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그림에도 환유가 있나요? ②

저자소개

이미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문자보다 말소리을 더 중시하는 서구형이상학의 전통을 해체하면서 문자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디페랑스différance’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차이’를 나타내는 단어 ‘différence’에서 ‘e’ 자리에 ‘a’를 집어넣은 거죠. ‘차연差延차이와 지연의 합성어을 의미하는 ‘différance’나 ‘차이’를 나타내는 ‘différence’ 모두 발음은 ‘디페랑스’입니다. 소리로는 두 단어가 구분이 안 됩니다. 글자로 써야만 차이가 보입니다. 각 단어에 들어 있는 ‘e’와 ‘a’ 때문에 두 단어가 달라지는 거죠. 물론 언어 체계 전체가 차이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강’이라는 음절이 의미를 갖는 것은 ‘송’이나 ‘망’이라는 다른 음절과 다르기 때문이고, ‘강아지’라는 단어는 ‘송아지’나 ‘망아지’ 같은 다른 단어와 다르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 거죠. 그러니 ‘차이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라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원리를 굳이 ‘디페랑스’에만 적용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로마의 카피톨리노 박물관Musei Capitolini에서 나란히 걸려 있는 두 그림을 봤을 때, 거창하게도 데리다의 ‘디페랑스’가 생각나더군요. 


왼쪽 그림 – 귀도 레니, __________. 캔버스에 유화, 1640/1642년, 91 × 73 cm. 카피톨리노 박물관, 로마. 오른쪽 그림 – 귀도 레니, __________, 1640~1642년. 캔버스에 유화, 91 × 73 cm. 카피톨리노 박물관, 로마.


이 두 그림에서는 동일한 모델이,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액자 형태도 거의 동일합니다. 그림 속 인물의 머리 모양과 옷이 살짝 다른 정도입니다. ‘앗, 이 두 그림은 뭐지? 모델도 같고, 자세도 똑같네. 액자도 비슷해. 설마 제목까지 같진 않겠지?’ 그럴 리는 없겠죠.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그림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두 그림에서 무엇이 ‘différence’와 ‘différance’ 속 ‘e’와 ‘a’와 같은 역할을 할까요? 이 차이점을 토대로 그림 속 두 여성이 누구인지 한번 추측해 보시길 바랍니다.  

    

두 그림 모두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화가인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작품입니다. 비슷해 보이는 두 그림 속에서 결정적인 차이점을 찾으셨나요? 쉽게 찾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두 그림에서 ‘e’와 ‘a’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두 여성이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물체입니다. 왼쪽 그림 속 여성은 날카로운 단도를 쥐고 있고, 오른쪽 여성은 뱀을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의 초점이 조금 흔들리고 조명이 반사된 데다, 애초에 작게 그려진 탓에 오른쪽 그림 속 물체가 뱀인지 선명하지 않습니다. 뱀이 아니라 지렁이처럼 보이죠? 위 사진보다 조금 더 선명한 단독 사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단독 사진에서조차 그림 속 여성이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물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질 않습니다.  


왼쪽 그림 단독 사진


왼쪽 그림에서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칼을 들고 있는 여성은 루크레티아이탈리아어: Lucrezia, ?~기원전 510년경입니다. 고대 로마의 귀족이었던 루크레티아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로마 황제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Sextus Tarquinius에게 강간당합니다.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알린 다음 단검으로 심장을 찔러 스스로 삶을 마감했죠. 이 사건에 공분한 로마인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이것을 계기로 로마의 정치 체제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게 됐답니다. 로마의 역사를 바꾼 대단한 사건인 거죠. 오비디우스Ovid, 기원전 43년~서기 17/18년를 위시해서 수많은 작가가 이 사건을 다뤘지만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서술시, 『루크리스의 능욕The Rape of Lucrece1594일 겁니다. ‘루크리스’는 ‘루크레티아’의 영어식 이름입니다. 레니 뿐만 아니라 여러 화가가 루크레티아를 그렸죠. 그런데 옷을 입고 있건, 벗고 있건, 루크레티아가 항상 들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단검입니다. 루크레티아의 능욕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 단검이 등장하는 거죠. 그 결과 루크레티아 하면 자연스럽게 단검이 연상될 정도로 둘 사이에 연관관계 혹은 결합관계가 확립됐습니다. 이야기 속 한 속성인 단검이 루크레티아를 나타내는 환유로 작용하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미술관에서 단검을 든 여성의 그림을 보게 되면 루크레티아라고 확신하셔도 무방합니다. 


