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9

나와 너를 넘어 울림 있는 실천으로!

저자소개

이소영
독서동아리 ‘글울림’ 회원


“선생님, 12월이 우리 마지막 모임이어야 하나요?”


두 달 후면 자녀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기에 학부모 자율 동아리로 결성됐던 독서동아리 ‘글울림’도 3년간의 공식적인 모임이 2019년 12월로 마지막이었다. 당시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학교도서관 봉사를 하고 있었던 나는 학부모 명예사서라는 이유만으로 ‘글울림’의 리더가 되었고 그날부터 모임에서 나는 독서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마지막 모임에서 한 회원이 던진 물음으로 우리는 온라인 투표를 거쳐 독서모임을 지속하기로 했다.


학부모와 학교… 그리고 책


나와 한 명을 제외하고 일곱 명은 모두 자녀의 학년이 같다. 늘 그렇듯 학교 행사에서 학부모 참석률이 제일 높은 학년은 갓 입학한 1학년이고, ‘글울림’은 이들 일곱 명이 1학년 학부모일 때 동아리가 결성되었고 그러다 보니 참가인원이 제일 많았다. 처음 한두 번 모임은 정말 가관이었다. 거의 모두가 운영위원회 내지는 학부모 임원단 등 나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아이들의 엄마들. 즉, 독서모임의 목적이 책이 아니라 학교였다. 사람과 책의 만남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교교사의 만남이 주목적이고 책은 그저 그런 수단이었으니 독서동아리 참가신청서를 자발적으로 내놓고서도 책을 안 읽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거침없이 첫날에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이런 학부모 독서모임에 지친 경험이 있는 나는 누구보다 독서모임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모임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 후 만난 두 번째 모임에 함께 정한 도서의 서평을 작성해 나눠주고 미리 준비한 발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발제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나눌 수 있는 생각들이었다. 한낱 수다 떨 생각만 하고 왔던 학부모들이 한 명씩 불참하기 시작했고, 반면 오랜만에 만난 책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추억하기 시작한 엄마들은 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엄마와 딸/아들, 아내와 남편… 그리고 책


‘글울림’의 가장 큰 공통점은 엄마라는 사실이다. 학부모 동아리로 시작한 모임이라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 독서모임에 참석한 엄마라는 존재는 참으로 서글펐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니! 최근에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지도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도서관에 자주 가도 어느 순간부터 독서는 아이들 몫이었고, 대출해 오는 책들도 모두 아이들이 적어주는 목록이거나 아이가 읽어줬으면 하는 책들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독서모임의 참석은 가족에겐 신기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오, 당신이 책을 읽네?” 


“엄마, 지금 읽고 있는 그 책 재밌어요?”


모임 날짜가 다가오면 허겁지겁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다. 아마 숙제를 미리 하지 않는 내 아이는 나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는데 남편이, 아이가 그런 아내의,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신통해 하며 한마디 했다고 한 회원이 수줍게 말한다. 그 말에 모두 박장대소하며 우리 집도 그랬다며 거들었다. 


전업주부뿐만 아니라 워킹맘도 머릿속은 온통 가족으로 꽉 차 있다. 더욱이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이들이다 보니 책 속에 나오는 부모 자녀 간의 관계가 모두 남 일 같지 않다. 독서를 하며 마음을 나누며 우리 모두는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엄마가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책이 전해주는 지식과 지혜로움이 각자의 다른 경험치와 어우러져 세상과 소통하면서 엄마인 우리를 치유하고 성장시킨다. 



온전한 나로 만나다, 책


‘글울림’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책을 구매한다. 읽으며 마음껏 밑줄도 긋고, 귀퉁이 한쪽에 생각 메모도 하면서. 그렇게 3년 동안 모임이 이어지고 아이들 모두가 고등학생 되고 우리에게도 코로나의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등교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두고 독서모임을 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줌zoom 활용법을 빨리 익힌 덕분에 한 달의 공백기만 두고 우리는 비대면 독서모임을 했다. 아홉 명의 회원 중 통상 일곱 명 정도는 참석하는 편이라 대면 모임 때 가끔은 장소에 따라 집중이 힘들 때도 있었던 불편과 달리 비대면 만남은 말하는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그간의 생활패턴을 다 바꿔 버리고 나니 우리 각자도 변화라는 단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변화! 원치 않았던 변화였지만 변화를 놓고 보니 ‘나’ 자신이 보였다. 이제까지는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해나가던 세상이 코로나가 휩쓸고 나니 모르는 것 천지다. 스마트폰도 모르는 기능이 더 많은데 메타버스니 플랫폼 세상이니 하는 단어는 도무지 친하기가 쉽지 않다. 혼동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내가 보였다. 혼돈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치유하고 함께 살아가려면 내가 변해야 했다. 막막한 나를 변화시키는 무기는 책이었다. 이제 우리는 독서모임에서 학부모도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온전한 각자의 고유한 이름으로 자신을 성찰한다. 



가치 공유, 실천 독서


독서동아리 활동이 책을 함께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의미 있는 봉사로까지 이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할 때쯤 2021년에 독서동아리지원센터에서 동아리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지원금은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이 가능하므로 우리는 책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줄인 대신 ‘기부리딩’을 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 권,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의 페이지 수만큼 기부하는데 한 페이지당 10원씩이다. 그렇게 모은 돈을 연말에 불우이웃 성금으로 기부를 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부리딩’은 진행 중이다. 더불어 올해는 집 근처에 위치한 복지관 어르신들께 책읽기 봉사를 하기로 했다. 사회복지사들이 방문하는 어르신 중 우울증 증세가 있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의 일부분으로 책읽고 이야기 나누는 봉사활동을 ‘글울림’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의견을 물어 오셨다. 9월부터 진행하자고 했지만, 다시 코로나가 심해져서 일정이 어찌 될지는 미지수지만 앞으로도 우리 ‘글울림’은 가족과 나만을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 친구와 마을을 돌아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실천 독서를 할 것이다. 책에서 얻은 건강한 가치를 함께 나누는 일은 더 큰 가치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는 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몇 달 전 함께 읽었던 『오십에 읽는 논어』와 『내 나이가 어때서?』가 우리 인생의 후반기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실천의 용기도 주었으니 ‘글울림’의 독서는 이제 실천이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