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9

다문화 가족과 꿈꾸며 그림책 속으로 마음, 퐁당!

저자소개

채송아
독서동아리 ‘다가꿈’ 회원


우리는 만나야만 했다


사람을 마주하기 어려운 코로나19 시기. 어린이집 원장선생님 소개로 그림책 육아를 함께 할 ‘가을하늘’별칭을 만났다. 다문화가정을 향한 마음, 이주여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 꿈을 품고 살아가는 여성으로 누군가의 꿈 또한 지켜주고 싶어 했다. 짧은 시간 울고 웃으며 나눴던 대화의 결론은 그림책을 읽으며 이주 여성들이 잊고 산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보자는 결의였다. 


방학동에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맑은 에너지의 ‘열매’별칭 작가가 산다.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를 읽으며 알게 된 언니다. 본인이 그리고 쓴 창작 그림책 『구멍』처럼, 살면서 생긴 구멍을 그림과 사람으로 메꿔가는 따뜻한 사람. 일정한 형식이나 틀에 고정된 육아나 교육보다 개개인의 재능과 꿈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열매’에게 그림책 모임을 제안했다. 신인 작가이자 든든한 맏언니가 다문화 가족과 함께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겠다 하니 참 감사했다. 


단단하지만 정이 많고, 투명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바다’별칭는 책 나눔을 진행하는 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림책 육아를 한다는 공통분모로 한두 번 그림책 교육을 들었는데 서로에게 강한 끌림이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수용해주는 놀이치료사 ‘바다’. 책임감이 강한 만큼 그림책 모임도 심사숙고하여 선택했다. ‘바다’는 본인이 만나는 한 가정, 한 가정 신경 쓰고 따뜻하게 보듬는 그 예쁜 마음의 소유자였다. 마음, 퐁당! 다문화 가족과 함께 꾸려가 보기로 한 그림책 동아리. 이렇게 우리는 만났고, 만나야만 했다.


다문화 가족과 꿈꾸다


이제 다문화가정을 만나야 한다. 어린이집을 다니며 동아리의 취지를 설명해 드렸고 다문화가정 추천을 부탁드렸다. 동네 필리핀 상점도 방문해보고, 놀이터에서 만난 다문화 엄마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베트남 여성 두 분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첫 모임을 했다. 영아기는 전 생애를 놓고 볼 때 발달이 가장 중요한 과업인 만큼 엄마가 쏟아야 하는 관심과 사랑 또한 만만치 않다. 일하랴, 육아하랴, 집안일 하랴, 언어까지 익히려면 내 꿈이 미뤄지는 이주여성에게는 심리적 위로가 필요했다. 육아에 지칠 새도 없이 양말 공장에서 일해야 했고, 자녀의 발달이 늦어지지 않도록 치료도 다니고 있었다. 이런 우리의 삶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힘들 때 찾을 곁이 될 수 있을까? 소통하며 서로를 알아가기로 했다. 함께하는 우리 또한 오롯이 서서 그림책을 매개로 일상을 나눠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림책을 읽으며 서로가 어디서 반응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서로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가져보다가 꿈꿨었던 것, 현재 꿈꾸고 있는 것을 자연스레 나누는 우리는 ‘다가꿈’ 그림책 동아리이다.


‘다’문화 ‘가’족과 ‘꿈’을 꾸겠다는 마음으로 모인 첫 모임. 동아리명이 ‘다가꿈’이니 바로 꿈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도 있었으나 묻지 않았다. 자기소개를 하고 그림책을 읽고 나누며 “아침에 창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림책 속에서 찾았다는 우리의 동네, 베트남. 그 동네를 함께 바라보고 그려보았다. 어떤 그림이 제일 기억에 남는지 물어보고 침묵 속에서 답을 기다렸다. 한국말이 서툴다며 아주 천천히 말했다. “4년 동안 못 가본 고향이 생각나요.” 우리는 이 짧은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렸던 것 같다. 오토바이도 많고 조용하고 시골인 고향이 그립다는 대답. 본인의 이야기를 용기 내어 살포시 나눠주는 그 순간을 말이다.



