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1

위대한 공공도서관을 가질 권리와 책임은 시민에게 있다

저자소개

이용훈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 도서관문화비평가.

ⓒ스타필드 수원의 별마당도서관.


지난주 도서관 관련해서 크게 주목받은 사건이 있었다. 수원에서 새로 문을 연 대형 복합쇼핑몰에 마련된 ‘별마당도서관’이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개장하는 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자칫 사고 우려까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1월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수원의 별마당도서관은 코엑스에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공간과 장서는 조금 적지만, 개방적인 공간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3층에는 1만 5천권의 장서를 갖춘 공공도서관 ‘별마당 키즈’가 들어섰다”고 한다. 


공립 공공도서관도 매력적 공간일 될 수 있을까?


이같은 소식을 접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첫 번째는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쇼핑몰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도서관 이름을 단 책 공간은 시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수원의 별마당도서관은 사진으로만 봐도 코엑스에 있는 것보다 공간감이 한층 더 도전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개장 첫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것이다. 민간기업이나 상업적 영역에서 ‘별마당도서관’과 같은 곳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민간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도서관의 이미지나 내용을 활용하는 것은 나름 ‘집객효과’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코엑스에 별마당도서관 사례를 통해 대형쇼핑몰들이 핵심공간에 상업시설 대신 도서관 등 문화와 휴식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집객 효과와 분수 효과를 누리겠다는 복안이며 코엑스에서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뉴스핌」 2018.5.29. 기사 참조] 그러나 민간의 이같은 도서관을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공립 공공도서관들을 이렇게 멋지게 만들 수는 없을까? 


물론 가능하다. 역시 지난주 언론을 통해 전해진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좋은 사례다. KBS가 1월 29일 “인구 3만에 방문객은 5만… 인제 도서관의 기적”이라는 보도를 통해 지난해 6월 개관해 6개월밖에 안 된 도서관에 지역 인구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시골 마을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가 시설의 합리적 기능을 발현하고 문화공간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건축물을 발굴해 시상하는 제9회 한국문화공간상에서 도서관 부문에서 상을 수상하였다. [「강원일보」 2024.1.19. 참조] 건축 관련 전문지인 「SPACE 공간」 2024년 1월호에 도서관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소개되기도 했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공립 공공도서관들도 건축적으로나 공간 구성 면에서나 적극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매력적인 공공시설로 등장하고 있다. 전국 여러 곳 기적의도서관은 물론 의정부시 미술도서관이나 음악도서관 같은 곳들이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공공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간적 매력만으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생각이 든 건 과연 건축적 또는 공간적 매력만으로 충분히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바로 공간건물 혹은 시설과 자료/장서, 사람사서+이용자이다. 요소 간 중요성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도서관이라고 하기 어렵다. 


공간이 매력적이어도, 도서관이라고 하려면 좋은 책과 자료를 갖추어야 한다. 도서관은 시민 개개인 또는 공동체의 지식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지식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식정보를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 서비스다. 따라서 지식과 정보의 핵심인 책이나 자료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조직되어 있는가가 좋은 도서관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가 된다. 도서관이라면 마땅히 체계적인 장서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책이나 자료도 이용하는 시민의 요구는 물론 지역 공동체의 필요까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세심하게 검토해서 입수해야 한다. 입수한 책과 자료는 잘 조직된 분류와 검색 시스템으로 어느 곳에 빠르고 정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별마당도서관 경우는 과연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장서를 잘 구축하고 관리하고 이용하기 편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과연 책을 모아 두었다고 해서 그것을 도서관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그래서 세 번째 요소가 정말 중요하다. 그건 바로 도서관 공간과 장서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기획과 관리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직원, 즉 사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7년 필자는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을 다녀와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이 책을 매개로 만나고 소통하는 공공의 공간이고 서비스다. 그런데 별마당도서관에는 책을 보고 이용하러 온 사람들은 많은데, 이들을 만나서 적절한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 즉 도서관 사서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못 본 것일까? 그런 거라면 다행이다. 도서관 이름을 단 서비스라면 적어도 최소한 이 분야 전담 전문가들이 전면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이들의 요청이나 요구를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당장의 상황에서는 사서들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도서관답게 전문 직원들을 전면에 적극 배치할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즈ize」 2017.6.16. 참조


