 회장은 행사 개회사에서 금년1991년을 ‘다시 태어나는 도서관의 해’라고 부르고 싶다는 소망을 표명했다. 정책부서 이관을 계기로 공공도서관들은 ‘민중의 대학’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센터요 정보센터로서, 평생교육의 장으로서 누구나 다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민주사회의 공공도서관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이어 격려사를 한 분은 당시 문화부 이어령 장관이셨다. 격려사를 통해 광대한 문화 국가의 비전을 펼치면서 그러한 비전을 현실에 구현하는데 도서관과 도서관인의 역할을 강조하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연설 중에 “도서관진흥법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도서관은 도서관인들의 것이다’라는 가장 중요한 권리를 새겨 놓은 그 조문입니다. 즉 앞으로 도서관 관장은 명예로운 사람, 또는 명예직, 이러한 하나의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 평생을 사서관으로서 일생을 바치려고 하는 전문인들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라는 말씀은 오늘의 도서관 문화를 만든 초석이 되었지만, 3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만나는 ‘도서관의 날’에 과연 가장 중요한 과제나 이슈는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물론 도서관 사람들은 ‘도서관은 도서관인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일생을 도서관 일에, 도서관을 통해 민주사회 건설에 노력하는 도서관인들이 온전히 도서관을 맡아 운영할 수 있을 때, 그 성과가 오롯이 국민 모두에게 고르게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서관에 큰 힘을 보태주셨던 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께서 도서관과 도서관인, 무엇보다 정치인과 시민들에게 남긴 말씀을 다시 읽어보는 것으로 도서관인이자 우리나라 주권자로서인 나의 두 번째 ‘도서관의 날’과 60번째 ‘도서관주간’을, 그리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이하려 한다.


그들은 하나이면서도 백이며 천입니다.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떨어져 있는 내면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와 개체를 동시에 소유한 기적의 공간, 이 도서관의 상징적인 공간을 우리 정치인들은 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화를 정치이념으로 응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도서관의 소중함을 정치에 반영하여 민주주의라는 종교의 교회가 바로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각 지역에, 자신의 선거구에 도서관을 만드는 사회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는 현대의 운명입니다. 정치가는 이 운영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좋든 궂든 이 현실의 힘을 도서관의 협력자로 맞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옛날 도서관들은 전부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침 해가 비칠 때 문을 열어 놓고 젖은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말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습기와 온갖 것을 부패시키고 소멸시켜 가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던 것이지요. 도서관은 우리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인류의 공동체험을 습기와 시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쌓아 올린 성곽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들은 어떤 승리자보다도 위대한 승리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을 이겼기 때문이며, 앞으로 천 년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은 문화의 뿌리라고 했는데 뿌리는 꽃처럼 화려한 빛깔도 없으며 잎처럼 바람에 춤추는 법도 없으며 열매처럼 단맛도 내지 않습니다. 도서관처럼 침묵 속에서 단지 어두운 지하로 조용히 뿌리를 내릴 뿐입니다.


도서관인들은 떠들지 않습니다. 외치거나 구호를 부르짖지 않습니다. 외로운 사서실서고 속에서, 그리고 조용한 어느 한 모퉁이에서 뿌리처럼 자라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이 꽃이 되고 잎이 되고 열매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위대한 뿌리가 저 깊은 대지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 줄 것입니다. 문화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인 시간과 공간의 투쟁이 지금 이 자리에서도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의 이 짧은 이야기도 종지부를 갖지 않는 명제로서 끝내야 할 것입니다.


─ 1991년 4월 16일 문화부장관 이어령


[이어령 문화부장관 격려사를 포함한 1991년 ‘전국 도서관인 큰마당’ 관련 내용은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문화」 1991년 3·4월호에 모두 수록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은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란다.] 


 

★「한국독서교육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