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4

그림에도 환유가 있나요? ③

저자소개

이미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제가 요즘 즐겨 보는 TV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초반부에 솔로 남녀 출연자의 직업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외모와 말투 등을 토대로 출연자의 직업을 추측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외모로만 직업을 추측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직업과 외모를 연결할 단서가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출연자의 직업을 알아내는 일이 미술관에서 초상화를 보고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이 무엇인지 추측해 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배경에 여러 대상이 함께 그려져 있으면 추측이 좀 더 쉽겠지만, 아무 배경 없이 상체와 얼굴만 그려진 초상화라면 초상화 속 인물이 무슨 일을 했을지 추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초상화 속 인물의 직업을 추측하는 일이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의 직업을 추측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낫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직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초상화의 모델이 될 정도면 초상화를 의뢰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과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을 테니까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정답일 가능성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귀족’이라고 대답하면 50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초상화를 보고 초상화 속 인물의 직업이 무엇인지 한 번 맞혀 보시겠어요? 


알브레히트 뒤러, 『히에로니무스 홀츠슈어의 초상』. 1526년. 패널에 유화, 51 × 37 cm. 게멜데갈레리, 베를린.


눈빛이 범상치 않죠? 비싼 모피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부유한 상인일 수도 있겠지만, 꿰뚫는 듯한 당당한 눈빛으로 봐서는 상인보다는 귀족일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히에로니무스 홀츠슈어Hieronymus Holzschuher, 1469~1529는 지방 귀족으로, 종교개혁 시기에 개혁진영에 가담한 뉘른베르크Nürnberg 시의 공직자였답니다.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지닌 지도자의 면모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압도적인 눈빛으로 표출되는 것 같죠? 사실, 이런 초상화를 보고 초상화 속 인물의 직업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유추할 만한 단서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직업과 긴밀한 연관관계/결합 관계가 있는 단서가 그림 속에 제시되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이 단서가 초상화 속 인물의 직업을 드러내는 환유로 작용할 테니까요. 이 글에서는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가 들어 있는 그림들을 모아 직업 특집으로 꾸며 보겠습니다. 각 그림에서 직업을 나타내는 대상을 찾아서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을 추측해 보시길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____________, 1872년 이후. 린넨에 유화, 97.8 × 70.5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이 초상화 속 여성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너무 쉬운 질문이죠? 그림 속 여성이 들고 있는 팔레트와 붓을 통해 그녀가 화가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화가는 붓과 팔레트로 그림을 그리니까요. 붓과 팔레트와 화가 사이에는 인접성을 토대로 한 확고한 연관관계/결합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붓과 팔레트가 화가라는 직업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도구가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가 되는 거죠. 환유는 ‘A’를 인접성contiguity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B’로 바꾸는 비유법입니다. 일상적인 표현 중에도 도구로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펜으로 먹고산다’라는 것은 직업이 ‘작가’라는 것을 의미하고, ‘말로 먹고산다’라는 것은 직업이 ‘변호사’나 ‘연예인’이라는 뜻이겠죠. ‘운전대를 잡고 있다’라는 것은 직업이 ‘운전’이고, ‘교편敎鞭을 잡고 있다’라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거죠. ‘펜’과 ‘말’ ‘운전대’와 ‘교편’은 ‘작가’ ‘변호사나 연예인’ ‘운전업’ ‘교사’라는 직업에서 중요한 도구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펜’ 대신 ‘키보드’로 글을 쓰는 작가가 많겠죠. 교실에서도 ‘교편’ 대신 ‘빔프로젝터 리모컨’을 사용하는 선생님이 더 많을 겁니다. 이렇게 ‘도구’로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돌잔치 상이 아닐까요? 돌이 된 아기 앞에 쌀이나 붓, 활, 돈, 실 등을 펼쳐놓고 아기가 집는 물건으로 아기의 장래를 점쳐보는 돌잡이 기억하시죠? 요즘에는 마이크나 청진기, 계산기나 각종 운동용품 등 돌잡이 대상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돌잡이 대상 중 실이나 국수는 장수를 의미하는 은유입니다. 실이나 국수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뜻이니까요. 쌀이나 돈은 인접성에 의한 환유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쌀과 돈이 넉넉하게 있으니까요. 붓이나 활, 마이크, 청진기, 계산기, 운동용품은 ‘도구’로 직업을 의미하는 환유입니다. 책이나 붓, 종이, 연필 같은 문방구류는 공부 잘하는 학자가 되라는 의미고, 활이나 칼 같은 무기는 군인이나 경찰관이 되라는 거겠죠. 마이크는 연예인을 의미하고, 청진기는 의사, 계산기는 금융직, 운동용품은 운동선수를 의미하고요. 만약 돌잡이 상에 붓과 팔레트가 있어서 아기가 이것을 집으면 장차 화가가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위 그림 속 여성의 직업이 화가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겠죠? 위 그림은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Élisabeth Vigée Le Brun, 1755~1842이 그린 자화상으로 제목은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프랑스어: Autoporitrat au chapeau de paille』입니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어: 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793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린 패셔니스타 화가죠. 그런데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거나 혹은 다른 화가의 초상화를 그릴 때 위 그림처럼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려서 그림 속 인물이 화가라는 것을 보여줄까요? 항상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초상화 속에서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화가도 많으니까요. 


