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1

이게 후광이에요? 上

저자소개

이미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얼마 전 수원의 화성을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 행궁 옆에 커다란 금불상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행궁에 들렀을 때, 동행한 지인이 주차장 뒤로 보이는 불상을 보며 묻더군요. “저 부처님 등 뒤에 달린 게 뭐예요?” 부처님의 등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미륵대불』, 1988년. 높이 1,900 cm. 대승원, 수원.


1. 양산陽傘

2. 광배光背

3. 방패防牌 

4. 병풍屛風


네, 맞습니다. 답은 ‘후광後光’입니다. 그런데 후광이 보기에 안 들어 있죠? 보기 중 후광과 같은 뜻을 나타내는 단어는 ‘광배光背’입니다. 저도 최근에야 후광과 광배가 같은 의미라는 걸 알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불교 조각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관람객을 대동한 투어가이드가 ‘광배’를 설명하고 있더군요. 후광과 광배가 같은 의미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단체 관람객에 섞여 설명을 듣다 보면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때 배운 용어를 여기서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고요. 이 글에서는 두 단어를 같은 의미로 섞어 쓸 예정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환유 시리즈의 스핀오프 2화의 주제는 후광 혹은 광배입니다. 앞글, 「대천사 가브리엘에게도 성별이 있어요?」에서 환유의 한 예로 천사와 날개의 연관관계/결합관계를 살펴봤다면, 이 글에서는 기독교와 불교의 성자를 비롯한 특별한 사람과 후광의 연관관계/결합관계에 대해 살펴볼 예정입니다. 기독교 성화와 불화佛畵, 혹은 조각작품에서는 성자나 부처의 몸 주변에 거의 항상 후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왕이나 영웅 같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에게도 후광이 빛나죠. 그러니, 후광이 있는 존재는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후광이 특별한 사람을 의미하는 환유인 거죠. 


그래도 아주 간혹 보통 사람에게도 후광이 비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화에서는 눈길을 사로잡는 미남미녀가 등장할 때나, 첫눈에 반할만한 대상이 나타날 때 후광이 빛납니다. 실제로 얼굴 주변에서 환하게 광채가 나는 사람도 있고요. 보통 사람의 초상화에 후광이 그려져 있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있습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Isabella Stewart Gardner, 1840~1924는 왕도, 성인聖人도 아닙니다. 물론,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을 건립한 특별한 사람이긴 하죠. 그렇다고 초상화에 후광을 그려 넣을 정도의 위업을 쌓은 영웅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는 벽지 무늬를 이용해서 부인의 머리 뒤에 아주 교묘하게 원형의 후광 형태를 그려 넣었습니다. 부인을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겁니다.         


존 싱어 사전트,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의 초상』 중 일부, 1888년. 캔버스에 유화, 190 × 80cm.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보스턴.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후광은 여러 가지 형태로 성자나 부처의 머리 위나 뒤, 혹은 등 뒤를 장식하고 있죠. 동그란 원형의 후광에 익숙해져 있다가 위 미륵불상 뒤의 광배처럼 자주 접해보지 못한 형태의 광배를 보면 저절로 질문이 튀어나옵니다. “어, 이것도 후광이에요?” 여러분도 이 글을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을 자주 하게 될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후광이 있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실 테니까요. 세상에 무수한 『수태고지』가 존재하고 각각의 『수태고지』가 다 다른 것처럼, 세상에는 무수하게 다양한 후광이 존재합니다. 워싱턴의 국립미술관에서 르네상스 초기의 성화를 둘러보고 있을 때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후광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와, 후광이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졌다고? 그림마다 후광이 다 다르네.’ 그때부터 특이한 후광이 보일 때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후광이 집중 관심 대상 2호가 된 겁니다. 1호는 가브리엘 대천사고요. 이 글에서는 그동안 찍어놓은 특이하고 아름다운 후광 사진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인 광배는 “머리의 두광頭光, 몸에서 발산하는 신광身光, 그리고 두광과 신광을 포함하여 몸 전체를 감싸는 거신광擧身光 또는 전신광全身光으로 나눌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고 합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위에 있는 미륵불상의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전신광입니다. 그렇다면 미륵대불의 전신광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답은 불꽃입니다. 광배의 모양은 원형, 불꽃모양, 연꽃 문양,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광배의 모양은 원형이죠. 다음 『옥천사 괘불』1808에서 녹색의 원형 광배를 볼 수 있습니다.   


『옥천사 괘불』, 조선, 1808년. 비단에 색, 1,006 × 747.9 (943.5 × 702.0) cm. 고성, 옥천.


녹색의 원형 광배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한 모임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같은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화에서는 녹색 광배보다 금색 후광이 더 흔한 편이고요. 다음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백제시대 후기에서는 연꽃무늬의 광배를 볼 수 있습니다. 


마애여래삼존상』, 백제시대 후기. 용현리, 서산. 문화재청 대변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113400840000 제공.