오른쪽 그림 단독 사진


왼쪽 그림에서 단도가 환유로 작용하고 있다면, 오른쪽 그림에서는 뱀이 단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두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는 사진에서도, 오른쪽 그림 단독 사진에서도 뱀이 너무 부실해 보이죠? 위 그림과 비교할 수 있도록 작은 독사의 모습이 더 선명하고 공격적으로 보이는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미켈레 토시니 학파, ___________, 1560년. 캔버스에 유화. 미술사 박물관, 제네바.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Michele_di_ridolfo_(scuola),_suicidio_di_cleopatra,_1560_ca._02.JPG#/media/File:Michele_di_ridolfo_(scuola),_suicidio_di_cleopatra,_1560_ca._02.JPG 제공.


위 그림 속의 뱀은 상당히 무섭게 보이죠? 물리면 죽을 것 같습니다. 기억의 창고를 뒤져서 뱀과 연관 있는 역사 속 여성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오른쪽 그림 속 여성은 클레오파트라입니다. 로마와의 동맹으로 왕권을 유지하려 했던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독재관이자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기원전 100년~기원전 44년와도,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기원전 83년~기원전 30년와도 연인 관계였습니다. 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 기원전 63년~서기 14년가 된 옥타비우스Octavius가 정적인 안토니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하죠.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배신하는 바람에 안토니우스는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참패합니다. 결국 안토니우스는 자살하고 말죠.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우스가 자신을 로마의 개선 행렬에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독사에게 가슴을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위 두 화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화가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그렸습니다. 단도로 가슴을 찔러서 죽은 루크레티아처럼 뱀에게 가슴을 물려 죽은 클레오파트라라는 공식이 수많은 그림을 통해 확립됐습니다. 클레오파트라 하면 뱀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로 인접성에 의한 연관관계/결합관계가 만들어진 거죠. 이야기 속 한 속성인 단검이 루크레티아를 나타내는 환유가 된 것처럼 뱀이 클레오파트라를 대체할 수 있는 환유로 작용합니다. 이런 연관관계/결합관계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Plutarch’s Lives of the Noble Greeks and Romans2세기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셰익스피어의 『앤터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1607에 의해 확고해졌습니다. 물론,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독약을 먹고 죽었다는 설도 있고, 일산화탄소에 질식해서 죽었다는 설도 있죠. 알렉상드르 카바넬프랑스어: Alexandre Cabanel, 1823~1889의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시험하는 클레오파트라Cleopatra Testing Poisons on Condemned Prisoners1887는 클레오파트라가 독약을 먹고 죽었다는 설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시험하는 클레오파트라』, 1887년. 캔버스에 유화, 165 × 290 cm. 왕립미술관, 안트베르펜.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Alexandre_Cabanel_-_Cl%C3%A9opatre_essayant_des_poisons_sur_des_condamn%C3%A9s_%C3%A0_mort.jpg#/media/File:Alexandre_Cabanel_-_Cléopatre_essayant_des_poisons_sur_des_condamnés_à_mort.jpg 제공.


클레오파트라처럼 뱀과 연관 있는 여성이 한 사람 더 있습니다. 그림에서도 뱀과 함께 자주 등장하죠. 바로 기독교에서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간주되는 이브입니다. 이브는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먹게 하죠. 두 사람은 그 벌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렇다면 뱀과 등장하는 여성이 이브인지, 아니면 클레오파트라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옷의 유무인 것 같아요. 그림 속에 옷이 등장하면 클레오파트라고, 옷이 없으면 이브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브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는 아직 벌거벗은 상태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때였으니까요.  