렘브란트,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 1665~1669년. 캔버스에 유화, 114.3 × 94 cm. 켄우드 하우스, 런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Rembrandt_Self-portrait_(Kenwood).jpg#/media/File:Rembrandt_Self-portrait_(Kenwood).jpg 제공.


알브레히트 뒤러, 『엉겅퀴를 들고 있는 자화상』, 1493년. 피지에 유화, 56.5 × 44.5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그런데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의 자화상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지 않으셨나요? 설마 저런 드레스를 입고 그림을 그리진 않겠죠? 렘브란트는 저 차림 그대로 그림을 그린다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뿐만 아니라 자화상 속의 여성 화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성장盛裝을 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같은 남성 화가들은 편안한 작업복 차림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여성 화가들은 파티에 참석하러 가는 듯한 차림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자화상을 통해 보여주는 거죠. 여러 사회적, 구조적 이유로 여성 화가가 드물었던 시절, 여성 화가들은 자신이 실력과 우아함을 겸비한 화가임을 자화상을 통해 잠재적 의뢰인들에게 보여줘야 했습니다.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꾀죄죄한 작업복 차림의 자화상으로는 상류층 고객의 마음을 끌 수 없었기 때문이죠. 여성 화가로서 겪어야 했던 애환이 자화상 속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져 있는 겁니다.  


도구로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가 들어 있는 두 번째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음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___________, 1668년. 캔버스에 유화, 50 × 45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annes_Vermeer_-_The_Astronomer_-_1668.jpg#/media/File:Johannes_Vermeer_-_The_Astronomer_-_1668.jpg 제공.


살짝 헛갈리죠? 그림 속 인물이 손을 올려놓고 있는 둥근 물체가 지구본地球本처럼 보이니까요. 지구본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지리학자가 정답이겠죠? 저도 처음에는 지리학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림을 크게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계 지도가 아니라 여러 동물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점들이 찍혀 있더군요. 그러니까 그림 속 인물이 보고 있는 둥근 물체는 지구본이 아니라 천구본天球本입니다. 별과 별자리, 황도黃道와 적도赤道를 천구 위에 표시해 놓은 거예요. 천구본 앞에 펼쳐진 책 역시 천문학에 관한 책이랍니다. 사실, 돋보기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안 보입니다. 천체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지리학자가 아니라 천문학자겠죠. 그림 속 남성이 천문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옆에 있는 천구본과 천문학 책 덕분입니다. 만약에 망원경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면 지리학자인지, 천문학자인지 헛갈릴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겁니다. 어쨌든 천구본과 책은 그림 속 남성의 직업이 천문학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환유입니다. 그림 제목도 『천문학자네덜란드어: De astronoom』이고요. 그림 속 인물이 지리학자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페르메이르는 『천문학자』 속 모델을 그대로 써서 『지리학자네덜란드어: De geograaf1668년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지리학자 옆에는 어떤 대상이 놓여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두 그림을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지리학자』, 1668년. 캔버스에 유화, 53 × 46.6 cm. 슈테텔 미술관, 프랑크푸르트.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annes_Vermeer_-_The_Geographer_-_Google_Art_Project.jpg#/media/File:Johannes_Vermeer_-_The_Geographer_-_Google_Art_Project.jpg 제공.


지리학자가 사용하는 도구로는 무엇보다 지구본이 있겠죠? 벽에 세워져 있는 지구본은 『천문학자』 속 천구본과 세트라고 합니다. 지리학자는 손에 양각기를 들고 있고, 테이블 위에는 해도海圖처럼 보이는 양피지 지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지구본과 양각기, 지도는 세계 지리를 탐구할 때 없어서는 안 될 도구들이죠. 『천문학자』와 『지리학자』는 방의 구도도 비슷하고, 모델도 비슷해 보입니다.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루크레티아이탈리아어: Lucrezia1640/1642와 『클레오파트라Cleopatra1640~1642에서 똑같은 모델을 똑같은 자세로 그리되, 환유로 작용하는 대상을 달리함으로써 두 인물의 신원을 드러냈었죠? 페르메이르 역시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모델을 그리되, 환유로 작용하는 다른 도구들을 배치함으로써 그림 속 두 인물의 직업이 천문학자와 지리학자라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도구로 직업을 표현한 세 번째 예는 너무 유명해서 여러분 모두 잘 아실만 한 초상화입니다. 그래도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대상이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인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요제프 카를 슈틸러, __________, 1820. 캔버스에 유화, 62 × 50 cm. 베토벤 하우스, 본.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Beethoven_1820.jpg#/media/File:Beethoven_1820.jpg 제공.