또한 「강원도민일보」 사설에서도 “아무리 시설이 훌륭해도 운영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활발하게 운영될 수 있는 배경엔 인제군이 ‘도서관태스크포스’를 신설해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들이 주민에게 제대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운영 중입니다. 지역공동체가 성장하고 의견 소통이 활발해지면 더 많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라며 전문성을 가진 직원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2023.12.20. 사설 참조]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이용하는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동체를 활력 있게 하는 역동성을 주는 힘은 바로 도서관 관련 전문성과 직업윤리 등을 잘 갖춘 사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빠졌다면 그곳을 ‘도서관’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공립 도서관은 위대한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이나 수원 복합쇼핑몰에 설치된 책공간 사례에서 주목해 볼 것은 잘 만들어진 도서관이나 공간은 사람들을 모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도서관이라면 책과 사람을 모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도서관은 명확하게 그 이상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공공의 관점에서는 민주시민사회의 건실한 유지와 성장을 위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바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원들간 합리적이고 열린 대화와 합의를 만들어 가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도서관이다. 단지 매력적인 공간뿐 아니라 잘 조직된 장서, 그리고 전문직원들에 의해 체계적인 정보나 독서, 문화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제공됨으로써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공평한 민주적 주체로서의 시민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렇기에 지방자치단체는 기존은 물론 새로 건립을 추진하는 도서관의 경우 시민들이 적극 찾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매력적으로 꾸미고 풍부하고도 잘 조직된 장서를 갖춘 도서관으로 만들고, 공간과 장서가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하는 기획과 활동의 주체로서 전문사서도 충분히 확보할 책무가 있다. 이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도서관정책의 기초가 되는 「도서관법」에 담긴 정신이다. 도서관들은 바로 이것을 자신의 비전과 목표로 삼아 활동해야 한다.


2022년 10월 우리나라를 다녀간 미국 텍사스대학 T. 데이비드 랭크스 교수는 “도서관은 위험한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안전한 장소였다”[박영숙, “우리 도서관이 ‘부동산 컬렉션’을 만든 이유”, 「월간 참여사회」, 2024년 1·2월호 참조]라고 하면서 도서관은 커뮤니티가 전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서만 쌓아두는 도서관을 넘어, 서비스를 개발하는 수준의 도서관을 넘어 위대한 도서관은 지역사회를 건실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공공의 도서관들은 이제 지역 공동체, 커뮤니티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할 때다. 


도서관 안에도 있는 지역간 불균형, 불평등 해소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있는 도서관들의 사정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고, 지역간 불평등도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필요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우려가 크다. 별마당도서관과 같이 민간부문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고객들을 모으려고 하는 마당에 공공영역에서도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때이다. 특히 지방소멸의 시대, 지역의 위기가 일상적으로 말해지는 이 시대에 국가는 도서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지역간 불균형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 국가의 도서관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특히 시민들도 좋은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와 함께 그러한 도서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해야 하는 책무도 있음을 알고 적극 행동을 할 때이다. 우선 살고 있는 지역의 도서관 건립과 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가진 당해 자치단체장이나 의회 의원 등 행정당국이 도서관의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실제 어떤 정책적 의지나 내용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2024년 한 해 어떻게 도서관을 운영하고자 하는지, 도서관이 시민과 지역 공동체를 위해 전문적인 지식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나 인력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지 등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면 지자체와 의회 등에 적극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실천을 촉구해야 하길 기대한다. 



[지난 기사 이후 추가할 이야기]


1. 도서관계 2024년 전망과 기대 


올해 1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도서관계의 만남에서 현안을 논의하고 정부가 적극적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에서 정부는 도서관 현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적극 해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안 가운데 하나로 제기된 것이 국가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 전문직 관장 보임 건이었다. 「내일신문」의 관련 보도2024.1.18.에 따르면 이날 간담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도서관계의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과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에 대해서는 도서관 전문가로 인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미 3차례에 걸친 공모에서 적격자가 없었다고 한 정부는 이번에는 민간 스카우트 제도를 활용해서 공모 절차에 비해 일정을 1~2주 정도 단축할 것이라는 전망을 전했다. 민간스카우트 제도는 2014년 7월 처음 도입된 제도로, 각 부처가 필요로 하는 민간 최고 전문가에 대해 공모절차를 생략하고 임용하는 제도라고 한다. [인사혁신처 보도자료 2015.9.11. 참조] 아니 이런 제도가 있었는데,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을 처음부터 민간 스카우트 방식으로 채용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아무튼 장관이 이렇게 말했으니 조만간 도서관 전문가로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을 임명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지금 당장 임명해도 너무 늦은 임명이라는 건 잊지 않기를 바란다. 대통령 소속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임명은 더 늦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역시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이 또한 기대해 본다.


최근 여전히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은 국립중앙도서관 관장과 국가도서관위원회 구성의  장기간 지연 상황에 대해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우리의 ‘도서관’이 위태롭다”[「경향신문」 2024.1.10.]하고 지적했고, 「중앙일보」 신준봉 기자는 현재의 도서관 상황이 현 정부에서 ‘찬밥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중앙일보」 2024.1.26.]  이러한 지적을 정부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바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월 17일 소속 국립중앙도서관의 지식정보운영부장고위공무원 나급의 자리를 폐지하고 그 정원을 본부 국제문화홍보정책실장에 배정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도서관계와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이미 이에 대해 도서관계의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중앙도서관 직제 축소는 그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정말 도서관계를 홀대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독서교육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