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9

‘기적의도서관’이 걸어온 길과 의미

저자소개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시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지옥> <한 그루 나무의 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야> 외 몇 권의 어린이책과 <힌두 스와라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등이 있다.

순천기적의도서관 전경. 기적의도서관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였다.


좋은 도서관을 많이 가진 나라만이 기본을 갖춘 나라, 품격과 품위를 말할 수 있는 나라, 창조적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나라이다.

                                 ― 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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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최선의 창조적 성장환경과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회의 사회적 평등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모형의 어린이 도서관”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아준 귀중한 시민성금과 민간영역이 기부한 각종의 자원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 합쳐서 건립해왔습니다. 


순천기적의도서관이 2003년 11월 30일 개관한 이래, 2023년 현재 제천, 진해, 서귀포, 제주, 청주, 울산북구, 금산, 부평, 정읍, 김해, 도봉, 부산강서, 구로, 공주, 여주 등 모두 16개관이 개관하여 운영되고 있으며, 인제, 부산진구, 삼척 등 3곳에서는 현재 한창 건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적의도서관’은 도서관의 새로운 공간과 서비스, 시민 참여형 운영 모형을 사회적으로 제시하고자 했으며, 각 지자체에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도서관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특히 2023년 올해는 순천기적의도서관을 비롯해서 제천기적의도서관, 진해기적의도서관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에 더욱 각별합니다. 기적의도서관의 역사는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과 도서관서비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역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적의도서관이 걸어온 길은 전국의 1백여 관에 달하는 어린이도서관, 1천2백여 관에 달하는 공공도서관, 그리고 학교도서관 및 작은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서비스의 모색, 탐구,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시민들이 모아 준 귀중한 성금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합쳐져 건립해 왔습니다. 사진은 2003년 3월 17일 순천기적의도서관 기공식 때의 모습. 어린이와 함께, 시민과 함께, 국민과 함께, 기적의도서관 첫 삽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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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도서관은 네 가지 혁신적인 모델을 사회에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공간 모델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건물과 공간의 차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설계하였고 건축하였습니다. 온돌마루, 아가의 방, 이야기 방, 오목 공간, 다목적실 등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참신한 구성이 도서관 곳곳에 스며들도록 함으로써 아름답고 쾌적한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둘째는 운영 모델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민과 관이 함께 건립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도서관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민관협력governance의 모형을 사회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셋째는 프로그램 모델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들을 즐거운 상상의 나라로 이끄는 매혹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함으로써, 도서관이 창조적 프로그램의 거점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조의 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넷째는 도서관과 지역사회의 관계 모델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단지 도서관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의도서관을 매개로 지방자치단체 도서관정책의 변화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순천시가 ‘도서관 도시’를 표방한 것 등이 그러합니다. 


‘기적의도서관’이 지난 20년 동안 뚜벅뚜벅 걸어오는 동안, 우리나라의 도서관도 함께 변화하고 발전하였습니다. 도서관에 대한 시민의 기대 수준도 무척 높아졌습니다. 도서관을 더욱 도서관답게 만들어가는 일은 단지 도서관 직원만의 몫이 아닙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도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야 합니다. 도서관 업무를 맡은 사서와 이용자인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과거의 도서관을 미래의 도서관으로 바꾸어나가고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새로운 공간과 서비스, 시민 참여형 운영 모형을 사회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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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도서관 건립 운동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으로부터 이어지는 어린이 존중 정신, 어린이에게 창조적 성장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민의 창의와 관의 자원을 결합한 민관협력의 정신, 새로운 도서관 공간과 운영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도서관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창의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이미 도서관 문화운동의 한 성과로서 국내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단지 문화정책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회복지, 정보복지, 지역공동체 운동의 차원에서도 주목되고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는 도서관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루소J.J.Rousseau의 사상에서 자극을 받고, 엘렌 케이Ellen Key의 『어린이 세기』Jahrhundert des Kindes1900의 영향을 받아, 192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온 ‘어린이로부터’의 생각을 담고 있는 도서관입니다. 무엇보다도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파 선생은 1922년 ‘어린이의 날’ 선언, 1923년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어린이날의 취지’와 함께 ‘소년운동의 기초조건’ ‘어른들에게 쓰는 글’ ‘어린이에게 쓰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세이브 더 칠드런의 창시자인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1876~1928 여사가 1923년에 만든 아동권리선언의 초안이 1924년 국제연맹에서 제네바 선언으로 채택된 것보다 앞선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순천기적의도서관은 2022년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하여 어린이의 권리 보호와 지위 향상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순천 어린이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 선언문의 한 대목은 이러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의 마음을 들어주세요.”