이 초상화는 요제프 카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 1781~1858가 그린 『장엄미사를 작곡하고 있는 베토벤Beethoven with the manuscript of the Missa solemnis1820입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작곡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베토벤이 들고 있는 오선지 악보는 그가 작곡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곡가 옆에는 항상 오선지가 있으니까요. 작곡가가 사용하는 도구인 오선지가 작곡가라는 직업을 나타내는 환유로 작용하는 겁니다. 


다음 그림 역시 직업에 관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는 젊은 여성과 아이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요? 그림 속 젊은 여성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이 젊은 여성의 직업을 나타내는 도구는 무엇일까요? 사실, 아래 그림은 앞글, 「이 그림이 왜 또 여기 있어요? ①」에서 작가 자신에 의한 모작의 예로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의 국립미술관1737에 원작이, 워싱턴의 국립미술관1740에 모작이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_________, 1737년. 캔버스에 유화, 61.6 × 66.7 cm. 국립미술관, 런던.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_________, 1740년. 캔버스에 유화, 58.3 × 74 cm. 국립미술관, 워싱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요? 모녀나 자매처럼 보이진 않죠?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소녀가 한껏 근엄한 표정으로 쇠막대기 같은 것으로 책을 가리키고 있고, 아이 역시 책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하고 있죠? 이 그림의 제목은 『어린 여선생프랑스어: La maestra』입니다. 어린 여선생님이 더 어린 학생에게 교편을 이용해서 교재 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 속 교편이 우리나라 교편하고는 좀 다르죠? 우리나라에서 회초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교편은 나무막대기인 데다 더 깁니다. 그림 속 교편은 금속인 데다 상당히 짧고요. 나무막대기건, 쇠막대기건, 교편은 교사가 수업할 때 필요한 사항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가느다란 막대기를 말합니다. 앞에서 환유의 예로 말씀드린 것처럼 ‘교편을 잡는다’라는 표현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의미입니다. 가르침의 도구인 ‘교편’이 ‘교사’라는 직업을 대체하는 환유인 거죠. 


이제는 조금 난이도를 높여 보겠습니다. 다음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힌 분은 은유와 환유를 완벽하게 숙달하셨으니 이만 하산하셔도 됩니다. 


오레스트 키프렌스키, __________, 1827년. 캔버스에 유화, 63 × 54 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오른쪽 뒤편에 있는 조각상입니다. 누구일까요? 여성이 분명하고, 그리스식 의상을 입고 있으며, 수금竪琴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조각상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림 속의 흐릿한 조각상 대신 더 선명한 다른 조각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에라토』, 2세기. 대리석. 신 카를스베르크 글립토테크 미술관, 코펜하겐.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Erato_monte_calvo.jpg#/media/File:Erato_monte_calvo.jpg 제공.


에라토Erato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 무사Muses 중 서정시를 담당하는 무사입니다. ‘무사’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뮤즈’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오레스트 키프렌스키Orest Kiprensky, 1782~1836의 초상화에서 뒤에 보이는 조각상은 ‘뮤즈’고, 이 ‘뮤즈’는 ‘영감’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위 초상화 속 인물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제 아시겠죠? 화가는 뮤즈 조각상을 통해 이 인물의 직업을 나타냈습니다. 뮤즈로부터, 그것도 서정시를 담당하는 뮤즈로부터, 영감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시인이겠죠. 그렇습니다. 이 그림은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슈킨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의 초상화입니다. 화가인 키프렌스키의 아이디어였는지, 아니면 푸슈킨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겠지만, 배경에 뮤즈 조각상을 그려 넣어서 초상화 속 인물이 시인이라는 것을 표현하다니 정말로 똑똑한 그림 같지 않나요? 


저 위에 있는 렘브란트 자화상에서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이라는 제목에도 나오듯이 렘브란트 뒤쪽 벽에는 두 개의 원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원은 흔히 ‘조토의 완벽한 원’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의 『미술가 열전이탈리아어: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1550~1568에 의하면 조토Giotto di Bondone, 1266?~1337는 화가로서의 기량을 증명하기 위해 컴퍼스 없이 맨손으로 완벽한 원 하나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토의 완벽한 원’은 화가로서의 기량이 완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죠. 키프렌스키가 초상화 배경에 뮤즈 조각상을 배치함으로써 푸슈킨이 뮤즈로부터 영감을 받는 뛰어난 시인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렘브란트는 자화상 배경에 ‘조토의 완벽한 원’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이 완벽한 예술적 기량을 지닌 뛰어난 화가라는 것을 과시한 겁니다. 이렇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환유적인 이미지 하나로 집약해서 표현할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문학에서나 미술에서나 환유의 힘은 강력합니다.

          

그림 속 인물의 직업을 환유로 알아내기라는 이번 주제는 이해하기가 상당히 쉬웠죠? 실제로 미술관에서 활용하기 좋은 해석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 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무슨 일을 한 사람일까? 저 이미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림 속 인물들은 어떤 관계일까?’ 같은 궁금증이 생긴다면 (은유와 더불어) 환유를 동원해서 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