루카스 크라나흐, 『인간의 타락』, 1510년대. 석회석 패널, 137 × 54 cm. 미술사 박물관, 빈.


앞글에서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환유는 ‘A’를 인접성contiguity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B’로 바꾸는 비유법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프랑스어: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1830에서 모자를 비롯한 복장이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와 계층에 대한 환유라고 말씀드렸는데 아직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그림에서는 어떤 인물의 특성이나 업적, 혹은 이력이나 신분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을 그 인물의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인물의 신원을 드러냅니다. 인접한 주변 대상이 인물의 신원을 나타내는 환유로 작용하는 거죠. 문학 작품에서는 굳이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의 신원을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름을 적으면 되니까요. 문학 작품에서는 산문이나 운문을 통해, 은유와 환유를 활용해서, ‘루크레티아는 강간당한 후 자신의 무고함을 알리려 자결했다’라거나 ‘클레오파트라는 여왕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독사를 풀어 물려 죽었다’라는 주제를 글로 표현할 겁니다. 그런데 글이 표현 매체가 아닌 미술 작품에서는 이름이나 신원 자체를 환유를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주변의 여러 이미지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 거죠. 환유에 의지해서 인물의 정체를 드러내는 겁니다. 이것이 미술 작품 속 환유와 문학 작품 속 환유의 중요한 차이점이지 않을까요? 문학과 미술에서 환유가 활용되는 방식과 영역이 다른 거죠.  


이 글을 쓰다 보니 레니의 『루크레티아』와 『클레오파트라』처럼 똑같은 모델을 그리되, 환유로 작용하는 다른 대상을 활용함으로써 다른 인물을 표현한 두 작품이 생각났습니다. 이 두 그림은 레니의 『루크레티아』와 『클레오파트라』처럼 한 공간에, 나란히 걸려 있진 않습니다. 한 작품은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한 작품은 개인 소장품입니다. 개인 소장 미술품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만 특별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개인 소장품은 일반 관람객이 접근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래 두 작품에도 그림 속 여성들이 들고 있는 대상으로 두 사람의 신원을 드러내는 환유가 들어 있습니다. 아래 두 그림에서 ‘différence’와 ‘différance’ 속 ‘e’와 ‘a’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상을 찾아보세요. 어떤 대상을 통해 그림 속 여성의 정체가 드러날까요? 이 두 여성은 누구일까요? 그리스 신화에 대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그림의 제목을 추측해 보시길 바랍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_____________, 1874년. 캔버스에 유화, 125.1 × 61 cm.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런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___________, 1871년. 캔버스에 유화, 131 × 79 cm. 개인 소장.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Dante_Gabriel_Rossetti_-_Pandora.jpg#/media/File:Dante_Gabriel_Rossetti_-_Pandora.jpg 제공.

    

위 두 그림은 모두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의 작품입니다. 로세티에 대해서는 앞글, 「화가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에서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죠? 로세티는 흔히 라파엘전파前派Pre-Raphaelites 화가로 분류됩니다. 라파엘전파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은 매너리즘Mannerism 화가들처럼 예술에 기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화풍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킵니다. 두 그림 속 모델은 제인 모리스Jane Morris, 1839~1914로, 로세티의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아내입니다. 로세티와 제인은 공동으로 빌린 여름 별장에서 지내다 사랑에 빠졌고, 첫 번째 그림 속 여성처럼 제인은 여름에는 로세티와 함께 지내다가 겨울에는 남편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화가와 모델의 관계에 대한 글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인 모리스에 대한 설명에서 첫 번째 그림 속 여성이 누구인지 힌트가 나왔죠? 루크레티아의 단검이나 클레오파트라의 독사처럼 그림 속 여성의 신원을 알려주는 대상은 그녀가 들고 있는 석류입니다. 죽은 자의 영혼들이 사는 명계冥界의 신, 하데스Hades는 농경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의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 혹은 로마 신화의 프로세르피나, Proserpine를 납치해서 왕비로 삼죠. 슬픔에 빠진 데메테르가 농경을 돌보지 않아 대지가 메마른 상태에 이르자, 제우스는 헤르메스Hermes를 하데스에게 보내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에게 돌려보내라고 명합니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면서 페르세포네에게 석류를 권합니다. 그동안 식음을 전폐했던 페르세포네는 어머니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들떠서 석류를 몇 알 먹고 말죠. 위 그림 속 여성이 바로 석류를 먹고 있는 페르세포네입니다. 일단 지하 세계의 음식을 먹은 사람은 그곳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페르세포네는 지상의 어머니와 여름을 보내고 겨울에는 하데스와 지하 세계에 머물기로 합니다. 그림 속 페르세포네와 제인 모리스의 상황이 비슷하죠? 석류는 페르세포네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석류와 페르세포네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결합관계가 형성되고, 석류는 페르세포네를 상징하는 환유가 됩니다. 