또 오고 싶은 그림책 모임


뚜뚜 씨가명와 우우 씨가명는 그림책 활동을 하며 던지는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했다. “몰라요. 괜찮아요.” 개방형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많이 들은 답변은 “네.” 고개를 돌리거나 끄덕여주는 표현이 대답을 대신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를 읽고 후속 작업으로 꽃꽂이를 하면서는 “저 꽃, 안 좋아해요”라며 소극적인 모습도 보였으나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꽃 예뻐요.” 하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책 모임 후, 베트남 식당에서는 평소 잘 못 먹는다는 뚜뚜 씨가 “정말 맛있어요” 하며 분짜 한 접시를 가장 먼저 비웠다. 앞 사람이 덜어준 쌀국수까지 맛있게 먹고 흐뭇한 표정. 잊을 수 없다. 맛도 맛이지만 우리가 편해졌던 것이다.


『쓱쓱 싹싹 목욕탕』과 『넌 뭐가 좋아?』를 읽으며 우우 씨는 자녀가 동물을 좋아하는데 “책 속에 동물이 많이 나와서 재미있다”라며 즐거워했다. 그중 악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점토를 활용하여 악어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뚜뚜 씨와의 대화를 통역해주면서 모임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우우 씨는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단다. 동물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키우며 고민되는 지점을 말한다. 그림책을 읽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말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빠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며 월 2회 중 1회만 참석해도 되는지 물었다. 천천히 함께해도 좋다고 답했다. 매번 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각자의 속도가 있다. 그림책 모임이 좋았냐고 묻는 말에는 “좋아요. 재미있어요. 또 올게요. 또 와도 되지요?” 한다. 어린이집 원장님께도 좋았다며 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림책 모임을 통해 엄마와 일에만 치우쳤던 ‘나’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신 있게 해보는 ‘나’로 서는 중이다.


이젠 동네에서 직접 책 빌려 읽고, 문화 체험도 해요


한국의 미가 담긴 한옥도서관을 방문하여 책도 읽고, 처음으로 대출증도 만들었다. 뚜뚜 씨가 책을 대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녀와 자주 들르면 좋겠다. 책 나눔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듯하다.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알사탕』을 읽으며 ‘아빠의 잔소리’에 공감하며 함께 웃기도 했다. 뮤지컬 보는 날, 공연장으로 이동하면서 “영화는 봤어요. 뮤지컬 처음이에요. 멀리 나오는 거 어려워요. 저 지금 좋아요” 하며 소풍 가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가슴엔 알사탕 그림책을 품고 기뻐하는 뚜뚜 씨의 모습이 그림책 모임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책 모임으로 이뤄가는 작은 공동체


‘다가꿈’ 동아리원들은 서로를 잘 모르고 만났기에 아직도 차근차근 알아가는 중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두세 번 모여 그림책을 읽고 나누던 사이에서, 동아리원의 집에 초대받고 초대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글 비가 내려요』 『백년아이』를 읽으며 작가와의 만남을 논의하고, 다문화 가족을 위한 통역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식사를 했다. 우리는 일상을 나눴고, 좋은 그림책은 공유하며 ‘나’를, ‘자녀’를, ‘이웃’을 어떻게 살필까 고민했다.


마을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참여하여 ‘다가꿈’을 홍보하자는 의견도 나눴다. 가족의 달을 맞이하여 『꼬마 곰과 프리다』를 읽고 앤서니 브라운의 세이프 게임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가져왔다. 종이를 더 받아 가기도 하며 소소한 대화를 이어갔다. 활동 보조를 한 대학생 중에 유학생이 있어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함께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림책을 통해 새로운 놀이를 알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본 시간. 이웃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우리만의 그림책 나눔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웃들과도 고민을 나누고 싶어 『미라클 베드타임』 수면 습관 강의도 열었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규칙적 식사, 규칙적 수면 잘 시도해보고, 부딪혀보겠습니다.” “자기 조절력을 갖기 위해 부모부터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감을 들으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건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보고, 나로 시작해 우리 아이들, 다문화가정의 꿈을 위한 걸음을 하고자 한다. 긍정적인 힘이 자연스레 이웃들에게도 스며들고 있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이 경험치가 쌓여 꿈을 이뤄가고 있다는 소식도 곧 듣게 되리라. ‘마음, 퐁당!’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