가운데 여래 입상의 광배 중심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반면에, 여래 입상 양쪽의 서 있는 보살과 앉아 있는 보살의 광배에서는 연꽃무늬만 선명합니다. 불꽃무늬 형태의 테두리는 있는데 불꽃무늬를 세밀하게 새겨넣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살짝 변형된 형태의 연꽃무늬 광배를 하나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장보살입상』, 12세기. 목조에 채색, 금박. 도쿄박물관, 도쿄.


원형 광배 속에 연꽃잎들이 보이죠? 같은 연꽃무늬여도 『마애여래삼존상』의 연꽃무늬 광배와 『지장보살입상』의 연꽃무늬 광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죠? 다음은 도쿄박물관에 있는 『천수관음보살좌상千手觀音菩薩坐像14세기의 광배입니다. 이 광배는 화려한 불꽃무늬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천수관음보살좌상』, 14세기. 목조에 금박, 도금, 옥으로 만든 눈. 도쿄박물관, 도쿄.


제가 지금까지 본 불상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상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연꽃 대좌臺座도, 광배도 너무나 화사하고 정교합니다. 저는 이 불상의 광배를 꽃봉오리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배 모양이랍니다. 저 위에 있는 『미륵대불』의 전신광 역시 배 모양입니다. 이 광배의 가장자리 부분은 불꽃무늬가 확실한데, 안쪽은 당초唐草 무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군데군데 꽃봉오리가 달린 것처럼 보이고요.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원에 있는 『청도도금관음보살입상』당나라 8세기의 광배 역시 테두리는 불꽃무늬인데 안쪽에는 당초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청도도금관음보살입상』, 당나라 8세기. 도금. 국립고궁박물원, 타이베이.


『감산사 미륵보살입상』719과 『감산사 아미타불입상』719~720의 불꽃무늬 광배도 전신을 감싸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두 불상의 불꽃무늬 광배도 배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다가 살짝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국립중앙박물관의 자료 정보에는 『감산사 미륵보살입상』과 『감산사 아미타불입상』의 높이가 270cm, 275cm로 나와 있는데 사진으로는 더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도 다른 정보가 나와 있고요. 박물관의 담당 직원과 통화를 한 다음 미륵보살입상의 높이가 250cm, 아미타불입상의 높이가 271.5cm라는 정확한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검색 정보가 곧 수정되겠죠?


왼쪽 - 『감산사 미륵보살입상』, 통일신라시대 719년. 화강암, 전체 높이 250 cm. 오른쪽 - 『감산사 아미타불입상』, 통일신라시대 719~720년. 화강암, 전체 높이 271.5 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일단,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불교미술에 등장한 몇 개의 광배를 살펴봤는데, 다들 독특하게 아름답죠? 그렇다면 광배는 불교에서만 사용하는 의장儀裝일까요? 그럴 리가요. 이집트의 태양신 라Ra의 그림에 후광이 등장하고,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그리스어: Hómēros, 기원전 8세기경는 『일리어드』Iliad』에서 아킬레스Achilles로부터 후광이 빛났다고 노래했습니다. 또한 태양신, 아폴로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신과 알렉산더 대왕 같은 왕들의 모습에 후광이 등장하고, 고대 로마에서도 아폴로와 포세이돈의 모자이크에 후광이 나타나죠. 그러니까 후광은 고대 이집트를 기점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기독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의 신과 성자들을 비롯해 왕과 영웅들을 묘사할 때 두루 나타났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첫 번째 예는 네페르타리Nefertari 무덤에서 출토된 『라와 이멘테트Ra and Imentet기원전 13세기이고, 두 번째 예는 인도 메와르 왕조의 왕을 그린 『말을 탄 마하나 아마르 싱 2세재위: 1698~1710의 초상화An equestrian portrait of Maharana Amar Singh II of Mewar1700~1710입니다. 세 번째 예는 힌두교의 최고 신인 비슈누산스크리트어: विष्ु의 여덟 번째 현신인 크리슈나와 그의 아내를 그린 『새해를 맞이하는 크리슈나와 루크미니Kṛṣṇa and Rukminī at the New Year1840~1850입니다.   

 

『라와 이멘테트』, 기원전 13세기.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Maler_der_Grabkammer_der_Nefertari_001.jpg#/media/File:Maler_der_Grabkammer_der_Nefertari_001.jpg 제공.


『말을 탄 메와르의 아마르 싱 2세의 초상』, 1700~1710년. 종이에 채색과 금. 하버드대학교 미술관, 보스턴.


『새해를 맞이하는 크리슈나와 루크미니』, 1840~1850년. 킬라 무바라크 성채 벽화, 펀잡.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Detail_of_a_mural_depicting_Krishna_and_Rukmini_from_the_Sheesh_Mahal_of_the_Qila_Mubarak_in_Patiala.jpg#/media/File:Detail_of_a_mural_depicting_Krishna_and_Rukmini_from_the_Sheesh_Mahal_of_the_Qila_Mubarak_in_Patiala.jpg 제공.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