위 두 번째 그림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있는 붉은 옷의 여성이 누군지는 이미 다 아실 겁니다. 바로 판도라Pandora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간주되는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받은 인류를 벌하기 위해 신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처벌 전략이었습니다. 신들은 온갖 매력을 갖춘 아름다운 판도라를 만든 다음 지상으로 내려보내기 전에 그녀에게 상자를 주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경고하죠. 판도라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보고 말고요. 결국에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온갖 불행과 재앙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희망만 빼고요. 인류가 겪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판도라로 대변되는 여성 탓으로 돌리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세계관이 반영된 신화라 할 수 있죠. 위 그림에서는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연 후,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온갖 재앙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붉은 연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판도라의 붉은 드레스와 상자에서 뿜어 나오는 붉은 연기 때문에 그림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매우 불길해 보이죠? 석류에 의해 페르세포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판도라의 운명은 상자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런 연관관계/결합관계 때문에 상자는 판도라를 상징하는 환유가 됩니다. 판도라 옆에는 항상 상자가 있는 거죠.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판도라』에서도 판도라 앞에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 1896년. 캔버스에 유화, 152 × 91 cm. 개인 소장.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Pandora_-_John_William_Waterhouse.jpg#/media/File:Pandora_-_John_William_Waterhouse.jpg 제공.


루크레티아와 단도, 클레오파트라와 독사, 페르세포네와 석류, 판도라와 상자처럼 어떤 인물과 강력한 연관관계/결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대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앞글들에서 몇 가지 예를 찾아보죠. 성 제롬Saint Jerome은 항상 붉은색 옷을 입고, 때로 옆에 사자가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추기경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고, 사자가 옆에 앉아 있는 이유는 그가 사자의 발에서 가시를 뽑아 줬기 때문입니다. 성 제롬 옆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해골과 성서가 놓여 있고요. 해골이 주변에 있는 것은 성 제롬이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고행했기 때문이고, 성서가 곁에 있는 것은 그가 라틴어 번역 성경인 불가타Vulgata 성경의 번역자기 때문입니다. 붉은 옷을 입은 성 제롬과 달리 성 프란치스코San Francisco, 1181/2~1226는 항상 갈색 수도복을 입고 있습니다. 성 세바스챤Saint Sebastian, 255~288은 온몸에 화살이 꽂혀 있습니다. 그가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았기 때문이죠. 앞글들 이외의 다른 예를 몇 개 찾아볼까요? 아마도 미술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흔한 환유의 예 중 하나로는 천사의 날개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천사들은 보통 날개가 있고, 머리에 후광을 두르고, 환한 빛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날개도, 후광도, 환한 빛도 없이 그려지는 천사도 있습니다. 천사인지, 보통 인간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죠. 루도비코 카라치Ludovico Carracci, 1555~1619의 『세 천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Three angels hosted by Abraham1610~1612 속 천사들에게는 천사를 상징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천사들에게는 날개가 있습니다.   


루도비코 카라치, 『세 천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 1610~1612년. 캔버스에 유화, 158 × 131 cm. 국립회화관, 볼로냐.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Abraham-And-The-Three-Angels.jpg#/media/File:Abraham-And-The-Three-Angels.jpg 제공.