소파 선생의 ‘어른들에게 쓰는 글’1923의 한 대목은 이러합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여기서 ‘치어다본다’는 것은 ‘올려다본다’는 것입니다. 존중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곧 “사람이 하늘이며, 만물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사상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관 운동, 어린이도서관 서비스의 정신은 이런 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 존중의 정신을 실천해 온 현장이다. 진해기적의도서관,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북스타트 활동 시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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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기적의도서관에서 2009년부터 펼쳤던 ‘어깨동무 책동무’라는 사업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저학년 읽기부진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어린이들은 5~6세가 되면 글자를 익히고 그림책도 제법 읽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소외 지역과 계층의 어린이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제대로 된 ‘읽기’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어도 읽기부진의 상태인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적정 연령 때에 읽기부진을 겪으면 이는 학습장애로 이어집니다. 또한 읽기부진의 상태에서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뚜렷한 자존의 느낌을 갖기 어렵습니다. ‘어깨동무 책동무’는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낙인효과’ 없이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함께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읽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획했던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독서소외인’을 “시각 장애, 노령화 등의 신체적 장애 또는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독서 문화에서 소외되어 있거나 독서 자료의 이용이 어려운 자를 말한다.”고 규정독서문화진흥법 제2조 3항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읽기쉬운책재단’의 대표인 브로르 잉게마르 트론박케가 작성한 「읽기 쉬운 책을 위한 IFLA 지침서」에 따르면 ‘독서소외인’이란 지적장애인, 딕스렉시아, 자폐증, 언어습득 이전의 청각장애, 시각장애인, 실어증 환자, 고령자, 이주자, 미세 뇌기능장애, 주의력·운동·인지 장애뿐만 아니라 기능적 문맹자, 교육적 불이익을 받는 사람, 어린이 등을 말합니다. 이 지침서에 따르면 ‘독서소외인’는 매우 폭이 넓은 개념으로 장애인은 물론이고, 어린이를 포함하여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개발한다는 것은 ‘독서소외인’ 모두를 존중하며, 독서소외인을 생각하면서 도서관서비스를 개발하고 실천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과 함께 우리나라 도서관의 서비스의 발전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도서관을 많이 가진 나라만이 기본을 갖춘 나라, 품격과 품위를 말할 수 있는 나라, 창조적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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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부터 도서관을 중심으로 문화계의 여러 인사를 모시고 ‘기적의도서관2.0’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왔습니다. ‘기적의도서관2.0’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도서관의 미래’The library of the future에 눈을 돌리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 저출산과 노령화로 일컬어지는 사회 변화 속에서, ①도서관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②시민의 자치·자립적 삶을 지원하는 도서관, ③지역사회의 변화 발전을 이끌어내는 도서관, ④더욱 새로운 공간과 서비스와 운영을 모색하는 도서관에 대한 논의의 작은 ‘씨앗’을 만들 뿐만 아니라, 이 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서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하였습니다.


어느덧 개관 20년이 맞이하고 있는 기적의도서관. 자라나는 세대에게 더 나은 창조적 성장환경을 제공하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기적의도서관에 더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이 글은 「월간 국회도서관」 매거진 2023년 5월호, '특집 주제: 세대공감 도서관' 원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