이와 대조적으로, 날개가 있는데 천사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에로스Eros 혹은 큐피드는 분명 천사가 아닌데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에로스는 때로는 어머니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혹은 비너스와, 때로는 프시케Psyche와 함께 있죠. 그런데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와 함께 있을 때는 주로 꼬마로, 프시케와 함께 있을 때는 아름다운 소년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비너스의 단장』, 1647년. 캔버스에 유화, 122 × 177 cm. 국립 미술관, 런던.


프랑수아 제라르, 『큐피드와 프시케』, 1798년. 캔버스에 유화, 186 × 132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위에서 천사는 머리에 후광을 두르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후광이 천사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기독교와 힌두교, 불교에서 성스러운 인물을 표현할 때 후광을 사용했으니까요. 때로는 왕들과 영웅을 표현할 때도 후광이 사용됐죠. 당연히 보통 사람에게는 후광이 없습니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특별한 존재에게만 후광이 사용되는 거죠. 후광은 때로는 원형으로, 때로는 불꽃 모양으로, 때로는 흰색이나 금색으로, 때로는 아래 사진처럼 녹색으로, 머리 위에 그려지거나 몸 전체를 두르기도 합니다. 


조토 디 본도네, 『최후의 만찬』, 1320~1325년. 나무에 템페라, 42.5 × 43 cm.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 http://www.wga.hu/html/g/giotto/z_panel/3polypty/3lastsup.html 제공.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 조선, 1742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그리스 신화를 다룬 미술 작품에서도 인접성에 기초한 환유의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는 항상 활을 어깨에 메고 있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은 삼지창을 들고 있죠.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a의 어깨 위에는 올빼미가 앉아 있고요. 신화 속 모든 신에게는 인접성으로 결합된 독특한 대상들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환유를 활용해서 그림 속 등장인물에 인접한 대상을 통해 등장인물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림의 전체 의미를 이해하면 미술 작품 감상이 조금은 쉬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환유를 활용하고 싶어도 그림 속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전무한 경우에는 등장인물과 인접한 대상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아낼 수 없겠죠. 루크레티아나 클레오파트라, 페르세포네나 판도라는 워낙 널리 알려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라 그림 속 인접한 대상과의 연관관계/결합관계를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미술관에 연관관계를 알아낼 수 있는 작품보다 그럴 수 없는 작품이 훨씬 더 많다는 거죠. 그렇다고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를 모두 지니고 있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수준의 관람객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사전 정보를 모두 탑재한 상태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미술관을 ‘걸어 다니면서’ 수록 정보를 채워 나가는 ‘백과사전’이 되면 됩니다. 먼저, 작품 캡션을 활용해서 기본 데이터를 수집하면 됩니다. 작품 제목만 알아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처음 접하는 이야기나 인물이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비슷한 구도에 비슷한 자세로 그려진 비슷한 작품을 반복해서 만날 테니까요. 예를 들어, 루크레티아가 누군지 모르더라도 단검을 들고 있는 여성을 반복해서 여러 번 만나다 보면 그녀가 루크레티아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여러분 모두 ‘아, 이 그림 속 인물은 누구인 것 같아. 옆에 있는 저 대상을 보면 알 수 있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을 겁니다. 작품 감상에 이미 환유를 활용하고 있는 거죠. 다만 인접한 대상을 통해 등장인물의 정체를 확인하는 방법이 환유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일 파운드의 살’이라는 표현 속에 ‘피’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샤일록처럼요. 제가 이 글을 통해 하려 했던 것은 여러분이 무의식적으로 해온 작업을 의식화시켜서 그 작업에 환유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은유와 환유를 토대로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이 작품 감상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그림 속 등장인물에 인접한 대상을 통해 등장인물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아, 이건 은유고, 저건 환유네’라고 그림 속에서 비유법을 찾아내는 것은 그림 이해의 일면일 뿐이죠. 은유와 환유를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 그림은 이런저런 작가의 작품이고, 이 작가는 이런저런 기법과 양식으로, 이런저런 주제를 그렸다’라는 전체적인 이해 과정 중 ‘이런저런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